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미친 기록이네, 이거.
“그럼 선공 후공은 가위바위보로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각 팀 대표 한 명씩 나와 주시죠.”
단체 줄넘기 시작 전, 어느 팀이 먼저 할지 순서를 정해야만 했다.
“대표로 누가 나갈래?”
“내가 나갈게.”
“어? 세현이 형 가위바위보 잘해요?”
“조금.”
가위바위보라면 확실히 내게 유리했다.
왜냐면, 상대가 뭘 낼지 보이거든.
보통 사람들은 내기 전에 뭘 낼지 생각하고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맞아. 얘 가위바위보 잘해. 몇 번 해봤는데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오, 이쪽이 승산이 있네요.”
승산이 꽤 높은 편이긴 하지.
그보다 순서가 중요한데.
“너희는 선공이 좋아, 후공이 좋아?”
“이길 걸 확신하는 모양이네.”
“말했잖아. 가위바위보 잘한다고.”
그러자 안지호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먼저 하는 게 낫지 않나? 뒤면 왠지 더 부담될 것 같은데.”
“저도 앞이 더 좋아요.”
“그럼 앞으로 할까?”
분위기를 보니 모두가 앞을 선호하는 것 같았다. 그럼 선공으로 가야지.
“좋아. 그럼 선공으로 할게.”
“야, 혹시나 지더라도 원망은 안 할 테니 괜히 부담 갖지 마.”
“맞아. 부담 안 가져도 돼. 앞이 더 낫다는 거지 뒤도 싫다는 건 아니니까.”
어째 내가 못 이길 걸 미리 걱정하는 모양인데, 괜한 걱정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딱히 자만하는 건 아니고 지금까지 해왔던 데이터로 따지면 그렇다는 거다.
“괜찮아요. 이왕 하는 거 꼭 선공 따올게요.”
“그래. 그럴 수 있으면 더 좋고.”
그리고 윤도운이 힘내라는 듯 내 어깨를 몇 번 토닥였다.
“대표가 모두 정해졌네요. 스테이지 팀에서는 우리 우세현 연습생! 그리고 백스테이지 팀에서는 에단 연습생이 나왔습니다!”
“어떻게 두 분, 원하시는 순서가 있으신가요?”
뒤이어 나에게 마이크가 전해졌다.
“저희는 선공을 원합니다.”
“그럼 백스테이지 팀은요?”
“저희도 앞 순서를 원합니다.”
저쪽도 선공을 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긴, 뒤가 딱히 메리트가 있진 않으니까.
“그렇다면, 과연 누가 선공을 차지하게 될까요! 바로 가위바위보 들어가시죠!”
그렇게 시작된 가위바위보 승부.
[“시작은 무조건 주먹이지.”]
음. 그렇군.
뭘 낼지 미리 생각하는 타입이라 편하네.
아주 드물지만 그런 사람도 있었다.
뭘 낼지 끝까지 생각하지 않는 사람.
혹은 정말로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
이럴 경우 정말 타이밍 승부였다.
빠르게 읽고 동시에 적당한 타이밍에 내야 해서 꽤 까다로운 편.
물론 설령 저 둘의 경우일지라도 웬만해서는 다 이긴다. 그만큼 나만의 노하우가 쌓여있었다.
“그럼 갑니다! 안 내면 진 거! 가위~바위~”
“보!”
당연하게도 상대는 주먹.
난 보자기였다.
“네! 우세현 연습생의 승리입니다! 그러므로 순서 선택권은 스테이지 팀에게 먼저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선공을 따냈다.
“와! 선공이에요!”
“오, 진짜로 이길 줄은 몰랐는데.”
“야, 이건 진짜 크다.”
“잘했네.”
“잘했어.”
심지어 차선빈은 엄지척까지 해주었다. 심지어 양손 따봉. 어째 이거 과하게 칭찬받는 느낌인데.
“그럼 스테이지 팀 바로 단체 줄넘기 시작하실게요.”
순서는 처음과 같았다.
백은찬을 필두로 마지막 차선빈까지.
역시나 핵심은 안지호의 성공 여부였다.
삐익-
그리고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동시에 백은찬이 빠르게 줄 안으로 들어갔다.
“간다!”
당연하게도 성공.
그리고 다음은 신하람.
신하람도 역시 별 무리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좋아! 다음 들어와!”
다음 차례는 나였다.
앞서 타이밍 잡는 연습을 워낙 많이 해서 그런가. 이제는 들어가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안지호의 차례.
사전에 얘기한 대로 다 같이 타이밍을 맞춰주기로 했다.
[“이번엔······.”]
순간 안지호의 생각이 들렸다.
이를 악문 듯한 목소리.
그리고 우린 그대로 타이밍을 세기 시작했다.
“자, 하나! 둘!”
“셋!”
그 순간, 안지호는 줄 안으로 뛰어 들어왔고 줄은 또다시 한 바퀴를 돌았다.
* * *
“28, 29, 30, 31······.”
시작된 스테이지 팀의 줄넘기는 끊임없이 계속됐다.
안지호는 이번에야말로 줄 안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그 뒤로는 탄탄대로였다.
누구 하나 걸리는 사람 없이 모두가 박자에 맞춰 줄을 넘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단체 줄넘기 개수는 어느새 30개를 넘어서 40개를 향해서 가고 있었다.
“50! 지금 막 50개를 돌파했습니다!”
단체 줄넘기 50개라니.
처음 맞춰보는 것 치고는 미친 숫자였다. 물론 체력적으로도 아직 버틸 만했다.
“야, 벌써 50개야. 저기 미친 거 아니냐?”
“연습 때 하나도 못 넘지 않았어? 갑자기 왜 저런다냐.”
“으아. 부담돼.”
그리고 그런 우릴 보며 상대팀 역시 혀를 내둘렀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상황이긴 했다.
“57···아! 57개에서 마감하네요!”
그러던 도중, 갑작스럽게 줄이 멈추었다.
“형들, 미안해요. 나 걸렸어요.”
신하람이 급하게 사과했다.
하지만 우리는 사과를 받을 새도 없이 모두 제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와, 진짜 죽을 뻔했다.”
“난 눈치게임 하는 기분이었어······.”
어떻게 어떻게 계속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다들 슬슬 체력의 한계가 찾아왔던 모양이다.
물론 나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일단 기록이 중요하니.
“저희 몇 개 했다고 했었죠?”
“스테이지 팀 총 57개입니다!”
57개라.
그래도 적지 않은 숫자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선방했지.
[“와, 부담스러워.”]
[“50개라니. 이거 넘을 수 있을라나.”]
[“아, 실수하면 안 되는데······.”]
반면,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지만 저쪽에서는 부담을 제대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 뭐든 선빵이 최고지.
“우리 한번 제대로 해봐요.”
시작 전, 최진호가 같은 백스테이지 멤버들을 향해 기합을 넣고 갔다.
하지만 제대로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음속엔 저마다 긴장만이 가득했다.
“29,···아······.”
“네! 백스테이지 팀의 기록은 29개에서 멈췄습니다!”
앞선 긴장감을 이기지 못한 건지 백스테이지는 29개째에서 그만 줄에 걸리고 말았다.
“이로써 이번 단체 줄넘기의 승리는 스테이지팀이 가져갑니다!”
그렇게 우리는 쉽게 승리를 가져갈 수 있었다. 아, 물론 쉽게는 아니지. 다시 생각해도 50개는 미친 기록이긴 했다.
“야, 모여모여!”
“세현이 형! 형도 얼른 와요!”
스테이지 팀의 승리가 선언되자 또다시 둥굴게 둥굴게 타임이 시작됐다. 이거 약간 우리 팀만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것 같기도 하고···하지만 어느새 익숙해진 건지 나도 모르게 같이 돌고 있었다.
“그럼 바로 스테이지 팀의 카운트를 올려드릴게요.”
한쪽에 비치된 점수판.
그중 [스테이지(Stage)]라고 적힌 점수판의 숫자가 하나 올라갔다.
“자, 그럼 바로 다음 게임으로 가보실까요!”
“지금 바로 함께 가시죠!”
여전히 티키타카가 맞는 MC 두 사람과 함께 게임은 바로 다음 순서로 넘어갔다.
* * *
다음 게임 순서는 단체전에 이어 개인전이었다. 그리고 개인전이 시작되기 전, 잠깐의 정돈과 휴식 시간을 가졌다.
“난 솔직히 안지호가 성공할 줄 알았어.”
“어, 진짜요? 내가 시작 전에 은찬이 형 엄청 불안해하는 거 봤는데.”
“뭔소리야. 누가 불안해했다고······.”
“다 티 났는데.”
“흠.”
아예 없던 말은 아니었던 건지 이를 듣던 백은찬이 헛기침을 한번 했다.
성공을 한 이후에도 안지호는 평상시처럼 말이 없었다. 심지어 게임에서 이겼으니 꽤 기뻐할 만도 한데, 그런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성공을 한 이후에도 지금도 안지호의 생각에는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다. 별다른 생각 없이 잔잔한. 그냥 그런 상태.
특별한 생각이라고 한다면, 성공 직후 한마디뿐이었다.
[“다행이네.”]
그 한마디뿐이었다.
하지만 비록 한마디뿐이었어도 난 안지호가 꽤 기뻐하고 있는 거라 여겼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그냥 그런 것 같았다. 내 느낌상.
“야, 안지호.”
“왜?”
“수고했어.”
“······뭐야?”
“그냥 수고했다고.”
그런 나를 보며 안지호가 갑자기 뭔 뜬금없는 소리냐는 듯한 얼굴을 했다. 아니, 정말로 오늘 수고했으니까.
“그래, 고맙다.”
그러자 안지호가 답지 않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평소랑 조금 다른 것 같은 건 내 착각인가.
“그래! 수고했다! 수고했어! 우리 모두 수고했어!”
“맞아요! 우리 모두 수고했죠!”
그 말과 동시에 백은찬과 신하람이 멤버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녔다. 살살 좀 쳐라. 살살 좀.
“그보다 우리 개인전 나갈 거 정해야 해.”
“아, 맞다! 그거 해야죠!”
단체전 다음 순서는 개인전이었다.
개인전에서는 각기 다른 6개의 종목이 준비되어 있었으며, 팀 회의를 통해 각 종목에 누가 출전할 것인지를 정해야만 했다.
“종목이 뭐뭐 있다고 했었지?”
“축구공 리프팅, 펀치 게임, 알까기, 사자성어 맞추기, 노래 듣고 맞추기, 마지막으로 인디언 포커.”
“으아. 이렇게 보니 종류가 엄청 많네.”
게임 목록을 확인하던 백은찬이 머리가 아픈지 곧 이마를 짚었다.
일단 하나하나 정리가 필요하겠네.
“백은찬.”
“어, 왜?”
“너 공으로 하는 거 잘한다고 하지 않았냐?”
“아, 응. 꽤 자신 있는 편이지.”
“축구공 차기도?”
“이것도 많이 해봐서 평균 이상은 할걸.”
평균 이상이라 이거지.
“그럼 니가 축구공 해.”
“뭐, 그래.”
내 제안에 백은찬이 곧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하나는 해결됐고.
남은 건 이제 5개.
“나. 나 노래 듣고 맞추기 할래.”
“도운이 형, 이거 잘해요?”
“나 평소에 인트로 듣는 거 좋아하거든. 그래서 이거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오, 좋아요. 좋아.”
그렇게 도운이 형이 노래 듣고 맞추기를 맡게 되었다. 사실 여기서 제일 문제가 되는 건 사자성어 맞추기였다.
다른 것도 아니고 사자성어라니. 딱 봐도 어려워 보였고.
‘이걸 내가 해야 하나······.’
나도 사자성어는 약한 편이긴 했으나, 왠지 나설 사람이 없을 듯 해보였다. 그러니 그냥 내가 선점하고 갈까 싶었다.
그런데, 그때.
안지호가 손을 들었다.
“난 사자성어.”
“뭐?”
“왜?”
“아니······.”
그런 안지호의 선택에 놀라 순간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물론 놀란 건 나만이 아니었다.
“사자성어어어? 너 사자성어 잘하냐?”
“그럭저럭.”
“오, 이거 의외의 면인데?”
“의외는 무슨.”
그 말에 안지호가 어이없어했다.
“어, 그럼 사자성어는 안지호가 하고 이제 남은 건 펀치랑 알까기······.”
“내가 펀치 할게.”
이번엔 차선빈이 손을 들었다.
그래, 뭐 잘해 보이니까 오케이.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알까기와 인디언 포커뿐이었다.
이렇게 되면, 내 선택은 하나뿐이다.
“그럼 내가 인디언 포커할게.”
“우세현 니가 인디언 포커하려고?”
“응.”
“너 인디언 포커 해봤어?”
“어, 대충?”
사실 실제 경험은 한 번뿐이고, 모 프로그램에서 보던 게 다였다.
그래도 알까기보다야 이게 더 승산이 있어 보여서. 그도 그럴게 이건 완전히 심리 게임이잖아.
“그럼 남은 알까기 제가 할게요!”
그리고 남은 알까기 게임을 신하람이 가져가면서 모든 게임의 대표가 정해졌다.
그 순간 때 마쳐 PD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그럼 이제 개인전 들어갈게요!”
오랜만에 실력 발휘 좀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