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팔씨름 상대를 지목해주세요.
“네! 이번 사자성어의 게임의 승리자는 안지호 연습생입니다!”
모두의 걱정 속에 시작된 사자성어 게임.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게임의 승리자는 바로 안지호였다.
게임의 난이도는 맨 처음 나온 ‘내자가추(來者可追)’를 제외하면 그런대로 무난한 편이었다.
대체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타산지석(他山之石)’, ‘과유불급(過猶不及)’, ‘용두사미(龍頭蛇尾)’와 같은 사자성어들이 나왔다.
이어서 안지호의 정답 행진이 시작됐다. 물론 몇 번 점수를 내주기도 했으나 무난하게 승리했다.
근데 내자가추 같은 건 도대체 어떻게 알았던 거냐.
“야, 안지호.”
“왜.”
“너 따로 사자성어 공부라도 했어?”
“응.”
어? 그냥 물어본 건데.
진짜 공부한 거라고?
“진짜 공부했다고?”
“어. 예전에.”
“왜?”
“소속사에서 공부하라고 시켜서.”
소속사에서 공부?
아, 혹시 전 소속사인 RA를 말하는 건가.
“RA 엔터에서는 그런 것도 해?”
“응.”
특이하네.
원래 소속사에서 연습생에게 이것저것 많이 시키기는 하지만, 설마 사자성어까지 공부하라고 할 줄은 몰랐다.
일단 현재 회사에서도 사자성어 공부 같은 건 안 시키고 있고.
이제야 게임 시작 전, 안지호가 왜 그렇게 자신 있어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아, 벌써 마지막 게임만을 앞두고 있네요.”
“그러게요. 벌써 마지막 게임입니다.”
게임은 이제 마지막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현재 스코어는 5 대 2.
스테이지팀이 완벽하게 앞섰다.
“어떻게 마지막은 점수를 크게 걸까요?”
“그거 좋죠. 그래야 재밌으니까요!”
역시나 이렇게 흘러갈 줄 알았다.
예상했던 대로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주기 위해 제작진은 마지막 게임에 점수를 조금 더 크게 걸기로 한 모양이다.
“마지막 게임인 만큼 우리 4점 걸죠!”
“4점 좋죠!”
4점이면, 백스테이지가 이번 게임에서 이길 시 최종 우승을 할 수 있을 점수였다.
근데 4점이라니.
조금 더 걸 줄 알았는데.
통 크게 한 100점 정도.
그리고 그 4점이 걸린 마지막 게임은 바로 단체 팔씨름 경기였다.
게임의 룰은 간단했다.
우선 단체 게임인 만큼 모든 멤버가 팔씨름에 참여해야 하며, 1 대 1로 팔씨름 상대를 직접 고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대결을 펼쳐 최종까지 남아있는 팀이 승리하게 되는 게임이다.
상대를 지목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맨 처음을 제외하면 순번을 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적당한 기선 제압과 상대 우선 지목을 위해선 처음 나가는 사람이 중요한데.
“혹시 팔씨름 잘하는 사람?”
“난 팔 힘에는 그닥 자신 없는데.”
“어, 은찬이 형 팔 힘 약해요?”
“그렇게 약한 건 아닌데, 그렇게 강하지도 않아.”
의외네.
백은찬은 첫 타자 후보 중 하나였는데.
“그럼 차선빈, 넌?”
“나?”
“응. 너 셀 것 같은데.”
차선빈도 백은찬과 함께 생각해둔 첫 타자 후보 중 한 명이었다. 딱 봐도 셀 것 같잖아. 아까 펀치 게임만 봐도.
“나도 그럭저럭인데.”
“약하진 않고?”
“약하진 않을 걸, 아마.”
음. 좋아.
그렇다면 역시 차선빈이 좋겠군.
“그럼 너 첫 타자 어때.”
“첫 타자?”
그런 내 말에 차선빈은 잠시 고민을 하는 듯 싶더니 얼마 안 가 곧 이를 수락했다.
“좋아. 내가 첫 타자 할게.”
“오, 차선빈이 첫 타자야?”
“선빈이 형, 멋있다!”
그렇게 첫 주자가 정해졌다.
뒤이어 백스테이지팀 역시 첫 주자가 정해진 건지 게임이 곧바로 시작되었다.
“그럼 각 팀의 첫 주자들, 앞으로 나와 주시죠!”
저쪽 팀의 첫 주자는 에단이었다.
에단은 한껏 여유로워 보이는 표정으로 준비된 테이블 위로 팔을 올렸다.
“에단! 힘내!”
“차선빈! 이기고 와라!”
휘익!
그렇게 각 팀의 응원 속에 휘슬이 울리고, 마침내 게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시작된 게임은 생각보다 허무한 결과를 낳았다.
“아! 시작한지 10초 만에 승부가 났네요!”
“승자는 바로 차선빈 연습생입니다!”
시작한지 10초 만에 승패가 나왔다.
뭐야, 차선빈 생각보다 더 잘하잖아.
역시 첫 타자로 보내길 잘했네.
“에단. 어때? 많이 세냐?”
“어. 팔 힘 장난 아니야.”
패배한 에단이 손목을 흔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승리한 차선빈이 다음 상대를 지목할 차례였다. 차선빈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그대로 바로 다음 상대를 호명했다.
“진호 형. 나와 주세요.”
차선빈이 호명한 상대는 바로 최진호였다.
“벌써 내 차례네.”
마찬가지로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이와 같은 여유로움에 앞서 조금 걱정이 되긴 했으나, 그래도 결국 차선빈이 이기지 않을까 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최진호 연습생의 승리입니다!”
“헐. 뭐야!”
“진호 형, 대박!”
생각보다 최진호는 팔씨름에 강했다. 그리고 패배 후 돌아온 차선빈이 우리에게 곧바로 사과를 전했다.
“미안.”
“괜찮아.”
앞선 승리로 차선빈은 자신의 몫을 다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한 사람당 한 명씩만 이겨도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건 우리니까.
다만, 눈앞에 있는 최진호가 꽤 강해 보이긴 했다. 그래서인지 상당히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고.
그리고 그 순간,
최진호가 다음 상대를 지목했다.
“우세현. 나와.”
* * *
최진호는 나오기 전부터 이미 벼르고 있던 상대가 있었다. 바로 우세현.
1 대 1 팔씨름 대결이라고 들었을 때부터 이건 기회라 생각되었다.
무슨 기회냐 하면,
우세현을 한번 제대로 밟아줄 기회.
가만히 앉아서 하는 게임은 제가 밀렸을지 모르지만, 힘으로 하는 게임만큼은 우세현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힘으로는 절대 밀릴 리가 없지.’
딱 봐도 비실비실하게 생겼잖아.
피부도 허예서 운동의 운자도 모르고 살았을 게 분명했다.
‘처음부터 이런 게임으로 눌러줬었어야 했는데.’
머리 굴리는 게임만 주구장창하다가 괜히 저쪽 이미지만 올려준 꼴이 됐다. 지난 마피아 게임의 경우 우세현에 대한 반응이 꽤 좋았으니까.
“자, 그럼 두 분 모두 준비해주시고요.”
최진호는 그대로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테이블 위에 팔을 올렸다.
이번엔 절대 질 리가 없었다.
더불어 팔도 좀 세게 꺾어줄 심산이었다.
그동안 쌓였던 걸 제대로 담아서.
“그럼 준비, 시-작!”
그리고 기다렸던 승부가 마침내 시작됐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이번에도 역시 뜻대로 되지 않았다.
‘······뭐야, 왜 이렇게 세?’
가장 처음 든 생각은 그거였다.
생각보다 강하다.
차선빈 때와 같이 빠르게 끝날 거라 생각했던 승부는 예상과 달리 팽팽했다.
“팽팽합니다! 승부가 팽팽해요!”
아오, X발.
팽팽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팔이 점차 기울어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어느새 얼굴도 마주 잡고 있는 손도 새 빨개진 지 오래였다. 이 자식, 왜 이렇게 센 거야?
“아아, 기울어지고 있어요! 최진호 연습생이 조금씩 밀리고 있네요!”
“우세현 연습생, 반전인데요!”
망할, 반전!
최진호는 다시금 힘을 쥐어짜 어떻게든 넘어가지 않으려 최대한 버텨봤다. 여기서 또 지면, 개쪽이라고!
하지만 그러기엔 이미 힘을 너무 많이 쓴 상태였다.
“아······.”
그렇게 순간 힘이 풀리면서 최진호의 팔은 그대로 힘없이 넘어가고 말았다.
“네! 승부가 났습니다! 이번 판은 우세현 연습생의 승리입니다!”
동시에 스테이지 멤버들이 우세현에게 달려와 환호했다.
이러한 결과에 놀란 것은 최진호뿐만이 아니었다. 여 타 다른 연습생들 역시 의외의 결과에 모두 놀라고 있던 참이었다.
“뭐야, 우세현 왜 이렇게 강해?”
“진호 형이 질 줄 상상도 못했는데······.”
“둘 다 힘 빡 들어간 거 봤냐? 겁나 무서워 죽는 줄.”
그렇게 최진호는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제 딴에 이런 망신도 없었다. 저 비실거리는 놈한테 지는 꼴이라니······.
“진호야, 괜찮냐?”
“진호 형, 어서 들어와요.”
뒤늦게 백스테이지 멤버들이 그런 최진호를 챙겼다. 그리고 최진호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며 카메라를 향해 표정 관리를 했다. 동시에 웃음 지으며 말했다.
“와, 세현이가 생각보다 세네.”
속은 타올랐지만, 그걸 티를 낼 순 없었다. 최진호는 끝까지 방송을 잊지 않았다.
조금 전, 경기를 했던 손바닥은 어느새 빨개져 있었다. 그리고 그걸 보며 최진호는 생각했다.
‘저 새끼, 진짜 꼭 한번 조져놔야지······.’
그리고 다시 돌아가려던 순간,
우세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호 형.”
그 목소리에 최진호가 순간 돌아가려던 발걸음을 멈칫했다.
“그래요. 다음에도 또 해봐요.”
“······뭐?”
서로에게만 들릴 만한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이후, 우세현은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갑자기 무슨 말이지?
다음에도 또 하자고?
순간 자신의 생각에 대답이라고 한 듯한 그 말에 최진호는 잠시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뭐야?’
* * *
마지막 팔씨름 경기의 승자는 바로 스테이지팀이었다.
최진호에게서 이긴 이후 나는 그대로 2연승을 더 달렸다. 즉, 나 혼자 팀 인원의 절반을 이긴 셈이었다.
사실 팔씨름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평소에 팔씨름 약하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그래서 혹시나 질 경우를 대비 일부러 강해보이는 상대방을 골라 지목했는데, 3명쯤 하고 나니 힘이 빠져버리는 바람에 결국 지고 말았다.
하지만 다행히 남은 2명은 다른 멤버가 무탈하게 이길 수 있었고, 결국 우리는 그렇게 최종 승리를 거머쥐게 되었다.
“역시 검도를 해본 사람은 달라!”
“체육인! 체육인!”
그런 나를 보며 백은찬과 신하람은 또다시 검도니 체육인이니 하는 소릴 했지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건 이것과 전혀 연관이 없었다.
“앞으로 뚜껑 같은 거 안 따질 때면, 다 우세현한테 부탁하면 되겠다!”
그 정도는 스스로 좀 하는 게 어떨까.
이대로 있다가는 팀의 병따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이번 대회의 최종 우승 팀은 스테이지팀이 되겠습니다-!”
“축하합니다!”
그리하여 최종 우승은 결국 우리 팀이 되었다. 눈앞에서 상품을 놓치는 일 따위는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게 남아있죠!”
“바로 바로 상품입니다!”
그러자 동시에 스태프 몇 명이 박스 몇 개를 손에 든 채 촬영장 안으로 들어왔다.
대박.
“선물은 바로 T사 제품인 무선이어폰 입니다!”
“와!”
“무선이어폰!”
제작진이 준비한 무선 이어폰이 스테이지 멤버들에게 하나씩 전달되었다. 마침 맛이 갈랑 말랑했는데, 잘됐네.
2년 6개월을 쓴 내 무선 이어폰이 곧 고장 나기 일보 직전인 참이었다.
“오, 이거 색도 다 다르네.”
“네. 맞아요. 여러 가지 색상으로 준비했어요.”
블랙, 화이트, 퍼플, 민트······.
아무튼 다양한 색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난 깔끔하게 화이트.
그리고 그렇게 좋아하던 중에, 담당 PD가 우리를 향해 말했다.
“여러분, 사실 선물이 하나 더 있어요.”
선물이 또 있다고?
그리고 궁금해하는 우리를 위해 또 다른 선물의 정체를 곧바로 공개했다.
“또 다른 선물은 바로 이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