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좋아했던 애니메이션 있어요?
오늘 오전부터 컨텐츠 제작사, 라운드필드와의 미팅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 이 미팅의 주요 안건은 앞으로 우리가 진행할 애니메이션 OST, 그와 관련된 사항들이었다.
“다들 혹시 <공간을 이동하는 회귀자>는 본 적 있어요?”
“네. 있어요. 워낙 유명하잖아요, 웹툰이.”
“저도 봤어요! 솔직히 엄청 팬이에요!”
“정말요?”
그 말에 이원영 팀장이 흡족한 미소를 보였다.
컨텐츠 제작사 라운드필드에서는 이번에 한창 <공간을 이동하는 회귀자>라는 애니메이션을 기획하고 있었다.
해당 애니메이션은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것으로 몇 년간 특정 요일 부동의 1위라는 순위를 지키고 있는 유명 인기 웹툰이었다.
나 역시도 이 웹툰을 본 적이 있었다. 물론 매일매일 챙겨보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씩 생각날 때마다 찾아보는 정도는 됐다.
원작 웹툰 <공간을 이동하는 회귀자>는 우연히 어떤 암살 사건에 휘말린 주인공이 빌런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이후 회귀를 하게 되면서 자신을 죽인 빌런을 뒤쫓는 초능력 판타지물이었다.
소재 자체는 다소 평범하지만, 깔끔한 그림체와 속도감 있는 전개, 그리고 중간중간 나오는 터질 수밖에 없는 개그 요소로 인해 10~20대 층에서 꽤나 인기였다.
“이미 알고 있다니 설명할 필요가 줄어서 좋네요. 그래서 본론부터 말하자면, 윈썸 여러분들은 그 애니메이션의 오프닝 곡을 맡게 될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앞선 이원영 팀장의 말대로 해당 애니메이션의 오프닝을 부르게 되었다.
무려 오프닝이었다.
엔딩도 아니고 오프닝!
사실 엔딩도 정말 좋지만, 어렸을 적부터 무수히 많은 애니메이션 오프닝들을 듣고 자란 나로서는 이 애니메이션 오프닝이란 걸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
“이번에 나온 윈썸의 노래들을 쭉 들어봤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곡의 분위기와 목소리들이 아주 잘 맞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바로 섭외 요청을 한 거예요.”
솔직히 아직 미니 앨범 한 장 나온 신인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OST 섭외가 들어왔다는 사실이 좀 놀랍긴 했다.
그래서 처음 이 사실을 들었을 때 멤버들이나 나나 그게 정말이냐며 몇 번이고 되묻곤 했었고.
“다들 실력들이 워낙 좋으시니까 아마 잘 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앞선 이원영 팀장의 말속에는 왠지 모를 확신이 담겨있었다. 꽤나 믿어주시네. 물론 이쪽 입장에선 그래 주면 감사하지만.
이후로는 우리가 부르게 될 OST 곡에 대한 설명과 앞으로 진행될 녹음 스케줄 등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더불어서 엔딩을 부르게 될 아티스트 이야기까지.
그리고 얼마 안 돼, 그날 미팅은 빠르게 끝이 났다.
“애니메이션 오프닝이라니. 와, 뭔가 신기하고 그렇다.”
“그렇지. 그리고 그게 <공간을 이동하는 회귀자>인 것도 신기하고.”
그리고 애니메이션 OST 소식에 신이 난 건 나만이 아닌 것 같았다. 다른 멤버들 역시 숙소로 돌아가는 내내 신이 난 듯 그와 관련해서 떠들었다.
“예전에 그 소년만화들 오프닝들 진짜 좋아했었는데. 형들은 무슨 오프닝 제일 좋아했어요?”
“난 당연히 배 타고 모험하는 만화지.”
“맞아! 나도 그거 좋아해. 그건 아직도 레전드라고 불리잖아.”
“그거 말고 그것도 있어요. 섬에서 모험하는 만화.”
“아, 그것도 좋지.”
그 밖에도 다양한 만화들이 나왔다.
아무래도 나이대가 비슷해서 그런지 다들 하나같이 다 아는 만화들이었다.
“난 마법사 솔트도 좋아했는데.”
“엥? 그건 뭐야?”
그런 차선빈의 말에 백은찬이 되물었다.
마법사 솔트!
그거 재밌지.
“나도 그거 알아. 그거 감정 모으는 만화 맞지?”
“응. 맞아. 너도 이거 알아?”
“응. 예전에 봤었어.”
그것도 참 재밌었는데.
마찬가지로 오프닝 곡도 좋았다.
“아, 근데 우리 이거 스포 해도 되나?”
“스포?”
“엉.”
스포라. 조금이라면 상관없지 않을까.
“너무 대놓고는 말고 살짝만 하자.”
“좋아. 그럼 공식 계정에······”
“은찬이 말고 세현이가 하는 걸로 하자.”
“엥? 왜요!”
“넌 왠지 파격적으로 할 것 같아.”
“흠······.”
이에 백은찬 역시 적정선을 조절하는 게 힘들겠다 싶었는지 곧바로 나에게 어서 올리라며 재촉을 해댔다.
‘그보다 어떤 식으로 해야 하나.’
하지만 어떤 식으로 할지 고민이 되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스포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건데. 적절한 선에서 멈추는 거.
‘대충, 이 정도면 되겠지.’
그리고 나는 짧은 고민 끝에 공식 계정에 글을 하나 올렸다.
“올렸어?”
“응.”
“오, 보자 보자.”
WINSOME @WINSOME_INENT
여러분, 혹시 어렸을 때 좋아했던 애니메이션 있어요?
“괜찮은데?”
“그러게요. 딱 적당하고.”
“근데 왜 태그는 안 달았어? 니 이름.”
아, 까먹었다.
스포에만 집중하다 그만.
그리고 글을 올린 지 얼마 안 돼, 이에 대한 답 댓글들이 줄줄이 달리기 시작했다.
└ 애니메이션? 지금 애니메이션 봐?
└ 나는 탐정 애니메이션!
└ 애들 지금 애니메이션 보나보다ㅠㅠ
└ 근데 이거 누가 올린 거야?
예상했던 대로 댓글에는 꽤 많은 애니메이션들이 언급됐다. 그와 동시에 그나저나 이 게시글은 도대체 누구냐는 글이 만선을 이루었다.
“얘들아, 도착했어.”
때마침, 숙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차에서 내리기 전, 서둘러 댓글을 남겼다.
└ @ #세현이에요
그러자 다시 한번 댓글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고, 그걸 미처 다 확인하기도 전에 난 서둘러 차량에서 내려야만 했다.
* * *
이원영 팀장은 지금, <공간을 이동하는 회귀자>의 OST 가이드를 듣고 있었다.
‘괜찮네. 잘 나왔어.’
곡의 작곡, 작사를 맡은 서찬우 음악 감독이 이번 OST 곡에 앞서 자신감을 표현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팀장님.”
“아, 그래. 미나 씨.”
“이번 부탁하신 자료요.”
같은 제작 팀원인 김미나가 눈앞으로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음악 듣고 계셨어요?”
“응. 이번에 들어갈 OST. 가이드 나왔다고 하길래.”
아, 오에스티.
이에 김미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더불어서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오에스티. 원래 다른 가수가 하는 걸로 계획되어 있지 않았어요?”
“아, 맞아. 초창기엔 그랬었지.”
앞서 말 한대로 기획 초반에는 오프닝 OST 가수 후보 목록에 윈썸이 아닌 다른 그룹이 들어가 있었다.
“원래는 체이스였죠? 기획 당시에는.”
“맞아. 체이스였지.”
그리고 그 그룹은 체이스였다.
제작사 측은 원래 체이스에게 해당 애니메이션의 오프닝 오에스티 제안을 넣으려 했었다.
하지만, 이는 어느 순간 바뀌었다.
체이스에서 윈썸으로.
“갑자기 윈썸으로 바꾸신다고 해서 좀 놀랐어요. 팀장님이 보시기엔 윈썸이 저희 작품에 그렇게 잘 어울렸나요?”
“응. 내가 보기엔 아주 찰떡이었지.”
이원영 팀장이 일말의 고민 없이 답했다.
하지만 김미나는 이러한 이원영 팀장의 선택이 조금 의아했다.
체이스나 윈썸이나 아직 신인의 위치인 건 동일했으나 현재 인기는 체이스가 월등히 높았다.
‘그러니 체이스를 쓰는 게 홍보적인 측면에서도 더 좋지 않나.’
거기에 체이스는 실력도 좋았다.
데뷔 초부터 무대를 한번 했다 하면, 엄청난 신인이 나왔다면서 여러 매체에서 한없이 떠들어댈 정도였으니까.
김미나 역시 체이스의 지난 무대들을 여럿 봤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왜 그렇게 언론들이 떠들어댔는지를. 왜 그렇게 하루가 다르게 인기가 상승하는지를.
그만큼 체이스는 무대를 잘했다.
‘근데 뭐, 윈썸도 실력 괜찮으니까······.’
실력이라고 하니 문득 떠올랐다.
사실 윈썸 섭외하기 전까지는 김미나는 윈썸이라는 그룹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섭외하는 과정에서 윈썸에 대해 접하게 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윈썸의 데뷔 무대 역시 찾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걸 보며 느낀 게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와, IN 엔터 이번에 칼 갈았네.’
바로 이와 같은 생각이었다.
확실히 실력적인 면에서 윈썸은 체이스에게 절대 뒤지지 않았다. 오히려 데뷔 무대가 이 정도라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특히 그 멤버가 눈에 띄던데. 그 누구더라. 우세현이었나.’
아마 윈썸의 메인 보컬이었던 것 같다. 처음엔 단순히 비주얼 담당인 줄 알았는데, 노래를 너무 잘해 놀랐던 기억이 있다.
“미나 씨.”
“네?”
“여기요.”
“아, 네.”
김미나는 곧장 다시 자료를 건네받았다.
이어서 이원영 팀장은 듣고 있던 가이드곡을 다시금 재생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보아하니 팀장님은 오에스티에 꽤나 기대를 걸고 계신 것 같은데······.’
그리고 그런 이원영 팀장의 모습을 보니 더욱 궁금해졌다.
과연 이원영 팀장이 기대하는 만큼 좋은 오에스티가 뽑힐 수 있을지. 더불어 그만큼 반응이 나올 수 있을지.
‘나도 나오자마자 들어봐야겠다.’
그 순간, 김미나의 마음속에서도 이원영 팀장과 같은 기대감 비슷한 그 무언가가 조금이지만 피어났다.
* * *
오늘은 <공간을 이동하는 회귀자>의 오프닝 OST 곡 녹음이 있는 날이었다.
이번에 우리가 부르게 될 오프닝 곡의 제목은 ‘Beyond the space’. 공간 너머란 의미로 제목과 유사했다. 더불어서 작중 주인공 능력이 텔레포트이기도 했고.
‘Beyond the space’는 파워풀하면서도 속도감이 두드러진 긴박한 템포의 댄스곡이었다.
곡 내용은 원작 스토리에 기반해 내 앞에 놓인 목표에 반드시 닿고 말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럼 세현 씨, 바로 들어갈게요.”
“네.”
녹음은 늘 하던 것과 다를 게 없었다.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이번 OST의 경우 한미일 버전으로 총 3개의 버전이 나온다는 거였다. 다시 말해 한국어, 영어, 일본어로 녹음을 해야 했다.
그렇기에 다른 언어 버전을 부를 땐 다른 것보다 발음에 더 신경을 써야 했다.
그리고 녹음이 끝나고 난 뒤, 얼마 후.
<공간을 이동하는 회귀자> OST 관련 기사가 났다.
[단독] 윈썸, 인기 웹툰 ‘공간을 이동하는 회귀자’ OST 부른다
한,미,일 동시 방영 예정 신작 애니메이션 ‘공간을 이동하는 회귀자’, 윈썸이 OST에 참여
└ 헐 공간 회귀 오스트에 윈썸?
└ ㅁㅊ 윈썸이 애니 오스트라니
└ 드라마도 아니고 애니 오스트라니 신기하네ㅎㅎㅎ
└ 헉 혹시 애들이 예전에 공계에 애니메이션 말하던거 그거 스포였나?
└ 그러게 미리 스포 알려줬던 건가부다ㅠㅠ전혀 몰랐다ㅠㅠㅠㅠㅠㅠ
└ 나 공간 회귀자 ㅈㄴ 좋아하는데 OST 잘 뽑혔으면 좋겠당
그리고 애니메이션 첫 방송을 앞두고 해당 애니메이션 너튜브 채널에서는 오프닝 OST를 선공개하기로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우리 역시 오프닝이 공개되는 시간에 맞춰 다 함께 모니터 앞에 앉았다.
“이렇게 있으니까 마치 음원 공개 기다리는 것 같네.”
“그러게. 느낌이 비슷하다.”
“근데 이거 음원으로도 발매된다고 했죠?”
“응. 애초에 버전을 3개나 녹음하기도 했고.”
“아, 그거 좀 힘들었어요.”
그리고 오늘 나올 OST 역시 음원 사이트에도 공개될 예정이었다. 나머지 미국, 일본 버전도 마찬가지로 차후에 해당 국가 사이트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노래가 1절만 나온다고 했었나?”
“적절히 섞어서 편집된다고 했을걸요.”
“아, 영상이랑 어떻게 나올지 기대되네.”
그리고 공개 예정 시각인 5시가 가까워져 오던 순간, 앞에 보이던 화면에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30부터 시작하여 빠르게 줄어드는 숫자.
“헉! 이제 10초 남았어요!”
그리고 5시 정각.
마침내 <공간을 이동하는 회귀자>의 오프닝 OST가 선공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