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87화 (87/413)

87화. 필요할 때 써 먹으라고.

사람 하나, 불빛 하나 없는 고요한 어둠 속의 복도. 그 끝에는 불 켜진 연습실만이 홀로 자리하고 있었다.

‘오늘도 켜져 있는 건가.’

신도하는 곧장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오늘도 연습실 안에는 예상했던 인물이 앉아있었다.

우세현이었다.

근래 이렇게 우세현을 연습실에서 보는 일이 늘었다. 그것도 늦은 시간에.

출연진은 물론이고 촬영 스텝까지 전부 퇴근한 이 시간까지 우세현은 늘 혼자 남아 연습을 했다.

물론 같은 멤버인 백은찬 역시 그런 우세현과 종종 함께였다.

하지만 백은찬이 가끔 먼저 퇴근을 할 때도 우세현은 늘 이곳에 남아 일정 시간을 끝까지 채우고 갔다.

‘열심히 하네.’

이에 신도하는 조금 놀랐다.

생각 없이 과욕을 부리는 건 아닐지 걱정하던 참이었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우세현은 정말로 열심히 연습을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참 놀라우면서도 신기했다. 누군가가 생각나서.

‘너무 과소평가했나.’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줄은 몰랐던 터라 이전의 그의 노력을 의심하려 했던 게 조금 미안해지려던 참이었다.

그때, 맞은편에 있는 연습실에서 다시 한번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들리는 우세현의 목소리.

‘노래, 진짜 잘하네.’

사람 하나 없는 어두운 그 복도에서 신도하는 저 너머에서 들리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홀로 생각하고 있었다.

* * *

“자, 이게 내 번호.”

“아, 네. 감사합니다.”

“은찬이 너도 폰 줘.”

“넵!”

그러려고 한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신도하와 우리는 그 자리에서 서로 번호를 교환하고 있었다. 빈틈 하나 없이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번호까지 교환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사실 신도하와는 오늘 이후로 더 이상 만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방송을 하면서 만날 수야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먼 미래의 일이었고 설령 만나더라도 그냥 인사 한번 하고 말지 않을까 싶었다.

“번호도 교환했으니 앞으로 종종 연락하고 지내자. 혹시 곤란한 일 있으면 말하고.”

“그렇게 말씀하시면 진짜로 해요, 저희!”

“해. 그러라고 준 거니까.”

그래도 말은 그렇게 해도 아무래도 우리 쪽에선 연락을 먼저 하기가 그랬다. 그럴 용건도 없고.

어쩌면 이대로 묵혀둘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상했던 대로 1시간이 조금 넘자 매니저 형이 짐을 가지고 데리러 왔기 때문이다.

이후 제작진분들과 출연자분들에게 먼저 가보겠다는 인사를 전한 뒤, 그대로 회식 장소로부터 나왔다.

* * *

<조금 특별한 음악 밴드>의 촬영이 끝난 며칠 뒤. 인터넷에는 그와 관련된 스포성 글 하나가 올라왔다.

- WIN썸 이번에 밴드 예능 나오나본데

WIN썸 이번에 공중파 밴드 예능 출연하나봄 지난주에 야외 촬영 했대

멤버 전원이 출연하는 건지는 모름

근데 아마 전원은 아닐테고 아마 몇 명만 출연하는 게 아닐까 싶음ㅇㅇ

└ 공중파 예능? ㅁㅊ

└ WIN썸이 벌써 공중파 예능을 찍는다고? 인증 가능?

└ 무슨 신인이 공중파 예능이얔ㅋㅋ너무 구씹인 것 같은데

└ 근데 공중파 밴드 예능이 뭐가 있지? 그런 게 있었나?

└ 있어 목욜 밤에 하는거 밴드 예능이고 거기 ㅅㄷㅎ나옴

└ ㅅㄷㅎ? ㅅㄷㅎ나온다고?

└ ㅅㄷㅎ 가 누군데

└ ㄹㅌ ㅅㄷㅎ

└ 헐 ㄹㅇ?

그리고 그로부터 또다시 며칠 뒤.

회사에서는 우리의 예능 출연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기사를 내었다.

[단독] WINSOME, SBO 예능 <조금 특별한 음악 밴드> 특별 게스트로 출연···뉴 페이스로 팀의 새로운 활력 선사 예고

IN 엔터테인먼트의 신인, WINSOME이 SBO 예능 ‘조금 특별한 음악 밴드’에 출연한다.

IN 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WINSOME의 멤버 세현과 은찬이 특별 게스트로 출연을 확정 짓고 이미 녹화가 진행된 상태다.

‘조금 특별한 음악 밴드’는 김무관, 한성진, 유중민, 신도하, 장민혁, 소진희가 고정 출연하고 있는 SBO 평일 밤 예능으로 다양한 행사를 오가며 그들의 특별한 공연을 선사하는 예능이다.

- 기사 봤어? 윈썸 특밴드 나온대!

- 윈썸 공중파 예능 실화냐ㄷㄷㄷ

- 윈썸 특밴드 나온다고? 실화야?

- 특밴드 누구 나와? 다 나오는 거야?

- 윈썸 세현 은찬 특밴드 나온다고 함

- 근데 특밴드에 신도하 나오잖아

그럼 신도하랑 우세현이랑 만나는 거임?ㄷㄷㄷㄷㄷ

└ ㅁㅊ 그러고보니 그렇네

└ 헐 보는 내가 다 쫄릴 듯

└ 뭔가 어그로 대박 끌릴 것 같은데

- 근데 왜 하필 우세현이 나갔지ㅠ 어그로 끌릴 것 같은데 그냥 다른 멤 내보내지ㅠ

└ 회사만 알겠지 그건

└ 윈썸에서 우세현이 젤 유명하잖아 그러니까 우세현 내보낸거겠지

└ 제작진 측에서 우세현 픽한 걸수도 있음 보통 신인 꽂기 힘드니까

└ 뭔소리야ㅅㅂ 무슨 윈썸에서 우세현이 젤 유명해ㅡㅡ 다 비슷비슷하구만

그렇게 한동안 우리의 예능 출연을 두고 커뮤니티가 잠시 시끄러웠다.

그건 아무래도 공중파 예능인 점이 컸다. 신인이 공중파 예능을 출연하는 건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니까.

게다가 출연진 중에는 신도하가 있기도 했고. 그와 관련해서 이런저런 말이 많았지만, 출연하게 된 이상 그건 내가 다 감수해야 할 부분이었다.

그래도 멤버들한테는 좀 미안했다.

덩달아 눈치를 보게 한 것 같아서.

윈썸이라는 이름을 함께 사용하고 있는 만큼 피해를 줘서는 안 되는 건데.

─ 별 생각을 다 한다. 그보다 넌 방송이 잘 나올지 그 걱정이나 해.

전화 너머로 형이 그런 나를 타박했다.

─ 그렇게 걱정되면, 다른 애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던가.

“그건 좀······.”

─ 왜?

“그냥. 그냥 좀 그렇네.”

당연히 멤버들은 이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은 또 다를 수도 있겠지.

걱정이 되면서도 또 직접 원망을 들은 자신은 차마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참, 쫄보 같다.

─ 무슨 생각하는지 대충 알겠는데, 너무 파고들지는 마. 넌 항상 생각이 너무 많은 게 문제야.

그렇게···많지는 않은 것 같은데.

─ 그래서?

“응?”

─ 촬영은 잘 끝냈고?

“아, 응.”

대충 주어가 생략되어 있는 것 같았다.

정말로 촬영이 어땠는지 묻기도 했지만, 정확히는 ‘신도하와 한’ 촬영은 어땠냐고 묻는 것 같았다.

─ 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하지? 무슨 일 있으면 말하라고 했던 거.

아, 그거.

그거라면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응. 기억하고 있어.”

─ 그래, 뭐. 기억하고 있다면 됐어.

다행히 그럴 일은 없었지만.

사실 근데 그와 관련해서 곤란한 일이 실제로 있었다 해도, 굳이 형에게까지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건 형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이고.

─ 그 밖에 뭐 특별한 건 없었어?

“딱히 없었는데.”

아, 그러고 보니 번호 교환한 것도 말을 해야 하나. 크게 특별한 게 아니긴 한데.

“근데 번호 교환은 했어.”

─ 번호 교환? 누구랑?

“신도하 선배님이랑.”

─ 뭐?

그리고 형은 잠시 말이 없었다.

“여보세요? 끊겼어?”

─ 그럴 리가 있겠냐.

이후 뭔가를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내 내게 다시 물어왔다.

─ 그래서. 뭐라고 하면서 했는데?

“그냥, 도움이 필요하거나 하면 연락하라던데.”

─ 그게 끝이었어?

“응.”

내가 기억하기론 그게 다였다.

응. 맞아.

“근데 그냥 하는 말 같았어. 실제로 연락할 일도 딱히 없을 것 같고.”

─ 그래,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혹시 이용해 먹을 일이 있으면 이용해 먹어.

아니, 갑자기 이건 또 무슨 말이냐.

“뭐야, 갑자기? 그리고 그럴 생각 없는데.”

─ 혹시나 정말로 너한테 필요한 일이 생기면 그러란 말이야. 친하게 지내라는 의미가 아니라.

대충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결국 필요할 때 써먹으란 소리였다.

여전히 안 내키지만.

“생각은 해볼게.”

─ 근데 여기서 확실히 말해두겠는데, 친하게 지내란 의미는 절대 아니다.

“알겠어. 어차피 그럴 생각도 없고.”

─ 그리고 써먹을 때는 써먹기 전에 꼭 읽고 들어가고.

“그건 당연하지.”

─ 좋아.

형이 모처럼 만족스럽단 듯이 말했다.

그리고 형과 조금 더 통화를 하다가 날 찾으러 온 매니저 형에 의해 형과의 통화는 거기서 끊게 되었다.

‘확실히 필요할 때 연락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하지만, 뭐든 그에 따른 대가가 있는 법이었다. 친분이 깊은 것도 아닌데 그저 순전한 호의만으로 선뜻 도움을 줄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더 꺼려지기도 하고.

하지만 만약 정말로 그럴 때가 온다면, 그때는 역시 제대로 파고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그대로 연습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봄기운이 가득한 4월.

어느새 쌀쌀했던 날씨도 조금씩 따뜻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도 역시 우리는 회사에 출근했다. 아, 여기서 말하는 우리는 멤버 전원을 일컫는 게 아니었다.

오늘은 나와 백은찬, 그리고 신하람 만이 신인개발팀 팀장님께 불렸다.

그리고 이렇게 세 명만 모이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우리의 학업과 관련된 문제 때문이었다.

“전학이요?”

“응. 아무래도 너희 셋 다 학교를 옮기는 게 좋을 것 같아.”

현재 나와 백은찬, 그리고 신하람은 각자 모두 다른 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나와 백은찬의 경우 일반고에 재학 중인 상태였고, 신하람의 경우 특성화고에 재학 중이었다.

“아무래도 너희 다 같은 곳으로 다니는 게 회사 차원에서도 관리하기 편하고, 그편이 스케줄 소화하기에도 쉬울 것 같아서.”

“전학은 어디로 가는데요?”

“서울 내담 연예예술학교.”

내담 연예예술학교?

거기라면, 지금 차선빈이랑 안지호가 다니는 그 학교잖아.

“차선빈이랑 안지호가 다니는 학교 아니에요?”

“맞아.”

역시 우리도 거기로 전학 가게 되는구나.

내담 연예예술학교는 다수의 아이돌들과 기획사 연습생들이 재학하는 걸로 유명한 방송예술 고등학교였다.

아무래도 방송 활동을 하면서 다니기 용이하고 예고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많은 아이돌들이 데뷔를 하게 되면, 이곳으로 전학을 가곤 했다.

차선빈과 안지호 역시 이 학교에 재학 중이었는데, 그래서 평소에 두 사람은 늘상 함께 등하교를 하곤 했다.

‘그럼 이제 다 같이 등하교를 하게 되려나.’

사실 데뷔가 확정됐을 때부터 전학은 이미 각오하고 있던 바였다. 아무래도 일반고를 다니면서 활동을 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으니까.

보통 연습생 때까지는 일반고를 다닌다고 해도 데뷔를 하게 되면 학교를 그만두지 않는 이상, 내담 연예예술학교로 대부분 전학을 가는 추세였다.

물론 연습생 때부터 전학 가는 경우도 많고. 사실 이렇게 보면, 난 전학이 좀 늦은 편이었다.

“세현이랑 은찬이는 3학년이긴 하지만, 아직 10개월 정도는 남아있고 하니 되도록 빨리 전학을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럼 전학은 언제 가는데요?”

“그래도 다음 주 내로 가야지. 이미 전학 관련 처리는 회사에서 어느 정도 하고 있었어. 부모님들께도 다 연락드렸고.”

거의 지금 당장 가는 수준이네.

확실히 지체할 이유가 없긴 했다.

앞으로의 활동을 위해서도 그게 편할 테고.

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떠올려지는 이들에.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곧바로 밴드부원 단톡방에 톡을 올렸다. 마침 활동도 끝난 시점이고 하니 시간이 될 때 서둘러 만나고 싶었다.

다행히 해당 주 주말에 모두 시간이 되었고 부원들과 난, 그렇게 모처럼 오랜만에 다 함께 만나게 되었다.

‘모자랑, 마스크면 되겠지······.’

혹시 모르니 모자와 마스크도 챙겼다. 물론 알아보는 사람을 만날 확률은 그리 높지 않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아, 지금 나가?”

“응.”

“잘 다녀와라.”

“응.”

백은찬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스케줄이 없는 날이라 모처럼 다들 한가했다.

“아, 맞아. 점심 먹고 설거지통에 넣어둬. 식탁에 그대로 두지 말고.”

“당연하지.”

“너희 점심으로 뭐 먹는다고 했지?”

“몰라. 아직 안 정했어.”

“밥 먹을 때 자는 애들 다 깨우고. 다른 애들도 밥 먹여야지. 그리고 냉장고에 딸기가······.”

“아! 얼른 가기나 해!”

그렇게 난 백은찬에 의해 그대로 현관 밖으로 밀려 나갔다. 아, 그래. 간다, 가.

“잘 놀다 와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현관문이 닫혔다.

그리고 나 역시도 곧바로 약속 장소로 서둘러 발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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