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86화 (86/413)

86화. 봄꽃을 너에게.

한마음 벚꽃 축제는 매년 4월 초, 서울에서 열리는 행사였다.

이 행사에는 다양한 문화 예술 공연들이 많이 열렸는데, 이번엔 <조금 특별한 음악 밴드> 역시 공연에 참여하게 된 바였다.

“와, 벚꽃 봐.”

행사 장소에 가까워지자 차량 창문 너머로 예쁘게 피어있는 벚꽃나무들이 보였다. 그 밑으로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넌 벚꽃 축제 와 본 적 있냐?”

“아니, 없어.”

“나도 없는데.”

가볼 생각도 못 했다.

음, 근데 이렇게 보니 나중에 형이랑 부모님 모시고 한번 와보고 싶긴 하네. 엄마가 좋아하실 것 같았다.

“근데 내가 벚꽃 축제에서 공연을 하게 되다니.”

백은찬이 새삼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솔직히 그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설령 공연을 하게 되더라도 멤버들과 함께 무대 공연으로 오게 될 줄 알았지, 이렇게 밴드 공연으로 방송 촬영차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이후 공연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촬영 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본 공연에 들어가기 전, 우리는 다른 패널들과 함께 제작진이 마련한 대기실에서 잠시 대기했다.

“아, 떨려! 떨려!”

“중민이 너는 맨날 하는 공연인데 뭐가 그렇게 떨린다고 난리냐.”

“가끔 보면 중민이 형은 진짜 경기에는 어떻게 나갔나 싶다니까.”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지. 게다가 경기 이전에는 연습도 더 철저히 했고.”

“지금도 꽤 하긴 했잖아요.”

“그래도 그때랑은 천지 차이야.”

유중민은 여전히 떨리는지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몇 번 심호흡을 했다.

“안 떨려?”

신도하가 맞은편에 있던 나와 백은찬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래? 무대에서 안 떠는 타입인가 봐.”

“그래도 전 긴장은 좀 하지만, 세현이 얘는 긴장도 잘 안 하는 편이거든요.”

“나도 안 하는 건 아니야.”

“그 정도면 거의 안 하는 거지.”

아닌데.

아무래도 평소 티가 좀 덜 났던 모양이다.

“긴장을 안 하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너무 안 할 필요는 없어. 적당한 긴장감도 무대에서는 어느 정도 필요하니까.”

“네.”

신도하의 그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나를 향해 신도하가 한마디 더 덧붙였다.

“준비 많이 했지?”

“아, 그냥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

그리고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럼 오늘 열심히 하자.”

그 말을 마지막으로 신도하는 다시 다른 패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나름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저 앞으로 있을 공연에 집중해야만 했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악보를 확인하자.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스텝의 스탠바이 요청이 들어왔다. 곧바로 나와 백은찬은 서둘러 몸을 움직였다.

이제는 정말 무대에 올라갈 시간이었다.

* * *

윤하영은 오늘 오랜 절친과 함께 한마음 벚꽃 축제에 놀러 왔다. 그녀에게 있어서 벚꽃 축제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도 그럴 게 애초에 그녀는 ‘벚꽃 축제’라는 것에 그간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축제라고 해도 뭐 별거 있나. 그냥 꽃구경하는 것뿐이잖아.’

사실 이런 건 그냥 분위기를 즐기러 오는 거나 마찬가지라 여겼다. 벚꽃을 보러 온다기보다는. 축제라는 그 분위기 자체를 즐기러 오는 거라고.

그래서 윤하영 역시 그러고자 왔다.

특별한 걸 기대하기보다는 그냥, 이 분위기를 즐기러 왔다고.

축제를 보러 온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친구와 온 사람도, 아니면 가족과 함께 혹은 연인과 함께 온 사람들도 보였다.

그리고 모두 하나 같이 벚꽃 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도 사진이나 많이 찍고 가야지.’

원래 남는 건 사진밖에 없었다. 게다가 주변에 벚꽃 나무가 가득한 만큼 사진 찍기에 이만한 배경도 없었다.

“어, 뭐야? 저기서 뭐 하나 봐.”

“응?”

“저기. 저기만 사람들 엄청 몰려 있잖아.”

저기?

친구가 가리킨 곳을 보자 정말로 그곳에만 사람이 가득했다.

“혹시 뭐 촬영하나? 뭔가 방송 같은 거 하는 삘인데.”

“그러네. 저기 방송차도 있네.”

“SBO? 헐. 진짜로 뭐 촬영하러 왔나 보다.”

하긴 이런 축제에 방송 촬영 하나둘 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지.

“우리도 보러 갈까?”

“어? 촬영?”

“응.”

갑작스러운 친구의 제안에 그녀는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은 정말 잠시였다.

“그래. 우리도 가보자!”

방송, 촬영.

이것들은 모두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밖에 없는 단어였다. 돈 드는 것도 아닌데 구경 조금만 하다가 가지, 뭐.

“아, 무대하나보다.”

“그러게. 누굴까?”

그곳엔 작은 무대가 하나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근처에는 커다란 벚꽃 나무들이 마치 세트처럼 무대를 화사하게 꾸며주고 있었다.

“나온다!”

얼마 안 돼, 그 무대의 주인공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 주인공들은 꽤나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대박, 신도하도 있어!”

“신도하다! 신도하!”

“신도하라고?”

주변 역시 그런 출연진들의 모습에 모두 놀라워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대부분이 아는 사람들이었기에.

그리고 그중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큰 반응을 이끌어낸 건 역시 신도하였다.

“신도하 있네! 하영아, 보러 오길 잘했다!”

“그러게.”

윤하영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신도하를 본 이상, 그것만으로도 여기 온 건 충분히 잘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모르는 얼굴도 있네.’

대부분이 아는 얼굴이었지만, 간혹 모르는 얼굴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건 2명. 6명 중 2명의 얼굴이 무척이나 낯설었다.

“윈썸이다! 윈썸!”

그러던 도중, 앞에 있던 여학생 한 명이 그 두 사람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윈썸?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새로 나온 아이돌 그룹인가.

일단 어려 보이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잘생겼다. 그러한 점에서 아이돌인 게 분명했다.

“저기 혹시 이거 무슨 프로그램이에요?”

“잘은 모르겠고, SBO에서 하는 밴드 예능이래요.”

“아아. 밴드 예능.”

어쩐지 구성이 그럴 듯 싶더라니.

보컬에 키보드, 드럼 등 공연 구성이 딱 밴드 구성이었다.

“시작한다!”

얼마 안 돼, 모두가 기다리던 공연이 드디어 시작됐다. 시작 부분부터 키보드의 선율이 무대 위로 아름답게 울렸다.

‘<봄꽃을 너에게>구나.’

듣자마자 알았다.

워낙 유명한 노래였으니.

그리고 이어지는 목소리.

키보드를 치던 우세현이 조용히 곡의 첫음절을 부르기 시작했다.

‘어? 시작이 신도하가 아니네?’

상당히 의외였다.

당연히 보컬이 부를 줄 알았기에.

‘근데 목소리 좋다.’

그 순간, 우세현의 깔끔하고도 담백한 목소리가 그대로 무대 위로 잔잔히 울렸다. 단순히 목소리만 좋은 게 아니었다. 성량부터 듣는 이의 귀를 사로잡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왜 지금 신도하가 아닌 우세현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 단숨에 이해했다.

고작 벌스인데도 불구하고.

봄꽃이 쏟아지는 이 아름다운 곳에서

예쁜 봄꽃 하나를 너에게 건네고 싶어

너무도 예쁜 그 꽃 하나를, 너에게.

동시에 관객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 환호성 속에는 윤하영 역시 포함되어있었다.

곡의 후렴이 되자, 이제는 신도하가 마이크를 잡았다.

이 하나의 봄꽃이

너에게 봄이 되길

이 하나의 따뜻함이

너에게 따뜻한 봄을 안겨주길

역시 신도하였다.

듣는 내내 노래를 잘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정말 가사 그대로 달달한 봄을 맞이한 기분이었다.

그 밖에도 키보드와 기타를 포함한 베이스, 드럼 등 여러 소리들이 모두 이러한 보컬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정말 보는 이로 하여금 하나의 달달한 봄과 같은 무대였다.

그리고 하이라이트를 지나 무대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쯤, 마지막 소절을 앞두고 우세현과 신도하는 조화롭게 이어지는 짧은 화음을 선보였다.

동시에 관객들의 탄성이 한 번 더 크게 터졌다.

‘와, 진심 미쳤네.’

윤하영은 앞선 무대를 보며 어느새 그렇게 감탄하고 있었다.

뒤이어 짧게 이어지는 드럼 연주.

그리고 그 마지막을 백은찬이 기타로 멋지게 마무리했다.

그렇게 마무리된 밴드의 공연.

그 무대 위로 노래 속 봄꽃과 같이 수많은 벚꽃들이 저마다 살랑거리며 조용히 흩날리고 있었다.

그 순간, 윤하영은 생각했다.

오늘 벚꽃 축제에 오길 정말 잘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 *

그날, 저녁.

무사히 공연을 끝낸 것을 기념하여 스텝과 출연진들이 함께 하는 회식 자리가 열렸다.

백은찬과 나 역시 당연히 그 자리에 참석했고, 회식 장소는 서울에 있는 어느 유명 고깃집이었다.

“콜라? 사이다?”

“저희는 사이다파에요.”

“좋아. 사이다.”

당연히 우리는 음료수.

테이블마다 식사와 함께 술을 곁들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우리 테이블은 전부 탄산음료였다.

“두 사람 모두 오늘 고생 많았어요. 아까 공연, 엄청나던데?”

“감사합니다.”

“둘 다 무대 체질인가 봐. 밑에서 듣는데도 실전이 훨씬 더 잘하더라고요.”

테이블 사이로 스텝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갔다.

“특히 세현 씨는 어떻게 그렇게 노래를 잘해요? 솔직히 한 번 더 깜짝 놀랐어요.”

“저도요. 키보드랑 노래 둘 다 맡아서 처음엔 걱정도 됐는데. 너무 좋던데요?”

들리는 칭찬에 나는 그저 웃어 보였다.

중간에 김무관이나 유중민도 와서 오늘 무대 정말 잘했다며 칭찬을 늘어놓기도 했다.

‘대충 1시간 정도려나.’

앞으로 1시간쯤 지나면 일어서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래도 게스트이고, 또 미성년자이다 보니 그리 오래 있진 않을 것 같았다.

대충 1시간 정도 지나면 매니저 형이 먼저 짐을 챙겨오지 않을까.

“오늘 정말 고생 많았어요.”

옆자리에 앉아있던 신도하가 나와 백은찬을 향해 말했다.

“선배님도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두 사람에 비하면, 이 정도는 별거 아니지. 사이다, 더 마시지?”

“아뇨, 괜찮습니다.”

컵 안에 사이다가 아직 반이나 남아있었다. 그런데 신도하가 그런 나를 마치 의외라는 듯 쳐다보았다.

“선배님?”

“어, 아, 그래.”

뭐지.

“사실 촬영하면서 걱정이 많았는데. 걱정했던 일이 없어서 다행이었어.”

“걱정이요?”

“응. 혹시나 과욕을 부리진 않을까 좀 걱정했거든. 보통 신인이면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욕심을 부릴 때가 종종 있으니까.”

무슨 말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확실히 우리도 그런 부담감을 갖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두 사람은 적절하게 잘하더라고. 참, 신인답지 않게.”

부담감과 과욕이라.

확실히 신인이라면 가끔씩 그런 경우가 있다. 잘하려는 생각 때문에 너무 의욕을 부려 오히려 방송에 안 좋게 보여 지기도 하고.

사실 그 반대의 경우일 경우, 의욕이 없다면서 까이기도 하고. 그러니 그 적절한 밸런스가 필요했다. 다소 어렵지만.

‘혹시 그것 때문에 전에 그런 말을 했던 건가.’

너희는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 말. 이렇게 들으니 얼추 맞아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나저나 연습 많이 했던데.”

신도하가 나를 보며 말했다.

뜬금없는 그 말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 답했다.

“그렇게 말할 정도는 아니에요.”

“충분히 많은 것 같던데. 연습실에 항상 있는 거 봤어. 아, 은찬이도 같이.”

“얘가 원래 좀 연습 벌레 스타일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저도 같이 오래 있게 되더라고요.”

백은찬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연습 벌레는 무슨 연습 벌레.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는 아닌데.”

“맞는데. 너 플온스 때부터 다른 애들한테도 그렇게 불렸었는데 모르고 있었냐?”

처음 듣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불린 기억이 전혀 없는데.

“아무튼 둘 다 열심히 하니까 보기 좋더라고. 괜히 나 신인 때도 생각나고.”

그때 신도하는 잠시 뭔가를 회상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신인 때라. 그러고 보니 형도 신인 때 가리는 거 없이 열심히 뛰었지.

갑자기 그때가 떠올랐다.

“혹시나 나중에 뭔가 도움이 필요한 일 있으면 말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줄 테니까.”

“와, 정말요?”

“당연하지.”

“감사합니다!”

당연히 빈말이 아닐까.

뉘앙스 자체가 딱 그런 뉘앙스여서.

무엇보다 고작 예능에서 한번 만난 사이였다. 그런 불편한 사이에 무슨.

애초에 연락처도 모르는 사이였다.

“아, 그래. 연락처 교환할까?”

······그냥이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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