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의외의 연락
형의 폰 화면에 뜬 의외의 인물.
이 인물은 바로 같은 루트 멤버였던 신도하였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문자의 발신인을 확인한 형은 곧바로 일어나 자리를 옮겼다.
‘혹시 통화하러 가는 건가.’
일부러 방에 들어가는 것을 보니 대충 그런 것 같았다.
신도하.
신도하는 형과 같은 루트 멤버로 당시 팀의 메인 보컬을 맡고 있었다.
나이는 팀의 막내였던 형보다 한 살 위였고, 훈훈한 외모와 탁월한 노래 실력으로 팀의 인기 멤버 중 한 명이기도 했다.
동시에 루트가 해체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잘 나가고 있는 멤버 중 하나였고.
그는 루트가 해체된 이후에도 꾸준히 앨범을 내고 예능에 출연하는 등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루트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는 여전히 대중에게 호감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그리고 형과의 친분 정도는······.
‘내 기억으로는 나름 친했던 것 같은데.’
활동하는 동안 둘이서만 예능을 나간 적도 꽤 있던 걸로 기억하고, 쉬는 날이면 둘이 어디에 갔다며 목격담이 종종 올라오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와 가장 많이 만난 멤버이기도 했다. 물론 그래봤자 다른 멤버들보다 몇 번 더 본 정도에 불과하지만.
아무튼 꽤 친한 편에 속했다.
하지만 형의 팀 탈퇴를 기점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분명 예전과 달라졌으리라 생각됐다.
일단 형이 캐나다로 유학 간 기간이 있으니. 그간 서로 연락이 오갔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제대로 오가지는 않을 터였다.
일단 형은 팀을 탈퇴한 이후, 다른 멤버들의 이야기를 한 번도 먼저 꺼낸 적이 없었으니까.
사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멤버에게서 연락이 온 지금 상황이 놀랍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형이 먼저 연락을 했을 리는 없고. 인터넷을 보고 저쪽에서 먼저 연락을 한 건가.’
알다시피 마지막 파이널 방송 날.
그날 주차장에서 형은 아주 어마어마하게 사진이 찍혔다.
하긴, 그런 이벤트를 했는데 안 찍힐 수가 없지. 아, 떠올리다 보니 다시 창피해지려고 하네.
아무튼 거기에 공항에서 찍힌 사진도 함께 돌고 있었고. 그러니 인터넷 서칭 좀 한다면, 형이 한국에 왔다는 걸 모를 수가 없을 거 였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연락을 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저쪽에서 먼저 연락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연락을 할 이유가 없다고 이렇게 단정 지을 수 있는 건, 단순히 형이 팀을 나갔기 때문이 아니라 형이 팀을 나가게 된 ‘그 계기’ 때문이었다.
형이 루트를 탈퇴하는 데 가장 큰 지분이 있었던 건 다른 게 아닌 바로 ‘멤버’였으니까.
루트 탈퇴의 직접적인 원인은 루트 멤버들 그 자체였기에.
* * *
항간에는 형이 팀을 탈퇴한 이유를 두고,
‘아이돌이 하기 싫어서 그만두는 거다.’
‘배가 불러서 사업을 하려는 거다.’
‘악플 못 견디고 결국 연예인을 그만뒀다.’
라는 둥 여러 의견들이 오갔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형이 팀 탈퇴를 결정한 주된 원인은 같은 멤버들 때문이었다.
물론 악플이나 그 외 다른 요인들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팀 탈퇴, 그리고 활동 중지에 가장 큰 도화선이 된 건 바로 멤버들과의 불화였다.
멤버들과의 사이가 어긋나게 되면서 형은 계약 기간이 끝나자마자 그대로 팀을 나갔다. 이후 연예계 활동을 아예 중단.
반면, 형 이외 나머지 멤버들은 보란 듯이 모두 재계약을 했고.
당시 재계약을 포기한 형은 그저 오로지 ‘쉬고 싶다.’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내가 본 형의 생각은, 오직 인간관계에 대한 환멸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달칵─
그때 방으로 들어갔던 형이 다시 나왔다.
손에는 여전히 폰이 쥐어져 있었다.
‘표정에는 별로 변화가 없네.’
아무튼 이러한 전말을 알고 있다 보니 상당히 신경이 쓰였다. 정말로 통화를 한 건지, 했다면 무슨 이야기를 한 건지.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아, 응.”
그런 내 생각을 눈치챈 건지 형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방송하면서 혹시나 루트 멤버들을 만나게 되더라도 괜히 위축되거나 하지 마.”
“어? 위축?”
“응. 그럴 필요 전혀 없으니까.”
형이 나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눈치 같은 거 볼 필요도 전혀 없고. 너는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하고 싶은 대로.
형이 무슨 말 하는 지 잘 알지만, 그래도 대선배인데 그게 될까.
“혹여 이건 아니다 싶으면, 바로 나한테 말해. 내 선에서 해결해줄 테니까.”
무슨 대화를 하고 온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형이 지금 날 걱정하고 있다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근데 형이 뭘 어떻게 해결하려고? 형도 팀에서 막내였잖아.”
“그건 니가 신경 쓸 일이 아니고. 아무튼 형 말 흘리지 말고 잘 새겨둬.”
일단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정확한 건 그 상황이 돼 봐야 알지만.
그보다 아직 난 데뷔도 안 한 연습생이었다. 데뷔를 해도 이제 막 시작하는 신인이고. 그런데 루트 멤버를 만날 기회가 그렇게 빨리 오려나.
그때 다시 내 폰의 메신저가 울렸다.
멤버들은 아직까지도 여전히 영화에 대해서 열띤 토론 중이었다.
* * *
그리고 이틀 후.
나는 오랜만에 회사로 출근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난 이후 처음으로 출근하는 회사였다. 고작 이틀간의 짧은 휴식이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푹 쉴 수 있어서 좋았다.
“오, 우세현. 오랜만.”
“세현이 형, 왔어요?”
사전에 전달 받은 회의실로 가니 먼저 온 백은찬과 신하람이 나를 반겼다.
“둘 다 빨리 왔네.”
“왠지 막 빨리 회사에 오고 싶더라고요. 쉬는 동안에도 내내 회사 가고 싶고.”
“너도? 나도 그랬어. 뭔가 계속 설레더라고.”
그건 나 역시도 공감하는 바였다.
파이널 이후 그 설렘이 아직까지도 계속 지속되고 있는 듯 했으니까.
“그래서 1시간이나 일찍 왔는데, 이 형이 먼저 와있더라고요.”
“1시간? 백은찬, 넌 언제 왔는데?”
“나? 나 2시간 전에.”
2시간?
아니, 도대체 뭐가 그렇게 급하길래 2시간 전에 출근이냐.
“설레서 그런지 눈도 평소보다 빨리 떠지더라고. 그래서 그냥 바로 회사로 와버렸지.”
“아, 근데 나도 그랬어요! 괜히 실실 웃음 나고······.”
그렇게 말하던 신하람은 지금 말하는 도중에도 실실 웃음 짓고 있었다.
“야, 그만 웃어. 신하람. 바보 같아.”
“아이, 은찬이 형. 형이나 그만 웃어요. 진짜 답 없는 멍청이 같네.”
“답 없는 멍청이이이이? 히히.”
“둘 다 웃으면서 싸우지들 마.”
말은 그렇게 하지만 회의실 분위기는 여전히 화기애애했다.
“형들도 연락 많이 왔죠? 저는 그날 생방 끝나고 핸드폰 터지는 줄 알았잖아요.”
“너 인싸야? 핸드폰이 터지도록 문자가 왔어?”
“형은 그럼 안 왔어요?”
“물론 많이 오긴 왔지.”
“거 봐.”
나 역시도 파이널이 끝나난 뒤, 많은 사람의 연락을 받았다.
밴드부 부원들부터 시작해 같은 반 친구, 그리고 기억도 잘 안 나는 초등학교 동창에게 등. 다양한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
하지만 그중에 진심이 담겨있다고 보는 메시지는 몇 안 됐다.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 원래 인간관계가 상당히 좁은 터라.
‘그러고 보니 밴드부 부원들이랑은 한번 만나야 하는데.’
전에 밥을 사기로 해놓고 그 약속을 아직까지 지키지 못한 상태였다. 프로그램 때문에 워낙 정신이 없어서.
그리고 얼마 안 지나 나머지 멤버들이 하나둘씩 속속히 도착했다.
다른 멤버들이 도착하자 화젯거리는 다시 자연스럽게 프로그램 종영 이후로 돌아갔고 그에 따라 또다시 연락 이야기가 나왔다.
“연락 많이 받았냐고?”
“네. 도운이 형도 많이 받았죠?”
“나는 그냥 뭐, 평범하게······.”
“그럼 선빈이 형이랑 지호 형은요?”
“난 친구 한 명이랑 가족한테만.”
앞선 물음에 차선빈이 조용히 대답했다.
“친구 한 명이요?”
“응. 난 친구가 없거든.”
차선빈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아, 하긴 연습생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학교도 잘 못 나가고 그러니까.
“되게 친한 친구인가 보네.”
“응.”
“다음에 한번 소개시켜줘.”
“응. 그럴게.”
궁금하다. 차선빈의 베프.
“나도 딱히 연락은 없었는데.”
안지호가 태연한 모습으로 말했다.
그러자 백은찬과 신하람이 동시에 입을 꾹 다물었다. 괜한 걸 물었다는 표정.
“하하. 그래요! 요즘 누가 연락을 해!”
“음, 맞아. 그래. 다들 밥은 먹었지?”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은 급하게 화제를 돌리려 애썼다. 물론 안지호는 별생각 없는 얼굴이었지만.
“얘들아. 안녕.”
그리고 때맞춰 박선호 팀장님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오셨다.
오늘 우리가 연습실이 아닌 회의실에 모인 이유는 바로 진행할 데뷔 과정 일정을 전달받기 위해서였다.
“일단 다들 데뷔 축하하고. 아, 케이크도 하나 사 왔어. 나중에 케이크랑 같이 다 같이 사진 찍자.”
박선호 팀장이 가지고 온 케이크 상자를 들어보였다. 동시에 멤버들은 저마다 케이크 상자 안을 한 번씩 확인했다. 무슨 케이크인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데뷔조의 그룹명은 생방 때 들어서 알겠고······.”
“윈썸이요!”
“그래, 맞아. 윈썸.”
그룹명에 관해서는 그럭저럭 만족하는 편이었다. 조금 임팩트가 떨어지는 것 같긴 하지만, 괜히 이상하게 임팩트를 주는 것보다 차라리 그냥 무난한 게 나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데뷔 날짜는 아직 회사에서 회의 중이긴 한데, 어쨌든 내년 월초를 목표로 하는 중이야.”
지금이 11월이니까···대충 3개월 정도 후인 건가.
아무래도 프로그램 화제가 사라지기 전에 하루라고 빨리 데뷔를 하는 편이 좋았다. 아마 회사에서도 그걸 어느 정도 염두에 둔 걸 테고.
“내년이면 다 같이 한 살씩 더 먹겠다.”
“아, 진짜 그렇겠네요.”
그럼 19살에 데뷔하는 건가.
가장 연장자인 도운이 형이 20살, 그리고 나와 백은찬, 안지호, 차선빈이 19살, 마지막으로 막내인 신하람이 18살인 셈이었다.
“도운이 형만 성인이네.”
“형, 부러워요.”
“부러울 거까지야······.”
“다 같이 20살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 그 말은 친구 먹고 싶다는 걸로 들린다?”
“맞아요. 그 말.”
신하람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에 백은찬이 이를 극구 반대하고 나섰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하다면서.
근데 친구였어도 재밌긴 했겠다.
그 뒤로도 데뷔조 관련으로 여러 이야기들이 오갔다.
가장 중요한 컨셉이나 데뷔곡에 관해서는 아직 확실하게 결정된 바가 없었다. 물론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오고 있기는 한데, 아직은 그저 시작하는 단계라고 한다.
“그와 관련해서는 나중에 너희 의견도 어느 정도 수렴을 할 생각이야.”
“저희 의견도 들어가요?”
“당연하지. 너희 데뷔곡인데.”
우리 데뷔곡.
그 말 한마디가 뭔가 좋았다.
우리 데뷔곡이라니. 우리 데뷔곡.
“아, 그리고 확실하게 결정된 사항이 하나 있는데.”
“어, 뭔데요?”
“너희 데뷔 쇼케이스.”
“네?”
“너희 데뷔 쇼케이스가 정해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