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영원히 이 환몽 속에 갇혀.
순간 몸이 굳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이 어지러운 감각. 설상가상으로 두통도 함께 찾아왔다.
이렇게 수많은 생각들을 마주한 건 아주 오랜만이었기 때문에.
[“우세현이다! 우세현!”]
[“와, 대박 대박!”]
[“애들 오늘 의상 예쁘다!”]
[“세현아!!!!!!!!!!!!!!!!”]
그때, 곡의 전주가 시작됐다.
그걸 듣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능력. 능력을 꺼야 해.’
동시에 능력을 빠르게 오프시켰다.
[현재 상태 : OFF.]
그러자 순식간에 어지럽던 세상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잠시 굳었던 몸을 빠르게 움직였다.
어느새 노래는 도입부에 이른 상태였다.
와중에 곡의 첫 파트가 나였다.
그렇기에 언제까지고 멍한 상태로 있을 순 없었다.
황홀하게 빛나는 저 월하(月下)
마치 꿈을 연상 캐하는 저 풍경 속에
일렁이는 듯한 너의 그림자
다행히 첫 파트는 흔들림 없이 넘어갔다.
그래도 그동안 연습한 게 헛되지는 않았는지 노래가 시작되자 그에 맞춰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였다.
안무나 노래뿐만이 아니었다.
표정 또한 수백 번을 연습한 터였다.
다른 것보다 몸이 음악에 스스로 반응하고 있었다.
그렇게 무대를 하고 있으려니 좀 전까지 있던 감각과 두통은 어느새 깨끗하게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리고 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무대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렇게 무대를 하다 마침내 하이라이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의 단독 검무 파트가 됐다.
밝았던 무대 조명이 분위기에 맞춰 급격하게 어두워지고. 한 줄기의 빛과 같은 조명이 나를 비쳤다.
그 순간, 나는 검집에서부터 길고도 날카로운 검 한 자루를 부드럽게 꺼내었다.
그리고 내가 검을 꺼내 든 순간, 관객석 함성이 급격하게 커지는 게 느껴졌다.
이어서 공중에서 한번 회전한 뒤, 들고 있던 검을 손목을 이용해 빠르게 내리쳤다.
이어지는 연속 동작으로 검을 아래에서 위로 느리게 움직이며 카메라와 조용히 눈을 마주쳤다.
그렇게 손안의 검은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날카롭고도 섬뜩하게 빛났다.
이후 손목 스냅을 이용한 베기 등 검술과 관련된 약간의 기술을 선보이고 난 뒤, 짧았던 나의 검무가 끝이 났다.
영원히 나는 이 환몽 속에 갇혀.
이어지는 공연 속 차선빈의 파트를 마지막으로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뒤이어 잠깐의 엔딩 포즈.
그렇게 화면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클로즈업됐다.
“꺄아아아아악!”
함성 소리가 들렸다.
끝을 알리는 함성 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안심이 됐다.
* * *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무대에서 내려오고 난 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모든 공연이 끝나 있었다.
이번 공연은 두 팀으로 나뉘어 있다 보니 그만큼 전체적인 공연 시간도 짧았다.
그 사이,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안지호가 말을 걸어왔다.
“야.”
“어, 왜?”
그리고 안지호는 그렇게 잠시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봤다.
“아니다.”
뭐야. 왜 말을 하다 말아.
사람 궁금하게.
하지만 안지호를 더 추궁할 힘 따위 지금의 내겐 남아있지 않았다.
“자, 모든 연습생들은 이대로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가실게요!”
하지만 공연이 끝났다 해서 녹화도 끝난 것은 아니었다. 아직 심사위원 평가가 남아있었다.
평가는 오늘 바로 발표가 되며, 두 팀 중 승리 팀은 베네핏 20만 표를 얻게 된다. 이후 글로벌 투표와 합산하여 최종 순위가 결정.
좀 전의 무대의 여파로 인해 여전히 정신이 없긴 했지만, 그 외에 별다른 건 없었다.
“와, 객석이 텅 비었네.”
보안을 위해 잠깐 녹화를 끊고 관객들이 모두 퇴장한 이후에 다시 촬영을 재개했다.
촬영이 재개되자, 가장 먼저 인현민 대표가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무대 정말 잘 봤고요. 두 팀 다 정말 좋은 무대 보여줘서 저는 지금 굉장히 만족스럽습니다.”
“두 팀 모두 오늘 수고했어요. 중간 평가 때부터 완성도가 좋았는데, 오늘은 그때보다 훨씬 더 완성도가 높아진 것 같네요.”
“모두 정말 고생 많으셨고, 두 팀 다 너무 잘해서 더 잘한 팀을 정하기가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두 팀 다 정말 잘했습니다.”
인현민 대표에 이어 트레이너와 프로듀서 역시 한 번씩 마이크를 잡았다.
하지만 워낙 긴장이 되는 순간이라 그런지 열심히 고개는 끄덕이고 있었지만, 앞선 말들이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빨리 발표를······.”]
[“숨넘어갈 것 같아!”]
[“너무, 너무 길어요!”]
[“······.”]
그건 다른 멤버들 역시 마찬가지인 듯 했다. 약간 어렸을 때 들었던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분위기 같기도 하고.
“그럼 지금부터 대망의 승리 팀을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연습생들은 모두 일제히 앞에 준비된 화면을 바라봤다.
“플레이 온 더 스테이지, 3차 신곡 매치! 그 미션의 승리 팀은······!”
긴장되는 순간.
하지만 제작진은 뜸 들이는 것 없이 곧바로 승리 팀을 화면에 띄웠다.
[Winner : 환몽(幻夢)]
“승리 팀은 ‘환몽’ 팀입니다!”
이겼다.
3차 미션에서 승리했다.
동시에 힘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긴장을 너무 많이 했다.
“환몽팀! 모여모여!”
그리고 그대로 잠깐 화면을 보며 멍을 때리고 있는데, 옆에 있던 멤버에 의해 갑작스럽게 어디론가 끌려갔다.
“이겼다! 이겼어!”
“이겼어요!”
“와!”
정신을 차리고 나니 어느새 다 같이 둥굴게 둥굴게를 하고 있었다. 아니, 잠깐. 둥굴게 둥굴게가 너무 빠른 거 아니냐······.
“축하해.”
“축하한다.”
상대팀이었던 레이서팀도 우리가 있는 쪽으로 와 같이 축하를 해주었다. 당연하게도 표정들은 그리 좋지 못했다.
“환몽팀 정말 축하드리고요, 승리하신 환몽팀에게는 멤버 전원 베네핏 20만 표를 드립니다!”
그와 동시에 꽃가루가 터졌다.
아니, 이게 언제적 특수효과야.
하지만 그런 특수효과일지라도 지금은 그저 예뻐 보였다.
베네핏 20만 표도 기뻤지만, 무엇보다도 이 팀. 이 멤버들과 함께 승리했다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 나를 기쁘게 했다.
“악! 입에 꽃가루 들어갔어!”
백은찬이 꽃가루를 뱉으며 말했다.
······저 예쁜 꽃가루를.
* * *
녹화가 모두 끝나고 현장이 슬슬 정리가 되어가던 시점, 대기실 구석에 있던 좁은 소파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물론 진짜로 잔 건 아니었다.
그냥 눈만 감고 있었다.
녹화가 끝나자 그제서야 능력을 키고 무대에 올랐던 여파가 밀려오는 듯 했다.
‘진짜 섬뜩했다······.’
다시 생각해도 섬뜩했다.
그대로 켜놓고 무대에 올라가다니.
그나마 온오프가 자유로워서 다행이지 쿨타임 같은 거라도 있었다면···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심지어 별다른 조건 없이 이런 능력을 준 저승사자에게 고맙기까지했다. 물론 따봉 어쩌고는 절대 안할 거지만.
“야, 여기서 자면 얼어 죽어.”
그때 안지호가 다가와 널브러져있던 나를 깨웠다.
“안 자는데.”
“빨리 이동할 준비나 해. 너 때문에 다들 기다리시잖아.”
“아, 응.”
“하여튼 민폐 오진다.”
그리고 동시에 들려오는 목소리.
[“하여튼 민폐 오진다.”]
와, 놀랍도록 속마음과 말이 일치해.
이런 경우 흔치 않은데.
“뭘 봐?”
[“뭘 봐?”]
오, 신기한데.
보통 이런 경우가 잘 없어서 그런가.
괜히 신기하고 그랬다.
보통 속마음과 말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니까.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일치하는 편이 좋다. 딱히 이유는 없지만, 그게 편하다.
나는 안지호의 말대로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겼다. 북적북적했던 대기실은 어느새 조용해져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언젠가 능력을 끄지 않고도 공연을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굳이 능력을 신경 쓰지 않고 무대 위에서 마음껏 노래할 수 있을 때가.
그리고 그런 날이 오게 된다면 언제 일까하는 그런 무의미한 생각마저 들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이대로 무대 위에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이제는 어느새 능력을 켜놓고 올라가길 바라고 있다.
욕심이 과하면 뭐든 화를 부르는 법인데. 그러니 나는 그저 지금 이대로만을 바라기로 했다.
더 없이 지금 이 정도로만 계속.
“야, 안 가?”
안지호가 또다시 날 재촉했다.
오늘따라 왜 저렇게 재촉하지.
평소엔 누구보다도 빠르게 퇴근하면서.
안지호는 언제나 대기실 퇴근 1등이었다.
“간다, 가.”
“느려.”
그렇게 나는 안지호와 함께 아무도 없는 대기실을 나섰다.
* * *
며칠 뒤, 글로벌 인터넷 투표가 마감되고 새로운 녹화 날짜가 잡혔다.
오늘 촬영은 3차 미션의 최종 결과 발표를 위한 것이었다.
“1등, 누가 될 것 같냐?”
“1등은 솔직히 정해져 있는 거 아니야? 당연히 차선빈이겠지.”
“아니야. 의외로 우세현이나 안지호가 치고 올라왔을 수도 있어.”
순위 발표를 앞두고 연습생들은 저마다 오늘의 순위를 추측하기 바빴다.
아직 촬영이 시작하기 전이어서 눈치 보는 것 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었다.
“셋 다 베네핏 받았잖아. 그러니 베네핏으로 뒤집히지는 않을 것 같고···결국 중간 투표대로 가려나?”
“아, 모르겠다. 난 내 순위가 높았으면 좋겠다.”
“하긴, 천상계는 천상계끼리 놀라고 하고 우리는 우리 순위나 신경 써야지.”
그러던 도중, 근처에서 앞선 이들과 다른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상계? 하, 웃기시네.”]
바로 최진호의 목소리였다.
지난 미션에서 패배한 최진호는 그 이후, 딱히 이렇다 할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깔끔하게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 건지 아니면 단지 몸을 사리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한동안 나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은 없었다.
물론 가끔씩 시비 터는 일은 있었다.
일부로 어깨를 부딪치고 가거나 하는 일.
“아, 미안.”
그때마다 영혼 없는 사과를 덧붙이곤 했지만, 영혼이 없어서 그런가 오히려 더 시비 거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난 무시로 일관했다.
그냥 참 유치한 짓을 하는 구나하고 넘어갔다. 원래 이런 건 반응해줘봤자니까.
그래, 원래라면 넘어가는 게 좋은데.
그게 계속 반복이 되면, 상대도 짜증나기 마련이다.
[“아, 우세현.”]
그리고 오늘도 역시나 부딪칠 기세로 다가오는 최진호를 발견했다.
‘거참, 귀찮네······.’
그대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최진호를 보며 그동안과 달리 조금 다르게 반응할 생각이 들었다.
[“이쯤에서 한 번······.”]
그리고 최진호가 나에게 다가오기 직전, 최진호가 생각하는 타이밍에 맞춰 몸을 빠르게 틀었다.
휙.
“어?”
어는 무슨 어냐.
최진호는 그런 나의 행동에 곧바로 반응을 보였다. 당황하는 표정이 꽤 보기 좋았다.
[“와씨, 뭐야?”]
그렇게 최진호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한동안 그곳에 서 있었다.
“준비 다 하셨으면, 연습생 분들은 스튜디오로 바로 입장할게요.”
그리고 조금 뒤, 녹화가 시작됐다.
오늘도 역시 앞선 미션과 마찬가지로 탈락자가 존재했다.
탈락자는 1명이며, 베네핏과 글로벌 투표 합산 결과 가장 낮은 순위의 1명이 최종 탈락을 하게 된다.
스튜디오에는 사전 테스트 때 보았던 화려한 디자인의 소파 6개가 준비되어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화려한 디자인의 소파가 아니었다.
그 소파가 6개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들 눈치채셨을지 모르겠지만, 이번 미션부터 변동된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스테이지의 인원이 8명이 아닌 6명이라는 겁니다.”
3차 미션이 되고 두 번째 탈락자가 나오는 상황이 되면서 스테이지의 인원이 8명에서 6명으로 변경되었다.
분명 데뷔조의 멤버도 6명이라고 했었지.
프로그램이 중반부를 넘어가게 되면서, 최종 데뷔조에 대한 윤곽도 점차 잡혀가고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3차 미션의 최종 결과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긴장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과연 중간 결과에서 얼마나 순위 변동이 있었을지 그게 가장 궁금했다. 물론 동시에 걱정되기도 하고.
스테이지 인원도 6명으로 줄었으니 무조건 6등 안에 들어야 했다. 8등도 아니고 6등이라니. 현재 연습생 인원이 15명이니 중위권보다도 위다.
“오늘은 이전과 조금 다르게, 1등부터 바로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갑자기 이건 뭐냐.
1등부터 바로 공개?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발표에 순간 정신이 아득했다.
“그럼 이번 3차 미션, 영광의 1등은!”
그와 동시에 화면에 해당 연습생의 사진과 이름, 그리고 최종 투표수가 공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