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매일 밤 12시를 기다립니다.
G-LIVE의 마지막.
그 라이브의 마지막에 우리는 그룹의 리더를 공개하기로 했다.
“윈썸의 리더! 그 리더는······.”
“바로 도운이 형입니다!”
그리고 공개와 동시에 박수가 쏟아졌다. 이에 도운이 형은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무슨 박수냐며 핀잔 아닌 핀잔을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런 형을 향해 열렬한 박수를 보내주었다.
멤버들과의 의논 끝에 그룹의 리더는 윤도운이 맡게 되었다.
처음 리더를 결정할 당시, 누가 리더를 맡을 것인가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이 오갔다.
그리고 앞서 윤도운을 리더로 가장 먼저 추천한 건 바로 나였다.
“저는 개인적으로 도운이 형이 맡아줬으면 좋겠어요.”
“어? 나?”
“네.”
“왜? 아, 혹시 연장자라서?”
“그것도 있지만, 그보다도 형이라면 누구보다 팀의 중심을 잘 잡아줄 것 같아서요.”
내가 봤을 때, 윤도운은 어느 상황에서건 항상 멤버들을 잘 케어했다. 항상 먼저 나서서 상황을 정리하기도 했고.
어디까지나 자신이 연장자라는 생각 때문에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연장자랍시고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따르기를 바라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윤도운은 그렇기보다는 멤버 각자의 의견을 잘 수용해주고, 이를 토대로 타협점을 찾아주는 타입이었다.
또, 사실 다른 멤버들은 은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향이 있는 반면 윤도운은 나름 평온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랬다.
“도운이 형? 난 도운이 형, 찬성!”
“도운이 형, 나도 좋아.”
그리고 다른 멤버들 역시 윤도운을 리더로 하는 것에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아니, 갑자기 이렇게 되는 거냐······.”
“왜요, 형 리더에 잘 어울리는데. 형 잘할 것 같아요.”
“뭐, 하는 건 크게 상관이 없긴 하지만······.”
다행히 당사자인 윤도운 역시 리더를 하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었다. 물론 어느 정도 부담감은 있어 보였지만.
[“좀 부담스럽긴 하지만···그래. 우리 애들 내가 잘 챙겨야지. 일단 난 큰형이니까.”]
“알겠다. 많이 부족할 수도 있는데···그래도 너희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한번 해볼게.”
“와!”
“에이, 그렇게 말해도 잘할 거면서!”
“그래, 백은찬. 너만 말을 잘 들어준다면······.”
“아니, 형! 서운하게 이럴 거예요?”
백은찬이 한껏 서운한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 형 아니면 할 사람이 없긴 해. 솔직히 유일한 정상인이잖아.”
“야, 안지호. 그건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 지금 우린 비정상인이라는 거야?”
“비정상인이라기보단 다들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 빠져 있잖아.”
안지호가 뭘 그런 것 묻느냐는 듯 말했다.
솔직히 그건 좀 인정.
뭔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게 좀 있긴 하지. 물론 나를 포함해서.
“가장 이상한 애가 남 지적하고 있네! 내가 볼 땐 니가 제일 이상해, 안지호.”
“피차일반끼리 이러지 말자고.”
“와, 지금 뭐라는 거야?”
“진정하자, 얘들아······.”
그렇게 윤도운은 다시금 멤버들을 중재하기 바빴다.
아무튼 이러한 경위로 우리 그룹의 리더는 윤도운이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이렇게 해서 결국 리더는 도운이 형이 된 거죠.”
“사실 뭐 그렇게 길게 의논하지도 않았어요. 거의 만장일치 수준으로 나온 거라.”
그렇게 리더썰이 점차 끝이 날 때쯤, 건너편에 서 있던 매니저 형이 또다시 우릴 향해 신호를 보냈다.
이제 정말 그만 끊으라는.
그리고 그걸 본 윤도운이 이번에도 역시 가장 먼저 종료 멘트를 꺼냈다.
“여러분, 죄송하지만 이제 정말 정말 가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아요. 아쉽지만 다음에 또 금방 올 테니까요. 그때까지 꼭 기다려주세요.”
뒤이어 다른 멤버들도 한마디씩 건넸다.
“금방 또 올게요!”
“빠른 시일 내에 꼭 봐요!”
“노래 많이 기대해주시고요.”
그리고 나 역시도 멤버들과 함께 끝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정말 자주 봐요, 우리.”
- 잘가 얘들아ㅠㅠㅠㅠㅠㅠ또 보자
- 윈썸 데뷔 앨범 대박 기원ㅠㅠㅠㅠㅠㅠ
- Bye bye
- 금방 또 올꺼지?ㅠㅠㅠㅠㅠㅠㅠㅠ
- 얘들아 사당행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종료 버튼, 어떻게 내가 눌러?”
위치상 지금 가장 가까운 건 나였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종료 버튼을 누르려 일어나려고 하는데, 그때 백은찬이 장난기 섞인 말투로 말했다.
“또 리허설 모드 누르지 마라.”
“아, 맞아! 이건 비하인드인데요. 아까 세현이 형이 리허설 모드 눌러 놓는 바람에 저희가 아주 한참을 기다렸다는 그런···!”
“제가 그냥 끌게요.”
나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 ㅋㅋㅋㅋㅋㅋ아진짜? 세현이 귀여웡
- 우세현 ㄱㅇㅇ ㄱㅇㅇ
- 앜ㅋㅋㅋㅋㅋ리허설모드ㅠㅠ 애들 좀 쫄렸겠다ㅠㅠㅠㅠㅠ
나 이제 리허설 모드 버튼이랑 시작 버튼 구별할 줄 안다고.
그리고 그대로 종료 버튼을 누르기 직전,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안녕히 계세요.”
그리고 마침내 라이브의 종료 버튼을 눌렀다.
[라이브가 종료되었습니다.]
* * *
“아오, 귀여워 죽겠네!”
김설아는 지금, 윈썸의 공식 SNS 계정을 흐뭇한 미소로 스크롤하고 있었다.
지난 G-라이브 이후로 멤버들은 정말로 하루가 다르게 공계에 자주자주 글을 올려줬다.
물론 사진보다는 주로 글 위주였다.
가끔씩 사진도 올려주긴 했는데, 정말로 데뷔가 임박하긴 한 건지 온통 꽁꽁 싸맨 사진들이었다.
‘그래도 팬들한테 얼굴 보여주겠다고 셀카도 간간히 올려주고···기특해.’
어떻게든 팬들에게 소식을 전해주고 싶은 멤버들의 마음이 느껴져 김설아는 그 글들을 보며 괜히 흐뭇해졌다.
“그나저나 다른 건 도대체 언제 해주는 거야. 왜 소식이 없어, IN.”
하지만 여전히 팬 커뮤니티와 소통 어플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꼴을 보아하니 데뷔 이후에 해줄 모양이네.
사실 근래 김설아에게는 특이한 습관이 하나 생겼는데, 그건 바로 매일 밤 12시만 되면 공식 계정에 들어가 보는 것이었다.
‘언제 인장이 바뀔지 몰라···그러니까 눈에 불을 켜고 지켜봐야 해!’
정말로 데뷔가 임박해올 시 공식 계정의 프로필 인장부터 바뀌는 게 국룰이었다. 그 인장을 보고 대충 앨범의 컨셉도 유추해볼 수 있는 거고.
그래서 김설아는 멤버들의 라이브 이후로 꾸준히 공계의 인장을 확인했다. 하지만 역시나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바뀐 건 없었다.
“오늘 밤도 역시나 안 바뀌겠지······.”
어느새 벌써 밤 11시 58분이었다.
심지어 오늘은 이상하게 졸렸다.
평소엔 이 시간에도 늘상 눈이 또랑또랑했는데.
‘오늘은 그냥 잘까. 어차피 오늘 바뀌지도 않을 것 같은데.’
잠시 고민이 됐다.
하지만 김설아는 그래도 한번 확인하기로 했다. 12시에 새로 고침 한번 딱 해보고 바로 잠들기로.
오늘도 역시 안 바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이 시간에 공계에 들어가는 게 이제는 저절로 손에 배어있었다.
그렇게 오늘도 맞이한 12시.
김설아는 늘 그렇듯 공계를 새로고침했다.
“······어?”
그 순간, 김설아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잠깐, 이게, 이게, 무슨?
놀랍게도 공계의 인장이 바뀌어져 있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인장이.
‘이거 진짜 현실 맞지? 아니, 진짜?’
순식간에 잠이 깼다.
그리고 올라온 인장을 좀 더 자세히, 그리고 크게 살펴보았다.
“색 조합 겁나 예쁘네······.”
노랑와 연파랑의 조합.
색 조합 자체만으로도 몽환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겨졌다.
거기에 WINSOME의 ‘W’ 부분은 하얀 눈꽃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 X친. 윈썸 오늘 인장 바뀜ㄷㄷㄷㄷ
- 헐 인장 바뀌었어ㅠㅠㅠㅠㅠㅠㅠ
- 어쩐지 오늘 졸린다 했더니 역시나.......
- 인장 너무 예쁘다ㅠㅠㅠㅠ색조합도 좋고 뭔가 폰트도 고급짐ㅠㅠㅠㅠㅠㅠㅠ
- 윈썸 이제 진짜 데뷔 임박인가보다
반응 역시 좋았다.
컨셉 포토가 나온 것도 아니고 고작 인장 하나 바뀐 것뿐이지만, 그것 하나만으로도 팬들은 북적였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부터 이와 관련된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공식] IN 엔터의 새로운 보이그룹 ‘윈썸’, 1월 데뷔 확정
IN 엔터테인먼트의 신예, 윈썸 올해 1월에 미니 1집으로 데뷔 예정
IN의 비밀무기 윈썸, 루트 차세대 그룹으로 차리 매김할 수 있을까
IN 엔터의 신인, 윈썸···올 1월 출격 준비
그건 바로 올해 1월 말에 윈썸이 데뷔를 한다는 기사들이었다.
그와 동시에 데뷔 당일, G-Live를 통해 데뷔 쇼케이스를 한다는 사실 역시 전해졌다.
그리고 며칠 뒤, 타임 테이블이 뜸과 동시에 기다렸던 컨셉 포토가 뜨기 시작했다.
“와, 진심 미쳤다······.”
컨포를 확인한 김설아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두운 밤하늘 배경에 눈이 쌓이듯 새하얀 언덕. 그리고 그곳에 앉아있는 파란 머리의 우세현.
긴 롱 코트를 입은 그의 손에는 금빛 회중시계가 하나 들려있었다. 그리고 그런 우세현의 주변으로 하얀 눈꽃들이 하나둘씩 떨어지고 있었다.
이와 같은 사진에서는 차가움과 신비로움이 어우러져 색다른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었다.
“미쳤어, 미쳤어! 우세현 파머야!”
다른 것보다 그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파란 머리라니, 파란 머리라니!
심지어 색도 예쁘게 잘 나왔다.
너무 진하지도 않고 컨셉과 적당히 어울리게 연한 푸른 빛깔의 색.
이건 정말 됐다 싶었다.
- 미쳤다 윈썸 이게 무슨 일이냐 애들 컨포 진짜 대박
- 컨셉이 뭐지? 뭔가 전체적으로 겨울 분위기인 것 같긴 한데
- 애들 컨포마다 하나씩 회중 시계 있던데 뭐 시간 여행 이런 컨셉이려나?
- 우세현 파머 안지호 빨머 진심 돌앗다
- 우세현 파머 왜 이렇게 잘 어울려? 오늘부터 세현이 흑머파 말고 파머파 간다
그리고 메인 컨포 이외 다른 컨셉의 포토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이번 컨셉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다.
텅 빈 공간의 하얀 벽 배경.
그리고 로마 숫자가 적힌 분침 없는 큰 사이즈의 시계.
멤버들은 그 시계에 기대거나 앉는 등 각자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시간이 정지된 느낌의 정적인 분위기로 연출되었다.
└ 이걸로 시간 컨셉 확정이네
└ 솔직히 첫 컨포 때 회중시계보고 그렇지 않을까 했는데 이렇게 직접 알려주네ㅠㅠㅠㅠ 컨셉 너무 좋다
└ 겨울이랑 시간이라니ㅠㅠㅠ시간을 달리는 소년들 같당 근데 일회용 컨셉이려나?
└ 근데 보니까 세현이랑 선빈이만 모래 시계 같은 거 가지고 있네 얘네만 뭔가 다른가?
└ 헐 진짜 그러네 둘만 모래시계 들고 있어!
[HOT!] 올 1월에 데뷔한다는 IN 엔터테인먼트 신인 남자 그룹 윈썸 (WINSOME) 컨셉 포토.jpg
MOVE Ver.
Still Ver.
└ 헐 ㅈㄴ예쁘다
└ 생각보다 고퀄이네 분위기 있어
└ 와 보정 예쁘게 잘했네
└ 우세현 차선빈 존잘이다 진짜.......
└ 메인 컨셉이 뭐야? 개인적으로 무브 컨셉이 더 예뿌다
└ 컨포 나온 순서로 봐선 메인 컨셉이 무브 맞는 듯
└ 와 우세현 파머 뭐임? ㅈㄴ분위기있네
└ 헐 플온스 애들이네 얘네 이제 나와?
└ 생각보다 밋밋하네
└ 확실히 IN이 부내가 나긴 해
반응이 좋았던 건 팬들 뿐만이 아니었다. 각종 SNS와 더불어 커뮤니티 사이트들에서도 윈썸의 컨포 관련 이야기로 시끌벅적했다.
- 역시 IN이 대형이긴 한가보다 퀄리티가 장난이 아니네
- 다른 건 몰라도 IN은 항상 앨범 제작에는 진심이야ㅠㅠ그건 너무 좋음
- 윗댓 ㅇㅈ 감이 좀 구리긴 한데 그래도 앨범 퀄리티나 무대 같은 곳에는 돈을 아끼지를 않아서 좋음
다른 것보다도 IN 엔터는 앨범을 제작하는 것에 있어서나 무대 세트나 장치에 관련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 편이었다.
그 부분은 다른 대형 기획사들과 비교해도 월등히 앞섰다.
그렇게 예상보다 훨씬 높은 퀄리티의 컨포에 윈썸의 데뷔 앨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이전보다 한껏 올라가있었다.
그리고 그 관심은 마침내 뮤직비디오 티저 영상이 나오면서 정점에 이르렀다.
윈썸 (WINSOME) - 재생 (Reply) MV Teaser
영상의 시작은 별이 수놓인 까만 밤하늘 아래, 오래된 버드나무에 기대어있는 우세현의 모습이었다.
동시에 은은하게 깔리는 시계 분침 소리.
이어서 난로 앞에 앉아 조용히 회중시계를 바라보는 백은찬, 빛나는 캔들을 손에 든 윤도운, 눈이 펑펑 내리는 거리 한가운데 서 있는 차선빈, 눈 덮긴 길 위에서 눈사람을 만드는 신하람과 방에서 홀로 커피잔을 들고 있는 안지호 등 멤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그 영상들 사이에 은은하게 깔리는 미디엄 템포의 곡. 다름 아닌 이번 타이틀곡이었다.
이어서 영상의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떠올랐다.
[WINSOME The 1st mini Album “Zero”
재생 (Replay) 202X.01.31 6PM]
그리고 어느덧 시간을 흘러 마침내 데뷔 날이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