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단체 생활에서 꼭 필요한 것.
“숙소 규칙이요?”
“응. 가장 먼저 숙소 규칙을 정하자.”
윤도운이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런 윤도운을 나머지 멤버들이 멍하니 쳐다봤다.
앞서 윤도운이 말한 방 배정보다 중요한 것이란 바로 <숙소 생활 규칙>을 말하는 거였다.
하긴, 단체 생활을 하는 것에 있어서 규칙은 꽤나 중요한 거니까. 시작부터 짚고 가야 할 필요가 있긴 했다.
“규칙···을 꼭 정해야 하나?”
그때 백은찬이 슬쩍 의견을 던졌다.
딱 봐도 정하기 귀찮은 듯한 모습이었다.
“정해야지. 단체 생활인데.”
“어, 그러냐.”
그리고 그런 내 말에 백은찬이 머리를 긁적였다.
“도운이 형 말대로 규칙을 정해보자. 원래 이런 건 빠르게 정리하고 들어가야 나중에 편하잖아.”
“그래, 뭐······.”
“종이 가져올까요? 규칙 정하려면 써야 할 것 같은데!”
“종이 말고 노트북 꺼내.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걸 일일이 다 손으로 쓰고 있어.”
“그럼 지호 형, 노트북 가져와요.”
“······귀찮게.”
그러면서도 안지호는 자리에서 곧바로 일어섰다.
“서기는 누가 할까?”
“타자 빠른 사람 있어요?”
“나 좀 빠른데.”
“백은찬 너 몇 인데?”
“나 450타.”
450? 450이면 그래도 좀 빠른 것 같은데.
타자 속도 재본 지가 오래전이라 보통 빠르다고 하는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잘 안 왔다. 일단 내 타자 속도는 기억이 안 나거든.
“450타? 그렇게 느리다고?”
앞선 백은찬에 대답에 안지호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450타가 느린 거야?”
“그건 그냥 평균 아니냐?”
“지호 형은 몇 타 나오는데요?”
“890타.”
“890타?!”
생각지도 못한 빠른 타자에 우리는 모두 놀랄 수밖에 없었다. 890타. 890타면 엄청나게 빠른 거 아니야? 손이 안 보이는 정도 아닌가?
“너 무슨 타자 훈련이라도 했어? 왜 이렇게 빨라?”
“뭔 훈련. 그런 걸 누가 훈련까지 해. 그냥 하다 보니 그렇게 나오던데.”
“······야, 안 되겠다. 서기는 이미 끝났다.”
“공감이요.”
“? 뭐가?”
이내 노트북은 안지호 앞에 정착하게 되었다.
“자, 얘들아. 우리 이제 진짜 집중해서 규칙을 정하자.”
“맞아요. 얼른 정해요. 앞에서 타자 이야기 너무 많이 했어.”
“아니, 근데 안 할 수가 없잖아. 타자가 890이래. 말이 되냐?”
솔직히 890타는 진짜 놀랄 만했다.
나중에 한번 한컴 타자 게임 쳐달라고 해봐야지.
“일단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넣었으면 하는 규칙을 말해보는 게 어떨까 싶은데.”
“저 하나 있어요.”
“어, 그래. 선빈이.”
“외부인은 출입 금지요.”
“아, 맞아. 그거. 그건 꼭 넣어야지.”
내 생각에도 그건 1번에 들어가야 할 규칙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자세하게 <‘멤버’ 이외의 모든 외부인은 출입금지>로 정했다.
옆에선 안지호가 그러한 세부 규칙들을 타자로 치고 있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규칙들이 나왔다.
백은찬의 경우 <밥은 되도록 다 같이 먹기>
신하람은 <쉬는 날에는 멤버 다 같이 한 번씩 게임하기>와 같은 규칙들을 주장했다.
윤도운의 경우 앞선 두 사람과 달리 <개인 소지품은 함부로 건들지 않기>와 같은 규칙을 원했다.
“다음, 안지호.”
“쓰면서 말한다. <개인이 먹은 건 알아서 치우기>, <설거지 바로바로 하기>, <양말 벗어놓지 말기>······”
“야, 잠깐! 잠깐!”
“왜?”
“그렇게 많아?”
“더 있어.”
그 뒤로도 안지호는 규칙들을 끊임없이 나열했다. 근데 또 이상하게 다 있어도 괜찮을 법한 규칙들이었다.
밥 먹고 설거지 바로, 자기가 어지른 건 자기가 치우기. 이런 건 있어야 하는 규칙이니까.
“···뭐, 그래. 지호 말이 틀린 건 없으니까.”
“보니까 확실히 있어도 괜찮을 것 같은 규칙들이긴 하네요.”
“귀찮은 게 문제지.”
그에 대해서는 다들 생각이 같았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세현이.”
“전 뭐, 앞에서 다들 말해서 특별한 건 없어요. 그냥 평소에 대화 많이 하기 정도.”
“대화?”
“응.”
보통 숙소에 있다 보면 개인으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다 보니 대화가 적어지기 일쑤다. 그러니 그걸 방지해 되도록 대화를 많이 했으면 하는 거였다.
굳이 생각을 읽지 않아도 상대방의 생각을 그때그때 알 수 있도록.
“좋아. 그럼 마지막 규칙으로 넣자. <평소에 멤버들끼리 대화 자주 하기>.”
그리고 그걸 마지막으로 우리 숙소의 규칙들이 마침내 완성됐다. 이후에는 그걸 프린트 해 거실 중앙에 붙여두기로 했다. 되도록 눈에 잘 띄도록.
“어길 시 벌칙은 뭐로 할까요?”
“화장실 청소 당번 같은 거 어때. 한 번 어길 때마다 일주일씩.”
“그거 괜찮네.”
“아니면 그 날 하루 간식 반납하기.”
“어차피 우리 간식도 못 먹잖아······.”
“아, 그랬지.”
벌칙은 그냥 앞서 말 한 대로 <화장실 청소 당번 일주일>로 하기로 했다. 물론 혼자서.
“좋아, 그럼 규칙도 다 정했으니 이제 진짜 방 배정 한번 하죠.”
“아, 잠깐만.”
그대로 일어서려던 백은찬을 내가 급하게 말렸다.
“뭐야, 왜?”
“그 전에 고민해야 할 게 또 있어.”
“뭔데?”
“이건 아주 심각한 거야.”
“어디서 벌레 나왔어요?”
“아까 베란다에 벌레 있던데.”
“뭐? 진짜?”
아니, 벌레 이야기가 아니야.
물론 벌레도 중요하긴 한데······.
아무튼 이야기가 이 이상 딴 길로 새기 전에 나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우리 냉장고에 아무것도 없더라.”
“······뭐?”
그 순간, 떠들썩했던 숙소가 귀신같이 조용해졌다.
* * *
[제목] : 오늘 마트에서 우연히 플온스 애들 본 썰 푼다
오늘 마트에서 우연히 플온스 애들 봄ㅋㅋ
아 플온스 데뷔조 애들ㅋㅋ
윈섬이었나? 이름이 아직 안 붙어서;;
아무튼 걔네 봤는데 6명 전부 있던 건 아니고 몇 명만 있더라 내가 본건 우세현, 차선빈, 백은찬 이렇게 셋 봄
보니까 장보러 왔나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많이 담더라고ㅋㅋ 근데 보니까 주로 재료 고르는 건 우세현이고 차선빈이랑 백은찬은 장바구니 들고 우세현만 열심히 따라댕김 ㄱㅇㅇ ㄱㅇㅇ
뭐 샀는지까지는 못봤고 그냥 면? 이런거 사는 거만 봄 근데 멀리서 봐도 다들 잘생겼더라ㅋ 얼핏봐도 다들 연예인이었음
사진은 찍긴 찍었는데 흔들려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음ㅜㅜ 그래도 혹시 몰라 올려둠
└ 헐ㅠㅠ 셋이 장보러 왔나보네
└ ㄱㅇㅇ 뭐샀을지 궁금하다
└ 다른 애들은 없었어?
└ [글쓴이] : ㅇㅇ 내가 못본 걸수도 있긴한데 난 저 셋만 봄
└ 역시 동갑라인ㅋㅋㅋ귀요미들끼리 같이 다니네
└ 지호는 왜 없지ㅠㅠㅠㅠㅠ
멤버들과 생활을 하면서 다시 한번 깨달은 게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우리 숙소에는 요리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거였다.
백은찬과 차선빈이 요리를 못한다는 건 이미 스테이지 숙소를 경험하면서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두 사람은 정말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계란 후라이를 겨우 하는 정도랄까.
심지어 후라이에 가끔씩 달걀 껍질이 들어가기도 한다. 뭐, 껍질 정도야 그냥 덜어내고 먹으면 그만이긴 하지만.
도운이 형과 하람이는 요리를 보조해주는 정도이고, 그나마 뭔가를 할 줄 알아 보이는 건 안지호 뿐이었다.
나 역시 요리를 잘한다고는 말 못하지만, 나머지 네 사람을 생각하면 결국 칼을 들어야 하는 건 나였다.
그래서 난 오늘도 칼을 들었다.
“와, 미쳤다. 파스타.”
“맛있겠다.”
“세현이 형, 이거 여기에 넣으면 돼요?”
“응. 전부 넣어.”
오늘 저녁은 파스타였다.
사실 멤버 모두가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번 한 번만 매니저 형에게 허락을 받았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멤버 모두가 처음 숙소에 들어온 날.
그래서 오늘은 내가 나서서 저녁으로 크림 파스타를 하기로 했다. 나 역시도 할 줄 아는 요리는 몇 개 없었기에 그나마 할 줄 아는 걸 해봤다.
물론 오랜만에 하는 거라 인터넷 레시피도 틈틈이 찾아봤다. 일단 맛은 있어야하니까.
‘그나저나 양이 괜찮은가?’
6인분이라는 양은 처음 해보는 거라서 감이 잘 안 잡혔다. 약간 적은 것 같기도 하고?
“백은찬은 수저 놓고, 차선빈은 이거 가져가라. 뜨거우니까 조심하고.”
“와, 방금 대사 진짜 우리 엄마 같았어.”
젓가락 짝짝이로 놓지나 마라.
젓가락 그림도 안 보는지 백은찬은 젓가락을 짝짝이로 놓을 때가 종종 있었다.
“세현아, 이거 사진 찍어도 되지?”
“네. 찍어도 돼요.”
그런 내 말에 윤도운이 곧 식탁 위에 놓인 파스타를 폰으로 찍었다. 이어서 젓가락을 놓던 백은찬이 물었다.
“어디에 올리려고요?”
“올릴 곳이 어딨어. 우리 다 SNS도 없는데. 그냥 나중에 그룹 계정 만들어지면, 거기에 한 번 올리려고.”
“아하. 태그를 꼭 이렇게 달아요. ‘윈썸의 큰 손, 우세현’이라고요.”
큰 손 우세현?
“이거 양이 많은가?”
“엥? 딱 봐도 겁나 많은데?”
그런가?
그냥 적당한 것 같은데.
오히려 좀 적어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야, 거 봐. 내가 면 좀 덜 넣자고 그랬잖아.”
“그런가? 난 오히려 적을 줄 알았는데.”
“이게 어떻게 적냐. 한 솥이네. 한 솥이야.”
“야, 안지호. 앞 접시 줘.”
“각자 많이 퍼. 그래야 다 먹는다.”
그래도 적은 것보다는 많은 게 낫잖아.
그렇게 각자의 접시에는 파스타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음료수는 없나?”
“아, 음료수 까먹고 안 사 왔어.”
“헐. 형들 어떻게 음료수를 까먹을 수가 있어요?”
“그럼 설마 마실 거 아무것도 안 사 온거야?”
“아니야! 여기 마실 게 하나 있어요!”
그리고 백은찬이 들고 온 음료 하나.
그건 바로 요구르트였다.
“봉투에 요구르트가 두 줄이 있었어!”
“요구르트를 샀었나?”
“내가 넣었어.”
차선빈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장하다······.”
“역시 선빈이 형이 센스가 있다니까.”
“잘했어. 차선빈.”
그런 차선빈을 향해 우리는 모두 엄지척을 해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칭찬해주고 싶은 건, 요구르트 한 줄이 아니라 두 줄을 사 왔다는 거다.
요구르트 한 줄에 5개가 들어있으니 멤버 수를 생각해 두 줄을 집은 거겠지. 별거 아니지만, 새삼 눈물이 날 뻔했다.
그 뒤로 우리는 본격적으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많다 뭐다 하더니 결국 접시를 싹 비웠다. 거봐, 내가 안 많다고 했잖아.
크림 파스타와 요구르트는 은근 조합이 괜찮았다. 콜라만큼은 아니지만, 느끼할 때마다 한 번씩 먹어주면 그럭저럭 괜찮았다.
“우세현.”
“응.”
“너 요리 잘하는구나.”
거실 한 편에 널브러져 있던 백은찬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인터넷에 다 나와 있는 거야······.”
“나랑 차선빈은 보고도 못 해······.”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차선빈이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니가 리더를 하는 게 어때?”
“갑자기 뭔 리더야.”
“우리 리더 정해야 하잖아. 내가 보기엔 니가 딱이다.”
리더는 무슨.
그보다 요리로 리더를 정하는 거냐.
“야, 일어나. 얼른 치워.”
그 와중에 안지호는 뒷정리를 하기 바빴다. 더불어서 백은찬을 한 번씩 발로 건드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배가 터질 것 같아······.”
“진짜로 터지기 전에 얼른 일어나라.”
“넵.”
그렇게 우리는 숙소에서의 첫날은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왠지 모르게 앞으로 숙소의 밥 담당은 내가 될 것 같은 그런 불길한 예감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그날 밤은 모처럼 푹 잘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몇 가지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하나는 데뷔 앨범 컨셉 회의에 참여하라는 소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형이 캐나다로 출국한다는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