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23화 (23/413)

23화. 썩히는 건 아깝잖아.

최진호는 짜증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자그마치 10등이었다.

순위가 10등.

스테이지에서 떨어진 것도 짜증 나는데 순위까지 바닥이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떻게 내가 백스테지?’

높은 순위를 위해 중간 리더까지 관두었다. 리더 자리를 그만두면 그만큼 개인 시간도 더욱 많이 확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사실 처음에 리더 자리에 자원한 것도 실보다는 득이 클 거라 생각해서였다.

리더가 되면 팀의 중심이 될 수 있고, 팀의 중심이 되면 그만큼 분량도 늘어나고. 또, 적당히 좋은 이미지를 쌓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간평가에서 그런 평가를 받게 되자 최진호는 불쑥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

분량이나 이미지 챙기려다가 백스테이지로 내려갈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 속 불안함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와중에 혼자 좋은 평을 받은 사람이 있다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물론 잘한 사람도 있어.”

“세현이. 세현이가 그나마 이 곡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

거기부터 짜증이 일었다.

더불어 수습할 수 없을 만큼의 조급함도 찾아왔다.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뒤엉켜 충동적으로 우세현을 리더로 추천하기도 했다. 내심 고생 한 번 해보라는 마음으로. 보기 아니꼬워서 그런 것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결과가 이거라니.

참, 불공평하다 싶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초반에 스테이지 그룹으로 배정받은 덕에 실력 괜찮은 연습생이라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이다.

원래 초반 이미지가 오래가는 법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최진호가 지금 해야 할 건 한시라도 빨리 스테이지 그룹으로 올라가는 거였다.

그리고 그러려면 연습이 필요하고.

‘적어도 뚝딱이한테 밀리지는 말아야지~’

그런 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그는 새로운 연습실을 찾아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 * *

오늘따라 어딜 가든 사람이 많았다.

마주치기만 하면 생각이 읽히는 바람에 이제는 이게 이 사람이 실제 한 말인지 아니면 속마음인 건지 구분이 안 됐다.

보컬 연습실, 댄스 연습실, 화장실, 식당 등 사람이 없는 곳이 없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지. 북적북적한 게 정신이 없었다.

이럴 시 되도록 아는 얼굴은 만나고 싶지 않았다. 혹여 나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발견할까 두려운 마음에서였다.

잘 모르는 타인 같은 경우 겉과 속이 달라도 별로 타격이 없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달랐다. 그게 생각보다 타격이 좀 있다.

‘오늘 누가 회사에 온다고 했었지······.’

혹여 아는 얼굴을 만날까 싶어 지난 기억들을 되돌아봤다.

아예 빈 연습실에 들어가 죽치고 있을까.

이게 부작용 같은 거라 해도 아마 24시간 이 상태는 아닐 터였다.

시간이 지나면 상태도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확실하진 않지만 그런 실낱과 같은 희망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근데 그럼 어디 가 있어야 하나.’

보컬룸이 좋을까?

보컬룸은 기본적으로 1인 1실이니 다른 사람을 만날 일도 없었다.

물론 시간제이기는 하다만, 거기만큼 괜찮은 곳도 없었다. 게다가 예약제니까 다른 사람이 불쑥 들어올 불상사도 없고.

일단 가보자는 마음으로 보컬 룸으로 향하고 있는데, 바로 맞은편에서 아는 얼굴들을 발견했다.

‘헉!’

차선빈과 신인 개발팀의 박선호 팀장님이었다.

그런 두 사람을 발견하자마자 곧바로 등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다행히 저쪽은 아직 날 보지 못한 듯 했다.

길이 하나밖에 없는 터라 그대로 후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마침 근처에 보컬룸이 있었다.

‘일단 저기로 가자.’

원래 보컬룸은 예약제이나 급하니 일단 들어가고 보기로 했다. 들어가고 곧바로 다시 나와 예약하면 되겠지.

그리고 보컬룸에 아무 문고리나 잡았는데, 운이 좋았는지 바로 문이 열렸다.

무작위로 잡은 보컬룸은 마침 빈방이었다.

“일단 한숨 돌렸고······.”

잠깐만 여기 있다 나가자.

신경을 곤두세운 채로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니 컨디션이 영 안 좋았다.

‘그래도 연습은 하고 가야지.’

컨디션이 별로여도 연습은 해야 했다.

춤 같은 경우 연습을 하루라도 거르면 몸이 리셋 되는 느낌이니까.

‘조용해서 좋다······.’

내내 시끄러웠던 밖과는 달리 방 안은 차분하고 조용했다. 방음이 꼼꼼하게 잘 되어 있는 모양이다.

근데 여기 몇 호실이지?

예약하려면 호수를 알아야 하는데.

끼익─

그런데 그때,

갑작스레 보컬룸의 문이 열렸다.

“······.”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안지호였다.

“여기 내가 예약했는데.”

“어? 이 방 예약했다고?”

“응.”

아, 그새 예약한 건가.

아니면 미리 예약해두고 잠시 비워둔 걸지도 몰랐다.

“아, 미안. 바로 비워줄게.”

사전 예약자가 있다면, 빨리 나가서 다른 방을 찾아야 했다. 빈방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됐어.”

“어?”

“비울 필요 없다고. 그냥 있어라.”

자리에서 막 일어서려 하는데 갑자기 안지호가 말을 바꿨다. 왜 그냥 있으라는 거지.

“너 예약한 거 아니야?”

“했는데.”

뭐야, 그럼 왜 있으라는 거냐.

“근데 그럼 왜 그냥 있으라는 건데?”

그러자 안지호가 문고리에 손을 얹은 채로 답했다.

“여기가 아니야.”

“여기가 아니라고?”

“응. 잘못 들어왔어.”

아, 잘못 들어왔구나.

여기가 아니었나 보군.

“그러니까 그냥 있어라.”

뒤이어 안지호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동시에 들리는 소리.

[“405호실인 줄 알았는데, 404호였잖아.”]

······잠깐, 404호라고?

순간 등이 오싹해졌다.

* * *

보컬룸 404호실.

404호실은 귀신이 나오기로 유명한 바로 그 보컬 룸이었다.

‘어쩐지 좀 으스스한 것 같은데······.’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새삼 분위기가 스산했다. 전등이 켜져 있어 어둡지는 않았지만, 보컬룸 특성상 좁고 밀폐된 공간이기에 괜히 더 으스스한 것 같았다.

쿵!

그때 뒤에서 뭔가 쿵하는 소리가 났다. 뭐가 떨어진 건가? 뒤돌아서 확인하고 싶었지만, 선뜻 고개가 돌아가지 않았다.

‘······노래 부를까?’

뭐라고 좀 중얼거려야 덜 무서울 것 같았다.

아냐! 노래는 무슨 노래야!

노래 부르다가 괜히 더 귀신 꼬이면 어떡하냐!

‘그냥 나가자.’

괜한 생각 말고 무섭다면 그냥 방을 나가면 됐다. 다른 방이 있겠지. 예약 안 된 다른 방. 설령 방이 없다고 해도 이제는 능력이 어느 정도 안정화됐을지도 몰랐다.

쿵!

악!

그리고 그대로 문을 향해 달려가는 순간.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침착해.

헛소리야. 헛 게 들리는 거야.

여기에 나 말고 누가 또 있을 리 없잖아.

“으악!”

“······왜 놀라는 거야?”

“······저승사자 씨?”

뒤돌아 보이는 인물은 언젠가 만난 적이 있던 바로 그 저승사자였다.

“아, 깜짝이야······.”

귀신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저승사자라 다행이야.

“뭘 상상했길래 그렇게 사색이 돼?”

“뭐겠어요. 당연히 귀신이죠.”

“귀신? 아, 귀신이라면 여기 있는데.”

“······농담이죠?”

“농담 아니야. 자, 봐. 여기 있잖아.”

저승사자는 곧바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어디요? 전 안 보이는데요.”

“고개나 돌리고 말해. 당연히 이쪽을 안 보니까 안 보이지.”

“······진짜예요?”

“뭐가?”

“귀신이요.”

“당연히 뻥이지.”

이 자식이.

“너 안 그렇게 생겨서 귀신 되게 무서워한다.”

“세상에 귀신 안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어요?”

“있을걸. 어딘가에는.”

“아, 저도 마침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있긴 하네요.”

우리 형.

형은 오히려 그런 걸 즐기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거 우연이에요?”

“내가 여기 있는 거?”

“네.”

그때 이후로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저승사자였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다니. 그것도 이런 곳에서.

너무 갑작스런 만남이라 사실 지금 이게 현실인지 아닌지도 약간 헷갈렸다.

“우연이라면 우연이지.”

“그 말은 우연이라는 거예요?”

“우리 사소한 건 너무 따지지 말자고.”

그렇게 말하던 저승사자는 공중에서 천천히 내려와 두 발을 바닥에 안착시켰다.

“그보다 나한테 물어볼 거 있지 않아?”

물어볼 거?

아.

“능력 온오프 할 때마다 나타나는 부작용 같은 거요. 이거 계속 이래요?”

“그건 네가 아직 온오프 하는 게 익숙치 않아서 그래. 아마 시간이 지나면 차차 증상도 옅어질 거야.”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그보다 능력을 너무 오래, 자주 꺼두는 일이 없도록 해.”

“네? 왜요?”

“윗선에 들킬 우려가 높아.”

윗선이라.

저승사자의 윗선이라면 대충 상상이 갔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윗선에 들키면 어떻게 되는데요?”

“그거야 파국이지, 뭐.”

저승사자가 뭘 그런 당연한 걸 묻는냐는 듯이 답했다.

“너는 어떻게 리미트만 지키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럼 발생하는 부작용도 그렇고 윗선에 들킬 확률도 커져. 그건 너나 나에게 있어 상당히 위험을 떠안는 거고.”

한마디로 웬만하면 자주 오프시키지 말라는 얘기였다.

“애초에 특정할 때만 꺼두려는 거 아니었어?”

“······그렇긴 했죠.”

처음엔 무대에 오를 때만 꺼두려고 하긴 했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들리지 않는 세상을 한번 경험하고 나니 그냥 계속 끈 채로 생활하게 되었다.

“애초에 왜 그 좋은 능력을 굳이 썩히려고 하는 건지······.”

저승사자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쯧쯧거렸다.

“그냥 남의 생각을 듣는 걸 별로 안 좋아했을 뿐이에요.”

그래, 그것뿐이다.

“그게 꼭 나쁜 건 아닐 텐데.”

“네?”

“누군가는 들어줬으면 할지도 모른다는 거야.”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사자가 말하는 게 이해가 안 됐다.

“아무튼 나쁜 일이 아니니까 그렇게 피하지 말라고. 그건 너도 알고 있잖아.”

그렇다, 이게 나쁜 게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되도록 자중하도록 해. 너에게도 별로 좋은 일이 아니니까.”

“네, 알겠어요.”

특히 장시간 꺼두는 건 해당 인물의 정신적, 신체적인 면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인간의 운명이라는 게 이렇게 섬세하고도 연약한 존재야. 넌 모르겠지만.”

“별로 알고 싶은 생각은 안 드네요.”

“나도 별로 알고 싶지 않았어.”

그러더니 저승사자는 안 어울리게 한숨을 다 쉬었다.

“혹시 앞으로 날 만나고 싶다면, 이 방으로 와. 물론 온다고 해서 그때마다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왜 이 방인데요?”

“여기가 딱 그게 있거든, 그거.”

설마 심령 현상 관련 뭐가 있다 이런 걸 말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 이렇게 되니 귀신이 나온다는 말도 아주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냥 오기만 하면 돼요?”

“그냥 오기만 해선 안 돼. 와서 꼭 이걸 외쳐야 해.”

“뭔데요?”

그러자 곧 저승사자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따봉 사자야, 고마워~!”

안 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