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밤이 찾아왔습니다.
안지호는 마피아 게임을 택했다.
마피아 게임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움직이는 거 귀찮거든.
보물찾기로 가면 사방팔방 뛰어다녀야 할 텐데 생각만 해도 귀찮고 힘들었다.
“아, 무조건 보물찾기지!”
그런 안지호와 반대로 백은찬 같은 사람도 있었다. 직접 발로 뛰는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부류의 사람이 꽤 있던 건지 의외로 마피아 게임과 보물찾기 사이의 선호도는 비등비등했다.
마지막 16번째 연습생까지 선택을 모두 마치자 각 게임 그룹의 윤곽이 나타났다.
[마피아 게임]
안지호, 우세현, 김현진, 최진호, 스즈키 리오, 김문석, 서민우, 준
[보물찾기]
차선빈, 백은찬, 윤도운, 신하람, 이시카와 히로토, 에단, 최건우, 정우빈
“마피아 게임, 마피아 게임 조원분들은 이쪽으로 모여주세요!”
“보물찾기 분들은 이쪽으로 이동하실게요~”
당연하지만 마피아 게임과 보물찾기 조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진행됐다.
마피아 게임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연습실에서. 그리고 보물찾기는 야외였다.
“잠시만 여기서 대기해주세요.”
장소를 안내한 작가는 그대로 역할 배분 준비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
“어떻게 다들 마피아 게임 좀 해?”
최진호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그냥 보통이요. 형은요?”
“나도 그럭저럭이야. 근데 보물찾기는 더 자신이 없어서 그냥 여기로 왔어.”
“저도요. 그리고 마피아 게임이 더 재밌잖아요.”
그렇게 연습생들 사이에 대화가 오가던 도중, 최진호는 반대편에 있던 우세현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세현이, 넌?”
“네?”
“마피아 게임. 잘해?”
“저도 뭐, 그냥 그래요.”
“그래?”
그 순간 최진호의 입가에 작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우리 다 열심히 해야겠다.”
“그래야죠.”
사실 최진호는 마피아 게임에 꽤 자신이 있었다. 그동안 해온 게 얼만데. 수도 없이 많은 마피아 게임을 해오면서 지금껏 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마피아라면 마피아대로, 시민이라면 시민인 대로. 언제나 자신이 있던 팀이 승리했다.
주변에선 그런 최진호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얘는 어떻게 그렇게 마피아를 잘하냐?
얘는 뭐 족족 다 알아.
이제 얘랑은 마피아 하지 말자.
그렇기에 미니게임 중 하나가 마피아 게임이라는 걸 안 순간, 이건 됐다 싶었다.
상품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무조건 MVP를 먹을 수 있을 거라 봤다. 물론 아직 다른 애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만큼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최진호는 현재 꽤나 자신감에 차 있었다.
‘견제 오지게 하네······.’
그리고 그런 최진호를 보며 안지호가 생각했다.
‘꽤나 자신이 있는 모양이네. 저렇게 탐문하고 다니는 거 보니.’
얼마나 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마나 자신이 있는지는 그냥 봐도 알 것 같았다.
‘저렇게 자신 있어 하는 모습을 보면 왠지 지기 싫어지는데······.’
성격이 나빠서 그런가.
전보다 의욕이 났다.
“그럼 지금부터 한 명씩 역할 뽑을게요.”
역할 뽑기가 시작되었다.
누가 어떤 역할을 뽑을지는 모르겠지만, 안지호는 그래도 게임이 좀 재밌게 돌아갔으면 싶은 마음이었다.
* * *
마피아를 뽑았다.
지금 최진호의 손에는 마피아라고 적힌 쪽지가 들려있었다.
[종이를 뽑은 뒤, 카메라에 한번 비출 것!]
그리고 앞에 보이는 지시대로 카메라에 자신이 뽑은 쪽지를 정확히 비춰 보였다.
마피아잖아.
의사나 경찰과 같은 역할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것도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앞으로 주어진 과제는 마피아 쪽을 어떻게 승리하게 만들 것 인가였다.
생각해보면 일반 시민보다야 마피아가 낫지. 6명인 시민에 비해 마피아는 단 2명.
단 2명의 인원으로 마피아가 승리하게 된다면 이보다 큰 임팩트는 없을 거다. 그만큼 MVP를 차지할 확률도 올라갈 테고.
‘이왕이면 경찰이나 의사가 좀 덜떨어진 애들이면 좋은데.’
시민 중 중요 역할이라고 할 수 있는 경찰과 의사. 그들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이쪽의 승리 확률도 올라간다.
더불어서 같은 마피아 역할도 중요했다.
자신 이외에 마피아.
혹여 쉽게 죽어버리면 금방 궁지에 몰려버리고 만다.
‘일단 누가 마피아인지 확인부터 해야겠군.’
그리고 방을 나서기 전,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한 번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이후 미소도 잊지 않았다.
부디 같은 동지가 적절한 실력자이기를 바라며 최진호는 그렇게 방을 나섰다.
* * *
“자, 그럼 이제 역할 분배가 모두 끝났으니 곧바로 게임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역할이 모두 배정되자 연습생들은 한데 모여 연습실 중앙에 둥글게 둘러앉았다.
“일단 우리 자기소개부터 해볼까?”
“누구부터 할까요?”
“현진이부터 오른쪽으로 돌자.”
그리고 한 명씩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전 일단 선량한 시민입니다.”
“와, 이 멘트 나왔다. 단골 멘트! 선량한 시민!”
“아니, 전 진짜 시민이니까요!”
“전 그럼 얘보다 더 선량한 시민입니다.”
“나도 시민이야.”
자기소개에선 당연하게도 시민이 속출했다. 당연하게도 모두가 자신을 시민이라 주장하고 있었다.
“그럼 나 소개할게.”
“최진호 형, 형 솔직히 시민 아니죠?”
“솔직히 깔게. 난 정말 시민이야.”
최진호는 자신이 무고한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가슴에 손을 얹은 채로 말했다.
“어, 이 형 표정이 진심인데.”
“그러게.”
“난 진짜 시민이니까.”
최진호는 평소와 다름없는 차분한 모습이었다. 옆에서 찔러보는 말에 괜히 오버하지 않는 게 좋았다. 잘못했다가는 처음부터 낙인찍히기 십상이었기에.
“자, 그럼 다음.”
“다음은 안지호.”
다음 순서는 안지호였다.
“저도 시민입니다.”
“······끝이야?”
“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소개였다.
너무 군더더기가 없어서 문제지.
그리고 더 이상의 소개 없이 바로 다음으로 차례가 넘어갔다.
“우세현, 벌써부터 약간 수상한데?”
“아직 저 소개도 안 했어요.”
“세현이 형도 당연히 시민이죠?”
“맞아. 나도 시민이야.”
이에 다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반응했다.
“세현이 진짜로 시민이야?”
최진호가 불쑥 물었다.
“네. 저 진짜 시민 맞아요.”
“그래?”
그냥 한 번 더 확인차 물어본 것이었다. 만약 우세현이 자신과 같은 마피아가 아니라면 왠지 모르게 빨리 죽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서 전 현진이가 의심스러워요.”
“현진이? 현진이 왜?”
“얘 약간 지금 너무 불안해하는 거 같지 않아요?”
“아, 이 형은 갑자기 뭐야.”
“이것 봐. 이것도 지금 부자연스러워.”
서민우가 김현진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아니, 형은 갑자기 왜 날 지목해요!”
“니가 의심스러우니까 그렇지.”
“약간 과하게 부정하는 게 진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단 하나의 의심에 어느새 김현진을 마피아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됐다.
“그럼 지목 한 번 해볼까?”
“지목을 벌써 해?”
“그래야 진행이 되지.”
“아니면 일단 자는 방법도 있어요.”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결국 첫판은 지목 없이 밤을 보내 보기로 했다.
지목은 없지만 마피아는 여전히 시민을 공격할 수 있었고, 의사와 경찰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건 변함이 없었다.
“밤이 찾아왔습니다. 먼저 마피아는 고개를 들어 서로를 확인해주세요.”
최진호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고개를 든 이는 다름 아닌 서민우.
‘서민우가 마피아였군.’
그렇게 서로를 확인한 최진호와 서민우는 잠시 눈빛을 교환한 뒤, 지목할 상대를 골랐다.
그들이 지목한 상대는 김현진.
“그럼 이번엔 경찰 고개를 들어주세요.”
“마지막으로 의사, 고개를 들어 살릴 사람을 지목해주세요.”
뒤이어 경찰과 의사도 고개를 들어 각자의 지목을 마쳤다.
“이제 아침이 밝았습니다.”
“뭐야, 누구 죽었어?”
“누구 죽은 사람 있어요?”
모두가 동시에 제작진을 향해 물었다.
“마피아가 시민을 지목했으나 의사가 이를 살렸습니다.”
“대박!”
앞서 최진호와 서민우가 지목한 김현진. 하지만 의사가 다시 김현진을 살렸다.
“마피아가 누구 지목했는지는 안 밝히는 거죠?”
“당연하지.”
김현진이 죽다 살아났다는 사실을 아는 건 오직 마피아인 최진호와 서민우뿐.
김현진 본인도 자신이 죽었다 살아난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살렸네······.’
최진호의 속은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타겟을 잘못 정했어.’
그 전에 서민우가 김현진을 직접적으로 찍었으니 마피아 쪽에서도 김현진을 노릴 거라 생각해 의사 역시 김현진을 지목하고 봤을 확률이 높았다.
“경찰은? 경찰은 누구예요?”
“경찰은 벌써부터 정체를 밝히면 안 되지. 아직은 입 다물고 있는 게 좋아.”
“혹시 문석이 니가 경찰이야?”
“그럴 리가요.”
갑작스런 추궁에 김문석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반면, 준은 그런 김문석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아, 얘가 경찰이네.”
“저 아니라니까요.”
“문석이는 거짓말하면 티가 나!”
“에이, 문석이 형 마피아 못하는구나?”
분위기가 다들 김문석을 경찰로 몰아가는 흐름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김문석은 이를 열심히 부정할 뿐이었다.
“근데 세현이는 왜 이렇게 조용해?”
최진호가 우세현을 보며 말했다.
“네? 저요?”
“응. 아까부터 말이 없네.”
“저야 분위기 보고 있던 거죠.”
“어, 좀 당황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세현이 형 마피아에요?”
어느새 의심의 화살은 우세현에게로 왔다.
“전 진짜 아니에요.”
“음. 수상한데?”
“전 오히려 다른 사람이 수상해요.”
“누구?”
“진호 형이요.”
이번엔 우세현이 최진호를 지목했다.
“나? 난, 왜?”
“그냥 평소와 좀 다른 것 같아서요.”
“무슨 소리야~ 나 평소랑 똑같은데.”
“그래요?”
그 순간, 최진호는 우세현과 눈이 마주쳤다. 뭔가 확신에 차 있는 듯한 눈이었다.
뭐야, 왜 저렇게 확신해?
먼저 눈을 피한 건 최진호 쪽이였다.
“김현진이라고요. 김현진 백프로.”
서민우는 여전히 김현진을 마피아라 주장했다. 그리고 티 나게 당황하는 김현진의 모습에 다른 이들도 결국 김현진을 마피아로 지목했다.
“어? 세현이는 살리자야?”
“네. 전 살리자 예요.”
하지만 우세현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김현진을 죽이자는 의견이었다.
“안타깝게도 선량한 시민인 김현진 군이 사망하셨습니다.”
“아! 내가 뭐랬어요!”
그대로 김현진은 무리에서 빠져 조금 떨어진 곳에서 따로 게임을 지켜보게 되었다.
“다시 밤이 찾아왔습니다. 마피아는 고개를 들고 제거할 시민을 지목해주세요.”
이번에 제거할 시민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우세현이었다.
최진호는 그대로 서민우에게 우세현을 죽이자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다시 경찰의 차례.
“경찰은 고개를 들어 의심되는 대상을 지목해주세요.”
이때 안지호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