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각자의 생각
“야, 세현아. 이거 이렇게 하면 될까?”
“세현아, 노래 한 번만 봐줄 수 있어?”
“있잖아, 이 부분 박자 이거 맞아?”
팀원들의 부름에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불러대는 통에 매번 자리를 옮겨 다니기 바빴다.
어떻게 보면 리더이기에 당연했다. 팀 전체를 맡아서 책임져야 했으니까.
하지만 팀원들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나를 필요로 했다.
“세현아, 나 이것 좀 봐주라.”
“세현아, 이거 하나만.”
물론 팀원들이 나를 찾아대는 건 노래에 한해서이기는 했으나 신하람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이 동시에 찾아오는 건 아무래도 좀 무리가 있었다.
흔히 선생님 롤이라고 했던가.
지금 딱 그게 된 기분이었다.
“여긴 이렇게 호흡을 좀 길게 해서 불러야 해요.”
“아, 이렇게?”
“네. 그렇게요.”
한 사람, 한 사람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면 마치 출장 요원처럼 달려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줬다.
“오, 이제 좀 알겠다. 근데 넌 어떻게 그렇게 내가 안 되는 부분을 딱 아냐?”
그거야 생각이 들리니까요.
어디가 찜찜한지 왜 안 되는지 말로 설명하는 게 더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땐 오히려 상대방의 속마음을 듣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너 진짜 잘 가르치는 것 같다.”
“그래요?”
“응, 완전 맞춤식! 선생님 해도 되겠어.”
그렇게까지는 아니고······.
어쨌든 리더로서 팀원으로서 도움이 돼서 다행이긴 한데, 쉴 틈도 없이 찾아대는 세 사람 덕에 정신은 좀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기 무색하게 또 다른 팀원이 나를 불렀다.
“세현아, 이거 말인데······.”
“세현이 형! 잠깐만 이것 좀 봐주세요!”
동시에 신하람이 재빠르게 외쳤다.
“어, 그래.”
일단 신하람에게로 먼저 갔다.
이를 보던 다른 팀원은 잠시 이쪽을 보는 듯 하더니 이내 홀로 연습에 들어갔다.
“왜, 뭔데?”
“사실 딱히 뭐 없어요.”
“뭐?”
신하람이 웃으며 말했다.
“다른 형들이 형만 너무 찾길래요. 이쪽 알려주고 있는 척하면 잠시나마 자기들이 알아서 개인 연습하겠죠, 뭐.”
아, 잠시 시간을 벌어주려고 부른 거였구나. 그때서야 신하람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알아서 개별적으로 연습도 좀 하고 그래야지, 안 된다고 안 될 때마다 불러대는 건 좀 그렇잖아요. 형이 진짜 쌤도 아닌데.”
“그래도 난 리더니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신하람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무튼 여기 좀 있어요. 또 부르면 여기 알려주고 있다고 뻥 좀 섞고요. 형도 형 개인 연습해야죠.”
“그래, 고맙다.”
“고마우면 이따 저녁에 게임 한판해요. 우리의 마블 하는 사람 형밖에 없어서 게임 상대가 없거든요.”
그런 신하람이 괜히 더 기특해 보였다.
이렇게 형 배려도 해주고.
아니, 근데 진짜 그 게임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
그런 신하람의 배려 덕분에 한동안은 조용히 개인 연습을 하며 보낼 수 있었다. 중간에 신하람이랑 같이 안무도 좀 맞춰보고.
“그럼 다 같이 안무 한번 맞춰볼게요!”
그리고 팀원 전원 안무 연습을 마지막으로 그날 연습은 마무리가 될 수 있었다.
* * *
며칠 뒤,
2차 미션 중간 평가가 열렸다.
중간 평가에서는 3개의 조가 모두 모여 한 조씩 무대를 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세 개의 조가 모두 모이는 만큼 상대 조가 얼마나 준비를 했는가 사전 탐색을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럼 Make a Dream 팀부터 나와서 시작할게요.”
루트의 메이크 어 드림팀은 총 5명으로 백은찬, 최진호를 포함한 스테이지 멤버 3명, 그리고 나머지 백스테이지의 멤버 2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시작부터 청량하면서 아련한 사운드의 전주가 흘러나오고, 곧바로 팀의 센터인 에단이 앞으로 치고 나왔다.
메이크 어 드림팀의 무대는 전체적으로 깔끔했다. 팀원들 간의 합이 상당히 잘 맞아보였고, 이렇다 할 단점도 딱히 보이지 않았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마지막 하이라이트 고음 부분에서 메인 보컬이 그만 삑사리를 냈다는 거였다.
“민우. 마지막 부분 아쉽네. 그치?”
“네······.”
보컬 트레이너의 지적에 메인 보컬이 잔뜩 풀이 죽은 채로 답했다.
다음 팀은 티어로브의 뒤엎어팀.
뒤엎어팀은 안지호와 차선빈이 속해있는 팀이었다.
이 팀의 경우 안지호와 차선빈만 스테이지의 멤버였으며, 나머지 4명의 멤버들은 모두 백스테이지의 멤버들이었다.
“이 팀 센터는 선빈이고···메인 보컬은 지호네?”
두 사람의 포지션은 나란히 센터와 메인 보컬이었다.
뒤엎어 (high!)는 빠른 비트의 힙합 사운드 곡이었다. 컨셉은 악동. 이러한 컨셉에 맞게 이 팀의 무대는 마치 꾸러기 같은 느낌이었다.
차선빈이 센터에서 중심을 확실히 잡아주고 있었으며, 메인 보컬인 안지호 역시 보컬적으로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좋은데?”
트레이너들의 반응 역시 좋았다.
“다들 표정이나 몸을 잘 쓰네. 이런 컨셉은 잘못하면 보는 사람이 오그라들 수가 있거든.”
“맞아요, 그리고 지호 군은 애드리브도 훌륭했어요. 음색도 노래랑 잘 맞고요.”
“감사합니다.”
안지호가 덤덤한 모습으로 인사했다.
“자, 그럼 마지막팀 볼까?”
어느새 벌써 우리팀의 차례였다.
앞선 무대들을 보고 나니 부담되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여기 센터는······하람이네?”
“네.”
신하람이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하람이 뭔가 자신만만한데?”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그래. 자신감 있으니 좋네. 그럼 바로 시작해볼까?”
이후 흘러나오는 강렬한 비트의 전주.
Welcome to the hell.
센터인 신하람이 홀로 카메라와 마주한 채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도입부 이후, 이어지는 첫 소절은 내 파트였다. 그리고 나는 잠시 숨을 고르다가 타이밍에 맞춰 파트에 들어갔다.
이곳은 어둠 속에 잠긴 지옥
지옥 속에 어둠,
어둠 속에 지옥
그것은 마치 하나처럼 연결돼.
이 노래는 ‘지옥담’이라는 제목과 어울리게 가사 내내 지옥이라는 단어가 줄기차게 등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지옥은 지금 화자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영원히 이곳을 떠나지 못한 채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마지막엔 결국 그곳을 천국이라 칭하며.
이 곡은 사실 어떻게 보면 흔히 있는 사랑 노래였다. 그것을 지옥과 천국으로 표현했을 뿐.
하지만 훌륭한 멜로디 라인과 더불어 깔끔하고도 완벽한 군무가 조화를 이루어낸 결과, 이 곡은 인터니티의 곡 중 가장 흥했다.
곧바로 멤버들의 파트가 이어지고,
이윽고 다시 싸비 부분에서는 단체 군무와 함께 떼창이 이어졌다.
군무의 중심에는 센터인 신하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연속으로 고음이 휘몰아치는 파트가 있었는데, 그 부분 역시 메인 보컬인 내가 맡게 되었다.
“옅은 그림자 속에─”
계속해서 이어지는 고음.
하지만 다행히도 특별한 실수 없이 파트를 마무리 지었다.
동시에 이를 보던 트레이너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준비한 무대가 끝이 났다.
우리는 일렬로 선 채로 트레이너의 평가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트레이너의 짧은 한마디.
“좋네요.”
* * *
“이 팀은 일단 연습을 많이 한 게 보이네요.”
그게 트레이너의 첫 평이었다.
“이 곡은 무엇보다 군무가 돋보여야 하는데 그게 잘 보여요. 그만큼 연습을 열심히 했다는 거지.”
트레이너의 말대로 다른 것보다 군무를 중점으로 연습했다. 이 곡의 가장 큰 특징은 칼과 같이 딱딱 맞는 군무니까.
다행히 그건 잘 이룬 듯 했는데.
“근데 문제는 그게 다예요.”
마운 트레이너가 냉정한 말투로 말했다.
“열심히 연습한 건 알겠는데, 센터는 별로 센터처럼 안 보이고 다른 멤버들도 하나 같이 뭐가 없어.”
그 말을 듣던 멤버들이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여기 리더가 세현이인가?”
“네. 그렇습니다.”
“어떻게 된 거야, 이거밖에 못 끌어?”
“죄송합니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문석이. 문석이가 메인 래퍼지?”
“네. 그렇습니다.”
“그럼 여기서 팍 치고 나와야지, 어정쩡하게 뭐 하고 있는 거야.”
“죄송합니다······.”
그 밖에도 누구 한 명 빠질 것 없이 지적을 받았다.
“근데 이 팀은 특이하게 노래 부분에서는 지적할 게 많이 없네.”
“맞아. 이상하게 노래들은 괜찮아.”
그나마 듣던 중 다행이었다.
“누가 주도해서 연습했어?”
“세현이 형이 주도했습니다.”
신하람이 빠르게 답했다.
“그래? 세현이가 가르치는데 소질이 좀 있나 보네.”
“아닙니다.”
다들 잘 따라와 준 덕이지.
“하지만 그걸 제외하면 아직 다들 부족한 부분이 많으니까 다들 각자 어떻게 하면 무대에서 더 돋보일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게 좋겠어.”
그리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중간 평가가 끝이 났다.
여러모로 분위기가 안 좋았다.
안 좋을 수밖에 없는 게 다른 두 팀에 비해 훨씬 더 많은 혹평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돋보여야 하는 거지.”]
[“이대로 괜찮은 건가······.”]
그에 대해 각자 생각이 많았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다 같이 혹평을 받은 터라 더 그랬다.
하지만 계속 그러고 있을 순 없었다.
“우리 다시 연습하죠.”
분위기 전환을 위해 나는 팀원들을 한 데 불러 모았다.
“이제라도 문제점이 뭔지 알게 됐으니 그 부분만 보완하면 돼요. 나쁜 평만 받은 것도 아니니까 더 열심히 하면 좋은 무대 만들 수 있을 거예요.”
그러자 신하람 역시 나를 거들었다.
“맞아요! 우리 그래도 군무는 칭찬받았잖아요.”
“아, 맞아. 그나마 그건 다행이었지.”
“완전 몸 부서져라 연습했잖아, 우리가.”
그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조금씩 분위기가 올라오는 게 보였다.
분위기 전환의 시작은 나였지만, 이를 더 끌어올릴 수 있도록 보조해준 건 막내인 신하람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반전을 제대로 노려봐요!”
“좋아, 반전 좋지. 근데 하람이 넌 혹평을 받고 어떻게 그렇게 멀쩡하냐?”
“맞아, 너 진짜 멘탈 튼튼이다.”
“계속 시무룩해하고 있을 순 없잖아요. 이겨내야죠!”
그런 막내를 보며 다들 한 번씩 웃었다.
[“그래, 연습해야지. 연습.”]
[“조금 더 영상을 봐볼까.”]
그리고 이를 기점으로 다른 멤버들도 생각도 하나둘씩 변화했다.
나 역시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노래나 춤만 능숙하게 해내는 게 아니라 흔히 스타성이라고 말하는, 어떻게 하면 무대에서 시선을 좀 더 끌 수 있을지 그런 면을 좀 더 생각해 봐야 했다.
그리고 멤버들은 각자 연습 시간을 더 가지기로 했다. 물론 군무 연습량은 그대로였다.
모두가 그렇게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연습에 돌입할 때, 다른 이들과 다르게 여전히 부정적인 생각에 잠겨있던 이가 있었다.
[“근데 센터, 이대로 내가 계속해도 되는 건가······.”]
바로 신하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