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해외로 촬영하러 갑니다.
“이럴 수가······.”
“이게 1등이야?”
“음······.”
마침내 알게 된 팬클럽명 투표 결과, 그 결과에 멤버들은 저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1등 [멜로우(Mellow)] : 49%
1등!
멜로우가 1등이다!
“멜로우가 1등이네······.”
“당연히 러브썸이 1등일 줄 알았는데!”
“우세현, 그렇게 좋냐?”
“응.”
좋지, 그럼.
팬 분들이랑 생각이 통했는데!
역시 이게 제일 괜찮은 게 맞았어.
“우세현, 신나 하는 것 보소.”
“세현이 형, 아주 입이 귀에 걸렸네.”
“그렇게 좋아?”
다들 그런 나를 보며 한마디씩 던졌다.
어이고, 너무 좋아하는 티를 냈나?
“근데 제일 꼴찌는 뭐냐?”
“위시.”
“······.”
그렇게 안지호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근데 솔직히 멜로우도 괜찮긴 했어. 러브썸 다음으로 멜로우가 괜찮았거든.”
“저도 2등이 그거였어요. 어감도 귀엽고.”
“나도 멜로우 괜찮았어. 마음 다음으로.”
이거 어째 점점 의견이 일치해 져가는 것 같은데.
팬 투표 결과를 기점으로 멤버들의 의견도 점차 일치해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만큼 팬 투표 결과의 힘은 강력했다.
“그럼 이렇게 된 거 멜로우로 갈까요?”
“그래. 세현이 말대로 멜로우로 가자.”
“멜로우 좋지. 멜로우.”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팬클럽 이름은 ‘멜로우’로 결정하게 됐다. 그 뒤로, 팬 매니저님께서 마지막으로 의견을 물어오셨다.
“그럼 다들 이의는 없는 거지?”
“네. 저희 다 멜로우입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준비할게.”
이후, 결정된 팬클럽 이름은 영상을 통해 우리가 직접 공개하는 걸로 방향을 잡았다.
팬클럽 이름이 지어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팬 분들도 분명 다들 기뻐하시겠지.
“영상은 언제 찍는 거예요?”
“오늘 바로 찍자. 오늘 찍고 간단하게 편집해서 올리면 되니까.”
그렇게 우리는 곧바로 팬클럽명이 확정됐음을 알리는 영상을 촬영할 준비를 하게 됐다.
촬영은 회사 내 어느 회의실에서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멤버들과 다 같이 촬영이 준비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준비를 기다리고 있던 와중에, 반대편에 있던 백은찬이 나를 불렀다.
“센스쟁이. 그쪽 말고 이쪽에 앉아.”
“······뭐?”
“그쪽은 좀 잘린대. 이쪽으로 앉으라더라.”
아니, 잠깐.
그거 말고.
“야, 백은찬. 방금 뭐라고······.”
“응?”
“센스, 센스,”
“센스쟁이?”
악!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왜? 센스쟁이라고 하기로 했잖아.”
“아니, 그거 진짜로 하는 거였어?”
“응. 하기로 했잖아. 센스쟁이.”
진짜로 부르는 거였냐.
솔직히 농담 반, 진담 반인 줄 알았다.
당연히 내가 될 줄 모르고 수락한 거기도 했고······.
멜로우가 상위권에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1등까지 할 줄은 몰랐던 터라.
“센스쟁이 형, 어서 와요.”
“세현아, 넌 진짜 센스쟁이야.”
“야, 센스쟁이.”
“······.”
그 뒤로 계속 그렇게 불렸다.
센스쟁이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처음부터 잘못됐어! 이제는 센스쟁이라는 어감 자체가 뭔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센스쟁이 말고 다른 걸 해야 했는데!’
가령,
가령,
가령······.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생각해보니 어떤 걸 했어도 다 부끄러웠을 듯 싶다.
그리고 얼마 뒤, 영상 촬영에 들어갔다.
“네, 오늘은 저희가 중요한 소식 하나를 들고 왔는데요! 어떻게 우리 센스가 좋으신 세현 씨가 말해주시는 게 어떨까요!”
“아, 맞아요. 세현이 형, 센스가 참 좋아요!”
“세현이가 센스가 많아요.”
어느새 난 멤버들 사이에서 공식 센스쟁이가 되어 있었다. 하하. 부끄럽기 짝이 없구나.
그렇게 영상을 찍는 내내 나는 그놈의 센스란 말을 시도 때도 없이 들어야만 했다.
* * *
얼마 뒤, 팬클럽명이 정해졌다는 공지와 함께 우리가 찍었던 영상이 올라갔다.
- 와 우리 팬클럽 이름 생긴 거 실화?
- 우리도 드디어 이름 생겼다!
- 멜로우들 우리 앞으로 오래오래 보자고
- 오늘부터 나 멜로우야
- 멜로우 너무 좋아 흑흑
예상했던 대로 이러한 사실에 팬들은 무척이나 기뻐했다. 정해진 이름에 대한 반응도 나쁘지 않았고.
- 근데 왜 영상에서 계속 애들이 세현이한테 센스쟁이라고 하는 거야?
- 오늘 영상, 유독 애들이 센스라는 단어를 많이 말하는 것 같지 않아?ㅋㅋㅋㅋ
- 오늘따라 왜 세현이한테 다들 센스 좋다고 칭찬햌ㅋㅋㅋㅋ다같이 게임이라도 했뉘?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영상을 본 팬들 사이에서도 그때 그 센스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렇지. 그날 좀 멤버들이 오버해서 막 던지긴 했지. 다들 기분이 좋았던 건지.
“야, 센스쟁이. 짐 다 쌌어?”
백은찬이 다가오며 물었다.
“···왜 아직도 센스쟁이야.”
“왜, 입에 딱딱 붙고 좋잖아.”
안 좋거든.
“아직 안 쌌어. 이제부터 싸려고.”
“헐. 나돈데. 이렇게 된 거 같이 싸자.”
“그래, 뭐.”
이렇게 백은찬과 내가 짐을 싸는 이유는 바로 내일, 일본에 가게 됐기 때문이었다.
당연하지만 촬영을 하러.
그리고 그 촬영의 주제는 포토북 촬영이었다. 데뷔를 하고 나서 처음으로 그룹 포토북이 나오게 되었는데, 지금 계절에 맞게 여름을 주제로 찍게 되었다.
포토북의 촬영 장소는 일본 오키나와였다. 오키나와의 바다를 배경으로 촬영을 한다지. 해외에 나가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다들 해외여행 가본 적 있어요?”
“난 처음이야. 그래서 이번에 여권도 새로 만들었잖아. 봐봐.”
백은찬이 갓 나온 여권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백은찬과 마찬가지로 신하람과 윤도운 역시 이번이 첫 해외여행이었다. 아니, 일하러 가는 거니까 여행이라고 표현하기엔 좀 그렇지만 어쨌든 해외로 나가는 건 처음이라고 한다.
“세현이 형은 해외 가본 적 있어요?”
“응. 근데 최근은 아니고 어렸을 때.”
“어디로 갔었는데요?”
“일본이랑 미국.”
“왜 일본이랑 미국이야?”
“형이 거기서 콘서트 해서.”
내가 해외에 나갔던 이유는 바로 형의 콘서트를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형이 해외투어를 돌 때, 부모님과 함께 루트 콘서트를 보러 간 적이 몇 번 있었다.
형도 볼 겸, 또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가족 여행도 할 겸.
물론 루트는 전 세계에 달하는 많은 투어를 돌았지만, 사정상 그 많은 나라를 다 갈 순 없었고 몇몇 콘서트만 보러 갔었다.
워낙 예전이라 자세히 기억은 안 난다만, 대충 그 분위기가 어땠는지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되게 멋있었는데, 그때.
아무튼 그거 말고는 따로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었다.
“선빈이 형이랑 지호 형은요?”
“난 예전에 호주에 잠깐 살았었어.”
“엥? 차선빈, 너 호주에 살았었다고?”
“응.”
이건 또 몰랐네.
처음 듣는 사실이었다.
“얼마나 살았었는데?”
“6살 때부터 8살 때까지 2년 정도.”
“엄청 어릴 때네.”
“응. 그때 아버지 일 때문에 가족이 다 같이 호주에 잠시 머물렀었어. 그리고 초등학교 들어갈 때쯤, 다시 한국에 온 거고.”
그럼 그 이후에 회사에 캐스팅된 거군. 차선빈이 입사한 게 9살 때쯤이라고 했었지, 아마.
“그럼 선빈이 형, 영어 잘해요?”
“아니, 그 정돈 아니고. 그냥 간단히 대화만 하는 정도. 워낙 어릴 때 잠깐 있던 거라서······.”
“그것만으로도 놀라운데.”
백은찬이 조용히 감탄했다.
“근데 왜 그걸 말 안 하고 다녔어요?”
“딱히 말을 안 하고 있던 건 아닌데······.”
그냥 타이밍이 없던 거겠지.
그래도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됐다.
그나저나 영어가 된다니 부러운데.
“안지호, 넌?”
“난 그냥 방학 때 잠깐.”
“놀러요?”
“뭐, 응.”
그렇군. 놀러 갔었군.
사실 그게 가장 일반적인 이유이긴 하지.
아무튼 다들 저마다의 이유로 해외에 가는 건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멤버들과 이와 관련된 대화를 조금 더 나누다가 급박해진 시간에 각자 다시 짐 싸기에 집중했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공항으로 향했다.
어제 늦게까지 짐을 싸서 그런지 가는 내내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그리고 그건 나만이 아니었던 건지 멤버들 모두 저마다 얼굴에 졸음이 가득했다.
공항에 도착하자 눈앞으로 많은 카메라들이 보였다. 기자들도 있었지만, 대포 카메라도 그에 못지않게 많았다.
‘오늘따라 카메라가 더 많은 것 같은데.’
첫 해외 스케줄이어서 그런지 평소보다도 훨씬 더 많은 수의 홈마가 현장에 와 있었다. 그만큼 현장은 번잡했다.
“얘들아, 앞만 보고 가라. 앞만 보고.”
매니저 형이 이동 도중 우리에게 내내 당부하며 말했다. 매니저 형의 말 대로 어영부영 지체했다가는 괜히 사람만 몰릴 테니 되도록 빠르게 이동하는 게 좋았다.
하지만 출입국 심사대를 지나고서도 우릴 향한 카메라는 아직까지도 그 수가 크게 줄지 않고 있었다.
밥을 먹을 때도, 음료를 마실 때도, 어디서든 카메라는 계속 눈에 띄었다. 그렇다 보니 뭔가를 선뜻 자유롭게 하기 좀 그랬다.
‘그냥 이대로 앉아 있다가 비행기 타는 게 낫겠다.’
가족의 부탁으로 면제점에 간 멤버들도 있었고, 나와 같이 공항 의자에 앉아 있는 멤버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공항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순간 졸음이 쏟아졌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자꾸 아래로 내려갔다.
그렇게 잠시 눈을 감으려 하는데,
동시에 낯선 목소리들이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흘러 들어왔다.
[“세현이 자려나 봐.”]
[“세현이 졸린가 보네.”]
[“귀여워.”]
[“오늘 머리 귀엽다.”]
“아······.”
그걸 듣는 순간 반쯤 감겼던 눈이 다시 번쩍 뜨였다.
“왜 그래?”
옆에 있던 안지호가 그런 나를 향해 물었다.
“어디 안 좋냐?”
“아니, 아니야.”
“얼굴색이 별론데.”
“아니, 그냥 좀 졸려서······.”
순간 깜짝 놀랐다.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목소리들에.
‘피곤해서 그런가······.’
그러려고 한 게 아닌데도 주변에 있던 이들의 목소리가 저절로 흘러들어왔다.
‘안 되겠다. 잠깐 꺼놔야지.’
정신없어지기 전에 서둘러 능력을 꺼둬야겠다 싶었다.
[현재 상태 : OFF.]
‘그래, 이러면 좀 낫겠지.’
그러자 곧 머릿속이 다시 조용해졌다. 새삼 능력을 꺼둘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주변은 여전히 북적였지만, 그래도 조금 전과 같은 목소리들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야, 이거 필요하냐?”
“어, 뭐야. 모자?”
“응.”
안지호가 자신의 모자를 건네며 물었다.
아무래도 내가 주변에 있는 카메라들을 불편해하고 있다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래, 고마워.”
그리고 곧바로 나는 그 모자를 받아들였다. 모자를 쓰면 그나마 표정이 좀 덜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
이후 얼마 안 가 비행기에 탑승했다.
좌석은 놀랍게도 비즈니스였다.
“와, 나 비즈니스 첨 타봐.”
“애초에 넌 비행기가 처음이잖아.”
“아, 맞다. 그랬지.”
“은찬이 형 그새 까먹었나 봐요.”
비즈니스석이 처음인 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라 괜히 신기하고 그랬다. 왠지 의자가 좀 더 푹신푹신한 것 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신인인데 비즈니스라니.
단거리라 가능했던 건가.
“우세현, 넌 자리 어디냐?”
“나, 여기.”
좌석은 티켓에 적혀있는 대로 앉았다.
그러다 보니 멤버들과 붙어 앉지는 못했다. 매니저 형이 사이사이 앉아계시긴 했지만.
‘졸린다······.’
어제 너무 늦게 잤나.
앉자마자 다시 잠이 왔다.
‘단거리긴 해도 조금 자둘까.’
눈 깜빡하고 나면 도착해있겠지만, 그래도 잘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자두기로 했다.
- 툭!
그때, 좌석 옆 통로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 옆을 지나갔다.
‘어, 방금 떨어뜨리고 간 것 같은데.’
곧바로 떨어진 물건을 확인했다.
지갑이었다.
그리고 그 지갑의 주인인 듯한 여성이 눈앞으로 지나갔다.
“저기요.”
“네?”
“이거 방금 떨어뜨리셨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여성은 밝게 웃으며 감사 인사를 전한 뒤, 그대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진짜 자야지.’
그리고 다시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려고 하는데, 그 순간 다시 옆에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
- 툭!
곧바로 다시 눈을 뜨니 통로 옆에서 다시 한번 물건을 줍고 있는 아까 그 여성이 보였다. 그러다 보니 다시 한번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여성은 잠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이내 한번 더 나에게 웃어 보인 뒤, 물건과 함께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 젠장······.’
그 순간, 느낌이 왔다.
동시에 있던 잠이 다 날아갔다.
‘저 사람, 사생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