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오랜만이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조금 특별한 음악 밴드>의 촬영 날이 됐다.
“예능 촬영은 이렇게 빨리 하는구나······.”
“그러게.”
촬영 시간이 꽤나 이른 아침이라 우리는 새벽부터 촬영장으로 이동을 해야 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다른 애들이 우리 뭐 아침 해준다고 하지 않았냐?”
“응. 그랬지.”
윈썸의 첫 예능 출격이라면서 아침 일찍 출근하는 우리를 위해 아침밥을 해주겠다 어쩌고 한 것 같은데 당연하게도 일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음, 익숙해.
잘은 모르겠지만 이 상황, 굉장히 익숙하다.
이후 촬영장에 도착하자마자 피디님을 포함한 제작진분들께 가장 먼저 인사를 드리러 갔다.
“이게 첫 예능이라고 했죠?”
“네.”
“너무 긴장하지 말고요. 윈썸 분들은 부담 없이 그냥 맡은 바만 다 하면 돼요.”
“네!”
부담을 느끼지 말라고 해도 그럴 수가 있나. 오히려 앞선 말이 더 부담이기도 했다. 일단 첫 예능이고, 게다가 공중파이고.
이후 다른 출연자분들에게도 인사를 드리러 갔다.
<조금 특별한 음악 밴드>의 고정 출연자는 모두 6명이었다. 그중 2명이 빠졌으니, 오늘 촬영에 참석하는 고정 출연자는 4명이었다.
출연자의 개인 대기실은 따로 없었다. 대신 대기실을 2개로 나누어 사용하고 있었다.
한 곳은 남성 개그맨인 김무관과 프로그램 MC 롤을 맡고 있는 한성진이 사용하는 곳이었고, 다른 한 곳은 스포츠 선수 출신의 예능인 유중민과 신도하가 사용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일단 첫 번째 대기실부터 가기로 했다. 아무래도 그쪽이 더 연차가 높았던 지라.
“안녕하세요!”
“어, 그래.”
“오늘 한번 잘해 봐요.”
“네!”
대기실 안 김무관과 한성진은 우리를 반겨주는 모습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또 굉장히 바빠 보이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빨리 나가는 게 좋겠네.’
오래 있어봤자 좋을 게 없어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짧게 인사를 드린 이후 곧바로 그곳을 나왔다.
그리고 다음 우리가 향한 대기실은, 바로 신도하가 있던 대기실이었다.
그대로 대기실에 들어서니 스텝들과 함께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는 신도하와 유중민의 모습이 보였다.
‘실제로 마주하려니 좀 뻘쭘하긴 하네.’
애초에 달갑지 않은 건 사실이었으나 이렇게 실제로 만나니 생각했던 것보다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니까, 마치 눈앞에서 얼굴만 아는 형의 친구와 마주한 느낌이랄까. 실제로 형의 친구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대충 그런 느낌이었다.
어쨌든 인사는 해야 하니 서둘러 두 사람을 향해 다가서려 하는데,
그 순간, 신도하와 눈이 마주쳤다.
‘어, 눈이 마주쳤······.’
그리고 그때, 그 사실을 마저 다 인식하기도 전에 날 발견한 신도하가 먼저 이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곧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
순간 나도 모르게 좀 당황했다.
* * *
신도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단순히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신도하는 우릴 꽤나 반기는 듯한 기색이었다.
“오랜만이네.”
“네?”
“세현이 맞지?”
신도하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물었다.
“아, 네. 맞습니다.”
“어릴 때 본 이후로 처음이네. 예전에 너 요만했을 때 도현이랑 같이 몇 번 봤는데.”
“아, 네······.”
그렇지. 어렸을 때 몇 번 봤긴 봤었지.
그렇게 자세히는 기억이 안 난다만.
그런 내 반응을 가만히 지켜보던 신도하가 곧바로 내게 다시 물어왔다.
“어, 혹시 기억 못 하나?”
“네? 아뇨. 기억하고 있어요.”
“그래? 다행이네. 내 기억으로는 그래도 꽤 많이 봤던 걸로 기억하거든.”
꽤···많이 봤었나?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애초에 신도하의 ‘많이 봤다’는 기준이 어느 정도 인지도 모르겠고.
“시간 진짜 빠르다. 예전엔 진짜 작았었는데. 그래서 지금 나이가 어떻게 돼?”
“올해 19살이요.”
“벌써 19살이야? 와, 벌써 이렇게 컸네. 역시 남의 집 애들은 쑥쑥 큰다는 말이 맞나보네.”
그 이후로도 신도하는 넉살 좋은 얼굴로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봤다.
‘근데 왜 이렇게 반갑게 구는 거지.’
이렇게 반가워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오랜만에 만나는 게 꽤나 반갑다는 듯이 신도하는 그렇게 나를 대하고 있었다.
[“시간이 진짜 많이 지났네.”]
생각을 봐도 지금 하는 말과 딱히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그래서 더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안 됐다. 이럴 이유가 없으니까.
“근데 오늘 뭐 맡은 거야?”
“아, 키보드요.”
“키보드. 피아노 칠 줄 안다고 했었지.”
“네.”
근데 ‘칠 줄 안다고 했었지?’
마치 어디서 들었던 것 마냥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 혹시 인터넷에서 미리 찾아봤나.
“그럼 자연스럽게 옆에 있는 잘생긴 친구가 기타겠네요.”
“아, 네!”
백은찬이 서둘러 답했다.
“궁금하네. 어떻게 연주할지.”
“아,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런 내 말에 신도하는 아무 말 없이 잠시 나를 조용히 응시했다. 그리고는 곧 다시 입을 열었다.
“너희는 열심히 할 필요 없어.”
“네?”
“그럼 준비 잘하고, 이따 봅시다.”
그러더니 곧 몸을 돌려 우리에게서 멀어졌다. 우리는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고?
너무도 뜬금없는 말이었다.
순간 잘못 들은 건가 싶을 정도로.
말투마저 꽤나 진지했던 터라 단순 장난이라고 치부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그 말을 한 당사자인 신도하는 어느새 우리에게서 멀어져 자신의 스텝과 바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후 우리는 다른 출연자에게도 마찬가지로 인사를 전한 뒤, 그대로 대기실을 나왔다.
그리고 대기실을 나온 백은찬이 그대로 얼굴에 묘한 미소를 띤 채로 나를 쳐다봤다.
“들었냐?”
“어, 뭘?”
“나 잘생겼다고 해주신 거.”
아, 그거.
그 말에 백은찬은 꽤나 기분이 좋았던 건지 어느새 입꼬리가 잔뜩 올라가 있었다.
“음, 생각보다 보는 눈이 있으신 것 같아.”
“누구? 신도하, 선배님?”
“엉.”
칭찬 한마디에 아주 제대로 넘어갔고만.
“그보다 아까 그건 무슨 의미 같냐?”
“어떤 거?”
“아까 열심히 어쩌고 했던 말.”
“아아······.”
백은찬 역시 그 말이 영 걸렸던 모양이다.
하긴 그럴 만하지.
하지만 나 역시도 그것과 관련해서는 딱히 짐작 가는 게 없었다.
“솔직히 처음엔 그냥 웃자고 한 말인 줄 알았거든? 근데 다시 생각해보면 또 그게 아닌 것 같단 말이지······.”
그렇지. 확실히 웃자고 한 말은 아니었지, 그게.
그래서 능력을 통해 그 의중을 알아보려 했으나 끝내 그것도 실패했다.
왜냐면, 신도하의 생각 또한 앞선 말과 다를 게 없었기 때문에. 정말 그 말 그대로였다.
그래서 그 뜻을 더 알기 힘들었다.
그 사람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서 그 말을 한 것뿐이다.
‘어차피 게스트이니 부담 갖지 말라는 의미에서 한 말인가.’
단순히 생각해보자면 그랬다.
긍정적인 말로 보자면.
하지만 실제로 그게 맞는지는 의문이었다.
“근데 되게 반가워하더라.”
“뭐?”
“신도하 선배님 말이야. 너무 반가워하는 반응이길래 좀 놀랐어.”
그렇지. 새삼 너무 반가워하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더 꺼려지기도 하고.
‘차라리 생각과 행동이 달랐으면 더 알기 쉬웠을 텐데.’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생각과 행동이 같았다.
그래서 더 의중을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지금부터는 정신은 똑바로 차리고 있자고. 게스트이긴 하지만, 우리가 제일 막내니까.”
“그래. 그래야지.”
원래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녹화에 들어가게 되면 여러모로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긴 했다.
‘별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어쩐지 조금 걱정이 됐다.
* * *
잠시 대기 후, <조금 특별한 음악 밴드>의 촬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오프닝 촬영은 당연하게도 특별 게스트 소개였다.
“오늘은 저희 밴드에 특별한 게스트가 나온다고 하죠?”
“아, 그렇죠. 아주 이례적인 일이죠.”
“네. 하지만 이분들이라면, 금방 저희 밴드에 적응해주실 거예요. 그럼 바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윈썸!”
“인사드리겠습니다, Keep in mind! 안녕하세요, 윈썸입니다!”
그러자 곧바로 우리를 향한 패널들의 환영박수가 쏟아졌다.
“이야, 아주 잘생겼네.”
“그러게요. 다들 인물들이 좋네.”
“감사합니다.”
이어지는 잠깐의 토크.
그때 MC 롤을 맡은 한성진이 신도하에게 물었다.
“도하 씨는 어떻게, 윈썸 알고 계신가요?”
“네. 당연하죠.”
“오, 혹시 멤버도 다 알아요?”
“네. 다 알고 있습니다.”
신도하가 자신 있게 말했다.
“역시 아이돌 출신은 다르네!”
“아니죠, 아직 아이돌이죠!”
“아니, 근데 게스트분들이신데 당연히 다 알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잠시 패널들 사이의 대화가 오갔다. 그러다가 화제가 곧 다시 우리에게로 넘어왔다.
“그럼 어떻게 도하랑 윈썸이랑 인사 한번 할까?”
지금 대사는 완벽한 대본이었다.
정말 대본에 있던 그대로.
내 예상으로는 아마 신도하와 우리의 투컷을 의도한 장면일 듯 했다.
“그러지 말고 우리 다 같이 한번 할까요? 우리 프로그램 첫 게스트잖아요.”
하지만 신도하는 능숙하게 이를 넘겼다.
“어, 그럴까? 그것도 괜찮겠네요.”
“그래, 뭐. 다 같이 하자.”
그리고 대본과 다르게 패널 측과 우리는 마주 보며 서로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전했다.
기본적인 프로그램의 진행 순서는 오프닝 이후, 이번에 밴드가 가게 될 행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멤버 선곡 회의를 거쳐 연습의 들어가는 식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특별 게스트가 있었다.
그래서 그사이에 몇 가지 새로운 코너가 추가되었는데, 그건 바로 이번에 나온 우리 앨범 소개와 게스트 개인 곡 공연 시간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우리 앨범에 대한 짧은 소개가 진행되었다.
“그러고 보니 윈썸은 이제 막 데뷔했죠? 어떻게, 신곡 소개 좀 부탁드려요.”
“네! 이번에 나온 저희 데뷔곡 <재생>은요, 몽환적이면서도 감성적인 멜로디라인의 곡으로 한 편의 시와 같은 가사를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곡 소개가 끝난 이후에는 게스트의 개인 곡 공연 시간이 이어졌다. 사전 미팅 때 했던 대로 나와 백은찬은 한 명씩 각자가 준비한 곡을 선보이기로 했다.
먼저 개인곡을 공연할 사람은 나였다.
그리고 연습한 대로 사준의 을 침착하게 연주했다.
“오, 진짜 잘 치는데?”
“이런 말 해도 되나 싶은데, 솔직히 말해서 원 멤버들보다 더 잘하는 것 같은데요?”
다행히 패널들의 반응도 괜찮았다.
그리고 준비한 연주를 마친 뒤, 이제 그만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는데 그런 나를 김무관이 급하게 말렸다.
“잠깐, 잠깐!”
“네?”
뭐지, 대본에 없는 상황인데.
뒤이어 김무관은 나에게 대본에는 없는 갑작스러운 요구를 하나 했다.
“이대로는 좀 아쉬우니까, 어떻게 다른 곡 하나 더 추가로 안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