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말해봐. 들어줄게.
“안지호, 너 혹시 체이스랑 사이 별로냐?”
“뭐?”
갑작스러운 백은찬의 물음에 안지호는 그대로 가던 걸음을 멈췄다.
“아니, 아까 뭔가 네 표정이 묘하게 이상했던 것 같아서. 체이스랑 인사할 때.”
“표정?”
“응. 너 원래 그렇게 안 웃잖아.”
“······.”
그 말에 안지호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래, 그렇긴 하지.
확실히 평소에 그렇게 안 웃긴 해. 안지호가.
“저도 형 그때 좀 이상했던 것 같았어요.”
“그렇지? 너도 그렇게 느꼈지?”
“네.”
신하람 역시 이에 동조했다.
아무래도 다들 느낀 게 비슷했던 모양이다. 앞서 백은찬은 좀 긴가민가했지만.
“별로. 그리고 너희랑 관련 없는 얘기고.”
하지만 예상대로 안지호는 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다소 꺼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우리 원래 상관없는 얘기 듣는 거 좋아하는데.”
“맞아요. 워낙 투머치토커라서.”
“난 그렇게까진 아니다. 아무튼 상관이 있든 없든 뭔가 있으면 말해봐.”
“그래. 말해봐.”
거기에 조용히 있던 차선빈까지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자 안지호가 앞선 멤버들을 당황스럽단 얼굴로 쳐다봤다.
“···조용히 있다가 갑자기 왜 이래?”
“그럼 거기서 대놓고 물어보리? 그 사람 많은 곳에서? 지호야, 너 체이스랑 사이 별로니 이렇게?”
“관계자도 많은데 그럴 순 없죠.”
그건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대기실엔 우리만 있는 게 아니다.
스텝들도 있고 외부 관계자도 많다.
그러니 거기서 우리끼리 이러쿵저러쿵 떠들 수가 없는 거다.
무엇보다 좋은 얘기도 아니고 안 좋은 얘기일 게 뻔한 얘기를.
거기까지 말하자 안지호는 잠시 고민하는 듯한 기색을 보였다. 음, 이렇게 된 거 역시 그냥 듣는 게 나을 것 같다.
“말해봐. 들어줄게.”
그러자 안지호가 나를 잠시 쳐다봤다. 그리고 끝내 입을 열었다.
“별거 없어. 그냥, 사이가 별로였어.”
“뭐? 그게 다야?”
“응.”
그리고 안지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저 형, 진짜 뭐가 있나.”]
[“진짜로 그냥 사이가 안 좋은 것뿐?”]
이러한 안지호의 모습을 보며 멤버 대부분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정작 본인이 저렇게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주변인들은 뭐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뭐가 이렇게 간단하냐. 사이가 안 좋았다. 그게 끝?”
“그러게요. 뭔가 더 말할 줄 알았는데.”
“애초에 지호는 깊게 말할 생각이 없던 걸지도 모르지.”
도운이 형 말대로 안지호는 원래 이것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그나마 여기까지 알려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나.
“어떻게, 기절이라도 시킬까요?”
“넌 애가 왜 그렇게 극단적이냐? 그리고 기절시키면 어떻게 얘길 들어?”
“아니면 눈이 감기는 순간을 노리는 거죠. 잠이 올락 말락 하는 그 비몽사몽 한 순간!”
“니가 모르나 본데, 안지호는 그런 비몽사몽 한 순간이 없어요. 걘 그냥 곯아떨어져.”
“아, 그래요?”
그건 맞는 말이었다.
“근데 꼭 물어봐야 하는 거야?”
그때 차선빈이 말했다.
“애초에 안지호는 말할 생각이 없잖아. 본인이 얘기하기 싫어하는데, 굳이 말하라고 부추길 필요는 없다고 봐, 난.”
“아···그건 그렇지······.”
백은찬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나 역시도 차선빈과 같은 생각이었다.
본인이 이야기하기 싫다는데, 단순히 궁금하단 이유로 말해보라 재촉하는 건 못 할 짓이었다. 괜히 더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고.
물론 나도 자세한 내막이 어떤지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그건 본인이 말해줄 생각이 있을 때나 물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냥 거기서 멈춰야만 하는 거고.
······라고 생각한 게 불과 10분 전이긴 한데.
앞서 내가 하나 간과한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안지호와 내가 룸메이트란 점이다.
[“괜히 예전 일 생각나네.”]
[“아오, X발 짜증나.”]
안 그런 척하면서도 안지호는 속으로 꽤나 열을 내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 생각이 전부 나에게 들리고 있었고.
[“아, 그깟 퇴출당한 게 뭐라고.”]
퇴출?
그 순간, 생각지도 못한 단어가 나왔다.
퇴출? 퇴출을 당했나? 안지호가?
[“아니, 오히려 퇴출당해서 다행이지.”]
[“그딴 그룹 그냥 안 하는 게 나으니까.”]
‘음······.’
정말로 난 관여 안 하려고 했어.
이대로 그냥 묻어두려고 했다고.
그래, 분명 그랬는데.
여기까지 들어버린 이상, 아무래도 그냥 잠자코 있을 수가 없었다.
“야, 안지호.”
“왜.”
“하나만 묻자.”
그렇게 난 안지호와의 대화를 시작했다.
* * *
“자, 안지호. 이걸 봐.”
“뭐냐?”
“비타민 젤리.”
“하?”
“니가 그렇게 좋아하는 비타민 젤리라고. 지금 이 방에만 산처럼 쌓여있는.”
그리고 나는 곧바로 방 한구석에 쌓여있는 비타민 젤리통들을 가리켰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에 대답해주면, 이 비타민 젤리 준다.”
그런 내 말에 안지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했다.
“그건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 그보다 저기 쌓여있는 거 안 보여? 굳이 니가 안 줘도 많아.”
“관찰력이 안 좋네. 자, 더 자세히 봐. 이거 새로 나온 맛이라고.”
“뭐?”
그 말에 안지호가 크게 반응했다.
그래,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원하면 내 질문에 하나만 대답해라.”
“뭔데.”
생각보다 젤리의 효과가 컸나.
곧바로 수용이냐.
“RA 엔터 때 일.”
“뭐?”
“그때 무슨 일 있었잖아.”
그러자 곧 안지호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나올 줄은 물론 알고 있었지만.
“대답이랑 이거랑 교환하자고.”
“너 지금 협상하는 거냐?”
“응.”
어차피 감정적으로 호소해서는 안 된다, 안지호는. 그냥 말해달라고 해도 절대 말해줄 성격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르고 달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말하니까 새삼 까다롭네.
“나 참, 어이가 없네······.”
“시간 없어. 할 건지 말 건지 빨리 정해.”
그도 그럴 게 이제 곧 12시였다.
12시면 곧바로 곯아떨어지는 사람이 있어서 말이지.
[“우세현정도면, 뭐······.”]
다행히 비타민 젤리의 효과가 어느 정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 뭐, 그게 뭐 별거라고······.”
“좋아. 협상 완료네.”
“그래. 그러니까 빨리 그것부터 내놔.”
이에 나는 안지호에게 젤리를 넘겼다.
안지호는 곧바로 통을 열어 젤리를 하나 꺼냈다.
“별 이야기 없어. 그냥 RA 엔터에 있을 당시 연습생들이랑 사이가 좋지 않았고······.”
“어, 응.”
“그래서 데뷔조에서 퇴출당했다는 이야기니까.”
아니, 이게 어디가 별 얘기가 아닌 거냐.
앞서 나온 예기치 못한 사실에 조금이지만 당황했다.
“그, 사이가 안 좋다는 이유로 데뷔조에서 퇴출을 당했다고?”
“응.”
뭐가 얼마나 안 좋았길래.
“그 당시 데뷔조가 꾸려져 있었고, 나 역시 거기에 포함된 상태였어. 그렇게 연습을 하는데 어느 날 신인 개발팀 팀장님이 그러시더라. 다른 애들이 나랑 팀을 못 하겠다고 했다고.”
“이유는?”
“뭐겠어, 그냥 내가 싸가지 없게 굴어서지. 아, 마지막엔 그러더라. 협동심 같은 게 없어서 난 절대 팀은 못 할 거라고.”
당시 기억이 떠오른 건지 안지호는 순간 허탈하게 웃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난 회사를 나오게 된 거고. 알다시피 그쪽은 체이스로 데뷔를 한 거고. 그게 다야.”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충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이해가 됐다. 그 밖에 자세한 속사정까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생각보다 사이가 훨씬 안 좋았던 모양이네. 단순히 다툰 거 이상으로.’
게다가 다대일이다.
그 인원이 모두 안지호를 퇴출시키는데 찬성을 했다는 얘기고.
‘근데 안지호가 그 정도로 싸가지 없지는 않은데.’
조금 개인주의적인 면이 있고, 할 말 안 할 말 구분 없이 던지고 생각대로 말하는 타입이긴 하지만 그렇게 싸가지 없는 것까지는 아니었다.
게다가 협동심 얘기는 또 뭔지.
뜬금없이 협동심은 왜 나온 거지.
“그럼 그쪽은 너 빼고 그대로 데뷔한 거야?”
“아니. 그건 또 아니더라. 그중에서도 몇 명이 갈렸더라고. 재밌게도.”
“그럼 지금 체이스에서 그때와 관련된 멤버는 몇 명인데?”
“대충 2명 정도.”
2명이라.
체이스는 5인조니까 그 중 2명이네.
그래도 그 당시 인원이 전원 데뷔를 하지 않았다고 하니 그거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야, 안지호.”
“어, 왜.”
“내가 볼 땐, 너 꽤 협동심 있어.”
“뭐?”
“잘 생각해봐. 우리 팀 꽤 합이 잘 맞는다는 소리 많이 듣잖아. 그것도 서로 협동심이 없으면 힘든 거야.”
“······.”
“게다가 너 나랑 요리도 자주 하잖아. 그것도 웬만한 협동 갖고는 안 되는 거다.”
“참 나······.”
안지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그럼 그렇게 말하면 되지, 별걸 다 예를 들고 그러냐.”
“이렇게 많다는 거지. 너의 협동심이.”
“그래, 고맙다.”
그러더니 안지호는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냐. 왜 일어나는 거냐.
“얘기 다 했어. 그러니까 난 잔다.”
“뭐?”
그 말에 곧바로 시간을 확인했다.
무섭게도 12시다.
“야, 안지호. 잠깐만.”
“뭐야, 또 뭔데?”
“지금 이 얘기. 다른 멤버들한테 할 생각은 없어?”
안지호는 잠시 대답이 없었다.
[“말해도 뭔 의미가 있나.”]
“다들 걱정하잖아. 너에겐 의미가 없을지 몰라도 다른 애들한텐 의미 있을걸.”
“뭐?”
“그러니까 그냥 다 털어놓으란 소리야.”
그리고 안지호는 또다시 대답이 없었다.
아무래도 쉽게 판단이 안 서는 모양이었다.
“혹시 아냐. 털어놓으면 너도 좀 화가 좀 내려갈지.”
“······잔다.”
“니가 불 꺼라.”
“······.”
그 뒤로 정말로 불이 꺼졌다.
그리고 불이 꺼지기 직전, 안지호는 이런 생각을 했다.
[“말하고 나니 찜찜한 게 덜 하긴 하네.”]
[“···요리도 협동심이 필요하긴 하지.”]
그 말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작게 웃음이 났다. 그래, 요리에도 필요하다고. 다행히 내가 한 말을 흘리진 않은 모양이다.
그리고 다음 날.
안지호는 정말로 멤버들에게 자신의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어, 그래. 그랬구나······.”
“지호 형이 좀 고생을 했겠네요.”
“그럼 어제 껄끄러울 만도 했겠다.”
앞서 안지호의 이야기를 들은 멤버들은 살짝 당황하면서도 안지호를 향해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리고 그러한 멤버들의 말에 안지호가 귀찮은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굳이 위로해줄 필요 없어. 어차피 다 지난 일이고.”
“야, 그럼 앞으로 체이스한테는 절대 지면 안 되겠다.”
“뭐?”
“그렇잖아. 뭔가 지면 안 될 느낌.”
“갑자기 왜 그렇게 되는데?”
“왜긴. 우린 이제 한 팀이잖아.”
백은찬이 뭘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답했다. 그러한 백은찬의 대답에 안지호는 잠시 가만히 있는 듯 하더니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돌렸다.
“근데 우리 이미 지고 있는 상황인데요?”
“야, 아직 진 건 아니지. 우리가 데뷔가 늦었잖아.”
“그래. 이렇게 된 거 최선을 다해서 따라잡자고.”
그러더니 순식간에 체이스를 따라잡자는 분위기가 됐다. 물론 나 역시도 이에 동참했다. 당연히 따라잡아야지. 아니, 더 올라가야지.
그렇게 한동안 멤버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었다. 개중에는 중요한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잡담이 더 많았다.
그 사이에 있던 안지호도 어제보단 많이 편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단순히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가라앉아있던 텐션도 다시금 점차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언제나와 같이 스케줄을 소화했고, 마찬가지로 연습을 이어갔다.
* * *
그리고 비슷한 시각, 체이스의 숙소.
모여 있기는 하지만 멤버들은 모두 제각기 다른 일에 집중해있는 상태였다.
“안지호, 성격 많이 죽었더라.”
“뭐야, 뜬금없이 안지호?”
“어제 만났잖아. 근데 다시 봐도 여전히 짜증 나긴 하더라.”
그런 이화준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한껏 섞여 있었다.
“이화준, 넌 아직도 안지호 되게 싫어한다.”
“그 새끼가 워낙 싸가지가 없었어야지. 솔직히 그냥 싸가지가 없었으면 이렇게 하지도 않아.”
그러자 이를 듣던 명우진이 그런 이화준에게 한마디 했다.
“그게 언제적 일인데 아직도 그러고 있어. 좋지도 않은 일 계속 가지고 있어봤자 좋을 거 없어.”
“형도 안지호 마음에 안 들어 하셨으면서.”
“그때야 그랬지. 그래도 지금은 다 지난 일이잖아. 옛날 일은 이제 그만 묻어둬야지.”
“······예.”
그 말에 이화준이 곧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수긍했다.
“아, 근데 우세현 말이야. 실물이 더 잘생겼더라.”
“우세현?”
뜬금없는 손태하의 말에 이화준이 반문했다.
“궁금했거든. 잘생겼다고 하도 난리길래. 솔직히 화면빨이 크지 않을까 싶었거든.”
“아아······.”
이화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걔 때문에 저쪽이 자꾸 루트랑 얽히는 거잖아. 기분 더럽게.”
“아, 그거 은근히 신경 쓰이긴 하더라고요.”
“그렇지? 기사도 자꾸 그렇게 나는데, 이쪽 입장에선 짜증이 난다 이거지.”
이화준은 그게 상당히 마음에 안 들었다.
윈썸이 자꾸 루트랑 얽히는 게.
엄연히 루트는 자신들의 직계 선배였다.
그런데 세간에선 윈썸이 루트의 동생 그룹이니 뭐니 해서 자꾸 떠들어댔다.
어떻게 보면 유치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이 바닥에선 잘난 선배를 두는 게 하나의 메리트다.
선배 그룹 이름 하나로 스포트라이트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애초에 소속사도 다른 두 그룹이 자꾸만 얽히는 게 이화준의 입장에선 영 고깝기만 했다.
“게다가 요즘 꽤 잘 나가는 것 같던데. 최근에 기사 난 거 봤어. 1위 했다고.”
“그깟 케이블 1위.”
“그래도 데뷔 일주일만이라더라.”
그 말에 이화준은 더욱 짜증이 났다.
반박할 수 없는 것도 짜증 나고.
“굳이 그런 거 일일이 신경 쓰지 마.”
명우진이 차분한 모습으로 말했다.
“모든 위에는 또 다른 위가 있는 법이야. 우리는 이거 하나만 잊지 않으면 돼.”
“뭔데요?”
“우리가 RA 엔터테인먼트라는 거. 그거 하나만 잊지 않으면 돼.”
그 말을 하는 명우진의 목소리에는 꽤나 자신감이 담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