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88화 (88/413)

88화. 오늘은 내가 쏠게.

“어어, 야! 여기야, 여기!”

박준희가 나를 향해 크게 팔을 휘저었다.

그런 박준희의 맞은편 자리에는 장민준이 앉아있었다.

“미안. 늦었지?”

“아니. 아슬아슬하게 세이프다.”

“아쉽네. 1분이라도 늦었으면 튀김도 쏘라고 하려 했는데.”

“튀김도 그냥 쏠게.”

“오.”

오늘 우리가 만난 곳은 학교 근처에 있는 어느 분식점이었다. 이 분식점은 학생들 사이에서도 꽤 유명했는데, 다른 게 아닌 맛으로 유명했다. 맛 하나는 진짜 기가 막힌다고.

그래서 우리 학교 학생이라면, 이 분식점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유명했고, 또 항상 사람들로 붐볐다.

“오늘은 근데 평소보다 사람이 덜 하다.”

“그러게. 토요일이라 그런가벼.”

“토요일에 와서 다행이네. 아니면 자리도 없을 뻔.”

“근데 왜 이승준은 안 와?”

“이 새끼는 늦는 게 취미잖아.”

아, 그랬지.

새삼 오랜만에 느껴보는 익숙함이었다.

그래도 한없이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이승준이 오기 전에 미리 주문을 해두기로 했다.

오늘은 내가 쏘는 것이었기 때문에 종류별로 그냥 다 시켰다. 김밥, 떡볶이, 순대···아무튼 가릴 것 없이 다.

“근데 이거 괜찮겠지? 너희 다 먹을 수 있겠냐?”

“이승준이랑 나는 먹을 수 있어. 우세현, 넌?”

“나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럼 괜찮네.”

밴드 부원들은 박준희를 제외하면 다들 먹성이 좋은 편이었다. 특히 이승준은.

그러고 보니 멤버들도 먹성이 좋은데.

다들 밥은 먹었으려나.

“······.”

“······.”

그렇게 주문을 하고 나자 우리 테이블은 잠시 말이 없었다. 동시에 약간의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오랜만이라 그런가.’

약간의 마가 끼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되기도 하고.

참, 답지 않게.

그리고 그렇게 느끼는 건 나만이 아닌 것 같았다.

[“그, 살짝 어색하네······.”]

[“어, 무슨 얘기를······.”]

우리는 모두 다 같이 어색해하는 중이었다. 근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렇게 만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애초에 4명이 전부 같은 반도 아니었을 뿐더러 평소에도 다 같이 만나는 건 부 활동을 할 때뿐이었다.

그나마 박준희와 장민준은 같은 반이었다. 2학년 때도 3학년 때도. 그러니 두 사람은 서로 어색함이 없겠지만 문제는 나였다.

연습생이 된 이후에는 곧바로 부 활동을 그만둔 데다가 플온스를 하고, 데뷔를 하면서 학교도 제대로 못 나갔으니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건 박준희, 장민준뿐만 아니라 이승준과도 마찬가지였고.

‘어색하긴 하네······.’

다들 괜히 앞에 있는 물 잔만 들었다 놨다 하는 중이었다. 안 되겠다, 뭐라도 얘기를 해봐야지.

“그, 더 비싼 곳에서 먹어도 됐는데.”

“어? 비싼 곳?”

“응. 내가 쏘기로 했잖아.”

“아, 우리는 걍 질보단 양으로 승부하기로 했어. 어차피 여기 떡볶이 맛있고.”

“그럼 그럼. 양이 최고지.”

“이 자식은 제일 먹지도 않으면서 무슨 양이 최고래.”

“야! 나도 양으로 채우고 있는 거야!”

“그래. 많이 먹어. 더 시켜도 되고.”

“안 그래도 그러려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다 같이 또 한 번 물을 들이켰다. 아직 떡볶이는 먹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목이 탔다.

[“다른 말, 뭐 더 할 거 없나······.”]

[“어색하니까 괜히 물만 먹게 되네.”]

능력이라도 잠시 꺼둘까.

속마음을 읽으니 오히려 더 어색해지는 것 같았다.

“야! 나왔어.”

“어? 이승준 왔다.”

“야! 빨리 와!”

그리고 마침 타이밍 좋게 이승준이 도착했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마찬가지로 분위기도 전보다 조금 업됐다.

이어서 우리가 주문했던 음식들도 나왔다. 먹으면서는 마치 짠 듯이 다들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일단 떡볶이가 너무 맛있었다.

맛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오랜만에 먹으니 더 맛있는 것 같았다. 나중에 멤버들이랑 한번 올까. 아, 근데 사람이 많아서 힘들려나.

“아, 배부르다.”

“야, 아직 배부르면 안 돼. 더 남아있는 거 안 보이냐?”

“난 내 몫을 다한 거야.”

“그래, 이 자식은 지 몫은 다했어.”

그리고 접시가 하나둘 비워져 가면서 잠시 끊어졌던 대화도 점차 다시 시작되었다.

“그래서 그때 이승준이 엄청 난리였잖아. 악보가 없어졌다고 하면서······”

“아, 맞아! 그때 한바탕 완전 난리였잖아. 다 같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악보 찾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리고 다들 즐거워 보였다. 부원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나 역시도 좋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씁쓸한 게 없지 않아있었다. 왜냐면, 대화의 대부분이 내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에.

근데 이건 당연했다.

아무래도 나는 이제 이전처럼 같이 학교 생활을 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은 너무나도 당연한 거였다. 아쉬울 것도 없이 그냥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나 그거 봤는데.”

“뭐?”

“우세현 나오는 거. 너튜브에서. 뭐지, 우세현을 이겨라였나? 그거.”

아, 자컨 말하는 거구나.

얼마 전, 지난 시간 술사 자컨 2편이 공식 채널에 업데이트된 바가 있었다.

“그거 봤는데, 재밌더라고. 생각해보니까 진짜 우세현이 가위바위보를 잘하긴 했지 싶고.”

“맞아. 근데 넌 어떻게 그렇게 가위바위보를 잘하냐?”

“어, 그냥. 뭐.”

“그냥 눈치가 빠른 거 아냐? 얘가 원래 예전부터 어디서든 눈치가 좀 빨랐잖아.”

“그건 그래.”

부원들 모두 그에 공감한다는 듯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동안 대화가 계속됐다.

물론 모르는 이야기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나도 알고 있는 이야기들도 있었고, 옛날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다.

모르는 이야기를 할 때도 부원들은 이따금씩 나를 배려해 다른 이야기로 은근슬쩍 흐름을 바꾸기도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자 어색했던 분위기는 처음보다는 많이 풀려있었다.

“다음엔 어디 갈까? 피시방? 노래방?”

“둘 다 괜찮은데. 피방부터 갈까?”

“좋아, 그럼 일단 피방부터 가자.”

배를 채우고 난 다음에는 피시방에 가기로 했다. 피시방 역시 우리가 자주 가던 곳으로 지금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그리고 계산을 하고 부원들과 함께 분식점을 나서려고 하는데 그 순간, 카메라 셔터음과 같은 소리가 등 뒤로 작게 들려왔다.

찰칵!

곧바로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한쪽 테이블에 앉아있던 여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여학생은 아무렇지 않은 척 급하게 폰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친구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봤나?”]

[“눈치챈 거 같은데?”]

아무래도 사진···찍힌 것 같은데.

마스크는 어쩔 수 없이 벗었지만, 그래도 모자는 계속 쓰고 있는 채였다.

그럼에도 알아보는 사람을 이렇게나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뭐해? 가자.”

“어, 응.”

하지만 사진을 찍혔다고 해서 뭔가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막무가내로 달려가 지워 달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만 찍은 거였으면 좋겠는데.’

다른 것보다 그게 좀 걱정됐다.

내가 찍히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다른 애들 얼굴까지 찍히는 건 좀 그랬다.

가끔 사진을 올릴 때 주변인들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도 종종 있곤 했는데, 그러다 보면 얼굴 팔리는 건 순식간의 일이다.

그리고 그런 걱정이 드는 와중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따라붙는 사람이 생겼다.

[“우세현 맞는데. 확실한 거 같은데.”]

분식점을 나온 지 얼마 안 된 시점부터 나를 알아본 여성이 우리 일행의 뒤를 몇 걸음 떨어져 조용히 따라오고 있었다.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은 물론이고, 도중에는 폰까지 들어 몰래 이쪽을 찍고 있는게 느껴졌다. 소리는 안 들렸지만.

‘좀 떨어져서 걸을까.’

사진 찍히는 것보다 앞선 걱정처럼 괜히 나와 엮여 다른 애들까지 사진이 찍힐 수도 있다는 게 영 걸렸다.

고작 몇 미터 떨어진 걸로는 그렇게 티가 안 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앵글이 최대한 벗어나도록 있으면 애들이 찍힐 걱정은 좀 덜할 것 같았다.

“야, 왜 그렇게 혼자 뒤에 있어?”

“아, 잠시 폰 좀 보다가.”

“그러다가 코 박는다.”

그 말에 그냥 웃어 보였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따라올 생각이지.’

이대로 피시방 안까지 따라 들어오는 건 아닐지 좀 걱정이 됐다.

차라리 싸인을 요구하는 게 낫지 이렇게 뒤따라오는 식이면 오히려 더 골치가 아팠다.

그리고 걸으면 걸을수록 여성은 나와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나갔다. 이대로라면 곧 말을 걸지도 몰랐다.

[“말 걸어 볼까?”]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였다.

“야, 우세!”

그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앞서가던 부원들이 갑작스레 내 양옆으로 붙어왔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당황했다.

“잠깐, 뭐 하는 거야?”

“니가 너무 느려서. 이렇게라도 해야 빨리 가지.”

“맞아. 우세현 걸음 너무 느리다.”

“그보다 춥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부원들과 난 어느새 일렬로 다 함께 걸어가는 꼴이 됐다. 아니, 갑자기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러냐······.

[“주변이 신경 쓰이나? 아까부터 좀 두리번거리는 것 같던데.”]

[“혹시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나.”]

아······.

그제서야 부원들이 앞서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았다.

내 뒤를 따라오던 여성은 일행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는 순간, 그대로 걸음을 멈추더니 곧바로 말을 거는 것을 포기했다.

[“아, 뭐야. 일행 있었잖아.”]

이후 얼마 안 가 끼어들기 힘든 분위기라 여겼는지 따라오는 것마저 그만두었다. 거기서 일단 한시름 놓았다.

“근데 우리 피방말고 노래방부터 갈까? 보니까 피방보다 노래방이 더 가까워.”

“어? 노래방?”

“응.”

노래방이 더 가까웠었나?

잠시 길을 되뇌어보았다.

“오, 굿 아이디어. 좋다. 노래방부터 가자.”

“그래, 오랜만에 제대로 질러보자.”

[“아무래도 노래방은 우리끼리만 쓰니까 좀 더 낫겠지? 어느 정도 보호도 되고.”]

들리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잠시 고개를 숙였다.

‘일부러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그래도 고마웠다.

그 의미를 알기에 더더욱.

그리고 부원들과 노래방에 도착할 때까지 줄곧 딱 붙어서 갔다. 간혹 너무 붙지 말라며 말이 오가긴 했지만, 그럼에도 부원들은 여전히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노래방에서 3시간을 내리 노래를 불렀고 이후 카페에 잠시 들려 후식까지 먹고 난 뒤 그날 만남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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