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잊어서는 안 되는 것
글로벌 투표가 시작됐다.
투표가 열리자마자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몰려 해당 사이트는 잠시 마비가 될 정도였다.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알았냐면, 투표가 열리자마자 나 역시 사이트에 접속해보았기 때문이다.
“열렸다! 열렸다!”
“사진! 사진 잘 나왔어요?”
“나 어디 있어!”
이후 사이트가 정상화되자마자 백은찬, 신하람과 함께 다시 접속해보았다.
근데 왜 자기가 지금 몇 표일까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냐. 물론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정보긴 했다.
앞서 두 사람은 그저 자신들의 사진이 걸린 투표 사이트를 신기한 듯 쳐다볼 뿐이었다.
투표는 1인 2표로 진행됐다.
투표권은 당연하지만, 하루마다 리셋되고 리셋될 때마다 또다시 새로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렇게 글로벌 투표가 열리고 며칠이 지났을 무렵,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바로 중간 집계 결과 발표였다.
바로 방송이 끝나고 다음 화 예고가 나가기 직전 타임에 현재까지의 결과를 불시에 내보낸 것이다.
“헐. 뭐야!”
그리고 나는 당시 도운이 형과 백스테이지 숙소에서 본방사수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저거 지금 우리 중간 결과 맞지?”
“네. 그런 것 같아요.”
순위는 1등부터 15등까지 모두 공개가 되었다. 구체적인 표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전체 순위가 공개됐다는 것만으로도 파급력은 엄청났다.
- 대박 차선빈 1등이야?
- 차선빈이 1등이야!
- 세현이 2등이다 ㅠㅠㅠㅠㅠㅠㅠ
- 1등 차선빈, 2등 우세현
- 우세현이 2등이라고?
- 차선빈ㅠㅠㅠㅠ젭알 이대로 유지......
- 안지호 3등 ㄹㅇ?
중간 집계 결과 내 순위는 2등이었다.
2등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등수였다.
생각보다 더 높아!
“근데 선빈이는 진짜 대단하다. 뭔가 프로그램 시작한 이후로 계속 1등 찍는 느낌인데.”
글로벌 투표는 이제 시작이었지만, 나 역시도 도운이 형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느꼈다.
뭔가 차선빈은 부동의 1위인 느낌.
와, 그렇게 말하니까 뭔가 멋있네.
그나저나 어쩌면 최종 순위를 발표할 때쯤이면 내 순위가 지금보다 더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이런 경우, 중간에서 치고 올라오는 경우도 꽤 되니까.
그러니 중간 집계 결과만으로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순 없었다. 유지만 해도 다행이지.
이대로 유지만 할 수 있다면, 다시 스테이지로 올라갈 수 있기에.
그렇게 투표가 계속해서 진행되고, 시간은 흘러 3차 미션 당일이 되었다.
“아, 오랜만에 심사네.”
“안녕하세요. 인 대표님.”
“어, 그래. 다들 얼굴이 좋아 보이네.”
“대표님도요.”
이번 3차 미션에서는 오랜만에 심사위원이 있었다.
심사위원은 모두가 아는 IN 엔터의 수장인 인현민 대표와 보컬, 안무 트레이너 그리고 A&R 팀의 심성민 프로듀서였다.
그 밖에도 심사는 보지 않지만, 각 곡의 프로듀서들 역시 오늘의 무대를 관람하기 위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기실에서 정신없이 준비를 하고 있던 무렵, 갑작스럽게 인현민 대표가 우리를 찾아왔다.
“다들 준비는 잘하고 있어?”
사전 이야기 없이 방문한 대표에 우리는 모두 하던 것을 멈추고 다급하게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그래. 한번 잘하고 있나 궁금해서 와봤어.”
그리고 인현민 대표는 나와 멤버들을 한번씩 쭉 둘러보았다.
“오늘 다들 멋있는데?”
오늘 의상은 곡의 컨셉과 맞게 한복풍의 디자인 의상이었다.
짙은 남색에 은빛으로 수놓인 동백꽃의 두루마기를 입고, 소품으로 부채와 검까지 준비된 상태였다.
“중간 평가 영상 봤는데, 잘하더라고. 그래서 기대를 많이 하고 있어.”
“감사합니다!”
“특히 세현이는 춤이 많이 늘었던데?”
인현민 대표가 나를 콕 집으며 말했다.
“노래야 뭐, 말할 것도 없지만 춤에서 좀 놀랐어. 1차 때와는 말도 못 하게 늘었더라고. 검무, 멋있었어.”
“감사합니다.”
“아무튼 이 팀에 기대를 많이 하고 있으니까 다들 열심히들 해.”
그리고 인현민 대표는 곧 같이 온 스태프와 함께 대기실을 나섰다.
대화하는 걸 들으니 이제 레이서(Racer)팀의 대기실로 이동할 예정인 것 같았다.
“어우, 순간 쫄렸네.”
“형도요? 저도요.”
“이렇게 갑자기 급습하시기 있냐······.”
긴장이 풀린 백은찬이 곧바로 대기실 소파에 주저앉았다. 순간 쫄리는 마음이 들었던 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연습, 지금이라도 더 해야 하나.
“오. 세현이 형, 귀에 그거 뭐예요?”
“뭐?"
“이거 말이에요. 이거. 귀걸이.”
신하람이 내 한쪽 귀에 걸려 있는 드롭 이어링을 가리키며 물었다.
“귀찌.”
“오늘 형 의상이랑 잘 어울리는데요?”
“그래?”
“네.”
오늘은 또 특별히 평소 잘하지 않는 악세사리를 착용했다. 바로 귀찌.
아직 미성년자고 학생이니 귀를 뚫을 수는 없어서 코디 누나가 특별히 구해준 귀찌로 이를 대신했다.
다만, 성인이 된다고 해도 귀를 뚫을지는 모르겠다. 그건 좀 고민을 해봐야 할 사항이었다.
물론 뚫기 무서워서 그러는 건 아니고.
“와, 오늘도 관객이 많네.”
그때, 잠시 볼일을 보러 나갔던 매니저 형이 대기실로 돌아왔다.
“형, 지난번보다 많아요?”
“응. 체감이 저번보다 더 많은 것 같은데.”
오늘은 심사위원 평가로만 진행되지만 그렇다고 관객이 없는 건 아니었다.
평가에는 영향이 없지만, 오늘의 무대를 위해 사전에 수백 명의 관객을 받았다고 한다.
“아, 한번 보러 갔다 오고 싶다.”
“안 될걸. 괜히 보러 갔다가 일 커진다.”
무대 의상 같은 것도 노출되면 안 되고.
여러 가지로 지금 가는 건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
매니저 형이 우릴 향해 말했다.
“아냐. 오늘은 어떻게 하면 볼 수 있던데.”
“어, 진짜요?”
“응. 구조가 여기서 관객을 볼 수 있더라. 저쪽에서는 못 보는 것 같고.”
“헐!”
그러자 신하람이 자리에서 곧바로 일어났다.
“같이 보러 갈 사람이요!”
“나!”
가장 먼저 손을 든 건 백은찬이었다.
물론 나도 손을 들었다.
나도 팬들 보고 싶거든.
“나도.”
차선빈 역시 손을 들었다.
그러자 이를 본 윤도운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손을 들었다.
“도운이 형도요?”
“너희만 보내기 불안해······.”
잠깐.
그 너희에 나도 포함되는 건가.
“좋아요. 그럼 우리 다 같이 가는 걸로!”
“야, 난 손 안 들었어.”
가만히 앉아있던 안지호가 반발하고 나섰다.
“의견 기각이요. 다 같이 가는 걸로!”
“아니, 왜 기각······”
“야, 차선빈. 얘, 팔 잡아.”
“응.”
안지호는 이윽고 백은찬과 차선빈에게 양팔을 붙들린 채 밖으로 나가게 됐다.
그렇게 끌려 나가는 안지호가 왠지 모르게 종잇장처럼 보이는 건 내 착각인가.
“와, 팬들 진짜 많다.”
매니저 형이 알려둔 곳으로 가니 한창 입장 중인 팬들의 모습이 보였다. 시작하기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서 그런지 꽤 한산한 모습이었다.
새삼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한다고 생각하니 뭔가 낯설었다.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 했을 텐데.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예전엔 어땠는지 벌써 기억이 희미했다.
‘그땐, 어땠었지······.’
아니지. 떠올려봤자 별로 좋은 기억이 아니다.
그리고 기억은 희미해졌다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기억은 희미해졌더라도 마음은 그대로였다.
“얘들아, 이제 다시 들어와. 이제 곧 녹화 들어간대!”
“들어가자, 얘들아.”
그렇게 데리러 나온 매니저 형과 함께 우리는 다시 대기실로 가는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걸음을 옮기면서도 왠지 모르게 관객석에서 눈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상하게, 뭔가 아쉽네.
그렇게 관객석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그곳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 *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 특별 MC를 맡은 신인 배우 황준영입니다.”
오늘의 특별 MC는 앞선 미션들과 다르게 남자 신인 배우였다.
IN 엔터는 계열사 중 하나로 배우 소속사 역시 소유하고 있었는데, 오늘 MC인 황준영은 그 회사 소속 배우였다.
“오늘 진행되는 3차 미션은 [신곡 매치]로 두 팀으로 나누어 총 2개의 공연을 준비했습니다.”
그 뒤로는 늘 그렇듯 오늘의 심사위원 소개, 그리고 평가 방식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무대 순서는 레이서(Racer)팀이 먼저였다. 그 다음이 우리. 그래서 아직까지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그래,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네? 순서가 바뀌었다고요?”
“네. 지금 먼저 환몽팀 올라가셔야 할 것 같아요.”
갑작스럽게 순서가 바뀌었다.
이에 우리는 곧바로 정신없이 무대에 오를 준비를 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냐?”
“매니저 형한테 물어보니까 저쪽 팀에서 누가 갑자기 배탈이 났나 봐요. 그래서 지금 급하게 약 먹고 화장실 가고···난리도 아니래요.”
방금 먹은 저녁이 잘못되기라도 한 건가.
낮에 리허설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으니 아무래도 저녁을 먹고 탈이 난 듯 했다.
“환몽팀! 조금만 서둘러주세요!”
그렇게 우리는 서둘러 무대로 향했다. 분주한 건 우리만이 아니었다. 다른 스텝들도 변경된 순서로 인해 정신이 없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다행히 사전에 준비된 VCR이 있었기에 그만큼 시간을 끄는 게 가능했다.
그 사이, MC인 황준영에게도 변경된 순서에 대한 내용이 잘 전달되었다.
“자, 그럼 이제 여러분들이 기다리시던 연습생 분들을 만나볼 차례인데요. 첫 순서로 이분들이 준비를 하고 계신다합니다.”
우리는 다행히 지금 무대 아래에 있었다.
이제 스탠바이 싸인만 나면, 그대로 무대에 올라가기만 하면 됐다.
아, 정신없어.
그 와중에 땀을 흘리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바로 차선빈, 안지호, 우세현, 백은찬, 윤도운, 신하람 연습생의 환몽팀입니다! 모두 환호의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동시에 함성이 들려왔다.
그대로 스탠바이 신호가 떨어지고, 그대로 우리 6명은 빠르게 무대 위로 올라갔다.
무대 위에서 보는 풍경은 평상시와 다를 게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LED 화면, 플랜카드.
그리고 눈부시게 빛나는 조명.
분명 다를 게 없는 현장이었다.
‘아, 이런······.’
하지만 딱 하나 다른 게 있었다.
그건 바로 나였다.
무대에 오르기 전,
능력을 끄는 것을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여기저기서 정신없이 들려오는 목소리들.
그렇게 쌓이고 쌓인 목소리들이 내 머릿속으로 하나도 빠짐없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