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첫방 단체 모니터링
사자와의 대화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다 싶어 다시 연습을 위해 보컬룸을 나서고자 했다.
“근데 말이야.”
“네?”
“여기 진짜 귀신 있는 거 맞아.”
“······.”
망할 저승사자는 끝까지 사람을 짜증나게 했다. 응. 저거 뻥이야. 분명 또 뻥이겠지.
이후 미련 없이 404호실 보컬룸을 나왔다.
사자는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아마 앞으로 네 능력이 도움이 될 일이 많을 거다. 그러니까 너무 정 없게 그러지 마.”
도움이 된다라.
그렇지, 도움이 되겠지. 뭐든.
사자가 말한 게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걷고 있는데 우연히 조금 전 지나쳤던 차선빈과 다시 마주쳤다.
“연습하러 왔어?”
“응. 너도?”
“응.”
이제는 능력이 꽤 안정이 된 건지 다행히 차선빈의 생각이 멋대로 들리는 일은 없었다.
사실 저승사자의 말대로 그렇게 오래 꺼두고 있을 필요까진 없었다. 굳이 꺼두지 않아도 내 의지대로 조절이 되긴 했으니까.
다만, 가끔씩 조절이 안 될 때가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꼭 듣고 싶지 않는 상황에 놓여 있을 때 그랬다.
그렇기에 아예 꺼두고 싶은 마음이었고.
하지만 이젠 사자의 말대로 무대가 아닌 이상 함부로 오프하는 일은 최대한 자제해야 할 것 같았다.
“아.”
그때 차선빈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반응했다.
“우리 첫 방송 모니터링하는 거 촬영하기로 했대.”
“아, 진짜?”
“응. 16명 다 모여서 한 대.”
왠지 그럴 것 같긴 했는데.
하람이가 사색할 게 눈에 그려지네.
“촬영은 어디서 하는데?”
“제작진이 따로 장소를 마련했대.”
16명이 모두 들어갈 수 있도록 사전에 장소를 빌린 모양이었다.
모니터링 촬영은 처음이긴 하지만······.
열심히 리액션하면 되겠지, 뭐.
* * *
그리고 며칠 후.
드디어 기다리던 첫 방송날이 됐다.
제작진 측에서 마련해둔 장소로 가니 그곳에는 엄청난 크기의 모니터 스크린은 기본이고, 테이블 위에 각종 다과들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오, 과자 많다.”
“근데 종류가 다 똑같네?”
“협찬인가 보지.”
물론 준비된 음료와 과자들은 대부분이 협찬 물품이었다.
“다들 자리에 앉아서 편하게 시청하시면 되고요. 방송 예상 시간은 대충 90분 정도 될 겁니다.”
90분.
한 시간 반 정도 되는 건가.
중간 광고 시간까지 포함하면 더 걸릴지도 몰랐다.
방송 시간은 밤 10시.
시작 시간까지 이제 10분도 채 남지 않고 있었다.
“후, 이거 은근 떨리네요.”
그러더니 신하람은 곧 앞에 있던 보리 음료를 따 몇 모금 마셨다. 그리고 바로 옆에선 백은찬이 과자를 까먹고 있었다.
“아, 너 리액션 자신 없다고 했지.”
“네. 그래서 지난 며칠간 연습을 좀 했어요.”
“아니, 리액션을 연습까지 했다고?”
“네.”
이에 백은찬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런 신하람의 비해 백은찬에게서는 긴장감이라는 걸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본 프로그램 같은 거 하나 틀어놓고 리액션 연습 좀 한번 해봤죠.”
“그래서 연습은 잘 됐고?”
“조금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렇다면 다행이네.
생각해보니 근래 숙소에서 신하람이 뭔가를 보면서 크게 박수를 치던 일이 빈번했다. 그게 다 연습이었구나.
“와, 이제 1분 전이야!”
그 말에 화면을 보니 방송 시작이 1분도 채 남아있지 않았다.
요즘엔 방송 시작까지 남은 시간을 표시해주기에 시간이 30초 정도가 남자 연습생들끼리 카운트다운을 세기 시작했다.
“5, 4, 3, 2······!”
일. 그리고 땡.
이윽고 화면이 어두워지면서 방송이 시작됐다.
방송의 시작은 인현민 대표를 포함한 IN 엔터 소속 연예인들의 인터뷰 영상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습생들의 소개 영상.
아직 공개되지 않은 시그널 송을 BGM으로 하여 한 명 한 명이 차례로 소개되었다.
가장 먼저 소개된 건 역시 차선빈.
차선빈 (18)
연습생 기간 : 9년 5개월
“어, 뭐야. 연습생 기간도 나오네?”
소개되는 영상에서는 이름과 나이, 그리고 연습생 기간이 표시됐다.
그에 맞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날 때마다 연습생들은 저마다 우레와 같은 환호를 보냈다.
그 환호성 속에는 나 역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열심히 환호를 보내는 백은찬과 신하람도 있었다.
이후 몇 차례가 지나자 내 얼굴과 이름 역시 화면에서 볼 수 있었다.
우세현 (18)
연습생 기간 : 2개월
음. 이렇게 보니 기간이 짧긴 하네.
앞서 몇 년 된 연습생들을 보다가 2개월이라는 숫자를 보니 확실히 내가 기간이 짧긴 한 가 싶었다.
그리고 프로그램의 룰인 스테이지와 백스테이지 그룹의 차등. 그 밖에 여러 설명들이 이어졌다.
[김현진 : 스테이지랑 백스테이지라는 룰 자체가 되게 잔인한 것 같아요.]
[최진호 : 무조건 스테이지에 들어가야죠. 스테이지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또한, 중간중간 연습생들의 사전 인터뷰 역시 방송을 탔다.
[인현민 대표 : 본격적으로 미션을 시작하기 전, 사전 테스트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나오는 사전 테스트의 준비 과정. 연습생 한 명, 한 명이 테스트를 준비하는 모습이 잠깐이나마 그려졌다.
[제작진 : 사전 테스트, 자신 있어요?]
[차선빈 : 최선을 다해서 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전 테스트 무대가 시작됐다.
모두가 다 알다시피 첫 순서인 차선빈이 무대 위로 등장했다.
옆에선 신하람이 열심히 박수를 쳤다. 그리고 백은찬은 잔뜩 집중한 건지 어째 시작부터 말이 없었다.
[제작진 : 혹시 견제되는 연습생 있어요?]
[최진호 : 견제되는 연습생이라면 당연히 선빈이죠.]
[서민우 : 차선빈.]
[김문석 : 선빈이요.]
차선빈이 등장하는 씬에 이어 다른 연습생들의 인터뷰가 교차로 등장했다. 상당수 연습생이 차선빈을 견제 후보로 거론한 바였다.
[마운 트레이너 : 역시 선빈 군은 춤을 정말 잘 춰요. 알고 있는데도 이게 또 매번 놀라네요.]
그에 맞게 심사평도 호평 일색.
확실히 이미 본 것임에도 불구하고 볼 때마다 감탄을 자아 해내는 무대였다.
반면 차선빈은 자신의 그런 무대를 보며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조용히 박수를 칠 뿐이었다.
그리고 몇 무대가 지나자 안지호의 인터뷰가 나왔다.
[제작진 : 혹시 이 연습생만은 이기고 싶다. 이런 사람 있어요?]
[안지호 : 아뇨, 딱히 없어요.]
왠지 안지호다운 대답이었다.
[제작진 : 듣기로는 전에 대형 소속사에서 연습했다고 들었는데······.]
[안지호 : 네. 연습했었습니다.]
[제작진 : 어디인지 말해줄 수 있나요?]
[안지호 : RA 엔터테인먼트입니다.]
그리고 안지호가 RA 엔터 연습생이었다는 점도 확실하게 짚고 갔다.
[인현민 대표 : 지호 군은 얼마나 됐지?]
[안지호 : 2개월 조금 넘었습니다.]
뒤이어 나온 자막은 안지호가 2개월 차 연습생이라는 걸 한 번 더 강조했다.
뭔가 느낌상 이 다음에 나올 내 무대와 엮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신하람 : 그 형은 진짜 올라운더의 표본인 것 같아요.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신하람은 자신의 등장에도 여전히 박수치기 바빴다.
안지호의 무대 다음은 내 차례였다.
과연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한편으로는 편집이 이상하게 되진 않았을까 걱정되는 게 없지 않아 있었다.
[제작진 : 세현 군의 가족 중에 유명인이 있다고?]
[우세현 : 네. 형이 연예계 활동을 했었습니다.]
[제작진 : 형 이름이?]
[우세현 : 우도현입니다.]
“오─”
형의 이름이 나오자 함께 보고 있던 다른 연습생들도 저마다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미 예상한 바와 같이 형에 대한 내용이 가장 먼저 나왔다. 뭐, 이렇게 나올 줄 이미 짐작했지만.
[제작진 : 세현 군도 연습한 지 얼마 안 됐죠?]
[우세현 : 네. 이제 2개월 조금 넘었어요.]
[제작진 : 2개월이면 지호 군이랑 같네요. 어때요?]
[우세현 : 좋은 것 같아요.]
“좋은 거 같다는 건 뭐야?”
영상을 보던 백은찬이 웃으며 말했다. 진짜로 그냥 좋아요의 의미였는데.
[백은찬 : 세현이 노래 진짜 잘하죠. 그래서 기대돼요.]
[김현진 : 걔도 그냥 사기캐에요. 잘생겼는데 노래도 잘하고.]
[차선빈 : 노래를 잘해서······나름대로 조금 견제하고 있습니다.]
차선빈이 언제 나를 견제하고 있었지.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럼 세현 군이 보기엔 본인이 지호 군보다 잘하는 것 같아요?]
저 질문,
역시나 방송에 나올 줄 알았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그래도 노래만큼은 지지 않는다 생각합니다.]
뒤이어 안지호의 얼굴이 클로즈업 됐다. 그렇지만 안지호는 이에 대해 아무런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이후 시작되는 내 개인 무대.
그런데 무대가 막 시작되려던 찰나.
[60초 후에 계속!]
광고 타임이 됐다.
끊는 타이밍을 제대로 잡으셨네.
아무래도 우도현 동생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겠지.
“생각보다 시간이 금방 가네.”
“그러게.”
“은찬이 형은 그렇게 리액션이 없으니까 시간이 금방 가죠.”
“어, 나 말이 없었나?”
“응. 없었어.”
너무 집중한 나머지 백은찬은 자신이 말이 없던 것도 몰랐던 모양이다.
그리고 몇 개의 광고가 지나간 뒤, 다시 방송이 시작됐다.
곧바로 이어지는 내 무대.
실상 얼마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아득히 먼 옛날처럼 느껴졌다.
내가 노래를 시작하자,
이를 지켜보던 연습생들의 놀란 표정이 차례로 화면에 클로즈업됐다.
[이송이 트레이너 : 정말 놀랐어요. 세현 군이 이 곡을 이렇게 잘 소화할 줄은.]
그때도 생각했지만, 이렇게 좋은 칭찬만 듣고 있으려니 한편으로는 좀 얼떨떨한 감이 있었다.
근데 이렇게 보니 부족한 부분이 확실히 보이네. 아무래도 모니터링은 자주자주 해줘야할 듯했다.
[최진호 : 세현이 무대 좋았죠. 근데 춤은 아직 조금 모자라지 않나······.]
그렇게 말하던 최진호는 뒤이어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오~ 진호 형!”
이를 보던 연습생들이 최진호를 바라보며 흥분한 채로 소리쳤다.
[제작진 : 지호 군이 보기엔 세현 군의 무대가 어땠나요?]
[안지호 : 좋았습니다.]
[제작진 : ······끝인가요?]
[안지호 : 네.]
그렇게 대답한 안지호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다소 뚱한 표정이었다.
물론 인터뷰 내용에는 별로 문제 될 게 없어 보이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오해사기 딱 좋았다.
근데 무슨 일이지. 안지호가 답지 않게 칭찬을 다 하고. 다른 것보다 그 사실에 놀랐다.
[To be Continued]
그리고 그런 내 무대를 마지막으로 1화 분량이 끝이 났다. 순식간에 지나간 90분이었다.
이후 다음화 예고를 확인한 후, 다 함께 박수를 치며 모니터링을 마무리했다.
모니터링이 끝나자 제작진은 곧바로 카메라를 들고 연습생들에게 오늘 방송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방송 정말 재밌었어요!”
“재밌었는데, 생각보다 제가 많이 안 나온 것 같아서 조금 슬프네요.”
“이제 시작인 것 같아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리고 방송을 마친 그날 저녁.
각종 커뮤니티에는 프로그램과 관련된 글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