20화. 1차 시그널송 미션
“연습생분들은 모두 입장하시고 사전에 알려드린 위치로 가 서 주세요!”
오늘 촬영에서 가장 먼저 진행될 녹화는 시그널 송의 그룹별 단체 무대였다.
“와, 세트 봐.”
세트장 안으로 들어온 연습생들이 눈앞에 준비된 세트를 바라보며 저마다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 무대를 위해 회사에서는 꽤 많은 자본을 들여 엄청난 규모의 세트를 지었다.
그만큼 세트는 소품 하나하나 공들인 티가 났다. 세트의 한 가운데에는 오늘 서게 될 무대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는 황금색 별 모양이었다.
때문에 멀리서 봐도 번쩍번쩍한 것이 그야말로 시선 강탈의 효과가 있었다.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해줘야지. 돈 바른 티 팍팍 나게.”
세트장을 본 인현민 대표가 만족스럽게 웃어 보였다.
오늘의 평가를 위해 세트장 반대편에는 별도의 심사위원석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곳에서는 지난 평가 때와 다르게 4개의 좌석이 준비되어 있었다.
‘누가 또 오는 건가.’
그렇게 심사위원석을 보고 있는데, 백은찬이 잔뜩 신이 나서 왔다.
“야, 들었냐?”
“뭘?”
“오늘 평가에 한유미도 온대!”
한유미?
한유미라면 그 데이릴리의 한유미?
한유미는 IN 엔터테인먼트 소속 걸그룹인 데이릴리의 멤버 중 한 명으로 그 데이릴리는 현재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그룹이었다.
그리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유미가 심사위원석에 등장했다.
이후 모든 심사위원이 자리에 앉자 촬영장 저편에서 신 PD가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자, 그럼 바로 녹화 들어갈게요!”
* * *
“안녕하세요. 데이릴리의 한유미입니다.”
오늘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심사위원이 한 명 있었다. 바로 데이릴리의 한유미였다.
그리고 새로운 심사위원인 그녀에게 연습생들은 환호의 박수를 보냈다.
“대박. 데이릴리다!”
“한유미···선배!”
“와, 뭔가 신기해······.”
데이릴리는 연차가 많은 만큼 그룹 인지도도 높지만 그에 못지않게 멤버 개인의 인지도 역시 높았다.
이는 멤버들의 활발한 개인 활동 덕분이었다.
그룹의 메인 보컬인 한유미는 솔로, 뮤지컬 등과 같은 음악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그렇기에 회사에서는 다른 멤버가 아닌 한유미에게 출연을 요청했다. 무대 위에서의 그녀의 실력은 누구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렇게 큰 프로그램에 심사위원 자격으로 출연하게 되어서 영광이에요. 많이 부족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제 경험을 최대한으로 살려 오늘 한번 열심히 심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유미 역시 프로그램 출연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제안을 수락한 건 회사가 기획한 프로그램인 것도 있지만, 무대를 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멋진 무대를 보는 건 그녀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었기에.
그래서 그녀는 지금 내심 조금 신이 나 있는 상태였다.
“오늘 1차 미션은 데이릴리의 한유미 씨와 함께 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모두 최선을 다해주세요.”
그 말이 끝나자 아까와 같은 우렁찬 박수소리가 한 번 더 스튜디오 안을 채웠다.
“그럼 먼저 스테이지 그룹의 무대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무대는 스테이지 그룹의 무대였다.
“왠지 내가 긴장되네.”
“어, 대표님 지금 긴장하시는 거예요?”
“사실 저도 좀 떨려요.”
“마운 트레이너도요?”
“중간 평가 때 그다지 좋은 모습이 아니어서 그런지 괜히 더 걱정되고 그러네요.”
연습생들의 무대가 긴장되고 걱정되는 건 심사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부족한 부분이 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유미 씨는 어때요? 아는 연습생 있어요?”
이송이 트레이너가 옆에 있던 한유미에게 먼저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네! 있어요.”
“누구?”
“어, 일단 선빈이요. 차선빈.”
“아, 그렇지. 선빈 군은 IN 엔터에서 워낙 오래 연습했으니까.”
IN 엔터에서 오랜 연습 기간을 거친 차선빈은 짧지만, 한유미와 어느 정도 연습 기간이 겹쳤다.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다른 연습생들보다는 얼굴이 훨씬 익숙했다.
“또 다른 연습생은 없어요?”
“음···스테이지 그룹에서는 선빈이, 도운이 정도까지만 알겠어요. 다른 분들은 초면이네요.”
사전에 연습생 리스트를 미리 살펴보긴 했지만 역시 아는 얼굴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연차가 꽤 있다 보니 자신이 연습했던 당시와는 연습생들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 그룹에 있는 멤버가 노래를 그렇게 잘한다면서요?”
“아, 세현 군?”
따로 특정 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트레이너는 한유미가 말한 이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챘다.
“첫 평가를 영상으로 보긴 했는데 잘한다는 말이 많으니까 더 기대되더라고요.”
“유미 씨도 메인 보컬이다 보니 더 관심이 가나 봐요.”
“아무래도 그렇죠.”
그렇기에 더 궁금했다.
얼마나 잘하길래?
“그럼 무대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기다리던 무대가 마침내 모든 준비를 마쳤다.
무대 시작 전 느껴지는 긴장감과 떨림. 그리고 설렘.
이 모든 것이 한유미에게는 익숙한 것들이었지만, 오늘은 그것들이 유독 남다르게 느껴졌다.
과연 어떤 무대를 보여줄까.
* * *
네가 원하는 대로 Play on.
너는 그저 순간을 즐기면 돼
우리와 함께 하는 이 순간을.
‘잘하네······.’
눈앞의 무대를 보며 한유미가 생각했다.
앞서 트레이너들과 대표가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스테이지 그룹은 기대 이상의 탄탄한 무대를 보여주고 있었다.
안무도 동선도 오차 하나 없이 딱딱 맞는 게 꽤나 연습한 티가 났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건 역시나 차선빈. 그는 안무의 중심에 서 팀을 확실하게 잡아주고 있었다.
특히나 곡의 중반부에 있던 차선빈, 백은찬, 최진호 3명의 댄스 브레이크는 그야말로 감탄을 자아해 냈다.
‘그나저나 진짜 노래 한번 끝내주네.’
한유미가 특히 더 놀란 부분이 있는데 그건 바로 노래였다.
우세현이라는 연습생이 노래를 잘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실제로 보니 그게 몸소 더 체험됐다.
‘발성도 안정적이고 고음도 깨끗하게 올라가네. 이거 꽤 어려운 노래인데.’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다. 노래에 재능이 있다고 해도 모든 노래를 만능으로 소화해낼 수는 없는 법이니까.
‘우도현 동생이라고 했었지.’
어째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물론 우도현이 좀 더 잘생겼지만.
하지만 우도현도 이렇게 노래를 잘했더라면 조금이라도 욕을 덜 먹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데이 릴리와 루트는 비슷한 세대의 그룹이었다. 그러다 보니 활동 기간도 꽤나 겹쳤었고.
루트를 떠올리니 순간 옛날 생각이 나려고 하고 있었다. 음, 안 되지. 지금이 촬영 중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잊지 않고 있었다.
‘근데 이 팀. 반응 되게 좋을 것 같다.’
아직 무대가 끝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한유미는 자신도 모르게 무심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 *
긴장됐다.
이렇게 긴장이 되는 건 오랜만이었다.
다른 멤버들의 마음 역시 백스테이지 그룹의 무대를 보는 내내 나와 같았을 거라 예상됐다.
“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두 그룹의 무대가 끝나자 곧바로 접수 합산의 시간을 가졌다.
두 그룹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평은 그리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더 긴장이 됐다.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사소한 차이에서 결국 당락이 결정될 테니까.
긴장되는 마음에 살짝 눈을 돌려 다른 멤버들을 살펴봤다.
한껏 긴장해있는 멤버도 있는 반면 누구보다 평온한 표정의 멤버도 있었다.
차선빈과 안지호가 그랬다.
이 두 사람의 표정에서는 한 치의 긴장감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달인의 경지에 이른 듯한 저 표정.
‘그에 비해······.’
그와는 반대로 누구보다도 긴장한 표정의 백은찬이 있었다. 얼굴이 창백한 게 딱 봐도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야, 긴장 풀어.”
“어?”
“그러다가 넘어가겠다.”
“어, 음. 응. 그래.”
숨은 제대로 쉬고 있는 거 맞겠지?
그런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백은찬이 홀로 천천히 심호흡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백은찬은 생각보다 긴장을 많이 하는 타입인 것 같았다.
“그럼 지금부터 이번 단체 무대의 승리 팀을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침내 점수 합산이 끝이 나고.
인현민 대표가 마이크를 잡았다.
“이번 무대의 승리 팀은······.”
그 말과 동시에 앞에 있던 화면에 승리 팀의 이름과 점수가 띄워졌다.
그리고 결과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었다.
* * *
“대표님. 이리로 오시면 됩니다.”
제작진 측에서 별도로 마련한 작은 미팅룸. 단체 평가가 끝나고 며칠 후, 오늘 이곳에서는 1차 미션인 시그널 송 미션 개인 평가가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어, 그래. 유미 왔구나.”
“식사는 하셨어요?”
“하고 왔지. 요즘 한창 바쁘지?”
“늘 그렇죠, 뭐.”
미팅룸에는 인현민 대표 이외에도 한유미와 이송이 보컬 트레이너, 마운 댄스 트레이너까지 모두 4명의 심사위원이 차례로 도착했다.
네 사람은 모두 제작진의 안내에 따라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는 좌석에 착석했다.
“어떻게, 다들 전에 본 무대에서는 특별히 눈에 띄는 연습생이 있었나?”
개인 평가가 이루어지기 전에 사전에 촬영된 그룹별 단체 무대.
얼마 전에 끝난 그 무대는 별다른 문제없이 무사히 녹화를 마쳤다.
그리고 그 무대의 승리 팀은 스테이지 팀.
승리한 스테이지 그룹의 멤버들은 모두 공평하게 플러스 10점이라는 베네핏을 얻게 되었다.
“눈에 띄는 인물이라면 선빈이가 단연 눈에 띄었죠.”
마운 트레이너가 가장 먼저 답했다.
“그렇지. 선빈이가 확실히 잘 추더라고.”
“센터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능력이 탁월해요. 안정감이 있고요.”
“하지만 래퍼이다 보니 노래 쪽으로는 아무래도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어요.”
이송이 보컬 트레이너가 살짝 아쉬움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래도 뭐, 랩은 확실히 잘하니까요.”
“그건 그렇죠.”
그건 여기 있는 모두가 수긍하는 바였다.
“유미 씨가 생각은 어때요?”
“선빈이야 실력 확실하죠.”
한유미 역시 앞선 이들의 의견에 공감했다. 어릴 때부터 봐왔던 만큼 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이미 잘 파악하고 있었다.
연습 기간이 겹치다 보니 오가다가 마주할 일도 많았고 아주 오래 전이긴 하지만 월말 평가 때 그의 무대를 본 적도 있었다.
“선빈이는 저희 연습할 때부터 이미 실력으로 소문이 자자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한유미는 차선빈이 이번에야말로 데뷔하길 바랐다. 오래 연습한 만큼 그의 노력이 하루 빨리 빛을 바랬으면 했다.
오랜 연습 기간이란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그녀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백스테이지 팀도 잘했지만, 무대 완성도 자체가 스테이지 팀이 더 좋긴 했어. 기대 이상으로.”
백스테이지 팀도 절대 못 한 무대가 아니었다. 다만, 스테이지 팀이 조금 더 완성도 있다고 판단되어질 뿐이지.
“그리고 그 연습생도 괜찮던데.”
“누구요?”
“그 왜, 있잖아.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대표님. 이제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시간을 확인하던 신 PD가 급하게 말했다.
“아, 그래. 얼른 촬영 시작해야지.”
“네.”
개인 평가는 미팅 룸 안에 설치된 스크린 화면으로 사전에 연습생 개개인이 찍은 영상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영상을 본 4명의 심사 위원은 해당 연습생에게 점수를 부여하고 이후 평균을 내어 최종 점수를 내는 방식이었다.
“그럼 시작해볼까.”
오늘 하는 평가 역시 방송에 내보내질 분량이었다. 아마 짧게 편집되어 그리 많은 분량은 차지 않을 테지만.
뒤이어 화면이 밝아지면서 첫 번째 연습생의 모습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평가 1번 우세현입니다.”]
“이거 시작부터 기대감이 확 드는데?”
인현민 대표는 곧바로 자세를 고쳐 잡은 채 화면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