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제대로 확인해보는 게 좋을걸.
앞선 형의 발언 이후, 두 사람은 또다시 한바탕 기 싸움을 이어갔다.
하도 싸움이 끊이질 않다 보니 이제는 중재하기도 귀찮아 그냥 두고 보기로 했다.
그리고 다행히 도중에 볼일이 생긴 사자가 그대로 흐름을 끊었고, 그렇게 지겹던 싸움도 결국 끝이 났다.
“아, 오랜만에 성질 더러운 인간을 만났더니 기운이 좀 빠지네.”
“뭐?”
“그럼 우리 다음에 또 보자고.”
그리고 사자는 사라졌다.
그런 사자를 보며 형이 중얼거렸다.
“하여튼 저 얍삽한 자식······.”
얍삽한 감이 없지 않아 있긴 하지.
그리고 사자가 사라지자 시끄럽던 방이 한순간에 고요해졌다.
“형은 왜 그렇게 사자를 싫어하는 거야?”
“말하는 꼴을 봐라. 좋아할 수가 있나.”
“음. 장난이 좀 많긴 하지.”
“좀 정도가 아니지.”
그러고서 형 역시 기운이 꽤 빠진 건지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무엇보다 사기꾼의 향기가 나.”
“사기꾼?”
“응.”
어느새 이미지가 거기까지 가버렸네.
확실히 말하는 게 좀 사기꾼 같기는 했다.
그래서 나 역시도 처음에 그렇게 의심을 했던 거고.
“그러니 되도록 믿지 마.”
“믿고 말고 할 게 어딨어. 그렇게까지 신뢰가 있는 관계는 아니야.”
“그렇다면 다행이고.”
애초에 사자와는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그냥 일적인 관계 비슷한 거지. 아마 저쪽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테고.
그보다 좀 걸리는 게 있었다.
크게 신경 쓰이는 건 아니지만, 뭔가 좀 애매하게 신경 쓰이는 단계정도로.
그때 미묘하게 웃던 사자의 얼굴.
그게 좀 신경이 쓰였다.
“그러고 보니 궁금한 게 또 있는데.”
“어, 뭔데?”
“너랑 같이 뽑힌 애들. 걔네에 대해서.”
형이 진지하게 물어왔다.
멤버들에 관해서.
“아직 자세히는 모르지만, 괜찮은 편이야. 특별히 모난 사람도 없고.”
“확인은 제대로 해봤고?”
“어, 꼭 그런 건 아닌데······.”
“뭐? 그것도 제대로 안 했어?”
여기서 형이 말하는 ‘확인’이라는 건, 멤버들의 속마음을 제대로 확인해봤냐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중요한 순간 어떤 생각을 하는지, 또 남에게 찬스가 왔을 때, 자신에게 찬스가 왔을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런 거 확인 안 해봤어?”
“그걸 일일이 다 확인하라고?”
“당연하지. 내가 너였으면, 당장 그것부터 확인해 봤을걸.”
음, 그렇게까지 꼭 해야 하나.
물론 아예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형처럼 그렇게 구체적인 때에 볼 생각을 안 했던 것뿐이지.
“최대한 능력을 활용해 도움이 되는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 그런 걸 판단해야지. 다른 애매한 생각들을 읽어서 뭐 해?”
형이 그런 나를 답답해하며 말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래도 나도 봐온 게 있어. 그리고 그걸 토대로 판단할 때, 괜찮다고 한 거고.”
“그런 애매한 걸로 사람을 어떻게 알아.”
그렇게 꼭 애매하지만은 않은데.
보통 사람을 판단할 때 다들 이렇게 판단하는 거 아닌가. 옆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이 사람이 괜찮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겉과 속이 다른 게 인간인데, 그런 애매한 걸로 괜찮다고 쉽게 판단할 순 없지. 내가 너였다면, 그 자식들 속을 제일 먼저 낱낱이 확인하고 들어갔을 거야.”
형은 그렇게 말했지만, 그래도 난 지금과 같아도 별로 상관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낱낱이 확인하지 않아도, 만약 내 생각과 다른 인간상이라고 하더라도 때가 되면 다 알게 될 거라 여겼다.
실망할 만한 인간이라면, 당연히 금방 알게 되겠지. 난 금방 알 수밖에 없으니까.
지금과 비슷한 상황에서 난 늘, 원하지 않아도 금방 알 수 있었다.
물론 형의 입장에서는 이런 내가 답답할지도 모르고, 또 형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역시 난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앞선 형의 말은 자신의 경험을 일컬어서 말하고 있는 거였다.
“보아하니 들은 생각이 전혀 없는 얼굴이네.”
“오, 귀신인데. 형이 저승사자해도 되겠다.”
“야, 대놓고 욕하지 마라.”
그냥 한 말이었는데.
이제는 어느새 저승사자가 욕이 되어있었다.
“그래도 내가 한 말, 흘려듣진 마라. 확인할 수 있을 땐, 제대로 확인해.”
형은 마지막까지 이를 당부했다.
그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알겠다고 했다.
“그럼 심각한 얘기는 이쯤에서 그만두고.”
“어? 뭐 하려고?”
“뭐하긴. 나가야지.”
나간다고?
“설마 밖에 나가려고?”
“응.”
그런 내 물음에 형이 뭘 그렇게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답했다.
“지금? 지금 나가려고?”
“지금 나가지, 그럼 언제 나가.”
아,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형, 혼자 나간다는 거지?”
“아니?”
“그럼 같이 나가자고?”
“응.”
아, 역시 그럴 줄 알았다.
어째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를 않는가.
“귀찮아······. 그보다 나 생방 어제 끝났다고.”
“아직 어리잖아. 자, 어서 준비해.”
“형은 힘들지도 않아? 어제 늦게까지 부모님이랑 술 마시는 것 같던데.”
생방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그 날 저녁, 형과 부모님은 오랜만에 함께 축배를 들었다.
축배의 명분은 다양했다.
오랜만에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 겸.
그리고 나의 데뷔 확정을 축하할 겸.
당연히 나는 미성년자니까 그 자리에 끼지 못했다. 하지만 끼고 자시고 하기 전에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아무래도 그간 누적되어있던 피로가 어제 한 번에 표출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그거 몇 잔 한 거 가지고 피곤은 무슨.”
“보니까 꽤 많이 마신 것 같던데.”
“얼마 안 마셨어.”
얼마 안 마셨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땐 그래도 보통보단 많이 마셨을 거라 생각됐다. 형이 원래 주량이 좀 세서.
“아무튼 나가자고. 마침 날씨도 좋잖아.”
“형.”
“왜?”
“그러니까 사진이 찍히길 바라는 거지?”
평소 우리가 같이 외출을 즐기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어렸을 적만 해도 형이랑 어디 나가기만 하면 사진이 찍히기는 당연하고, 사생팬들에 종일 쫓긴 적도 있어 형은 웬만하면 나를 데리고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외출을 해야 할 때면 주로 혼자 외출을 다니곤 했다.
물론 그래도 가끔씩 같이 놀러 다니거나 한 적이 있긴 했지만, 형이 바쁘고 내가 점차 크다 보니 그런 일도 거의 없어졌다.
그러니까 같이 외출을 하는 건 상당히, 굉장히, 아주 오랜만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형이 먼저 외출을 하자고 제안하는 건 아무래도 지난 루머를 아직까지 의식을 해서이지 않을까 했다.
형과 내가 사이가 안 좋다는 그 루머.
“맞아. 그리고 아마 찍히는 순간, 온 커뮤에 실시간으로 퍼질걸.”
역시 그럴 줄 알았다.
“제대로 보여줘야지. 그런 말도 안 되는 허위 사실이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못 하도록.”
“설마 계속 같이 나가자는 건 아니지?”
“맞는데.”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한 번으로는 부족해. 한 번이면 보여 주기식 밖에 안 되니까. 반복해서 주입을 해줘야지. 원래 눈에 자주 보이면 사람들은 그렇다고 인식하는 법이야.”
다년간의 경험에서 나온 말인가.
형 말이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한데······.
어제 이벤트로도 이미 충분하지 않을까.
어제 그 이벤트로 이미 사실 우도현은 동생 바보인 거 아니냐는 그런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알았으면, 얼른 준비해.”
“아······.”
“형이 고기 쏜다.”
“가자. 형.”
그렇게 결국 난 형과 오랜만에 외출을 하게 됐다.
* * *
세현이데뷔해 @heheess
오늘 압구정에서 세현이 봤다ㅠㅠ!
길 걷고 있는데 우연히 저기서 엄청 잘생긴 남자 두명이 걸어오는 거임
봤더니 우세현이랑 우도현
덕계못 깨는 순간이었음ㅠㅠㅠㅠㅠ
근데 우도현 되게 신나보이더라ㅋ
그렇게 신나하는 거 첨 본 듯
윈썸윈썸윈썸 @iiiiiiaaaaa
세현 압구정 로데오 목격
착장은 볼캡에 민트색 후드티
(+ 우도현이랑 같이 있었다고 함)
우토끼사랑해 @ssshhhy
오늘 세현이 형이랑 놀았나봄?????
압구정에서 봤다고 목격담 겁나 뜨네
다정토끼세현 @gggg0000
2X1111 우세현 목격담
우도현이랑 같이 쇼핑
근데 우도현 표정 왜 이렇게 신나 있음?
나왔다 @zzzzs
압구정에서 우도현이랑 우세현
지나가다봄 근데 우도현이랑 있으니까 우세현이 엄청 동생같더라ㅋ 거기에 우도현 뭔가 되게 행복해보였음ㅋㅋㅋㅋ
[제목] : 나 오늘 영화관에서 우세현이랑 우도현 봤음
오늘 낮에 봤고 시간 좀 지나서 올림
압구정 CXX에서 봤고 둘이 영화보러 온 모양 팝콘 사서 가더라고ㅋㅋㅋ그와중에 세현이는 카라멜 팝콘인 듯ㅜㅜㅜㅜㄱㅇㅇ
멀리서봐도 둘다 너무 연예인이라서 모르고 지나칠수가 없었음ㅋㅋ모르는 사람들도 다 한번씩 쳐다보고 가고
일단 진짜 둘다 실물 존잘이고 빛이남 얼굴도 콩알만해 키고 크고!! 그리고 분위기가 장난 아님 세현이는 강아지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실물로 보니까 강쥐이긴 한데 은근 냉강아쥐임ㅜㅜㅜ우도현은 다 알다시피 ㅈㄴ파워냉미남 그자체......말을 못걸겠더라ㅋㅋ형제라서 그런지 분위기가 닮은 게 있는 듯 근데 왠지 둘다 신나보이더라ㅋ
그날 형과의 외출은 형이 원하던 대로 엄청난 양의 후기를 낳았다.
당시 일정은 평범하게 쇼핑을 좀 하다가 영화를 본 뒤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사오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가는 곳마다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그날 어딜 가든 족족 사진이 찍히는 것은 물론이요, 그날따라 알아보는 사람도 많았다.
물론 내가 아닌 형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루트의 인지도는 남녀노소 연령대에 상관없이 상당히 높았으니까.
그룹 인지도 만큼은 우리나라 아이돌 중 단연 탑이라고 할 수 있다. 그건 루트가 해체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마찬가지고.
어찌됐건 일은 형의 계획대로 술술 풀리고 있는 중이었다. 더불어서 형은 왠지 모르게 좀 신나보였다. 즐거워 보이는 것도 같고.
오랜만에 한국에 와서 그런가.
그래도 형이 즐거워 보이니 나도 좋았다.
물론 중간에 한번 싸울 뻔한 위기가 있긴 했지만.
“야, 잠깐만.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뭐가?”
“민트초코를 넣고 있잖아.”
“아, 형 민트초코 안 먹었었나?”
“응.”
형은 반 민초파였다.
참고로 난 민초파다.
맛있는 민트초코.
“그냥 먹자.”
“뭐?”
“형도 편식하지 말자. 민트초코 맛있어.”
“장난해? 이건 반 민초파에 대한 모독이야. 각자의 취향은 존중을 해줘야지! 너 내가 그렇게 가르쳤어?”
“모독이고 뭐고 맛있다니까?”
“와, 진짜. 야, 빨리 빼.”
그렇게 싸움의 위기를 잠시 겪긴 했지만, 다행히 큰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는 결국 민트초코를 쟁취해냈다. 다른 것보다 이게 가장 중요했다.
“하여튼 우세현······.”
그러면서도 형은 알바생에게 민트 초코를 한 칸 더 넣어달라며 추가 주문을 했다.
이후 쟁취해낸 그 민트초코는 저녁을 먹고 난 뒤, 후식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톡!
백은찬
[우세현 오늘 외출했냐?]
어, 벌써 봤나 보네.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우세현
[ㅇㅇ 낮에]
─톡!
그리고 곧바로 연이어 오는 톡.
백은찬
[어쩐지 사진 엄청 돌아다니더라]
신하람
[나도 봤어용 영화봤담서요?(이모티콘)]
차선빈
[요즘 애니와머니가 재밌대]
애니와 머니는 애니메이션 영화 아닌가?
얼핏 영화관에서 본 것 같은데······.
그 뒤로도 우르르 울리는 톡에 일단 나는 답을 보내기 바빴다.
지이이잉─
그때, 근처에 있던 폰이 순간적으로 짧게 진동했다. 형의 폰이었다.
“형, 뭐 문자 온 거 같은데.”
“어, 그래? 거기 있는 내 폰 좀.”
그런 형의 부탁에 나는 곧바로 근처에 있던 형의 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때 순간적으로 보이는 액정 화면.
“빨리 줘.”
“어, 응.”
곧바로 나는 형에게 폰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잠깐 생각에 빠졌다.
방금 전, 내가 본 폰의 화면 액정에 의외의 인물의 이름이 띄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