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계기는 단순했다.
예전엔 형의 팬들로, 루트 팬들로 인해 우리 가족들에겐 이런저런 일들이 참 많았다.
형은 엄마, 아빠, 그리고 나. 우리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을 늘상 좋아했다.
그래서 데뷔 초만 해도 쉬는 날이 생기면 항상 본가에 들렸고, 명절 같은 경우에는 스케줄이 없다면 당연하게도 집에 왔다.
하지만 이후 형이 본가에 자주 간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우리 집 앞에는 항상 모르는 사람들이 종종 서 있는 일이 늘었다.
“세현이, 안녕~”
“? 네······.”
“귀엽다, 인사했어!”
당시 어렸던 나는 그때 그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몰랐다.
“형, 있잖아. 전에 집 앞에서 모르는 사람이 나한테 인사했어.”
“뭐?”
그때 일그러지던 형의 표정은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형은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예전처럼 집에 자주 오지 않았다. 오긴 왔지만 이전보다 훨씬, 훨씬 뜸했다.
형은 그게 바빠서라고 말했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그 이유가 아닌 것 같았다.
그 밖에도 가족 여행에 사생 팬이 따라붙은 적도 있고, 그 사생 팬이 내 사진을 찍는 등 아무튼 꽤 다사다난한 일들이 많았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다른 가족이었다면 평범하게 했을,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항상 조심하며 살아야 했다.
이에 대해 형은 항상 미안해했고.
그게 아직까지도 여전히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난 항상 남들이 하는 평범하면서도 당연한 걸 너는 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당연한 거?”
“다른 고등학생들처럼 친구들이랑 같이 놀고 수학여행도 가고 아무튼 그런 거 말이야.”
아, 그런 거.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갔다.
“난 그런 걸 전혀 못 했으니까. 그러니 너는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기도 했고···또, SNS 같은 것도 자유롭게 하고 말이야.”
SNS.
설마 아직도 그때 일을 기억하고 있는 건가.
SNS 라고 하니 기억나는 일이 하나 또 있었다.
초등학생쯤인가···내가 친구들을 따라 개인 SNS 계정을 만든 적이 있었는데 그게 루트 팬들에게 제대로 한번 털렸던 일.
내 개인 계정은 어떻게 알았던 건지 하루는 DM 폭탄이 쏟아지고, 또 다른 하루는 내가 올린 사진 하나에 엄청난 양의 댓글들이 달리기도 했다.
그리고 어린 나에게 있어서 그러한 현상은 상당히 무섭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알음알음 내 계정이 루트 우도현 동생의 계정이라는 게 퍼지게 되고, 나는 결국 사진 몇 장 제대로 올리지 못한 채로 계정을 없애야만 했다.
그리고 그 일을 알게 된 형은 그 후로도 그것에 대해 몇 날 며칠을 나에게 사과를 하곤 했다.
이런 거 하나 하지 못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말했다.
그리고 난 그 뒤로 SNS 계정을 다시 만들지 않았다. 그걸로 인해 혹시나 형이 피해를 입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리고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나는 아직까지도 SNS 계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물론 형은 그게 내가 그때 일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것 같지만.
“설마 아직도 그 일 기억하고 있는 거야?”
“뭐, 그냥 그렇다고.”
“그건 그냥 내가 할 생각이 없어서 없앤 거라니까.”
“그래. 알겠어. 아무튼 난 니가 그렇게 평범하게 지냈으면 했는데···그러기엔 어째 좀 많이 늦은 것 같네.”
그렇지. 늦긴 했지.
사실 내가 평범하게 지냈으면 한다는 건 형이 예전부터 늘 했던 말이었다.
형은 예전부터 늘 그렇게 말했었다.
나는 자유롭게 원하는 걸 다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그러니 형에게 확실히 의견을 전해야했다.
나는 그런 것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훨씬 더 좋다고. 더 행복하다고.
“형, 나는 그런 평범한 거보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좋아. 이게 무엇보다 중요해.”
그런 내 말에 형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냐?”
“응.”
“그래······.”
그러고 다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곧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어떻게든 설득을 해볼까 싶었는데, 지금의 니 반응을 보니 전혀 먹히지가 않을 것 같네.”
형이 조금 단념한 듯한 얼굴로 말했다.
어, 뭔가 이거 허락의 분위기인데.
“그럼 허락하는 거야?”
“그래. 뭐, 그런 셈이지.”
와, 이거 진짜야?
이거야말로 꿈 아니지?
순간 또 다시 이게 현실이 맞나 싶었다.
볼을 또 꼬집어봐야 할 필요가······.
“애초에 부모님이 허락하셨는데, 내가 더 허락을 하고 말 게 어디 있어. 허락하기 싫다는 건 단순히 내 욕심이기도 했고.”
“형!”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만큼 너무 기뻤다.
마치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 느낌!
사실 전에 형과 통화를 했던 이후로 내내 반대하던 형이 마음에 걸렸는데, 이제는 더 이상 걸릴 게 없었다.
“그렇게 좋아?”
“당연하지!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고.”
“아, 그건 좀 아쉽네.”
“와, 속이 다 시원해.”
“아니, 내 말 듣고 있냐?”
“정말 속이 다 시원해.”
속이 시원해서 형 말이 안 들렸다.
진짜로.
“야, 그보다 묻고 싶은 게 하나 더 있는데.”
그때 형이 뭔가 할 말이 더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뭐지, 뭐가 또 있나?
“그건 또 무슨 말이냐.”
“뭐?”
“능력 온오프.”
아, 그러고 보니 그걸 잊고 있었네.
* * *
처음 한국행을 결정했을 때만 해도 우도현은 동생의 연예계 활동을 절대 허락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통화한 대로 한국에 가서 어떻게든 설득을 해볼 생각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그렇게 직접 말해볼 생각이었다.
당시에는 굳이 힘든 일을 자처하는 동생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면서 지난 나날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활동할 당시 겪었던 이런저런 일들.
왜 하필 이럴 때는 또 부정적인 기억만 생각이 나는 건지. 분명 좋은 일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우선 대화를 해볼 생각이었다.
그래. 분명 처음에는 그랬다.
분명 그렇게 마음먹었었는데.
굳건했던 그 마음이 바뀌기 시작한 건, 동생의 무대를 챙겨보기 시작하면서였다.
동생이 프로그램에 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우도현은 해외에서도 꾸준히 ‘플레이 온더 스테이지’를 시청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동생의 무대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언제나 같았다.
‘잘하네······.’
단순히 노래만 잘하는 게 아니었다. 매 공연마다 우세현은 속된 말로 날아다녔다. 그리고 그만큼 시선을 끌었다.
분명 무대 경험도 얼마 없을 텐데.
그런데도 스타성이 엄청났다.
물론 동생이 노래를 잘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노래하는 걸 워낙 좋아했었으니까.
또, 가끔씩은 루트 노래도 따라 한답시고 자신에게 보여준 적도 있었고. 그때 참 귀여웠었는데.
어쨌든 아직 데뷔하기 전임에도 저런데 데뷔를 하게 되고 더 많은 무대를 서게 되면, 그땐 과연 어떻게 될까.
반대고 뭐고 다 떠나서 그건 상당히 기대되는 부분이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만큼 재능이 넘쳤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대 위에 있는 모습이 어울렸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부터였을 거다.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동생의 꿈을 응원해주는 게 동생을 위한 길이고 그게 맞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 한 켠에 피어났다.
그것보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응원해주는 게 맞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 루머를 접하게 됐다.
동생과 사이가 안 좋다는 그 루머.
- 우도현이랑 우세현 사이 ㅈㄴ안 좋은 거 모르는 사람 있나? 이거 우도현이 루트할 때부터 유명했는뎈ㅋㅋㅋㅋㅋ
- 우도현 원래 본가 ㅈㄴ안갔었음 그래서 쉬는 날에도 집 안가고 맨날 숙소에 있었잖아ㅋㅋㅋㅋㅋ근데 순덕들은 그것도 모르고 지네 오빠 집돌이라고 ㅈㄴ좋아했음
- 근데 웃긴게 우세현은 플온 초반에 뺀질나게 우도현 언급하더니 후반부 갈수록 한마디도 안함ㅋㅋㅋ혹시 우도현이 딜먹였나?
“참······.”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뭐 이런 루머가 다 있나 싶어서.
‘고소할까?’
허위 사실 유포로 고소를 하는 것도 어느 정도 염두하고 있었다. 못할 것도 없으니까.
그리고 그때부터 우도현의 우선순위는 루머 청산이 되었다.
사실 자신의 이야기로만 구성된 루머였다면 굳이 반응하지 않았을 거였다. 어차피 무시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제 가족이 관련된 이상, 그냥 두고 볼 순 없었다.
그래서 준비했다. 앞서 봤듯이 이것저것.
그리고 대망의 파이널 생방송날. 그날도 역시 우도현은 동생의 무대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상 직접 관람을 할 순 없었다.
부모님과 함께 동생의 무대를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지만, 애초에 그런 게 자신에게 허락될 리 없었다.
그게 너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없는 거였다.
- 우세현 진짜 오늘 미쳤다ㅠㅠ라이브 개쩔어
- 우세현 오늘 왜 이렇게 잘함? 혼자 발성 자체가 달라ㄷㄷㄷ
- 세현이 춤 진짜 많이 늘었다ㅠ 할미는 그저 눙물을 흘릴 뿐........
- 파이널 볶머 우세현 오늘 완전 레전드
- 솔직히 우세현 센터 걱정했는데 잘하네
틈틈이 반응을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행히 대부분이 좋은 댓글들이었다.
일단 거기서 안도감을 느꼈다.
‘솔직히 이 무대를 보고서 욕하는 게 양심 없지. 이렇게 잘하는데.’
오늘도 역시 동생의 무대는 제 눈에 완벽했다.
그리고 최종 1위가 발표되기 직전.
그 순간, 우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동생이 1등을 했으면 좋겠다고.
그땐, 이미 반대고 뭐고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동생이 1등을 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영광의 1위의 주인공은···우세현 연습생입니다!”]
“1등!”
그리고 결국 동생이 1등을 차지하게 되었을 때, 우도현은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게 기뻐하다가 시간이 지나자 그런 자신이 어이없었다.
“아, 진짜 미쳤네······.”
이게 뭐하는 짓인지.
어느새 그러다보니 방송이 끝나고 있었다. 이제 슬슬 나갈 준비를 할 때였다.
방송이 끝나고 우세현이 연락을 주면, 그때 우도현이 가족들을 마중 나가기로 미리 이야기가 되어있었다.
물론 동생은 앞으로 자신이 거기서 뭘 할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이런 건 원래 몰라야 제맛이지.’
반응 보는 맛도 있고.
그렇게 우도현은 이벤트 아닌 이벤트를 준비했다. LED 간판과 각종 이벤트 도구들. 아주 만족스러웠다.
“우세현!”
“세현아! 수고했어!”
“세현아! 1등 축하해!”
그리고 얼마 안 가 우세현을 부르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이제 슬슬 나갈 때가 된 건가.
동생에게 있어서 오늘 가장 기억에 남는 1등 축하는 분명 자신이 될 거라 확신하는 바였다.
그렇게 우도현은 계획했던 일을 실행했고, 그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수치스러워하는 동생의 얼굴이 꽤 볼만 했기에.
그가 생각을 전환하게 된 계기는 아주 단순했다. 단지 동생의 무대를 봤을 뿐이었다.
그게 전부였지만, 이건 꽤 나름 큰 이유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