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67화 (67/413)

67화. 이런 컨셉 어떨까요?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왔으니 오래 있다가 갈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형은 예상보다 빨리 캐나다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형을 배웅하기 위해 부모님과 나는 공항까지 함께 이동했다.

“아니, 왜 이렇게 빨리 가. 조금만 더 있다가 가지.”

“급하게 온 거라서요. 저쪽에서도 이것저것 할 게 많고.”

“이제 자주자주 들어와. 얼굴 좀 보자.”

“네. 그럴게요.”

오늘도 공항에는 여전히 많은 카메라가 있었다. 대포 카메라는 물론이고, 그러한 대포로 인해 일반 사람들 역시 우리를 한 번씩 쳐다보며 갔다.

오늘도 형 사진이 많이 올라가겠구나.

물론 내 사진도 같이.

“그럼 이제 들어갈게요.”

사람이 점점 모이는 것 같아지자 형은 서둘러 들어갈 준비를 했다.

“야, 세현아.”

“응.”

“데뷔 잘하고.”

“응.”

“내가 전에 말했던 것들, 잊지 말고.”

“응. 알겠어.”

저승사자나 루트 멤버들에 관한 얘기였다.

아직까지 걱정이 되는지 형은 그것들을 다시 한번 당부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쉬워마.”

형이 나를 향해 장난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아쉬운 건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게 정말 오랜만에 만난 거였으니까. 무엇보다 이제 또 언제 볼지도 모르고.

“세현아.”

그때 형이 또 다시 날 불렀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알 수 없는 제스처를 보냈다.

‘아, 읽으라는 거구나.’

생각을 읽으라는 의미였다. 그건.

뭔가 여기서 직접 말하기 어려운 게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읽은 형의 생각.

[“곧 다시 들어올 생각이야.”]

어, 곧 다시 들어온다고?

그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인사 상하는 말이었다면, 굳이 이렇게 읽으라고 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럼 정말로 간다.”

그 뒤로 형은 별다른 말을 남기지 않은 채 그렇게 입국장 안으로 들어섰다.

‘금방 들어온다고······.’

형의 마지막 그 말이 형이 떠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 * *

얼마 후, 회사에서는 우리의 데뷔 앨범 관련 컨셉 회의가 열렸다.

회사 기획팀, 신인개발팀은 물론이고 A&R팀, 그리고 비주얼 디렉터까지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더불어 우리 자리도 회의실 한 편에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 안에서 현재 다양하고도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그룹 컨셉 말인데요, 이번에도 세계관을 넣고 가실 건가요?”

“아, 세계관······.”

그 말에 기획팀 팀장 박성호가 잠시 이마를 짚었다.

“세계관 좋죠. 좋은데, 인터니티 때도 한번 시도했다가 나중엔 결국 흐지부지되어버려서······.”

아이돌 그룹 세계관이 한창 뜨고 있을 당시, IN 엔터에서도 역시나 당시 신인 그룹이었던 인터니티에게 그룹 세계관을 부여했었다.

인터니티의 세계관은 ‘전쟁’을 키워드로 했다. 거기에 세밀한 설정을 넣겠답시고 있어 보이는 요소들을 이것저것 다 때려 넣었다.

컨셉은 물론 노래에도 그 전쟁을 넣었다.

소속사 입장에선 나름 유기적인 요소를 만들어보겠다고 그렇게 했지만, 정작 대중들은 그러한 세계관에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대중들은 세계관이라고 하는 것에 그리 큰 관심이 있지 않은데 거기에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스토리까지 추가되니 더욱 동떨어질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회사에서는 세계관을 잠시 멈추고 다른 컨셉을 추구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나온 게 지옥담이었지.’

그동안에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컨셉. 여전히 컨셉츄얼하기는 했으나 여기에 조금 더 듣기 편한 노래를 들고나왔다.

그리고 인터니티는 이름을 알리게 됐다.

결국 이 지옥담을 분기로 하여 회사에서는 더 이상 세계관을 고집하지 않았고, 결국 흐지부지하게 끝을 맺었다.

“그래도 일단 세계관은 넣어보도록 하는 걸로 하죠. 아예 배제하고 갈 수는 없는 요소니까.”

“네. 그래요. 그럼 우선 다음으로 넘어갈까요. 일단 이번 앨범 컨셉부터.”

인터니티 때 한번 데어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다들 세계관이라는 것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컨셉은 어떻게, 신인이니까 청량으로 잡고 갈까요?”

“청량 좋죠. 요즘 신인이라면 한번씩 다 하는 추세잖아요. 팬들도 원하고.”

“다 그런 건 아니에요. 반대로 빡센 퍼포먼스 곡을 원하는 팬들도 많을걸요.”

“그건 그거 나름대로 이점이 있긴 하지.”

시작부터 두 파로 나뉘었다.

청량파 대 강렬한 퍼포먼스파.

여기서 어떤 쪽이 이기느냐에 따라서 전체적인 컨셉이 정해지게 될 터였다.

“요즘은 신인 때부터 해외 팬들을 잡고 가야해요. 그런 의미에서 센 퍼포먼스의 곡을 하는 게 좋죠.”

“근데 그걸 굳이 데뷔곡으로 해야 할까. 데뷔곡은 좀 더 대중적인 곡으로 하는 게 좋잖아.”

“게다가 그런 강렬한 컨셉은 인터니티랑 좀 노선이 겹치지 않나요? 이번엔 좀 달리가도 된다고 봐요.”

“음······.”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방향성이 청량 쪽으로 잡혀가는 모양새였다.

“그래, 너희 생각은 어때?”

그때, 신인개발팀 김선호 팀장님께서 먼저 우리 의견을 물어오셨다. 이에 가장 먼저 답한 것은 윤도운이었다.

“전 개인적으로 청량이 좋은 것 같습니다. 데뷔 컨셉으로 해보고 싶었기도 하고요.”

“나머지 사람들은?”

멤버마다도 제각기 다른 의견이 나왔지만, 그래도 청량파가 조금 더 우세했다. 나 역시도 청량에 한 표를 던졌고.

“그럼 청량으로 가시죠.”

“그래요. 그쪽으로 방향을 잡는 걸로 하죠.”

그렇게 최종 컨셉은 청량이 되었다.

이어서 김선호 팀장이 우릴 향해 덧붙였다.

“혹시 중간에 의견이 있거나 하면 바로바로 말해. 너희 의견도 필요하니까.”

더불어서 손을 들고 말해도 좋다는 장난스러운 말과 함께.

“그렇다면 청량으로 간다고 하면, 많이들 하는 교복 컨셉 어떨까요. 가장 무난하잖습니까.”

“하긴 다들 학생이니까. 아, 내년이면 도운 군은 성인이긴 하네요. 맞죠?”

“네. 맞습니다.”

“괜찮아. 19살이나 20살이나.”

“요즘은 학교를 배경으로 한 컨셉들도 많던데 그렇게 가는 것도 괜찮겠죠.”

청량한 교복 컨셉이라.

확실히 신인들이 하기에 무난한 컨셉이긴 했다. 다소 평범하긴 하지만.

“아니면 그건 어때요? 바다를 배경으로 찍는 거예요. 청량하면 또 바다잖아요.”

“바다? 바다 좋네. 그림 예쁘겠다.”

청량에 바다.

물론 이것도 좋은 조합이긴 했다.

하지만 여기엔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우리의 데뷔 날짜가 1~2월이라는 거였다. 다시 말해 계절이 겨울이었다.

‘물론 겨울 바다도 예쁘긴 하지. 그렇긴 한데······.’

문제는 계절성이 전혀 안 맞는 거였다.

한겨울에 바다를 배경으로 한 청량한 컨셉이라니. 아, 물론 여름의 청량함을 생각한 게 아니라면 그런 데로 할 만할지도 몰랐다.

“아, 근데 시기를 생각하면 보통의 바다 느낌보다는 훨씬 어두운 느낌이 들긴 하겠네요.”

진짜 여름의 청량함을 생각했던 모양이다.

“계절이 계절이니까. 아무래도 바다와 연관시키기는 좀 힘들겠네.”

기획팀 박 팀장이 아쉬워하며 말했다.

‘그럼 다른 종류의 청량으로 가면 되지 않나.’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청량에도 다양한 계열이 있으니까.

여름의 밝은 청량이 아니어도 아련함에 청량함을 더한 아련 청량과 같은 분위기라면, 겨울바다와도 꽤 잘 어울린다.

그 생각에 나는 곧바로 손을 들었다.

“저, 박 팀장님.”

“응?”

“그럼 다른 계열의 청량으로 가는 게 어떨지······.”

“다른 계열?”

“네. 이를테면 아련 청량으로 가서 겨울 바다 소재를 사용해도 되고요.”

“아, 그렇지. 그것도 괜찮겠네.”

곧바로 박 팀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련 청량! 아련 청량 좋네.”

“아련 청량으로 가면, 계절적인 분위기도 살릴 수가 있겠네요. 이를테면 겨울 바다 말고도 눈 같은 걸 활용해도 좋고요.”

꽤 괜찮은 아이디어라 생각한 건지 비주얼 디렉터가 모처럼 입을 열었다.

“그런 의미에서 A&R팀에서도 데모곡들 한 번씩 확인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조금씩이지만 나름 방향성이 잡혀가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아직 갈 길이 멀긴 했지만.

“음. 그럼 이렇게 된 거 우리 겨울 관련 키워드 하나씩 말해볼까요? 거기서 뭔가 좀 더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너희들은 뭐 생각나는 거 있어?”

곧바로 멤버들에게 질문이 돌아왔다.

그리고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맏형인 윤도운이었다.

“겨울하면···전 캔들이요.”

“캔들? 캔들도 소품으로 좋겠다.”

“다른 사람들은?”

“커피요.”

“커피? 아, 따뜻한 커피?”

“야, 안지호. 넌 커피도 안 마시면서.”

“내 기호랑은 딱히 상관없잖아.”

그 밖에도 눈사람, 스키, 난로 등 여러 가지 키워드들이 나왔다.

“세현이는?”

“어, 저는 밤이요.”

“밤?”

“네. 겨울밤 좋아하거든요.”

“아하. 먹는 밤 말고 실제 그 밤?”

“네. 그 밤이요.”

왠지 모르겠지만, 겨울하면 밤이 생각났다. 실제로 겨울에 밤하늘 보는 것도 좋아했고. 어쩌면 차가운 공기와 맞물리는 그 가라앉은 분위기를 좋아하는 걸지도 몰랐다.

“겨울밤. 겨울밤 좋지.”

“이제까지 나온 키워드들 다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을 좀 해봐야겠네요.”

그리고 그렇게 정리가 되어가는 듯 싶었는데. 그 순간, 기획팀 박 팀장이 무언가 던지듯 말을 툭 던졌다.

“듣다 보니 우리 컨셉 말이에요. 판타지 같은 걸 추가할까요?”

“판타지요?”

“예. 그냥 컨셉은 좀 재미가 없잖아요.”

판타지······.

나쁘지 않았다.

앞선 인터니티처럼 전쟁 판타지 같은 것만 아니라면.

“판타지를 잘 활용한다면, 나중에 세계관에 넣기 용이할 수도 있고.”

“그건 그렇긴 하죠. 그래서 아이디어는 있으신 거예요?”

“음···초능력 같은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초능력. 판타지하면 빠질 수 없는 요소이긴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요소는 아니었다. 아, 물론 실제로 내가 그 초능력을 갖고 있긴 하지만.

“초능력이요? 좀 식상하지 않나.”

“원래 식상한 게 더 먹히는 법이에요. 또 초능력이면 활용성도 좋고.”

“그럴 거면 그냥 마법으로 가시죠. 차라리 그편이 더 재밌을 것 같은데.”

김선호 팀장이 앞선 박성호 팀장의 의견에 반대 의사를 표하고 나섰다.

이어서 판타지 소재와 관련하여 두 팀장 사이의 실랑이가 그 뒤로도 계속되었고, 그사이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러면서 이들의 목소리는 점차 높아져만 갔고, 우리는 그저 그런 팀장님들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야말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대화의 향연들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시계를 봤다.

보려고 본 건 아닌데 그냥 우연찮게 보였다.

오후 4시 15분.

생각보다 시간이 꽤 지나있었다.

“그래, 그럼 애들한테도 한번 물어보자고.”

“아, 그래야죠. 그래. 너희 생각은?”

갑자기 우리에게로 의견이 넘어왔다.

뭔가 막힐 때마다 우리에게 질문이 넘어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내 착각인가.

“어······.”

[“떠오르는 건 없지만, 그래도 마법이 나으려나······.”]

[“초능력도 나쁘진 않지, 음······.”]

갑자기 돌아온 질문에 다들 조금 곤란해하는 기색이었다.

“괜찮아. 편하게 말해도 돼. 의견 뭐 다른 거 없어?”

박 팀장님께서 우리의 의견을 한번 더 물으셨다.

음. 갑자기 떠오른 거긴 하지만······.

“앞서 나온 거 이외에도 다른 것도 괜찮나요?”

“당연하지.”

“그럼 전 시간 판타지 같은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어? 시간 판타지?”

“네.”

그러자 다들 꽤 흥미롭다는 얼굴로 나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

“시간 관련 판타지라면 시간 여행 이런 건가?”

“그렇게까지는 아닌데, 그냥 시간과 관련된 이야기를 생각했어요. 아까 말씀하신 겨울 키워드들에 이런 시간적 판타지 요소를 섞으면 어떨까 하고요.”

“오, 시간 판타지에 겨울적 요소.”

문득 시계를 보다가 생각이 났다.

시간이라는 키워드가.

“데뷔라는 건 어떻게 보면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잖아요. 그러니까 새로운 시간을 맞이한다는 그런 의미를 담은 시간 판타지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그렇게 조용히 의견을 내어보았다.

그리고 그에 대한 결정은 의외로 빨랐다.

“좋아, 한번 가보자.”

“세현이가 말 한대로 전체적인 컨셉 틀을 그렇게 잡고 한번 가보죠.”

“바로 구성 잡고 해야겠네요.”

이러한 내 의견에 대하여 팀장님들은 대부분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셨고, 정말 그렇게 얼마 안 가 컨펌이 났다.

더불어 회사 기획팀은 생각보다 행동이 빨랐다.

며칠 뒤.

정말로 그와 관련된 컨셉이 나와 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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