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94화 (94/413)

94화. 초 여름날의 포토북 촬영 (1)

단번에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조금 전 그 여성이 사생이라는 걸.

처음엔 눈치채지 못했지만, 다음번 여성이 또다시 물건을 흘리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물건을 주우면서도 여성의 시선은 줄곧 이쪽을 향해 있었으니까. 그때마다 싸한 느낌이 들었고.

더불어서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나를 향해 웃는 걸 보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같은 비행기 탑승···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일 때쯤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 이렇게 데뷔하자마자 생기게 될 줄은.

아무래도 너무 무르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뒤이어 나는 곧바로 꺼두었던 능력을 다시 켰다. 혹시나 주변에 사생이 더 있지 않을까 싶어서.

[현재 상태 : ON.]

[“아, 다음엔 뭘 떨어뜨리지. 얼굴 한번 더 보고 싶은데. 나중에 자는 거 찍을까.”]

[“이 자리, 세현이 얼굴 잘 보인다. 이따가 슬쩍 말 걸어볼까.”]

‘대충 두 명···정도인가.’

멀리 있는 좌석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변에서 확인이 가능한 선에 있는 사생은 둘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지금 앉아있는 자리에 대각선에 한 명.

그리고 그 앞에 한 명.

다행히 완전히 앞이나 옆, 뒷좌석과 같은 완전 밀착되어 있는 좌석은 아니었다.

‘그나마 비행시간이 짧아서 다행인가.’

목적지가 일본이다 보니 아마 얼마 안 가 금방 내릴 수 있을 터였다.

다만, 짧은 시간이라고 할지라도 그 짧은 시간 동안 앞선 두 명이 그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생각하는 걸 보면.

“매니저 형.”

“응?”

“저랑 자리 좀 바꿔주세요.”

다행히 옆자리에는 매니저 형들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아직 이륙하기 전. 사생 중 하나가 이용하던 통로를 피해 자리를 옮기고자 했다.

‘대충 이쯤이면 좀 덜 보일 것 같다.’

원래 있던 자리는 거리상이나 위치상 사생들에게 노출이 심한 자리였다. 이렇게라도 옮기니 아까보다 조금 더 거리가 생겼다.

더불어서 다른 멤버들 좌석도 대충 파악을 해봤는데, 다행히 마찬가지로 사생들이 앉아있던 자리와는 거리가 있었다.

“근데 자리는 갑자기 왜?”

“사생이 있는 것 같아서요.”

“뭐?”

이후 이야기를 들은 매니저 형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가시게요?”

“승무원한테. 자꾸 돌아다니는 승객이 있는 것 같다고 한번 얘기하고 오려고.”

곧바로 매니저 형은 근처에 있던 승무원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아까 안지호에게 받았던 모자를 다시 눌러썼다.

자리를 바꾸자 조금 전보다는 안심은 됐다만 이상하게 잠은 오지 않았다. 방금 전 일로 아무래도 신경이 조금 곤두서진 듯 했다.

[“뭐야, 우세현 자리 옮겼어? 아······.”]

[“아, X발. 우세현 그새 모자 썼네. 얼굴 안 보이잖아.”]

저 너머로 한탄의 목소리들이 들렸다.

그리고 그 소리들을 무시한 채로, 난 쓰고 있던 모자를 그대로 좀 더 깊게 눌러썼다.

* * *

2시간의 짧은 비행 이후, 우리는 오키나와 나하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야, 너 얼굴이 왜 그래?”

“어, 왜?”

“되게 피곤한 표정인데. 비행기에서 안 잤어?”

“아니. 조금 잤어.”

사실 거의 못 자긴 했다.

이상하게 잠이 안 와서.

한동안 졸린데 졸리지 않은 그런 이상한 상태였다.

“그나저나 사생 있었다면서.”

“저도 매니저 형한테 들었어요.”

“자리가 세현이 근처였다던데.”

“아, 그래서 못 잤다는 거구나.”

“꼭 그런 건 아니고.”

그러자 백은찬이 차로 이동하는 동안이라도 자라면서 나에게 수면 안대와 목 베개를 건네줬다.

‘잘 수 있으려나.’

하지만 앞선 예상과 다르게 난 그대로 차 안에서 잠들어버렸다. 신기하게도 수면 안대와 목 베개를 하자마자 없던 잠이 쏟아졌다.

또, 평소와 다르게 이동 중 차 안이 조용했던 것도 한몫한 듯 했다.

숙소는 오키나와의 바다가 잘 보이는 어느 호텔이었다. 방 배정은 2인 1실.

룸메이트는 그냥 간단하게 방 키를 배정받을 당시 옆에 있었던 멤버와 쓰기로 했다.

그리고 그 당시 내 옆에 있던 멤버는 차선빈이었다.

차선빈과 룸메가 된 건 처음이었다. 플온스 때도 한 번도 같은 방인 적이 없었으니까.

나머지 방은 백은찬, 윤도운 / 안지호, 신하람이었다.

“도운이 형이 있으니까 못 일어날 걱정은 없겠다!”

“지호 형이 있으니까 못 일어날 걱정은 없겠어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윤도운은 조용히 한숨을 쉬었고, 안지호는 언제나 그렇듯 익숙하게 그저 제 갈 길을 갔다.

그리고 짐을 푼 뒤, 짧은 후식 후 곧바로 촬영장으로 향했다.

이번 촬영 컨셉은 전체적으로 청량함에 중점을 두었는데, 그래서인지 첫날부터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촬영을 하게 됐다.

“날씨 한번 끝내주네.”

앞선 백은찬의 말대로 정말 날씨가 좋았다. 그래서인지 바다도 더 예뻐 보이고.

원래 오키나와가 날씨가 따뜻하다고 하는데 오늘은 따뜻함을 넘어서 후덥지근했다.

“먼저 바다 배경으로 단체샷 찍을게요. 즐겁게 노는 분위기로 움직이시면 돼요.”

그렇게 시작된 촬영.

이렇게 보니 정말로 바다가 반짝반짝했다.

“즐겁게 노는 분위기랬지?”

“네!”

“그럼 이렇게······억!”

“아, 이 형 느리네.”

신하람이 백은찬에게 모래를 던지며 말했다. 이거, 어째 안 좋은 예감이 드는데.

그리고 그 안 좋은 예감은 역시나 맞아들었다. 그 이후 무차별적 모래 싸움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물론 의상은 어느 정도 보존을 해야 하니 슬슬 던지는 정도에서 끝이 났지만, 그래도 그렇게 시작된 모래 싸움은 이윽고 물 뿌리기까지 번져 한동안 나는 이를 정신없이 피해 다녀야 했다.

단체컷 촬영이 끝난 뒤에는 개인컷 촬영이 있었다. 하지만 개인컷 촬영이 시작되기 전까지 중간에 이것저것 겹치는 바람에 그사이 쉬는 시간 텀이 꽤나 길게 잡혔다.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아이스크림?”

“응.”

그런 와중에 차선빈이 뜬금없이 아이스크림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스크림이라. 막상 말하니까 나도 먹고 싶긴 하네.

생각해보니 마침 여기 올 때 편의점 하나를 본 것 같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근처에 편의점이 있긴 한 것 같던데.”

“편의점?”

보아하니 딱 봐도 편의점 얘기에 솔깃한 눈치였다.

“너 갈 거면 나도 가고.”

“응. 가자.”

“알겠어. 그럼 매니저 형한테 한번 물어보고 올게.”

이후 매니저 형을 찾아가 차선빈과 함께 근처 편의점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 가자. 형도 같이 갈게.”

다행히 금방 허락이 떨어졌다.

당연하지만 매니저 형도 동행으로.

“뭐야, 매니저 형이랑 어디 가?”

“편의점.”

“편의점에 왜?”

“아이스크림 사러.”

“저도요! 저도 갈래요!”

아니, 어째 점점 인원이 늘어나는 듯 한데.

그리고 그건 정말 사실이 되었다.

아예 멤버 전원이 가게 됐으니까.

아무래도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다들 아이스크림 생각이 간절했던 모양이다.

“아, 근데 생각해보니 여긴 일본이니까 우리가 먹던 게 없겠구나.”

“그래도 비슷한 것들은 꽤 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거.”

“으악! 민초!”

민트 초코맛 컵 아이스크림을 눈앞으로 들이밀자 그대로 백은찬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댔다. 아니, 왜 그렇게까지 질색하는 거냐.

“이거 맛있는데.”

“맛있다고? 하, 우세현 민초파였네.”

“뭐라고요? 세현이 형, 민초파라고요?”

“응.”

“으악!”

이번엔 신하람이 경악했다.

민트 초코 맛있는데.

“민트 초코 맛있는데.”

어라, 앞선 말은 내가 한 게 아니었다.

어느새 옆으로 온 차선빈이 내가 들고 있던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을 똑같이 꺼내 들었다.

“너도 민트 초코 좋아해?”

“응.”

동지였어!

별거 아니었지만 새삼 기뻤다.

왜냐면, 그간 내 주위에는 죄다 반 민트 초코파들 뿐이었기에.

“차선빈까지?”

백은찬이 마치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경악했다.

“이렇게 된 거 다 물어보자. 야, 안지호. 넌 뭐냐?”

“뭐가?”

“민초파야, 반 민초파야?”

“그게 중요하냐?”

“중요하지! 그럼!”

“그래? 그럼 난 좋아파.”

“아악!”

와, 민초파가 이렇게 많은 거 처음 봤다.

이제부터 민초 같이 먹을 수 있겠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멤버, 윤도운은 민초단도 반 민초도 아닌 중립파였다. 그렇게 싫어하지도,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

그리고 딱 그 취향대로 아이스크림의 종류가 나뉘었다. 나와 안지호, 차선빈은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을, 나머지 세 사람은 초코나 딸기 맛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초코나 딸기를 두고 민트 초코를 먹다니. 정말 문화 충격이 따로 없다.”

“각자 취향은 좀 존중하자고.”

그렇게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든 채로, 촬영 장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세현@#$&*^(*&^@&*!”]

“뭐야, 우세현. 왜 멈춰?”

“어? 아니······.”

앞선 나의 행동에 백은찬은 왜 그러냐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목소리······.’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정확히는 누군가의 생각이.

이에 곧바로 주변을 둘러봤지만, 역시나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야, 빨리 가자.”

“응.”

그렇게 나는 찜찜함을 남겨둔 채로 그대로 백은찬을 따라 촬영장으로 향했다.

* * *

저녁 시간은 좀 한가했다.

촬영 일정이 주로 낮 시간대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녁은 조금 여유롭게 보낼 수 있었다.

물론 그래봤자 호텔에 있어야 했지만.

하지만 어디까지나 시간만 여유로울 뿐. 머릿속은 그다지 여유 있지 않았다.

‘그때 분명 주변에 누가 있었어······.’

아무래도 아까 낮에 있었던 일이 내내 걸렸다. 생각의 내용이 제대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분명 목소리는 들렸다. 보이지 않아서 문제지.

사실 주변에 누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는 그다지 문제가 될 게 없다. 문제는 그 가운데 내 이름이 들렸다는 게 문제였다.

‘혹시 또 사생이 붙은 건가.’

아무래도 지금으로선 그게 가장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것도 그거지만, 이와 관련해서 걸리는 게 하나 더 있었다.

그건 바로 능력의 범위.

보통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기 위해서는 해당 인물과 마주해야만 했다.

다시 말해, 생각의 주체가 눈앞에, 적어도 인식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 경우만 해당됐다.

하지만 이번 경우,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인식조차 되지 않는 대상의 생각이 멋대로 흘러들어왔다.

‘컨디션이 안 좋은가.’

아침 비행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은 게 아닌가 싶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리고 고개를 돌리는데,

순간, 눈앞에 차선빈이 보였다.

홀로 테이블에 앉아있던 차선빈은 뭔가를 열심히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뭐 해?”

“아, 랩 메이킹.”

“랩 메이킹?”

곧바로 나는 차선빈에게로 다가갔다.

“요즘 랩 메이킹 해?”

“응.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그러고 보니 연습생 시절부터 종종 랩 메이킹을 했다고 했었지. 중간중간 바쁜 와중에도 랩 메이킹을 혼자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얼마나 했어?”

“많이 진행된 건 아니고 그냥 라임 짜고 플로우 정도 만들고 있었어.”

“봐도 돼?”

“응.”

건네받은 태블릿에는 꽤 많은 양의 가사들이 담겨 있었다. 그간 꽤 틈틈이 작업을 했나보네.

“다음 앨범에는 직접 만든 랩 정도는 넣고 싶어서.”

“하긴. 이번엔 못 넣었었지.”

“응.”

사실 이번에 넣지 못한 건 그와 관련한 차선빈의 실력이 부족하거나 해서가 아니었다.

사전에 이미 회사가 원하던 데뷔 앨범에 대한 구성이 따로 있었고, 그 구성에 따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참여하지 못하게 된 것뿐이었다.

“혹시 완성되면 나중에 한번 들려줘.”

“응. 그럴게.”

왠지 조만간 차선빈의 랩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작사라······.’

나 역시 연습생 때 몇 번 해보긴 했다. 아무래도 요즘은 작사니, 미디니 해서 연습생 때부터 많이 하는 추세니까. 하면서 나름 재밌기도 했었고.

그렇게 차선빈이 만든 가사를 다시 한번 보고 있는데, 순간적으로 방문 너머로 노크 소리가 작게 들렸다.

- 똑똑.

누구 올 사람이 있었나?

“누구 온다는 말 있었어?”

“아니.”

뭐야, 그럼 누구지.

그리고 나는 그대로 문을 향해 다가갔다.

뒤이어 호텔 문 외시경 통해 상대방을 확인했다.

그러자 눈앞으로 문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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