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불난 집에 부채질이 특기예요.
─휙!
찰나의 순간, 최진호의 주먹이 눈앞으로 날아드는 게 보였다. 하지만 난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이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하······.”
그러자 곧 최진호가 행동을 멈췄다.
동시에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 잘난 면상, 쪼는 얼굴 좀 보려고 했더니······. 이거 뭐, 눈 하나 꿈쩍을 안 하네.”
이윽고 최진호는 손을 내렸다.
최진호가 앞선 행동과 같은 행동을 할 거라는 건, 이미 처음부터 눈치를 채고 있던 바였다.
왜냐면, 최진호는 처음 나를 만났을 때부터 이와 같은 행동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저 여유로운 얼굴, 참 아니꼬웠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겁 좀 줘볼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대충.
최진호는 애초에 주먹을 휘두를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 주먹을 휘둘렀을 때도 그다지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고.
실제로 휘두를 생각이 없다는 건 이 또한 최진호의 생각을 통해서 알고 있었기에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 있었다.
‘게다가 앞으로도 연습생을 계속할 거라 제 입으로 말한 이상, 실제로 폭력을 행사할 리도 없고.’
이쪽에서는 그런 이슈에 상당히 민감하니까. 생각이 있다면, 함부로 주먹을 휘두를 리가 없었다.
아, 물론 생각이 짧아서 지금과 같은 행동을 한 거겠지만.
“나 참, 어이가 없네. 어떻게 눈앞으로 주먹이 날아오는데도 눈 하나 꿈쩍하지를 않냐?”
“제가 원래 겁이 좀 없어요.”
“그냥 겁이 없는 게 아니라 겁대가리를 상실한 거겠지. 아니면 뭐, 내가 안 때릴 거라는 확신이라도 있었나?”
확신이 있긴 했지.
어느 정도.
그런데 사실 실제로 때리려는 의도는 갖고 있었어도 난 다소 쉽게 피했을 거다.
그도 그럴 게 주먹이 어디서 어떻게 날아올지도 상대의 생각을 통해 미리 예측하는 게 가능했으니까.
이처럼 유익한 사전 정보가 있으니 나는 그저 알아서 빠르게, 잘 피하기만 하는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피하는 건 꽤 자신이 있었다.
“단순히 형이 그 정도로 멍청한 행동을 하진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이거 생각보다 내가 고평가 되고 있는 모양이네?”
“아뇨. 형에 대한 평가 자체가 아예 없는데요.”
그러한 내 대답에 최진호가 다시 한번 어이가 없다는 듯이 실소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느려요. 주먹이.”
그러자 최진호가 곧 아니꼬운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싸움은 X도 못 하게 생긴 게 무슨······.”
“적어도 형보다는 잘할걸요.”
“······.”
어째서인지 최진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자기가 질 거라는 걸, 은연중에라도 안 건가.
사실 내가 싸움을 못 하는 건 맞았다.
어디까지나 능력을 이용해 피하는 것뿐이니까.
하지만 싸움은 못 해도 불난 집에 부채질 정도는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입 털기라고 하지.
“그래. 지금 그렇게 많이 우쭐해둬라. 나중에 두고 보자고. 누가 더 잘 나가게 되는지.”
[“난 리온 엔터로 갈 거니까.”]
리온?
리온 엔터라면, 중소 연예기획사 중 하나였다. 한가지, 그 회사엔 남자그룹이 없었다. 이제껏 런칭한 그룹도 전부 여자그룹이었고.
‘얼핏 이제 그 회사에서도 남그룹을 만든다는 소문이 있긴 했었는데······.’
그쪽에서 특별한 오퍼라도 있었나.
뭐,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이후 최진호는 그 이상 아무 말 없이 내 옆을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이 무의미한 대화도 드디어 끝이구나 싶었다.
“야, 근데 너 말이야.”
끝이 아니었나.
“왜 그렇게 항상 마치 사람 속을 다 안다는 듯이 쳐다보는 거냐?”
최진호가 불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사람 속을 다 안다는 듯이······.
무슨 말인지 대충 이해가 갔다.
그런 말을 듣는 게 한두 번이 아닌 터라.
예전부터 꽤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
이제는 어느새 익숙한.
“저도 딱히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에요.”
“뭐?”
“그냥 날 때부터 이렇게 태어나서요.”
그러자 최진호가 그런 내 말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끝까지 재수가 없네.”
그날 최진호와의 대화는 정말로 그걸로 끝이 났다. 아마 내일부터는 회사에서 볼 수 없을 테지.
그리고 그날을 마지막으로 최진호와의 질긴 악연이 끝이라도 난 건지 최진호와 더 이상 마주치는 일이 없었다.
더불어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난 이후,
우연히 듣게 된 소식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리온 엔터테인먼트가 준비하던 남그룹이 최종 무산되어 백지로 돌아갔다는 소식이었다.
* * *
그리고 며칠 뒤.
데뷔조가 사용할 숙소가 정해졌다.
숙소는 강남에 있는 적당한 크기의 빌라로 방이 3개, 거실이 1개, 화장실이 1개인 곳이었다.
강남에 있긴 했지만, 강남에 다른 좋은 아파트들처럼 좋은 뷰가 있거나 집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넓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남자 6명이 살기에 무난 무난한 부족함이 없는 그런 집이었다.
그리고 멤버들은 그런 숙소를 신기해하며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이미 프로그램을 통해서 ‘숙소’를 경험해봤지만, 이건 뭔가 또 다른 느낌이긴 했다.
그때는 언제든 스테이지와 백스테이지로의 이동이 가능했으니까. 그리고 그 탓에 완전히 우리 숙소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저희 언제부터 숙소 들어가요?”
“지금 당장은 아니고 빠르면 이번 주 정도?”
“이번 주!”
“그러니까 다들 미리미리 짐 싸놔.”
물론 당장 숙소에 입성하는 건 아니었다.
오늘은 입주하기 전에 매니저 형을 따라 미리 사전답사를 와본 것뿐.
‘근데 진짜 좋긴 좋네.’
일단 우리만의 공간이 생긴 것 같아 좋았다. 아늑한 것도 좋았고.
“방 미리 선점하기 없기! 찜해두는 거 없기! 침 발라두는 거 없기!”
“헐. 방 스캔하고 있던 거 어떻게 알았어요? 하여튼 은찬이 형, 은근 이런 거 귀신.”
“니가 제일 티 났어, 인마! 나중에 입성하면 그때 공평하게 결정하자고.”
“사람이 찜 좀 해둘 수 있는 거지···이런 거 미리 안 정해놓으면 쌈 난다고요!”
“아, 몰라! 공평하게 가자고!”
싸움은 벌써부터 하고 있는 거 같은데.
하지만 결국 백은찬의 말대로 방은 나중에 입주하고 난 뒤 그때 정하기로 했다. 이번엔 무슨 방법으로 정하려나.
그리고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천천히 짐을 정리했다. 매니저 형 말대로 빠르면 이번 주 내로 바로 들어갈 수도 있다고 하니 미리미리 챙겨두는 게 좋을 듯 했다.
“짐 싸는 거니?”
“네. 빠르면 이번 주에 숙소에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해서요.”
“이번 주? 아쉽네. 엄마는 더 있었으면 했는데.”
“집이랑 숙소랑 별로 안 머니까 시간 날 때마다 자주자주 들를게요.”
그때서야 엄마는 마음이 놓이신 건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셨다.
“근데 형은요?”
“형? 아, 오늘 약속이 있다던데?”
“약속이요?”
“응. 그래서 낮부터 나갔어.”
약속? 뭐지?
오랜만에 친구라도 만나러 간 건가?
“요즘 몇 번 나가는 것 같더라고. 집에만 있기 답답한 건지.”
하긴 집에만 있을 순 없으니.
그나저나 정말 어디에 간 건지 궁금했다.
형은 이렇다 할 친구가 없는 걸로 아는데.
“내가 친구가 없긴 왜 없어.”
“친구 누구?”
“···친구는 아니고, 그냥 예전에 알던 실장님 좀 만나 뵈러 갔어.”
“실장님?”
“응. 김민섭 실장님이라고.”
김민섭 실장님······.
전에 형한테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아, 혹시 그 배우 기획사의 실장님?”
“어. 맞아.”
아하. 그분.
김민섭 실장님은 형이 한창 연기 활동을 할 때, 우연히 알게 된 분이셨다. 그때 당시 나도 형을 통해서 얘기 좀 들었었고.
근데 아직도 연락을 하고 있었나.
그건 좀 의왼데.
“캐나다에 있을 때도 계속 연락했어?”
“어, 가끔? 그냥 안부 인사드린 정도.”
“전혀 몰랐네.”
형이 원래 그렇게 누군가와 연락을 길게 이어가는 타입이 아니라 그런지 새삼 더 놀라웠다. 성격이 잘 맞았나.
“근데 뭐 다른 게 있는 건 아니지?”
“다른 거?”
“친분이 있던 사이라 해도 소속사 실장님이잖아. 그러니까 혹시 복귀 뭐, 이런 거.”
“아아.”
형은 앞선 내 말을 듣고선 그 순간 피식 웃더니 이내 곧 덤덤하게 말했다.
“글쎄.”
어? 잠깐만, 글쎄?
애매한 그 대답에 놀란 나는 곧바로 고개를 들어 형을 쳐다봤다.
“뭐야, 그 애매한 대답은?”
“뭐가?”
“방금 대답 말이야. 뭔가 되게 여지를 주는 것 같은 대답이잖아.”
“그렇게 들렸냐?”
“응. 너무.”
하지만 형은 그 이후로도 그것에 대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럴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혹시, 설마, 어쩌면 형이 복귀를 원한다면 나는 그것을 기꺼이 응원을 해줄 생각이 있었다.
물론 지금 나온다면 욕부터 먹고 시작하겠지만, 형이 원한다면 나는 그런 형을 밀어주고 싶었다.
형은 그만큼 연기에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그, 노래는 내가 봐도 아니긴 한데 연기만큼은 확실히 잘했다.
첫 드라마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형이 분명 발 연기를 할 거라 예상했다.
순전히 얼굴로 캐스팅 된 아이돌이라면서. 해외 수출용으로 캐스팅된 거라 말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형은 자신의 배역을 완벽히 소화해냈다.
그 다음부터는 탄탄대로였다.
대본이 물밀듯이 들어왔고, 그와 더불어 형의 인지도 역시 무섭게 상승했다.
물론 그러면서도 절대 루트 활동을 절대 놓지 않은 것은 당연했고.
아무튼 형은 확실히 연기에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재능만큼 형도 연기에 욕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하지만 루트를 탈퇴한 이후 형은 연기의 연자도 꺼내지 않았고, 수많은 배우 소속사의 콜도 모두 거절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게 됐다.
“아, 근데 너 숙소엔 언제 들어간다고?”
“아마 빠르면 이번 주 중으로 들어갈걸.”
“이제 곧 가겠네.”
“형은?”
“나?”
“형은 다시 캐나다로 가는 거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정말로 복귀의 생각이 있다면, 한국에 계속 머물지 않을까싶어서.
게다가 나이도 아직 27살에 심지어 군필이다. 복귀하기에도 딱 괜찮은 나이인데.
하지만 그런 내 예상과 다르게 형은 일말의 고민 없이 물음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응. 가야지.”
“아······.”
역시 복귀는 아니었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형의 생각도 읽어 보려 했지만, 역시나 형은 복귀에 대해서 아무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뒤.
나는 숙소에 입성하게 되었다.
“숙소다!”
“숙소야!”
“야, 길막하지마.”
“아, 미안.”
“미안요.”
앞선 안지호의 짜증 아닌 짜증에 백은찬과 신하람이 빠르게 사과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곧바로 다시 쿵쾅대며 숙소를 돌아다녔다.
“역시 방부터 정해야겠지?”
“당연히 방부터 정해야죠! 원래 이런 건 들어오자마자 정해줘야 해요!”
“아, 잠깐만.”
그때 윤도운이 그런 두 사람을 급하게 진정시키기에 나섰다.
“그것보다 먼저 정해야 할 게 있어.”
“뭔데요?”
“방 배정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요?”
“응.”
그리고 윤도운은 곧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