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초 여름날의 포토북 촬영 (2)
외시경을 통해 본 인물은 다름 아닌 백은찬이었다.
문 앞에 서 있던 백은찬은 그대로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려보더니 우리 쪽에서 아무 대답이 없자 이번엔 벨을 눌렀다.
그리고 곧바로 난 문고리를 잡았다.
“누구야?”
“백은찬.”
문을 열자 그대로 복도에 서 있던 백은찬과 마주했다. 주변을 잠시 살피니 따로 동행 없이 백은찬 혼자였다.
“왜 이렇게 늦게 열어?”
“듣자마자 연 거야.”
백은찬이 자연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왔다.
“뭐 하고 있었어?”
“그냥 있었는데.”
“난 랩 메이킹.”
“오, 랩 메이킹?”
그 말에 백은찬이 호기심을 보였다.
그렇지, 궁금할 만하지.
그리고 백은찬도 마찬가지로 차선빈이 쓴 가사들을 한 번씩 구경했다. 백은찬답게 보는 내내 리액션이 좋았다.
“근데 넌 왜 온 건데?”
“아, 맞다. 까먹고 있었네. 나가자.”
“어딜?”
“바닷가에!”
“바닷가? 지금?”
“엉.”
그 말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창밖을 한번 확인했다.
“어두운데?”
“그게 또 밤바다만의 매력 아니겠냐. 분위기 있잖아.”
“그보다 허락은 맡았어?”
어딘가에 가고 싶다면, 꼭 자신에게 먼저 말해달라는 매니저 형의 당부가 떠올랐다. 우리끼리 갔다가 괜히 곤란한 일에 휘말릴 수도 있고 하니.
“당연히 맡았지. 매니저 형이 같이 가주시겠대.”
백은찬이 당당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일단 다행이긴 하다만.
‘밤바다라······.’
밤바다 분위기가 좋긴 했다.
파도 소리도 좋고, 오늘은 마침 달도 크게 떴고. 어쩌면 별도 보일지도 몰랐다.
그런 걸 생각하면 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낮에 있던 일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조금 고민되는 게 사실이다.
‘매니저 형이 같이 가주신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됐다.
역시 백은찬에게 나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 게 나을 듯 했다.
“야, 가자. 다른 애들도 간다고 했어.”
“뭐? 다른 애들도?”
“엉.”
“누구?”
“다 간다고 하던데?”
다 간다고?
어, 이건 좀 예상 밖인데.
“차선빈, 너도 갈 거야?”
“응. 나도 가고 싶어.”
그럼 정말로 다 간다는 소리네.
이렇게 되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럼 나도 갈게.”
“오, 좋아좋아!”
백은찬은 잔뜩 신이 난 모습이었다.
그렇게 좋냐.
좀 걱정이 되긴 했지만 걱정되는 만큼 같이 가는 게 나았다. 혹여 주변에 사생이 있다면 낮에 그랬던 것처럼 금방 알 수 있을 테니.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그대로 멤버들을 데리고 바로 호텔로 돌아올 계획이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떠오른 게 있었다.
“아, 근데 출구는 일반 출구 말고 다른 곳으로 가자.”
“어? 출구?”
“응.”
종종 그룹이 머무는 호텔 앞에 사생이 몰리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우리의 경우 그렇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신인이고 해외 활동도 아직까지 전무하다보니.
그래서 호텔 로비 역시 그런 것 없이 다소 한산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또 모르니······.’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다른 출구로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조심해서 나쁠 것 없지.
이후 우리는 매니저 형과 함께 호텔에 있는 다른 출구를 통해 다 같이 바닷가에 갔다. 이 저녁에 끌고 나온 매니저 형한테는 조금 미안했지만.
“오호! 바다!”
그 와중에 바다를 향해 가장 먼저 뛰어간 사람은 다름 아닌 매니저 형이었다. 신나신 건가요.
“와, 진짜 좋다.”
확실히 밤에 보는 바닷가는 낮에 보던 것과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다른 것은 바다뿐만이 아니었다. 하늘 역시 낮과는 전혀 달랐다.
그리고 저편에서 모래사장에 홀로 무언가를 적고 있는 신하람이 보였다.
“뭐 적는 거야?”
“윈썸이요.”
“아하.”
신하람은 영어로 ‘WINSOME’을 적고 있었다. 동시에 직접 적은 글씨를 어플로 찍었다.
이후 셀카를 찍거나 서로 사진을 찍어주거나 하는 등 그날 밤에만 꽤 많은 수의 사진을 찍었다.
“오, 우세현. 너 이거 꼭 공계에 올려라.”
“세현이 형, 이 사진 진짜 사진 잘 나왔다.”
“어디? 나도 볼래.”
멤버들이 안지호가 찍어준 내 사진을 보며 저마다 한마디씩 던졌다.
“잘생겼는데 각도까지 좋으니 사진이 아주,”
“이건 진짜 올려야 해. 꼭 올려야 해.”
“지호가 진짜 카메라 다루는 법을 잘 안다니까.”
안지호는 여기서도 발군의 카메라 실력을 뽐냈다. 정말 딱 안지호가 찍은 것만 느낌이 달랐다.
“나중에 잊지 말고 꼭 올려. 너 저번에도 올린다면서 안 올렸더라.”
“아, 그랬었나.”
원래 사진을 잘 안 찍는 편이라서.
그렇지만 이 사진을 올리는 건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 할 듯 했다. 나중에 한번 더 보고 그때도 괜찮다 싶으면 올려야지.
그리고 사진에서부터 시선을 떼는데, 그 순간 눈앞으로 무언가 반짝이는 게 보였다.
‘······카메라?’
마치 카메라 렌즈와 같은 반짝임이었다.
그건 이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더불어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자세히 보니 뭔가 희미한 인영 같은 게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에 조금 더 집중을 하자, 머릿속으로 목소리 하나가 울렸다.
[“아, 세현이 귀엽다.”]
여성의 목소리였다.
나는 곧바로 매니저 형을 불렀다.
“형.”
“응?”
“저기 누가 있는 것 같아요.”
“뭐?”
내 말을 들은 매니저 형은 내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서둘러 몸을 움직였다.
‘대포 사생인가······.’
정황상 그런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안 돼, 매니저 형은 다시 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가봤는데, 아무도 없어.”
“그래요?”
“응.”
그새 사라진 건가.
아무래도 저쪽도 이쪽이 눈치챈 걸 느끼고 빠르게 이동을 한 모양이다.
“뭐야, 왜?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있어요?”
멤버들이 나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근처에 누가 있었던 것 같아.”
“이 근처에?”
“혹시 대포?”
“아마 그렇겠지. 카메라 같은 걸 봤어.”
그러자 멤버들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었다.
“아무래도 그만 들어가는 게 좋겠다.”
매니저 형도 걱정이 되었던 건지 그만 호텔로 돌아갈 것을 권했다. 결국 멤버들과 난 나온 지 20분 만에 다시 호텔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렇게 호텔로 돌아가는 도중,
나는 다시 한번 모래사장 근처를 둘러보았다. 보이는 거라곤 오직 까만 어둠과 모래뿐이었다.
더 이상 들려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우세현, 빨리 와.”
“응.”
그렇게 나는 검게 물든 바다로부터 등을 돌렸다.
* * *
촬영은 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다음 날 촬영은 어제와 다르게 오키나와에 있는 어느 골목길에서 이루어졌는데, 주변은 상점가들로 가득했다.
“듣자 하니 여기 근처에 엄청 유명한 라멘집이 있다던데.”
“어? 진짜? 그럼 오늘 가볼까?”
“좋다. 한번 가보자.”
촬영을 온 김에 근처에 있다는 유명 라멘 맛집도 가보고 더불어서 상점가 구경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도중, 우연히 일본 팬 2명을 만나기도 했다.
“あの···WINSOMEですか?(혹시 윈썸이에요?)”
“아, はい! (네!)”
여기 와서 우릴 알아보는 일본 팬을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우리를 먼저 알아봐 주다니. 상당히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잠깐 이야기를 들어보니 얼마 전 발매되었던 애니메이션 OST, ‘Beyond the space’를 통해 윈썸을 처음 접하게 됐다고. 더불어 그 노래를 굉장히 좋아하신다고 한다.
여기서 어떻게 일본 팬들과의 대화가 가능했냐면, 일본 팬이나 우리나 서로 완벽하게 한본어를 구사한 덕분이었다.
“우타, 매우 스키요. (노래 매우 좋아해요.)”
“하이! 고레카라모 감밧테 쿠다사이! (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 하이! 응원 시마스! (응원할게요!)”
몇 분 안 되는 아주 짧은 대화였다.
어찌어찌 대화를 하긴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의미가 다 통했다는 게 신기했다.
“근데 ‘감밧테 쿠다사이’가 아니라 ‘감바리마스’인데.”
“뭐? 감밧테 쿠다사이 아니었어?”
“그건 열심히 하라는 의미야······.”
“모르겠다. 통했으니까 됐지.”
그건 그랬다.
분명 팬 분들도 바르게 이해하셨을 거야.
아마도.
이후 2박 3일간의 짧은 화보 촬영 일정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는 이전과 같은 상황을 대비해 되도록 멤버들은 자리를 붙여 앉고 그 주변엔 매니저 형들이 앉기로 했다. 그리고 내 옆자리엔 백은찬이 앉았다.
“자, 이거 주마.”
“목 베개랑 안대?”
“엉. 저번에 보니까 잘 자더라.”
음. 그래. 편하긴 했지.
“안대만 줘. 목 베개는 나도 있어.”
“그래.”
그런데 뒤이어 다른 멤버들도 한 명씩 나를 찾아오더니 그대로 뭔가를 하나씩 던져주고 갔다.
건네받은 것은 모자에, 귀마개에, 따뜻한 차 음료 등. 그 밖에도 수면에 도움이 될 만한 여러 가지 것들이었다.
“우세현, 갑분 보부상 됐네.”
“그러게.”
그때 내 상태가 그렇게 안 좋아 보였나?
좀 피곤했던 거 말고는 몸 상태가 그리 나쁘진 않았는데. 왠지 과하게 걱정을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일단 받은 것들은 모두 비행기 좌석 앞주머니에 잘 챙겨두었다. 바로바로 꺼낼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덕분인지 나는 갈 때와 달리 올 때는 편안히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 * *
- 애들 지금 도착했나봐!
- 애들 한국에 왔나봄ㅇㅇ
- (축) 윈썸 한국 도착 (축)
- 얘두랑 수고 많았따아아아
- 뒷북 ㅈㅅ 근데 애들 일본 스케 무슨 스케였어? 혹시 컴백 관련이야?
└ 화보 촬영차 간거래
└ ㄴㄴ 컴백 아니구 화보 촬영!
└ [글쓴이] : 아 글쿤;; 괜히 설렜네
- 세현 입국 사진.jpg
└ 아ㅠㅠ 완전 애깅이네
└ 잠 덜 깼나봐ㅠㅠ 커피 마시네ㅠ
└ 모자 저거 일본 공항에서도 쓰던 거 아니야? 세현이 껀가?
└ 저거 똑같은 거 출국 땐 지호가 쓰고 있던데
└ 의자에서 졸고 있는 거 넘 귀엽당
- 근데 지금 올라오는 사진 공내 사진 아님? 기사 사진 아닌 것 같은데
- 공내 사진 뭐야 기사 사진만 가져오자
- 덕질 첨인데 지금 올라오는 사진 보면 안되는 거야?
- 이것봐 세현이 너무 귀여워ㅠㅠ
세현 사진.jpg
└ 헐ㅠㅠ진짜 너무 귀엽다
└ 세현이 커피 쓴 거 잘못마신다던데 그래서 그런가봐ㅋㅋㅋ
└ 표정 완전 귀여워ㅠㅠㅠㅠㅠㅠ애깅
└ 근데 이 사진 공내에서 찍은 거 아냐?
└ [글쓴이] : 왜? 그럼 안돼?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단 듯이 공항 사진들이 쏟아져 내렸다.
개중에는 공내 사진도 있었는데, 당연하게도 공항 의자에 앉아있던 그때 사진들이 올라왔다. 그밖에도 면세점에 있던 멤버들 사진 역시 올라왔고.
출국 때는 워낙 정신이 없어서 사진을 확인할 겨를이 없었는데, 입국할 때 보니 생각보다 사진이 많이 찍혀있는 게 보였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일본에 있었을 당시의 사진 역시 올라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스크림을 먹던 때라던가 멤버들과 밤바다에 갔을 당시의 사진들.
‘아이스크림, 역시 이때······.’
그 와중에 밤바다에서 찍힌 사진은 다른 것들보다 그 수가 현저히 적었다. 아무래도 막 찍기 시작할 때쯤, 내가 발견했던 모양이다.
“진짜 온갖 사진들이 올라왔네.”
“나도 봤어. 우리 아이스크림 먹었을 때 사진도 있더라.”
“그때 그걸 누가 찍고 있었을 줄은······. 어우.”
멤버들 역시 이와 같은 상황을 알게 되었다. 하긴, SNS에 사진이 그렇게 돌아다니는데 모를 수가 없었다.
물론 그 사진들은 지금 거의 다 내려간 상태였다.
“근데 어째 사진들이 예전보다 많이 올라오는 것 같은데?”
“공항에서 보니 카메라 수가 이전에 비해 훨씬 늘긴 늘었더라고요.”
이렇게 공내 사진이 많이 올라오게 된 것은 각 멤버들의 홈마가 이전보다 더 늘어났기 때문도 있었다.
데뷔 활동을 끝내고 그간 공백기 사이 새로운 유입이 좀 있던 모양이다.
그리고 앞선 사진들로 인해 팬들 사이에서도 여러 가지 말이 나왔고, 그로 인해 한동안 많은 말들이 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