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같이 한번 열심히 해봐요.
“다른 곡이요?”
“응. 어떻게 한 곡 더 가능해?”
생각보다 연주가 마음에 들었는지 뜬금없이 김무관이 대본에도 없던 추가곡을 요구하고 나섰다.
전혀 예상 못한 상황이라 살짝 당황스러운 게 없지 않아있지만······.
나는 곧바로 다시 키보드 앞에 앉았다.
“네. 한 곡 더 해보겠습니다.”
“오오! 박수, 박수!”
그러자 김무관이 다른 패널들의 호응을 유도하며 분위기를 올렸다.
한창 분위기 좋은데, 여기서 굳이 뺄 필요는 없지. 보통 이럴 경우, 할 수 있다면 무조건 하는 게 좋았다.
괜히 잘못했다가는 신인이 뺀다는 둥, 안 좋은 소리들이 나올 가능성도 있었다. 무엇보다 어려운 요구도 아니었고.
이어지는 나의 선곡은 지난 플온스 개인 PR 때도 한번 연주했었던 라는 곡이었다.
더불어서 그때처럼 노래도 살짝 곁들었다.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지만, 노래도 함께 하면 더 좋을 것 같아서.
하늘 안에 놓여 있는 수많은 반짝임
구름 속을 헤엄치는 하나의 날개
노래가 시작되자 마치 짠 듯이 여기저기서 반응들이 몰려왔다. 아무래도 다들 여기서 노래까지 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그리고 연주는 얼마 안 가 끝이 났다.
이번에도 역시 짧게 1절 정도만.
“와, 노래 진짜 대박인데?”
“이 친구, 건반만 잘 치는 줄 알았더니 노래도 잘하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키보드 앞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더 이상의 추가곡 요청은 없었다.
이후 다시 패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는데, 근처에 있던 신도하가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노래, 정말 잘하네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한마디만 남긴 채로 신도하는 다음 차례인 백은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 사람한테까지 칭찬을 들으니 뭔가 기분이 묘한데.’
전혀 생각을 안 했던 터라 더욱.
게다가 신도하는 루트 때도 그랬지만, 지금까지 최고의 아이돌 보컬하면 많은 사람이 떠올리는 인물 중 하나니까.
백은찬의 공연까지 끝나자, 촬영은 바로 다음 순서로 넘어갔다. 게스트 코너는 끝나고 이제는 원래 하던 포맷대로 진행될 차례였다.
“자, 그럼 이제부터 이번에 여러분들이 가실 행사에 대해서 알려드릴게요.”
다음은 행사 소개 차례였다.
사실 어떤 행사에 갈지는 이미 사전에 들은 바가 있기에 알고 있었지만, 방송인만큼 그래도 어느 정도 리액션을 가미 해줘야 했다.
‘그래도 괜히 티 나게 오버하지 않는 게 좋겠지.’
앞선 패널들은 몰라도 백은찬과 나와 같은 예능 초보의 경우 섣부른 연기는 하지 않는 게 나았다.
······라고 생각했는데.
옆에서 보니 말을 듣기도 전에 이미 놀랄 준비를 하고 있는 백은찬이 보였다. 그, 너무 티 나는 거 아니냐.
“여러분들이 갈 행사는 바로 한마음 벚꽃 축제입니다!”
“허업!”
그러자 크게 놀라는 백은찬이 보였다.
아니, 그렇게 크게 놀라지 말라니까······.
나도 모르게 순간 이 장면은 편집이 됐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꽤나 간절히 생각하고 있었다.
* * *
이번에 <조금 특별한 음악 밴드>가 가게 될 행사는 한마음 벚꽃 축제라는 행사였다.
축제 이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이는 매년 4월 서울에서 열리는 벚꽃 축제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 초청되어 관객들 앞에서 특별 밴드 공연을 선보이게 되었다.
“그럼 이제 선곡 회의 들어가실게요.”
행사가 공개된 이후에는 곧바로 출연진 선곡 회의에 들어갔다. 여기서부터는 되도록 대본을 최소화했다.
이는 리얼리티성을 최대한 살려보겠다는 제작진 나름의 의지였다.
하지만 완전 백지는 아니었다.
제작진은 몇 가지 선곡 후보들을 던져주었다. 그래야 회의가 밑도 끝도 없이 길어지지 않을 테니. 더불어 악보를 준비하는 것에 있어서 용의하고.
[봄꽃을 너에게 - Double F]
[그 계절의 시작 - 이민혁]
[Last Love Song - 페이크]
제작진이 준비한 곡은 총 3개였다.
모두 봄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달달한 분위기의 사랑 노래들이었다. 더불어서 3곡 모두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명곡들이었고.
선곡 회의의 주된 진행은 자연스럽게 MC인 한성진이 맡았다.
“어떤 곡이 좋을까요?”
“늘 하듯이 일단 각자 하고 싶은 곡 하나씩 말해보고 투표로 가자.”
그 말에 나도 잠시 고민을 했다.
어떤 곡이 좋을지.
개인적으로 두 번째 후보곡인 <그 계절의 시작>이 어떨까했다. 난이도도 적당하고, 남자 솔로 가수의 곡이니 보컬이 부르기도 괜찮을 테고.
옆을 슬쩍 보니 역시나 열심히 고민하고 있는 백은찬이 보였다.
[“<봄꽃을 너에게>가 가장 좋은데.”]
음. 백은찬은 <봄꽃을 너에게>군.
이 곡도 나쁘지 않았다.
“이번엔 게스트도 있으니 게스트 의견부터 들어볼까요?”
“아, 그렇지. 그렇게 해야죠.”
당연히 가장 마지막 순서일 줄 알았는데.
어쩌다 보니 가장 먼저 의견을 말하게 되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난 <그 계절의 시작>. 백은찬은 <봄꽃을 너에게>였다.
“의견이 둘로 나뉘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자 신도하가 곧바로 답했다.
“저도 <봄꽃을 너에게>요.”
“도하 너도 봄꽃이야?”
“네.”
신도하 역시 <봄꽃을 너에게>를 택했다.
그러더니 분위기는 순식간에 <봄꽃을 너에게>로 기울었다. 아무래도 분위기상 앞선 곡이 될 듯 싶었다.
조금 아쉬운 감이 있긴 했지만, 이 곡도 좋은 곡이니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리고 그렇게 다른 분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찰나의 순간. 신도하와 눈이 마주쳤다.
좀 놀라긴 했지만, 곧바로 놀라지 않은 척 표정 관리를 했다. 그리고 동시에 신도하의 생각이 들려왔다.
[“그것도 괜찮겠다.”]
그거?
앞뒤가 없어 신도하가 말하는 ‘그게’ 뭔지 제대로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그게 뭐지.
뒤이어 신도하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저 제안하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요.”
“어, 뭔데?”
“이번 공연 말이에요. 보컬 부분, 조금 나눠도 될까요?”
“보컬 부분을 나눈다고?”
“예.”
신도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같이 부르고 싶어서요.”
“같이? 누구랑?”
“세현 씨랑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순간적으로 내 귀를 의심했다.
같이 부른다고?
* * *
“어? 뭐라고? 같이 부른다고?”
“네.”
“이 곡을? 둘이?”
“네.”
아니, 잠깐.
이게 다 무슨 소리야.
갑작스러운 그 말에 잠깐이지만 사고회로가 멈췄다. 그러니까 나랑 같이 부르겠다고 한 거지, 지금?
“마침 게스트도 있는데, 한 번쯤은 나눠서 공연하는 것도 괜찮다 싶어서요.”
“아, 하긴. 그런 것도 신선하긴 하지.”
“항상 똑같은 보컬을 보여드리는 것보다는 새로운 보컬을 가미하는 것도 좋잖아요. 마침 노래 잘하는 보컬도 게스트로 왔고.”
그때 다시 한번 신도하와 눈이 마주쳤다.
“뭐, 우리야 당연히 상관없긴 하지.”
“좋은 아이디어 같긴 하네요.”
“언제 또 게스트가 올지도 모르니 도하 말대로 이런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도 좋다고 봐.”
그리고 신도하의 그 제안에 다들 어느 정도 동의를 하는 듯 했다. 그렇게 서브 보컬을 두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점차 기울자 신도하가 다시 나를 향해 물었다.
“어떻게, 세현 씨는 할 수 있겠어요?”
“네?”
“혹시 못하겠으면 못 하겠다고 말해도 돼요. 할 수 없는 걸 억지로 시킬 수는 없으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일단 거절할 만한 상황과 처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걸 신도하 역시 잘 알고 있을 테고.
지금 분위기는 그냥 내가 ‘네.’ 한마디만 하면 되는 분위기였다. 돌아가는 상황상.
“저야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영광이죠.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래서 일단 해보는 방향으로 갔다.
애초에 못 할 것도 없었다.
곡도 이미 알고 있는 곡이었고, 건반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도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요? 그럼 같이 한번 열심히 해봐요.”
“네.”
그렇게 얼떨결에 신도하와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이건 전혀 생각 못한 레퍼토리지만.
당연히 제작진 측에서도 이러한 제안을 오케이했다. 그렇게 돼도 별문제가 없고 오히려 새로워서 좋다는 게 제작진의 의견이었다.
‘조용히 건반만 열심히 치고 갈 줄 알았는데······.’
어쩌다 보니 노래까지 부르게 됐다. 물론 비중은 적겠지만.
“파트는 대충 이렇게 나누면 될까?”
“아, 네. 전 상관없습니다.”
“그래.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자.”
그렇게 곡 파트를 나누었다.
생각했던 대로 내 비중은 적었다.
예전에 밴드부 시절 때처럼 1절 벌스와 프리코러스, 또 곡 후반에 조금 부르는 정도였다.
아무래도 노래뿐만 아니라 건반을 맡은 나를 배려해 나름대로 부담을 줄여주고자 그런 듯 했다.
“중간중간에도 계속 맞춰서 연습해보자.”
“네. 알겠습니다.”
“밀리지 않게 잘해야겠다.”
“그럴 리가요.”
말도 안 되는 농담을 하시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안 나갔으면 했다.
괜히 몰매 맞을라.
그리고 그렇게 신도하와 함께 노래 연습을 하는 도중 새삼 느낀 게 하나 있었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신도하는 노래를 정말 잘한다는 사실이었다.
단순히 노래만 잘하는 게 아니었다. 그의 노래 속에서는 오랫동안 쌓인 경험 같은 게 느껴졌다.
“근데 이 부분은 바이브레이션을 과하지 않게 하는 편이 나아. 그게 더 깔끔하거든.”
“아, 네. 알겠습니다.”
그래서 연습하는 것에서도 편했다.
부족한 부분을 콕콕 짚어주니까.
확실히 이 사람은 노래를 정말 잘하고, 또 잘 안다.
“그런데 보컬에 건반까지 하려면 연습량이 상당하겠네.”
“아, 괜찮습니다.”
“그래?”
그와 동시에 신도하의 생각이 들렸다.
[“못 하겠다는 말은 안 하네.”]
[“멋모르고 의욕을 부리는 것 같은데.”]
[“연습은 많이 하려나.”]
다소 못 미덥단 식의 말투였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만큼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앞선 말 대로 남들과 다르게 맡은 포지션이 두 개다 보니 그만큼 연습량도 다른 사람의 두 배이기는 했다.
그리고 제작진 역시 그 부분이 걸렸는지 중간중간 그에 대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근데 세현 씨. 정말 둘 다 할 수 있겠어요?”
“아, 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혹시 못하겠으면 바로 말해줘요. 그냥 노래 없이 피아노만 쳐도 되니까.”
“네. 알겠습니다.”
확실히 두 가지를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긴 했다.
‘······근데 못할 것도 없지 않나.’
정말로 연습을 두 배 이상 하면 되니까.
그렇게 나는 신도하와 보컬 연습을 하면서 그게 끝난 뒤에는 곧바로 건반 연습에 들어갔다.
“야, 저녁은?”
“아, 난 좀 있다가 먹을게.”
“밥도 안 먹으려고? 밥은 먹고 해.”
“안 먹을 리가 있겠냐. 나중에 먹는다는 거지.”
밥은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한다.
그게 나만의 철학이었다.
대신 시간은 좀 유동적으로.
그런 나를 보며 백은찬이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몇 번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왜 다시 앉아?”
“너 먹을 때 같이 먹으려고.”
“미쳤냐? 언제 먹을 줄 알고 같이 먹는대.”
“오늘 안에는 먹겠지. 안 먹는 건 아니라며.”
그러더니 다시 기타를 잡는다.
그래도 얘 밥은 먹여야 하는데.
시간을 보니 어느새 8시가 넘어있었다.
다른 출연자들의 경우 진작 퇴근한 지 오래였고, 제작진들도 밥을 먹고 오겠다며 카메라 역시 잠시 꺼둔 상태였다.
‘안 되겠다.’
일단은 백은찬을 데리고 밥을 먹기로 했다. 안 그럼 나 먹을 때까지 진짜 기다릴 것 같아서.
“야, 밥 먹자.”
“어? 지금 먹으려고?”
“응.”
그리고 우리는 밥을 먹고 난 뒤, 다시 연습실로 돌아와 연습을 했다.
그 뒤로는 그야말로 매일 매일이 연습으로만 가득 찬 나날들이었다.
“어, 형 또 연습하러 가는 거예요?”
“응.”
“오늘은 연습 쉬는 날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렇긴 한데, 난 그냥 하려고.”
매일 매일 연습을 하다 보니 연습을 하는 게 이제는 몸에 배버린 상태였다. 이렇게 된 거 그냥 연습해야지. 괜히 쉬었다 가는 밸런스만 깨질 것 같았다.
“어? 뭐야, 우세현 연습 가?”
“응.”
“기다려! 나도 가!”
“너도 가려고?”
“응!”
백은찬이 서둘러 기타를 챙겼다.
어제 피곤하다고 하지 않았나.
그 순간, 기진맥진하던 모습의 어제의 백은찬이 떠올랐다.
“피곤하다면서. 그럼 그냥 쉬어.”
“좀 잤더니! 기력! 회복!”
그래, 어제보단 얼굴이 나아 보이긴 하다만. 그래도 내심 걱정이 되긴 했다.
어쨌든 그날도 결국 백은찬과 함께 연습을 했다. 확실히 아직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야, 밥 먹자.”
“벌써 밥 시간이야?”
“엉.”
곧바로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백은찬은 밥을 먹어야하니.
시계를 보니 어느새 7시였다.
생각해보니 연습을 시작한 이래로는 꽤 일정한 시간에 밥을 먹게 되는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한동안은 거의 스케줄 아니면 연습만을 반복하는 생활을 했다.
노래 연습의 경우 따로 연습 시간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시간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이동 중에라도 연습을 했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연습을 더 해야만 했다.
그렇게 시간은 어느새 흘러 공연 당일.
우리는 마침내 한마음 벚꽃 축제로 향하는 길에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