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타이틀곡을 정해봅시다.
우리의 데뷔 앨범 컨셉이 정해졌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우리는 안내 받은 대로 기획팀 회의실로 모였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너희가 이번에 할 컨셉은 ‘시간 판타지’ 컨셉이야.”
그때 내가 낸 의견대로 회사에서는 시간 판타지 컨셉을 이번 앨범 컨셉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컨셉의 구체적인 내용은 ‘시간과 소년들’이고. 이제껏 시간이 멈춰져 있던 소년들이 어느 기점을 맞이하는 순간 그들의 시간이 다시 흘러간다는 내용의 이야기지.”
마치 동화 같은 스토리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어느 기점이란, 우리로 따지자면 너희의 데뷔를 의미하는 거야. 전에 세현이가 이야기한 적 있었지? 데뷔는 곧 시작이라고.”
“네.”
“그걸 반영했어. ‘윈썸의 시간은 이제부터 시작’ 약간 이런 느낌으로.”
박 팀장님이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그러자 옆에 있던 백은찬이 ‘오-’하는 소리를 내며 내 어깨를 툭 쳤다.
사실 ‘시간이 멈춰있던’이란 배경까지는 내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그건 아마도 전에 내가 내었던 의견에 기획팀 측에서 부가적으로 추가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요소에 맞게 앨범 자켓이나 뮤비 등에 시간과 관련된 소품을 배치할 거야. 거기에 전에 말했던 겨울적 요소들도 추가적으로 넣을 거고.”
“전에 나왔던 캔들이나 눈. 이런 거요?”
“맞아.”
그림이 예쁠 것 같기는 했다.
그나저나 두 요소를 섞으면 컨셉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차분하게 가려나.
“그래서 일단 그에 맞게 전에 말했던 대로 컨셉에 맞는 타이틀곡 후보로 몇 개 추렸는데···잠시만.”
박 팀장님께서 급하게 노트북을 두드리셨다. 아마도 곡을 찾고 계신 듯 했다.
“아, 찾았다. 일단 후보곡은 3개야. 3개 다 들어보고 어떤 게 좋을지 한 번씩 투표를 해보는 게 어떨까 싶은데.”
“이거 지금 저희가 고른 걸로 최종 결정이 되는 거예요?”
“음. 꼭 그렇다고 확답은 못 하지만, 어느 정도 의견이 반영되긴 할 거야.”
보통 신인에게 타이틀 선정 기회를 주는 건 흔치 않았다.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이 될 수는 있겠지만, 말하는 걸 보니 아마 우리의 의견은 그리 크게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예전에 형에게서 지금과 비슷한 상황의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처음 데뷔를 했을 당시, 자신과 멤버들의 의견과는 전혀 다른 곡이 타이틀이 됐다며 한참을 툴툴댔었지.
아, 물론 그 타이틀곡은 결국 잘됐긴 했다. 그것도 엄청 잘 돼서 우리 프로그램 경연곡으로도 나온 바가 있었고.
“그래도 되도록 많이 반영되도록 할 테니까 한 번씩 들어보고 고심해봐.”
[“물론 내부에서 어느 정도 확실시된 곡이 있긴 하지만···그래도 표면상 일단 이렇게 말해두는 게 낫겠지.”]
역시나 회사에서는 이미 염두에 둔 곡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되면 투표의 의미가 있나 싶긴 하지만, 그래도 안 들어볼 순 없으니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지금은 그저 회사에서 점 찍어둔 곡이 좋기를 바랄 수밖에.
“그럼 일단 하나씩 들어볼게.”
그렇게 우리는 준비된 가이드곡 3개를 하나씩 천천히 들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2번째 곡의 전주가 나오기 시작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팀장님께 물었다.
“이건 제목이 뭐예요?”
“어? 이 곡? 아직까지 가제이긴 한데 야.”
리플레이.
어쩐지 곡 느낌이 괜찮았다.
회사에서 정한 곡이 이 곡이었으면.
그리고 준비된 곡이 모두 끝나자 지켜보시던 박 팀장님이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물으셨다.
“어때. 뭐가 제일 나은 것 같아?”
개인적으로 나는 앞서 말한 대로 2번째 곡인 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몽환적이면서도 감성적인 멜로디 라인. 그리고 중간중간 들어가 있는 기타 사운드가 꽤 마음에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아련하고도 청량한 그 느낌과 상당히 유사했다.
하지만 의견을 내기 전에 다른 멤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체적인 분위기를 한번 살펴봤다.
[“2번이 괜찮네.”]
[“2번 곡 좋다.”]
[“1번 아니면 2번!”]
[“3번만 아니면 될 것 같은데······.”]
[“1번? 2번?”]
살펴본 결과 전체적으로 의견이 비슷했다. 멤버들의 취향이 다들 비슷한 건지 아니면 단순히 정말 2번이 좋은 곡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대체로 통일되는 분위기였다.
“팀장님.”
“어, 그래. 세현이.”
“저는 개인적으로 2번곡이 가장 괜찮은 것 같습니다.”
“어, 2번? 아, 리플레이?”
“네.”
그러자 박 팀장의 표정이 조금 안 좋아졌다. 그다지 반기지 않는 듯한 모습.
‘회사에서 픽한 건 2번이 아닌 건가.’
반응을 보니 그런 것 같았다.
“음. 그래. 조금 더 이야기해볼까? 다른 사람들은?”
뒤이어 안지호와 차선빈 역시 2번을 선택했다. 반면, 백은찬과 윤도운은 1번과 2번이 괜찮다고 생각했고. 신하람 역시 비슷했는데, 보아하니 3번만 아니면 둘 중 아무거나 괜찮다는 쪽이었다.
“의견이 꽤 비슷하네요. 우리 듣는 귀가 다 비슷비슷한가 봐요.”
“듣는 귀가 비슷하다기보다는 누가 들어도 2번이 가장 낫지 않아?”
“안지호 은근 2번 강하게 미네. 난 1번도 나쁘지 않던데. 무난하고 듣기 편해서.”
“타이틀곡인데 무난하면 어떡하냐. 듣는 순간 이거다 싶은 걸로 해야지.”
“무난한 게 꼭 나쁘진 않잖아. 듣기 편한 곡이 대중적으로 더 먹힐 수도 있는 거고······.”
분위기상 1번과 2번의 싸움 같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2번을 선호하는 터라 당연히 2번을 밀 생각이었으나, 사실 여기서 중요한 건 1번이냐 2번이냐가 아닐 수도 있다.
회사가 정한 픽이 몇 번이냐지.
“그럼 너희들의 의견은 1번 아니면 2번이라는 거지?”
박 팀장님이 그런 우리를 향해 확인차 한 번 더 의견을 물어왔다.
“네. 그런 것 같아요.”
“잠깐, 1번이 몇 명이었지? 나, 신하람, 도운이 형 이렇게 인가?”
“저 1번 아니에요. 3번만 아니면 된다는 의견입니당.”
“생각을 달리해 1번에 붙는 게 어떻겠니, 하람아.”
“은찬이 형. 짜증 나는 말투 쓰지 마요. 그럴수록 더 2번 가고 싶어지니까.”
그러자 백은찬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흠. 그래.”
뒤이어 박 팀장님은 다시 생각에 잠기셨다. 뭔가를 깊게 고민하는 듯 해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니 괜히 나까지 불안해졌다. 왜냐면, 나와선 안 되는 결과가 나올 것 같았기에.
[“회사에서는 3번을 강력히 밀고 있는데···의견이 완전 반대네······.”]
정말로 앞서 예상한 대로 나와선 안 될게 나와 버리고 말았다.
* * *
준비된 3곡을 모두 들었을 당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역시 2번곡이 제일 괜찮다는 것이었다.
1번은 그냥 무난무난.
멜로디가 적당히 듣기 괜찮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타이틀로 하기엔 좀 부족해 보였다.
가장 별로인 건 3번이었다.
3번은 정말···일단 비트 자체가 구렸다.
정확히 말해서 촌스러웠다.
멜로디 라인이 어디 2000년대 중반에 많이 했을 법한 그런 멜로디였고, 그저 노래만 신날 뿐 이렇다 할 특징도 없었다.
그렇기에 나 역시 신하람과 마찬가지로 3번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에 강했고, 또 회사가 픽해둔 곡도 3번은 아니겠거니 했다.
‘분명 1번 아님 2번이겠지.’
하지만 박 팀장님이 곤란해하는 걸 보니 1번인가 싶었다. 처음엔.
‘그런데 그게 3번일 줄이야.’
반전이라면 반전이었다.
다소 어이가 없긴 했지만.
“음. 일단 알겠어. 너희는 1번 아님 2번이라는 거지?”
“아, 의견을 확실하게 모으는 게 좋지 않을까요?”
“어···그래. 일단 너희 의견을 하나로 통일해줘.”
[“그게 될지는 나도 의문이긴 하다만······.”]
[“아니, 안될 확률이 더 높겠지······.”]
이건 뭐, 희망 고문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일단 정하라니 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편이 나중에 의견을 피력하기 더 좋기도 했고.
“좋아. 그럼 다수결 결과, 2번으로 하는 걸로 하자.”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지 토론 결과 우리는 2번을 밀기로 했다.
“아, 근데 1번도 진짜 괜찮은데.”
그 와중에 백은찬은 아직까지도 1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까워?”
“응? 응.”
“그렇게 아까우면 나랑 가위바위보 해. 니가 이기면 재고의 여지를 달라고 해볼게.”
“어? 진짜?”
“응.”
그런 내 말에 백은찬은 곧 신이 난 기색으로 팔을 돌려댔다.
미안하다, 백은찬.
하지만 아쉬움이 남지 않으려면 이 방법밖에는!
그리고 난 그런 백은찬을 향해 미리 씁쓸한 사과의 인사를 남기고 있었다.
“아, 잠만.”
“왜?”
“너 가위바위보 잘하잖아.”
얘도 은근 눈치가 빨라.
“그래도 가위바위보잖아. 할 때까지는 승패를 알 수 없는 거지.”
“뭐···그렇긴 하지.”
다행히 그럭저럭 잘 넘어간 듯 했다.
“좋아, 그럼 안 내면 진 거! 가위바위!”
“보!”
“악!”
응. 수고.
결과는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그럼 일단 너희 의견은 2번이라고 그렇게 이야기는 해둘게.”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타이틀곡 회의는 그대로 끝나는 분위기였다. 그때 내가 박 팀장님께 물었다.
“결과는 언제 나오나요?”
“어? 결과? 음, 아마 빠르게 나올 거야. 나오면 바로 알려줄게.”
빠르게 나온다는 것부터 불안하네.
아무래도 한 번 더 피력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팀장님.”
“응? 왜?”
“개인적으로 저는 2번으로 꼭 갔으면 좋겠습니다.”
“어?”
“2번이 타이틀로 너무 괜찮은 것 같아서요.”
동시에 3번이 너무 아니었다.
그러니 죽이 되던 밥이 되던 2번으로 밀고 나가야 했다.
[“세현이가 확고하네.”]
[“솔직히 2번이 나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그래도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해보는 게······.”]
“저희 의견 꼭 전달 부탁드릴게요.”
“어, 그래. 알겠어.”
그리고 박 팀장님은 고개를 끄덕이셨다.
어떻게 의견이 좀 달라졌으면 좋겠는데.
“타이틀곡, 결국 2번이 되겠지?”
“왜요? 은찬이 형, 아직도 아까워요?”
“조금 그렇긴 한데···그래도 뭐, 3번이 될 일은 없을 테니까.”
“그건 그렇죠. 솔직히 3번은 좀···그래도 다른 분들도 다 1, 2번 중에 고르지 않으셨을까요?”
“당연히 그러셨겠지.”
아니. 당연하지가 않아······.
그렇지가 않아, 하하.
앞선 대화를 듣고 있으려니 답답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웬 한숨이냐?”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로부터 며칠 뒤.
우리는 다시금 회의실에 소집되었다.
당연히 타이틀곡 결정 건으로.
“사내 회의 결과, 너희 데뷔 타이틀곡이 결정됐어.”
그리고 그 말에 드는 감정은 기쁨이나 설렘 같은 것이 아닌 불안함이었다.
‘설마 진짜로 3번으로 결정된 건······.’
만약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물러야 할지부터 생각해야했다.
그보다 물러질 수가 있는 건가.
벌써부터 그런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했다.
“이제부터 그 결정된 타이틀곡을 알려줄게. 최종 컨펌된 타이틀곡은 바로······.”
긴장되는 순간.
회의실은 마치 짠 듯이 조용했다.
“바로 2번곡이야.”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