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아침이 밝았습니다.
안지호는 지금 고민하고 있었다.
밤이 되고, 경찰이 누군가를 지목해야만 하는 순간이 왔다.
시민인 김현진이 죽었으니 이전에 김현진을 마피아로 몰던 서민우를 찍어보는 게 지금으로선 가장 좋은 선택일 것 같았다.
그래.
분명 그런데.
‘왜 최진호를 찍어보고 싶지.’
마땅한 근거는 없었다.
그냥 감이었다.
그렇다고 최진호가 수상해 보이는 행동을 딱히 한 것도 아니었다. 근데 이상하게 한번 확인해보고 싶단 말이지.
그래서 안지호는 한 번 더 고민을 했다.
‘일단 서민우를 찍자.’
여기선 일단 안전빵을 찍고 가는 게 나을 듯 했다. 서민우를 먼저 확인하고 그래도 찝찝하다면 다음 밤에 최진호를 확인해보면 된다.
이후 안지호는 서민우를 가리켰다.
그러자 제작진으로부터 곧바로 그에 대한 답이 전달됐다.
[서민우 군은 마피아가 맞습니다.]
역시 맞군.
서민우가 마피아 중 한 명이었다.
남은 건 다른 마피아 한 명뿐.
게임은 마피아를 전부 색출해내면 끝나는 걸로 되어있었다.
“그럼 의사는 고개를 들어 살릴 사람을 지목해주세요.”
마지막으로 의사의 차례.
이후 다시 아침이 찾아왔다.
“결과는요?”
“누가 죽었어요?”
앞서 시민 한 명이 죽은 상황으로 인해 다들 다급해져 있었다.
“지난밤, 마피아가 시민을 공격했으나 의사가 이를 다시 살렸습니다.”
이에 연습생들은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탄성을 질렀다.
“또 살렸어?”
“의사 누구야? 대박이다.”
“의사 아직 밝히면 안 되는 거죠?”
그리고 다들 그런 의사의 존재에 대해 궁금해하며 여러 가지 추측을 늘어놓았다.
“지금까지만 보면 의사가 거의 MVP야.”
“그럴 만하죠. 벌써 두 번이나 살렸는데.”
“앞으로 한 번만 더 살리면 MVP에 완전 이름 새기는 감이다.”
반면, 최진호는 살짝 불안해져 왔다.
이렇게 흘러가면 안 되는데.
“일단 현진이를 보낸 민우 형은 백 퍼 마피아에요.”
“뭐? 갑자기 왜 이래!”
“형, 연기할 필요 없어요. 이미 다 걸렸어요.”
“맞아. 여기선 일단 서민우 지목하고 봐야지.”
그렇게 분위기는 순식간에 서민우를 지목하고 가는 흐름으로 되었다.
“잠깐만.”
그때 최진호가 다른 이들을 주목시켰다.
“여기서 솔직히 까고 갈게.”
“뭘요?”
“나 사실 경찰이야.”
“네?”
최진호의 갑작스러운 공개에 다른 이들이 놀라 되물었다.
“형이 경찰이라고요?”
“응.”
일단 페이크를 놓고 봤다.
그리고 페이크를 놓는데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방금 확인했는데, 마피아 민우 형 맞아.”
자진해서 다른 마피아의 정체를 스스로 밝혔다. 지금 이 상황이라면 어차피 서민우가 지목될 테고, 그럼 서민우는 이미 죽는 게 확실시된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자신이 마피아로 오인 받지 않게끔 이용할 심산이었다.
“잠깐만! 내가 마피아라고?”
“응. 형 마피아 맞잖아요. 내가 다 확인했어요.”
“아, 나 진짜 아니라니까?”
서민우가 끝까지 필사적으로 반박했다.
반면, 안지호는 지금의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앞서 미리 확인했기에 서민우가 마피아인 건 동의하는 바이나 문제는 최진호가 자신이 경찰이라고 밝힌 것에 있었다.
‘굳이 경찰이라고 나서는 거 보니 역시 마피아인가.’
그렇게 최진호에 대한 의심은 점점 커져갔다.
‘근데 만약 최진호가 진짜 마피아라면, 같은 동료를 버리는 건가.’
거기서 약간의 혼란이 왔다.
경찰이라 페이크를 치는 것을 보면 어딘가 수상한 건 확실한데, 굳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같은 마피아를 지목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반 시민이 굳이 자신을 경찰이라 속이면서까지 다른 사람을 지목할까.
“민우 형이 진짜 마피아라고?”
“어떻게 서민우로 한 번 가?”
잠깐의 사이. 다른 연습생들은 어느새 말려들고 있었다.
돌아가는 낌새를 보니 이대로 정체를 숨긴 채 가만히 있기는 좀 그래서, 아무래도 이 타이밍에서 자신이 진짜 경찰이라고 밝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애초에 가짜 경찰을 앞에 두고 그냥 있기 뭐했다.
‘그래, 일단 정체를 밝히고······.’
그런데, 그 순간.
“형이 경찰이라고요? 제가 경찰인데요.”
가만히 있던 우세현이 반박하고 나섰다.
* * *
판은 우세현의 손 위에 있었다.
마피아의 정체, 경찰의 정체, 의사의 정체.
마피아가 누구를 찍었는지, 경찰은 누구를 팠는지 등 게임의 중요 정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우세현은 모두 쥐고 있었다.
마피아는 최진호, 서민우.
경찰은 안지호.
[“김현진 지목하자.”]
[“다음은 우세현.”]
누가 누굴 지목했는지조차 이미 다 파악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최진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이미 눈치챈 바였다.
[“어차피 서민우가 죽는다면, 적어도 이를 이용해야지.”]
[“서민우가 마피아로 밝혀진다면 그런 서민우를 찍은 나는 마피아에서 저절로 배제되겠지.”]
대충 그런 생각이네.
그렇다면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그대로 뒀다가는 정말로 최진호의 의도대로 흘러가 버릴 테니까.
그래서 우세현은 행동에 나섰다.
자신이 바로 경찰이라고.
당연히 진짜 경찰은 아니었다.
“우세현, 니가 경찰이라고?”
“네.”
“잠깐만···왜 둘 다 경찰이래!”
경찰이라고 등장한 또 다른 인물로 인해 게임은 약간의 혼파망을 빚었다.
‘오.’
그에 비해 진짜 경찰인 안지호는 지금의 이 상황을 조용히 구경하고 있었다.
“제가 경찰이고, 제가 확인한 바로는 마피아는 최진호 형이었어요.”
“뭐? 최진호?”
“진호 형이 마피아야?”
그러자 최진호는 곧바로 반박하기에 나섰다.
“무슨 소리야. 얘가 지금 경찰이라는 증거가 없잖아. 사실 니가 마피아인 거 아니냐?”
“형도 경찰이라는 증거가 없기는 마찬가지잖아요.”
최진호는 순간 말을 잃었다.
사실 둘 다 경찰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원래 이런 게임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더 힘을 갖는 법이었다.
“그럼 일단 민우 형을 죽여 봐. 민우 형을 죽였는데 마피아가 맞으면 내가 경찰이라는 게 증명이 되잖아?”
“야!”
“마피아는 가만히 있으시고요.”
최진호가 옆에서 반박하려던 서민우를 제지했다.
열 받는 마음에 서민우도 최진호의 정체를 같이 까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차마 그럴 순 없었다.
게임이 게임이니만큼 일단 이기는 게 중요했기에.
“어, 그럼 어떡하지.”
난처한 건 중간에서 이를 지켜보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둘 중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 다들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럼 셋 다 죽이면 되겠네요.”
그때, 안지호가 나섰다.
“셋 다 죽이면 간단하잖아요. 먼저 민우 형 죽이고 다음에 진호 형, 마지막으로 우세현. 이렇게요.”
“잠깐, 내가 왜 민우 형 다음이야?”
“각자 지목한 사람 한 명씩 죽여 보는 거죠. 형이 지목한 사람 민우 형, 우세현이 지목한 형.”
“하······.”
대답을 들은 최진호가 허탈하게 웃었다.
“민우 형이랑 진호 형까지 죽여 본 다음 아니면 바로 우세현 죽이는 걸로 하죠.”
“어, 그것도 나쁘지 않지······.”
“진짜 그럴까요?”
어째 조금씩 안지호의 의견으로 기우는 모양새였다. 그게 복잡한 게 없었으니까.
“너 진짜 후회할 거다.”
“네. 그럴게요.”
안지호는 곧바로 이를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사실 그럴 일은 없을 거라 이미 확신했다. 최진호가 스스로를 경찰이라 칭할 때부터 최진호를 향한 의심이 곧 확신으로 바뀌었으니까.
“그럼 일단 지목하자. 민우부터.”
뒤이어 지목이 시작됐다.
서민우에 대한 의견은 모두 만장일치로 찬성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결과.
“서민우 군은 마피아가 맞습니다.”
“역시!”
“와, 민우 형이 진짜 마피아네?”
서민우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일어서 김현진이 있는 곳으로 갔다.
“어, 근데 이렇게 되면······.”
“바로 다음 지목 가시죠.”
이럴 땐 생각할 시간을 오래 줘선 안 됐다. 그랬다가는 눈 깜짝할 사이에 판이 바뀌고 말 테니까.
으레 그렇듯 마피아 게임은 논리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닌 우기는 것도 중요한 게임이니까.
“그래. 세현이 말대로 그냥 지목하자. 난 최진호에 한 표 던진다.”
“저도 진호 형에게 투표할게요.”
그리고 다행히 흐름은 바뀌지 않았다.
“여러분, 잠시만요.”
“네?”
그때 제작진이 급하게 연습생들을 불렀다.
“우리 밤 한번 더 보내야 해요.”
“아······.”
지목하는데 정신이 팔려 다들 잠시 잊고 있었다. 일단 한번 밤이 지나야 한다는 사실을.
“그럼 진행할게요. 밤이 됐습니다. 모두 고개를 숙여주세요.”
그렇게 찾아온 밤.
이번 밤이 마피아에게 있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마피아는 제거할 시민을 지목해주세요.”
어차피 밤이 끝나면 곧장 죽을 목숨이었다. 그렇다면, 이대로 그냥 죽을 수는 없었다.
‘우세현도 같이 죽이고 간다.’
이렇게 된 거 물귀신 작전이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우세현을 지목하는 건 당연했다. 자신을 마피아로 몰고 간 주동자였으니까.
게다가 그 주동자가 없어진다면, 어쩌면 다시 다른 이들을 말로 회유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안지호가 조금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승산은 있다.
그렇게 최진호는 고민 없이 우세현을 찍었다. 이변이 없는 한 우세현은 그대로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의사가 다시 살리지 않는 한.
‘설마 이번에도 살리는 건 아니겠지.’
의사의 존재는 계속해서 오리무중이었다. 최진호가 생각하기에 일단 우세현은 의사가 아니었다.
진짜 경찰이니 자신이 마피아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거겠지.
그러니 의사는 우세현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에 있다는 건데, 문제는 누군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거다.
“아침이 밝았습니다. 모두 고개를 다시 들어주세요.”
그리고 다시 아침이 됐다.
이 순간, 최진호는 엄청난 긴장감에 휩싸였다.
‘죽었겠지? 설마 또 살린 건 아니겠지?’
최진호는 긴장되는 마음으로 제작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지난밤, 마피아가 시민을 지목했고.”
꿀꺽.
“의사가 다시 그 시민을 살렸습니다.”
하······.
결과를 들은 최진호가 망연자실한 채로 고개를 숙였다.
‘이런 씨X······, 망했어!’
촬영만 아니었다면 그대로 뭐라도 내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의사 진짜 뭐냐? 족족 다 살리네.”
“완전 명의네요. 명의.”
반면, 다른 이들은 그러한 의사의 활약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의사는 매 판마다 지목 당한 시민을 살리고 있었다.
“그럼 다음 지목은 누구? 역시 최진호?”
“아, 정말로 나로 가는 거야? 나 진짜 시민이라니까? 다들 진짜 후회한다.”
아, 제발.
최진호는 이 순간 간절했다.
“최진호 형으로 계속 가죠.”
안지호가 말했다.
“전 진호 형으로 계속 밀게요.”
“오, 되게 확신하네?”
“솔직히 전 거의 확실해요.”
사실 안지호는 방금 최진호의 정체를 확인했다.
[최진호 군은 마피아가 맞습니다.]
그리고 확신을 얻었다.
“그래! 원래 하려던 대로 하자!”
“맞아! 그냥 최진호 지목!”
“저도 진호 형이요.”
우세현도 이를 거들었다.
그리하여 모든 이들이 최진호를 지목한 상황이 됐다. 이제 최진호에게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다.
모두의 의견이 모이자,
마침내 최진호의 정체가 밝혀졌다.
“최진호 군은 마피아가 맞습니다.”
최진호는 그렇게 고개를 숙였다.
“와! 진짜 마피아였어!”
“그럼 시민이 이긴 거죠?”
“네. 이번 게임은 마피아 두 명을 모두 색출해냈으므로 시민 팀의 승리입니다.”
완벽한 시민의 승리였다.
서민우와 최진호는 허탈한 듯 아무 말 없이 앉아있을 뿐이었다.
“와, 근데 그럼 최진호는 같은 편을 죽인 거야?”
“이 형, 완전 무서운 형이네.”
이에 최진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럼 게임이 끝났으니 의사와 경찰의 정체를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맞아! 의사! 의사 궁금해요!”
“진짜 누구냐, 의사?”
“경찰은 일단 세현이 아니야?”
모두가 경찰은 우세현으로 확실시하는 분위기였다. 아무래도 최진호를 잡는데 가장 많은 공을 기여했기 때문이다.
“그럼 바로 발표하겠습니다. 먼저 의사의 정체. 의사는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