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일단 모르는 척하는 게 낫겠지.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활동도 어느새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있었다.
“오늘 행사 있는 거 알지?”
“아, 그랬었죠.”
“응. 오늘 음방 끝나고 바로 출발할 거야.”
오늘 행사는 인천에서 주최되었다.
그 덕에 이동하기엔 편했다.
지방 행사였다면 이동하는데 좀 어려움을 겪었을 텐데.
우리는 음악 방송 녹화를 끝낸 뒤, 곧바로 인천으로 달려갔다.
행사 라인업 상 당연하지만, 우리보다 연차가 낮은 그룹은 없었다. 그나마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그룹은 이미 알고 있듯이 체이스뿐이었다.
“우리는 두 번째 무대네?”
“응. 그런데 앞서 다른 댄스팀 공연이 하나 있어서 그거 하고 나서 들어간대.”
그리고 행사 장소에 도착한 이후에는 신인답게 곧바로 다른 선배 가수들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당연히 가장 먼저 인사를 드리러 방문한 대기실은 인터니티 대기실이었다.
“안녕하세요!”
“오, 안녕. 우리 진짜 자주 보네.”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긴 건 다름 아닌 김재현이었다. 이어서 인터니티의 다른 멤버들과도 간단하게 인사를 나눴다.
“음악 방송 봤어요. 이번 노래 좋던데요?”
“감사합니다!”
“지한이는 맨날 스트리밍 돌리잖아. 노래 좋다고.”
“저 진짜 윈썸 노래 매일 듣거든요.”
그렇게 잠깐의 대화가 오갔다.
그리고 나중에 한번 다 같이 모이자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그대로 대기실을 나서려는데, 한지한이 그런 우리를 급하게 불러 세웠다.
“아, 잠깐!”
“네?”
“이거 가져가요.”
건네받은 건 도넛 박스였다.
그것도 무려 세 박스.
“마침 도넛이 잔뜩 들어와서. 나눠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감사합니다!”
“맛있게 먹고, 다음에 회사에서 봐요.”
그렇게 우리는 얼떨결에 도넛을 획득했다.
다음에 들린 곳은 블랙엘의 대기실이었다.
같은 소속사 걸그룹인 블랙엘은 해가 넘어가면서 이제 막 3년 차가 되었다.
사실 블랙엘은 평소 회사에서는 물론이고 프로그램을 하면서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다시 말해 엄청 어색하다는 거였다.
하지만 그런 나와 다르게 차선빈과 윤도운은 블랙엘과 나름 친분이 있어 보였다. 일단 둘 다 IN에서 꽤 오래 연습했으니까.
“안녕하세요, 윈썸입니다!”
“안녕하세요. 선빈이랑 도운이는 오랜만이다.”
“안녕하세요, 누나.”
그나마 안면이 있는 차선빈과 윤도운이 먼저 인사를 하고 나섰다.
그리고 잠시 말이 없었다.
아니, 왜 두 사람도 어색해 보이는 거냐.
“음, 그래. 힘내!”
“네! 감사합니다!”
“힘내!”
그렇게 별말 없이 서로 응원만 하다가 결국 대기실을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대기실을 나오기 전에 또다시 불러 세워졌다.
“아, 이거 가져가!”
“네?”
이번에 건네받은 건 귤 한 박스였다.
“우리가 워낙 귤을 좋아해서. 귤이 많거든. 아, 귤 싫어하시는 건 아니지?”
“아뇨, 좋아합니다!”
“그래. 그럼 무대 열심히 해.”
그렇게 우리는 귤 한 박스를 획득했다.
“차선빈이랑 도운이 형은 블랙엘 분들이랑은 안 친해요?”
“그냥 얼굴만 익숙한 정도야.”
“나도.”
“애초에 연습생 때부터 블랙엘 멤버들하고는 대화를 해본 적이 별로 없거든. 아무래도 연습생이 워낙 많다 보니······.”
음, 그렇지. 회사에 연습생이 한둘이 아니긴 하지.
게다가 블랙엘은 다른 그룹들에 비해 각 멤버들의 평균 연습 기간이 짧은 편이었다. 가장 짧은 연습생이 3개월인가 그랬으니.
“그나저나 우리 뭔가를 많이 받았네.”
“그러게요. 이거 다 언제 먹죠?”
“언제 먹긴 뭘 언제 먹어. 어차피 하루면 동날 텐데.”
그건 그랬다.
이후에도 많은 대기실들을 돌았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들리게 된 대기실은 바로 체이스의 대기실이었다. 반년 차이이긴 해도 우리가 엄연히 후배니까.
대기실에 가기에 앞서 안지호의 표정을 잠깐 살펴봤다. 아무래도 전에 했던 말이 신경이 쓰여서.
더럽게 친분이 있다는 그 말.
‘사이가 더럽게 안 좋았다는 거겠지, 그건 아마.’
그렇게밖에 달리 표현할 게 없었다.
그나저나 얼마나 안 좋으면 더러운 친분이라고 하는 건지.
하지만 그런 내 우려와 달리 정작 안지호는 아무런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네? 지금 안 계세요?”
“네. 지금 막 다른 선배 가수 대기실에 인사를 드리러 가서요.”
“아, 네······.”
대기실 순회를 하고 있는 건 체이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긴, 안 할 리가 없지.
결국 우리는 체이스를 만나지 못했다.
사실 은연중에 내키지 않는 것도 있어서 만나지 못한 게 그다지 아쉽지는 않았다.
“얘들아, 이제 슬슬 무대 준비하자.”
얼마 안 돼, 무대에 올라갈 시간이 왔다.
그렇게 우리는 서둘러 무대로 향했다.
* * *
“수고하셨습니다!”
한 곡만 하고 내려오다 보니 정신을 차리고 나니 어느새 공연이 끝나있었다.
더 많은 곡을 하지 못한 건, 아직 곡 수가 모자란 것도 있지만 신인이다 보니 다른 이들보다 적은 시간이 주어진 탓이기도 했다.
“오늘 카메라 많았지?”
“응. 엄청.”
오늘따라 무대 앞에 카메라가 많았다. 흔히 대포라고 말하는 그거.
더불어서 함성 소리도 컸다.
아직 팬라이트 같은 게 없어 구분은 잘 안됐지만, 그래도 다들 우리를 향해 큰 환호를 보내주셨다.
그래도 대기실로 향하는데, 조금 뒤 생각지도 못한 손님이 우리를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바로 체이스였다.
생각지도 못한 방문에 나와 멤버들은 순간이지만 조금 당황했다.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기 때문에.
찾아온 멤버는 체이스의 모든 멤버였다.
그 탓에 대기실이 다소 북적였다.
좁은 대기실이 더불어 더 비좁게 느껴지기도 했다.
“조금 전에 인사를 못 드린 것 같아 직접 찾아왔습니다. 매니저 형한테 들으니 저희 대기실에 찾아오셨다고 하더라고요.”
가장 앞에 있던, 리더인 듯한 멤버가 찾아온 경위에 대해 앞서 설명했다. 말투에서부터 깍듯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해당 멤버는 윤도운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명우진입니다.”
“아, 예. 윤도운입니다.”
“앞으로 자주 볼 텐데, 친하게 지내죠.”
“아, 예.”
“다른 멤버분들도요.”
그러더니 곧 우리에게도 한 번씩 악수를 권했다.
“친하게 지내요.”
명우진이 나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 손을 잡았다.
“네. 그래요.”
“······.”
그러자 잠시 나를 빤히 보는 듯 하더니 이내 아무렇지 않게 옆에 있던 안지호에게로 향했다.
이윽고 안지호에게도 마찬가지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이다.”
“네. 오랜만이에요. 형.”
안지호 역시 웃으며 그 손을 잡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악수했다.
상당히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겉에서 보기에는.
그냥 보기에는 전혀 이상할 게 없어 보이는 상황이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안지호, 성격 좀 죽었네.”]
[“여전히 쓸데없는 짓만 골라서 하네.”]
서로가 서로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건.
이렇게 보니 사이가 안 좋은 게 더 확실히 보였다. 물론 지난 생각을 통해서 그럴 거라 예상한 바이긴 했지만.
체이스의 다른 멤버들 역시 안지호를 향해 저마다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연락 못 한지 꽤 됐었지. 연락처 혹시 바뀌었어?”
“아니. 그대로야.”
“아, 그래? 다음에 시간 날 때 한번 보자. 연락할게.”
“그래.”
평범한 대화였다.
그냥 보면 정말 오랜만에 만난 동료 같은 느낌의.
그렇게 조용히 안지호와 그 멤버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는데, 체이스의 멤버 중 한 명이 그런 내게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세현 씨 맞죠?”
“네. 맞습니다.”
“반가워요. 손태하예요.”
인사를 건넨 이는 체이스의 손태하였다.
나이는 아마도 나랑 동갑, 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확실한 건진 모르겠지만.
“친하게 지내요. 우리 동갑이잖아요.”
동갑이 맞았군.
그런 손태하에 나는 곧 그러자고 답했다.
이후 손태하는 잠시 나를 빤히 쳐다봤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마치 그건 상대를 탐색하는 듯한 눈이었다.
이 그룹 멤버들은 사람을 탐색하는 게 취미인가.
뒤이어 손태하는 곧 다시 나를 보며 아무렇지 않게 생글생글 웃었다.
그리고 얼마 안 돼, 인사를 마친 체이스의 멤버들은 곧바로 대기실을 나설 준비를 했다.
“그럼 다음에 또 봐요.”
“다음에 또 보자, 지호야.”
“응.”
그렇게 대기실의 문이 조용히 닫혔다.
* * *
“지호야, 너 체이스 멤버들이랑 친분이 있었어?”
“지호 예전에 RA 엔터 연습생이었잖아요.”
“아, 맞다. 그랬었지.”
스타일리스트가 그때서야 기억이 난다는 듯 반응했다.
“그런데 사이가 꽤 좋았나봐. 굳이 여기까지 다시 인사도 하러 오고.”
확실히 겉보기엔 그래 보였지.
분위기도 적당히 괜찮았고.
그러니 속사정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정말 은찬이 말대로 금방 친해지겠는데?”
“그러게요.”
스타일리스트와 매니저는 그렇게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그럴 확률은 다소 희박해 보였다.
체이스의 몇몇 멤버들은 안지호 뿐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비슷한 감정을 품고 있었으니까.
[“얘가 우세현?”]
[“얘가 그 우세현이구나?”]
대충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와 마주했던 그 두 사람은.
이렇게 되면, 그냥 우리 그룹 자체를 별로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을 듯 싶다. 물론 모든 멤버가 그럴 거라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정확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 이유 중 하나는 분명 안지호가 속해 있는 그룹이기 때문이기도 할 거다.
근데, 그게 다일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얘들아, 이제 슬슬 대기실 정리하자. 우리 곧 대기실 비워야 해.”
출연진들의 합동 무대 같은 게 없는 터라 이미 무대를 마친 우리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물 필요가 없었다.
빠른 무대와 빠른 퇴근.
대충 그런 거였다.
그렇게 우리는 서둘러 대기실을 비웠다. 오늘 예정된 스케줄은 이게 마지막이었기에 우리는 그대로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가는 동안 멤버들은 모두 피곤했는지 말이 없었다. 그래서 나 역시도 조용히 음악을 들으면서 갔다.
잠깐잠깐 안지호가 신경이 쓰이기도 했는데, 안지호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그저 조용히 음악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체이스에 관한 건 일단 모르는 척하는 게 좋겠지.’
이에 관해 안지호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건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더불어서 티를 내지 않는 것도.
물론 공개된 장소였던 만큼 일부러 티를 내지 않은 거겠지만,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 굳이 파고들 필요는 없어 보였다.
오히려 그게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거니까.
‘나중에라도 어떻게 귀띔이라도 해줬으면 좋겠지만······.’
과연 그럴 때가 올까도 싶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한번은 그냥 먼저 물어볼까도 싶고.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숙소에 도착해있었다. 안지호는 도착하자마자 그대로 아무 말이 방으로 들어가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런데, 그때.
그런 안지호를 향해 백은찬이 물었다.
“야, 안지호. 너 혹시 체이스 멤버들이랑 사이 별로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