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정말로 믿을 만 해?
“능력 온오프. 그래서 그건 어떻게 된 거냐고.”
아, 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지.
이대로 대화가 마무리되나 싶더니만, 대화할 주제가 하나 더 남아있다는 걸 그만 잊고 있었다.
다만, 이건 앞선 대화 주제보다 더 어려운 게 없었다. 그냥 있는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하면 되니까.
“그게 설명하자면 길긴 한데······.”
“길어도 해. 형, 시간 많다.”
음. 그렇지. 형 시간 많지.
시간도 많고, 돈도 많지.
여기서 떠올릴 만한 생각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곧바로 형에게 이전에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우연히 만난 한 남자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그리고 저승사자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어떻게 온오프가 가능해졌는지도.
그리고 형은 그런 내 말을 가만히 듣는 듯 싶더니, 곧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이야기 잘 들었어.”
그러더니 곧 가까이 오라는 듯 나를 향해 손가락을 몇 번 까닥였다.
“그러니까 일단 한 대 맞고 시작하자.”
“뭐?”
갑자기 이건 또 무슨 전개냐.
이야기가 왜 그렇게 되는데?
이어서 형이 조금 높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뭘 믿고 저승사자한테 소원을 덥석 빌어! 그보다 진짜 저승사자는 맞긴 한 거냐? 확인은 제대로 했어?”
갑자기 급발진하는 형의 모습에 일단 나는 자리에서 한 발자국 물러섰다.
거리, 거리를 두자.
“확인했지···당연히 확인했어!”
“어떻게 확인했는데.”
“뭐, 여러 가지 능력이 있던데······.”
“능력?”
그리고 다시 한 번 그에 관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에 형은 여전히 표정이 안 좋았지만, 일단 다시 진정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대가가 없다는 건 확실한 거지?”
“응. 내가 물어본 바로는.”
처음 소원을 빌 때, 나 역시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 중 하나가 그거였다.
소원에 대가가 있는가, 없는가.
“그거로 인해 따로 너한테 피해가 가는 건 없고?”
“응.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래. 그건 다행이네.”
그렇게 말하면서도 형은 여전히 탐탁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그 사자, 진짜로 믿을 만은 해?”
“음, 아마······.”
나도 2번밖에 안 만나봐서.
성격이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사기꾼까지는 아니었다.
그리고 형은 그런 내 대답이 마음에 차지 않았던 건지 또 다른 제안을 해왔다.
“그 사자, 직접 만날 수는 없어?”
“직접? 형이?”
“응.”
만날 수야 있긴 하지만, 그보다 만나서 뭘 하려는 지가 궁금했다.
“만나서 뭐 하려고?”
“그냥. 궁금하잖아.”
“그냥 저승사자야. 평범한.”
“저승사자와 평범한이랑 단어는 좀 안 어울리지 않냐. 저승사자라는 자체가 평범하지 않은데.”
그건 그렇긴 하지.
사실 형과 저승사자가 만나지 못할 건 없었다. 그래서 만나는 거야 상관없긴 한데.
다만, 걱정이 되는 게 하나 있다면 형이 만나서 뭘 하려는 가였다. 괜히 이상한 짓 하는 건 아닐지.
알다시피 형, 성격이 좀······.
아무튼 좀 걱정이 됐다.
“방법 없어?”
“방법이 있긴 해.”
“뭔데?”
“그게 좀 복잡한데······.”
일단 우리 회사에까지 가야 하는 건 물론 이고 회사에서도 특정 장소에 가야만 했다. 거기에 뭐랬더라. 따봉 뭐시기도 하라고 했고.
“뭐가 얼마나 복잡한데?”
“일단 회사에 가야하고, 뭐랬더라. 따봉 뭐시기도 하랬는데.”
“따봉?”
“응. <따봉 사자야, 고마워!> 였던가.”
그런데 그 순간.
갑작스레 주변 공기가 스산해졌다.
동시에 바닥에서부터 차오르는 자욱한 연기. 그렇게 방 안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변했다.
이어서 천장에서부터 사람의 형체를 한 무언가가 서서히 밑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아, 오랜만이네.”
그것의 정체는 바로 사자였다.
오늘따라 아주 까만 모자를 쓴.
“나, 불렀어?”
* * *
지금의 이 상황이 잘 이해가 안 갔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분명 회사의 보컬룸이 아닌 우리 집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사자가 나타난다고?’
고작 한 거라고는 따봉 어쩌고 밖에 없는데? 장소 불문인가. 이건 뭐, 마법의 주문도 아니고 이럴 거면 왜 그리로 오라고 했는지 이해가 안 됐다.
“오늘은 못 보던 손님이 있네?”
“아, 저희 형이에요.”
“오, 형님?”
그러자 사자가 흥미롭다는 듯 형을 쳐다보았다.
“오, 형님이 인물이 훤하시네.”
사자가 웃으며 말했다.
동시에 형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안녕. 이미 알고 있겠지만, 사자(使者)님이야.”
그리고 형은 사자가 내민 손을 잠시 조용히 바라보더니 이내 그 손을 잡았다.
이어서 덧붙이는 한마디.
“응. 그래.”
“······반말을 하네?”
“아, 그쪽 동네는 초면에 다 말까는 줄 알았지. 그쪽이 먼저 말까길래.”
그러자 사자가 살짝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보아하니 초면에 말부터 까는 게 형의 입장에서는 어지간히도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흠흠. 내가 몇십 배는 더 먹었으니까. 그러는 그쪽 인간은 고작 스물 몇 살 먹은 거 같은데.”
“몇십 배나 더 드셨구나. 어쩐지 세상 들어 보인다 했더니.”
“······어, 어리다고 다 좋은가. 뭐?”
“다 좋지만은 않지. 하지만 어려서 나쁠 것도 없지.”
“······.”
그 말에 사자는 순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인정하는 건가.
“그래서, 왜 불렀는데?”
그러더니 곧 말을 돌렸다.
밀리시는군요.
“어, 지금 부르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일단 부른 이유는 형이 만나보고 싶다고 해서요.”
“아, 형님이······.”
그리고 잠시 사자가 형을 힐끗 쳐다봤다.
“보아하니 형님은 동생 능력을 눈치채고 있던 모양이네.”
“네. 맞아요.”
내가 대신 대답했다.
괜히 또 말싸움 날라.
“그럼 형님은 왜 날 만나고 싶었던 건데?”
“의심이 가서.”
“의심?”
“당신 정말 아무 대가 없이 순전히 호의로만 이런 능력을 준 거 맞아?”
“당연하지. 이건 순수한 내 호의야. 여기에 다른 의도는 없어.”
사자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형은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순수한 의도라니까 더 의심이 가네.”
“동생한테 얘기 못 들었나? 난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을 뿐. 애초에 능력의 온오프 얘기는 꺼낸 적도 없어.”
사자는 마치 자신은 아무런 죄가 없다는 듯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런 사자를 형은 여전히 못마땅하다는 듯 쳐다봤다.
“형님은 의심이 많으시네. 애초에 천사 같은 거였으면 조금 더 믿으셨을라나.”
“그렇지. 천사였으면 더 좋았겠지.”
“우리 그런 선입견은 갖지 말자고.”
“이쪽에선 원래 그런 선입견이 일반적이라서 말이지.”
여전히 피가, 아니 불꽃이 튀기는 현장이었다. 왜 아무도 지려고 하지 않은가······.
옆에서 보는 내가 다 지치는 현장이었다.
그러던 도중 형이 갑자기 날 불렀다.
“야, 우세현.”
“어, 왜?”
“너 이 자식 속은 들여다봤어?”
어, 저승사자의 속?
“아니.”
“그것도 안 하고 뭐 했어. 처음부터 들여다보고 시작했어야지.”
딱히 본다는 생각을 못했다.
항상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럴 여유도 없었고.
형의 말대로 한번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애초에 이 사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으니.
“잠깐, 진짜로 보려고?”
“네.”
“아, 우리가 본 게 얼만데!”
본 게 얼마긴.
이번이 겨우 3번째구만.
저렇게 반응하니 왠지 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로 뭐 걸리는 거라도 있나.
“······.”
“왜. 어때.”
“안 들려.”
“뭐?”
“저승사자한테는 안 듣나봐. 안 들리네.”
사람이 아니면 안 들리는 건가.
이건 또 새로운 발견이다.
하긴, 지금까지 사람 이외의 대상에 적용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리고 능력이 통하지 않다는 걸 알자, 사자는 곧 다시 제 텐션을 찾았다.
“우리 이러지 말자고. 사람 서운하게.”
“아, 아쉽네.”
“그렇게 아쉬워마, 형님. 나 진짜 청렴한 사자라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자는 어쩐지 조금 전보다 마음이 편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너한테 말해줄 게 하나 있었는데.”
사자가 나를 보며 말했다.
말해줄 거?
“뭔데요?”
“온오프 능력 말인데. 이젠 네가 원하는 대로 사용해도 될 것 같아.”
“네?”
어, 그게 가능한가.
지난번엔 윗선이 어쩌고 했던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은 거예요?”
“응. 당연하지.”
사자가 너그럽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뭔가 좀 시원찮은데······.’
갑자기 말이 바뀐 게 좀 걸렸다.
사자는 그래도 괜찮다고 이야기했지만, 전에 들었던 걸 생각하면 어째 괜찮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냥 지금처럼 사용할게요.”
“어, 무슨 일이야? 너라면 당연히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예전이었다면 좋다고 넙죽 그랬겠지. 근데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정말로 능력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니까. 또, 적절히 조절한다면 나름 유용하게 사용할 수도 있고.
적어도 예전만큼 마냥 부정적이지만은 않게 되었다는 말이다. 물론 여전히 불호에 더 가깝긴 하지만.
“지금처럼 사용하는 것도 나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괜찮게 사용될 때도 있고.”
“그래?”
어라?
그 순간, 사자가 묘한 느낌의 미소를 보였다.
“그래, 그럼. 너 좋을 대로 해. 하지만 온오프가 있다는 사실은 잊지 말도록 하고.”
“네, 뭐. 그건 당연하죠.”
그게 없으면 무대에 오를 수가 없는데.
하지만 이전처럼 무작정 꺼두거나 하진 않을 생각이다. 오래 꺼둘수록 부작용도 심해지는 것 같고.
“아쉽네. 그럼 이제 우리 모임은 여기서 쫑인가?”
사자가 전혀 아쉽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어서 정말로 가려는지 발걸음을 돌렸다.
“애초에 모임이라고 할 수도 없는데.”
“정 없게 그러지 말자. 난 가끔씩 이런 짜증 나는 자리가 있는 것도 괜찮다고 봐.”
은근슬쩍 짜증 났다고 말하는 것 봐라.
아무래도 둘만 놔뒀다가는 이 의미 없는 티키타카가 계속될 것 같아 정말로 여기서 그만 파해야할 듯 했다.
“다음에 또 궁금한 게 있으면 불러.”
“그때도 장소 불문이에요?”
“아니. 오히려 오늘이 특별 케이스였어. 마침 지나가는 길이었거든.”
그리고 그렇게 떠나나 싶었는데 그러지 않고 이번엔 형을 향해 말했다.
“형님도 궁금한 거 있으면 불러. 아까 봐서 알지? 나 부르는 주문. 그거 꼭 해야 해. 모든 예외는 없거든.”
따봉 사자······.
아직도 기 싸움은 계속되고 있는 건가.
“어, 그래. 그거. 아주 잘 기억하고 있어.”
이어서 형이 사자를 향해 해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X발 사자야, 고마워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