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40화 (40/413)

40화. 누가 이길 것 같아요?

회사 복도에서 우연히 만난 한 남성.

익숙한 얼굴의 그 남성은 지난 2차 미션 MC이자, 그룹 인터니티의 멤버 김재현이었다.

“오랜만이에요. 세현 군.”

“네. 안녕하세요.”

곧바로 그를 향해 허리 숙여 인사했다.

아무리 한 회사라도 아티스트랑 연습생의 경우 만날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평소 동선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회사에서 보는 건 처음이죠?”

“네.”

“저도 그래서 처음에 세현 군 보고 긴가민가했어요. 워낙 만날 일이 없으니까.”

김재현이 넉살 좋게 웃어 보였다.

솔직히 김재현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걸 줄은 몰랐다. 그로 그럴 게 지난 2차 미션 촬영 때 처음 만난 사이였다. 게다가 시작 전 대기실에서 인사한 게 다였고.

그래서 당연히 기억 못할 줄 알았다.

설령 기억한다 해도 저쪽에서 먼저 다가올 거라고는 예상 못했다.

“아, 인터넷 봤죠? 지옥담 무대 잘했다고 다들 난리던데.”

“네. 봤어요.”

“현장에서도 생각했지만, 방송으로 봐도 무대가 멋있더라고요. 멤버들도 멋있다고 아주 난리예요.”

“감사합니다.”

원곡자가 만족했다니 다행이었다.

이보다 좋은 칭찬은 없지.

“특히 세현 군 얘기가 많아요. 저 친구 누구냐고, 노래 왜 이렇게 잘하냐면서요.”

“아, 감사합니다.”

“이쪽이야말로 고맙죠. 덕분에 노래가 다시 역주행하고 있는데.”

방송 이후 화제가 됐던 지옥담은 결국 역주행이라는 성과까지 낳았다.

물론 차트 하위권이긴 하지만, 나온 지 1년 넘은 곡이 이렇게 다시 차트인을 했다는 자체가 의미 있었다.

“저희 메인 보컬인 지한이는 자기보다 잘 불렀다고 난리라니까요. 나중에 꼭 한번 만나고 싶다고.”

“아뇨, 그럴 리가요. 당연히 한지한 선배가 훨씬 잘 부르시죠.”

“와, 방금 그 말. 지한이가 들으면 좋아하겠어요.”

김재현이 재차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기회가 된다면 멤버들이 꼭 한번 보고 싶어 하던데. 아, 물론 다른 지옥담 멤버 분들도 같이요.”

“저희야 그럼 감사하죠.”

“그래요. 그럼 우리 꼭 한번 봐요.”

그리고 이제 돌아서나했는데, 예상과 다르게 김재현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네?”

“그, 세현 군이 우도현 선배님 동생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아, 네. 맞습니다.”

근데 그건 왜 묻지?

“제가 예전부터 루트 엄청 팬이었거든요. 특히 우도현 선배님이요!”

“아, 그러셨구나······.”

어쩐지 말을 꺼낸 이유를 알 것 같다.

“무대에서 되게 멋있으셨는데. 물론 연기하시는 모습도 멋있고요.”

“아, 네······.”

앞선 말들에 나는 최대한 리액션을 해보였다. 사실 이럴 땐 무슨 반응을 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아, 딱히 뭘 해달라는 건 아니에요. 단지 그냥 너무 팬이었어서요.”

“네. 감사합니다.”

음, 딱히 뭘 부탁하려는 건 아닌가 보군.

이럴 경우 뭔가를 부탁하는 경우가 많아서 내심 이번에도 역시 그러지 않을까 했다.

하지만 앞선 말과 다르게 김재현은 여전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선배님?”

“아! 예! 하하.”

뭔가 더 하실 말씀이 있는 건가.

“아무튼 그럼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번 더 봐요.”

“아, 네.”

“그럼 연습 열심히 하세요!”

이윽고 김재현은 몸을 돌렸다.

뒤이어 들리는 그의 한마디.

[“아, 그래도 싸인 한 장 부탁해볼걸······.”]

그런 그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싸인.

형이 진짜 한국에 오면 어떻게 한 장 부탁해 봐야하나.

* * *

시간은 어느새 흘러 중간 평가날이 왔다.

오늘은 항상 평가를 봐주시던 트레이너들 외 각 곡의 프로듀서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순서는 레이서(Racer)팀 그리고 우리였다. 평가 당일, 레이서팀은 전체적으로 상당히 차분한 모습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차분해 보였던 건 역시나 최진호였다.

“그럼 레이서팀부터 시작해볼까요?”

그렇게 시작된 평가.

레이서팀은 안무는 물론 라이브마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훌륭히 해내고 있었다.

그냥 보기에도 준비를 많이 했다는 게 티가 났다. 토니 프로듀서 역시 이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레이서팀 잘하네? 연습 많이 했나봐.”

“그러게요. 노래도 다들 좋은데요?”

트레이너들도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확실히 잘했다.

메인 보컬을 맡은 에단도 평소보다 훨씬 날아다니는 모습이었고, 무엇보다 멤버 모두 열심히 연습했다는 게 눈에 보였다.

정말로 이를 갈고 한 모양이네.

무대를 마친 레이서팀은 조용히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팀원들 사이에 별도의 리액션은 없었다.

분명 칭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팀원들은 특별히 기뻐하는 것 없이 여전히 차분한 모습이었다. 약간 군기 들어 보이는 모습과 같은.

“그럼 다음은 우리 어벤져스팀이라 해야 하나. 환몽팀 한번 봐볼까?”

어느새 우리는 트레이너들 사이에서 어벤져스팀으로 불리고 있었다. 어벤져스라. 이거 꽤 고전인 것 같은데. 다른 표현은 없나.

물론 우리가 어벤져스팀이라는 걸 인정한 건 아니었다. 그냥 다른 표현은 없나 싶어서.

“이 팀에 잘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그러니 기대 많이 할게요.”

시작 전, 김모혁 프로듀서의 기대감이 담긴 한마디였다.

“얘들아, 모여. 모여.”

가운데 있던 윤도운이 무대에 들어가기 직전, 우리를 불러 모았다.

그리고 윤도운이 선창했다.

“환-몽!”

“파이팅!”

그러자 트레이너와 프로듀서들이 그게 뭐냐는 듯이 순간 놀란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뭐야? 팀 구호라도 만든 거예요?”

“네. 저희끼리 한번 만들어 봤습니다.”

“순간 깜짝 놀랐네요.”

팀 구호는 우리가 팀을 구성하고 연습을 시작하자마자 만들었던 거였다.

제안자는 당연히 백은찬.

표면적으로는 팀 단합을 위해서였고, 실상은 있어 보이니까 그냥 한번 해보자는 거였다.

선창은 가장 연장자인 윤도운이 맡기로 했다. 막내인 신하람이 하면 어떠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냥 평범하게 가기로 했다.

이후 우리는 매번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만들어진 팀 구호를 외치고 들어갔고, 마찬가지로 연습을 마칠 때도 외쳤다.

그러다보니 팀 구호는 우리 팀의 하나의 관례 같은 게 되어버렸고, 이제는 외치지 않으면 어딘가 좀 허전하게 되어버렸다.

“재밌네요. 이 팀은 단합이 좋아 보여요.”

“그러게요. 이런 팀은 또 처음 보네.”

그리고 그런 우리의 구호에 대한 트레이너와 프로듀서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자 백은찬이 양옆에 있던 나와 안지호를 한번씩 툭툭 쳤다.

‘봤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진짜 그런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상당히 뿌듯해하는 얼굴이었다.

그래, 잘했다. 잘했어.

“이런 모습 보니까 왠지 더 기대감이 올라가는데. 바로 시작하죠.”

우리는 곧바로 각자의 위치에 서 음악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안 돼서 시작되는 구슬픈 멜로디의 가야금 전주.

전주가 시작되자, 앞서 일렬로 서있던 멤버들이 양옆으로 빠지면서 그 순간, 내가 앞으로 치고 나왔다.

이번에도 역시 파트의 시작은 나였다.

그렇게 우리는 준비한 약 4분간의 노래를 모두 마쳤다.

“잘하네.”

“정말요. 잘해요.”

보컬 트레이너와 안무 트레이너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말 손색이 없어. 그냥 이대로 당장 데뷔 무대에 올라도 될 것 같아.”

“정말 잘하는 아이돌 팀의 한 무대를 보는 것 같았어요. 서로 호흡도 잘 맞고. 연습한 지 얼마 안 됐을 텐데도.”

중간 평가에서 처음 들어보는 칭찬이었다.

하지만, 아직 마냥 안심할 순 없었다.

개개인으로의 평은 아직 어떨지 모르는 만큼.

“개개인으로 봐도 한 명 한 명 다 너무 좋아. 다들 각자 역할을 너무 잘해줘서 손색이 없을 정도야.”

제대로 칭찬을 들었다.

한 명 한 명 손색이 없을 정도라니.

그때서야 마음이 한결 놓이는 기분이었다.

“여기 리더가 누구였지?”

“접니다.”

“아, 그래. 지호. 지호가 진짜 팀원들을 밸런스 있게 잘 뽑은 거 같아.”

“감사합니다.”

안지호가 곧 허리 숙여 인사했다.

이어서 김모혁 프로듀서 역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보는 내내 제가 곡을 쓰면서 생각했던 그대로라서 너무 좋았어요. 다들 곡하고 잘 맞는 것 같고, 특히 세현 군은 노래를 정말 잘하는 것 같아요. 다시 한번 놀랐어요.”

“감사합니다.”

“아, 왠지 이거 말고 곡 또 주고 또 부르게 하고 싶네요.”

“와, 그 정도예요? 이거 세현이한테 엄청난 칭찬인데요?”

“그 정도로 잘했다는 거죠.”

뒤이어 김모혁 프로듀서는 한 번 더 환한 미소를 보였다.

“덧붙여서 중간에 세현이 단독 검무. 그 부분도 되게 좋았어. 순간 시선이 확 집중되더라.”

“맞아요. 저도 거기 좋았어요. 세현 군이 춤을 이렇게 잘 췄나 싶고.”

다행히 단독 검무 부분도 좋은 평을 받았다. 연습한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다른 것보다 가장 걱정이 되었던 건 이 단독 검무 부분이었다.

다른 건 멤버들과 함께하지만, 이것만큼은 나 혼자서 그 큰 무대를 채워야 했기에.

하지만 오늘 평가로 인해 약간의 용기를 얻었다.

“어떻게 두 팀 다 이렇게 무대들을 잘 준비했지? 본무대에서도 둘 다 이만큼만 해주면 좋을 텐데.”

“아니죠. 이거보다 더 잘해야죠.”

“아, 맞아요. 더 잘해야죠.”

트레이너들의 그 말이 살짝 부담감으로 다가오기는 했으나 어쨌든 오늘 평가는 성공적으로 마쳤기에 그것만으로도 만족이었다.

다른 멤버들의 표정을 보니 다른 멤버들 역시 시작 전보다 한결 밝아 보이는 얼굴들이었다.

이제껏 연습한 게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더 그랬다. 정말 이대로만 했으면 좋겠는데. 아니지, 더 잘해야지.

“그럼 여기서 중간 평가 촬영은 마칠게요! 세현 군. 슬레이트 좀 쳐줄래요?”

“네. 알겠습니다.”

박수를 쳐달라는 조연출의 말에 곧바로 나는 손을 높이 들었다.

“슬레이트 치겠습니다. 하나, 둘!”

짝!

그렇게 중간 평가가 끝이 났다.

* * *

“그럼 모두 수고해요.”

“수고해요.”

“감사합니다!”

그날 중간 평가 촬영이 끝나고, 프로듀서들이 모두 자리를 떠난 후에야 두 명의 트레이너들이 몸을 일으켰다.

“송이 쌤. 좀 전에 팀들 전반적으로 어땠어요?”

“좋았죠. 다들 잘하니까 제가 다 기분 좋던데요.”

이송이 트레이너가 기분 좋은 듯 환하게 웃었다.

“이렇게 두 팀 다 잘하는 게 흔하지 않으니까요. 그만큼 열심히 준비했다는 게 보여서 기특하기도 하고······.”

“아무래도 그렇죠.”

사실 두 사람은 오기 전만 해도 오늘도 혹평을 잔뜩 늘어놓겠구나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게 두 사람의 역할이기도 했다.

부족한 점을 찾아 어떻게든 보완하고 완성도 높은 무대를 만들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트레이너들의 역할이었기에.

“근데 오늘 두 팀, 왠지 분위기가 좀 많이 다르지 않았어요?”

“아, 맞아요. 좀 다르더라고요.”

“한 팀은 기합이 빡 들어가 있고. 한 팀은 훈훈한 분위기이고. 아무튼 분위기가 완전 달라서 놀랐어요.”

그건 이송이 트레이너도 느끼는 바였다.

물론 훈훈한 분위기의 팀은 소위 말하는 어벤져스 팀이라서 그런 걸지도 몰랐다.

여유가 있으니까 나올 수 있는 분위기라는 거다. 반면, 그렇지 못한 팀은 빡센 분위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거고.

“송이 쌤 생각엔 어느 팀이 이길 것 같아요?”

“음······.”

그 말에 이송이 트레이너가 잠시 고민했다. 어느 팀이 이길 것 같냐라.

하지만 의외로 고민은 짧았다.

“제 생각엔 그 팀이 이길 것 같아요.”

“그 팀이요?”

“네. 그 팀이요.”

그리고 이송이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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