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104화 (104/413)

104화. 검은 바다와 헤매는 사람

장수연은 오늘도 저녁 6시에 맞춰 TV 앞에 앉았다. 오늘은 이번 주 내내 고대하던 윈썸의 컴백 무대가 있는 날이었다.

이번 컴백 땐 지난번과 다르게 쇼케이스를 하지 않은 터라 이번 U 카운트다운에서의 무대가 첫 공개나 다름없었다.

‘오늘은 타이틀곡이랑 Black sea, 이렇게 2개 한다고 했었지?’

음악방송 당일 올라온 정보에 따르면, 오늘 할 무대는 타이틀곡인 ‘Strayer’와 발라드 수록곡인 ‘Black sea’였다.

하지만 ‘Black sea’ 무대를 한다는 건 지난 컴백 라이브를 통해 모든 팬들이 이미 알고 있던 상태였다.

차선빈의 의도치 않은 강스포 덕분에.

[자, 이번 무대는 데뷔하자마자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킨 분들이죠.]

[약 7개월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온 WINSOME! 지금 바로 만나보시죠!]

“한다, 한다!”

동시에 화면이 전환되었다.

가장 먼저 나온 무대는 수록곡인 ‘Black sea’였다.

전환된 화면에는 곧 마치 모래사장의 바위와 같은 의자에 앉아있는 6명의 멤버들이 잡혔다.

이어서 뒤에 있는 LED 화면에는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달 하나와 어두운 밤바다가 조용히 잔물결 치고 있었다.

‘와, 분위기 좋아······.’

이어서 시작되는 ‘Black sea’의 인트로.

잔잔한 파도 소리가 한번 물결친 뒤, 은은한 피아노 연주가 그 뒤를 장식했다.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건,

우세현이었다.

잔잔히 물결치는 바다

그 검은 바닷속 기억들

그곳에 잠긴 기억은

겹겹이 쌓인 채 가라앉아

곡 뒤로 중간중간 흐르는 감성적인 라인의 피아노 선율이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더욱 섬세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세현은 조용히 읊조리듯 덤덤하게 가사를 한 소절, 한 소절 내뱉었다.

이윽고 후렴에 이르자 전보다 곡의 템포가 빨라지며 음역대가 올라갔다. 이에 우세현은 그 템포에 맞춰 조금 전보다 더욱 단단한 목소리를 내었다.

Lightless

너와 함께 있던

그 바다를 찾아

계속해서 헤매는 이 밤

그런 우세현의 파트 다음으로는 차선빈의 랩 파트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기억하는 것과

기억되는 건 조금 다를지도 몰라

같은 것을 바라봤지만

같은 것을 기억할 수는 없으니까

차선빈은 멜로디의 흐름에 맞춘 흘러가는 듯한 랩핑을 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도 딕션은 딱딱 떨어지듯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그 기억 속 감정

그 감정 안에서

난 행복이란 걸 느껴

이후 다시 한번 반복되는 후렴에서는 우세현과 안지호의 파트가 서로 교차되었고, 그 안에서 우세현은 깔끔한 고음 애드리브를 선보였다.

그와 동시에 무대 앞에 있던 팬들의 환호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커졌다.

이어지는 곡의 아웃트로에서는 여운을 주듯 조금씩 멜로디가 페이드 아웃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어지는 우세현의 파트.

Lightless

여전히 홀로 그 밤의 바다를 찾아

마지막까지 여운을 남겨주는 완벽한 끝 음 처리였다. 동시에 클로즈업되는 우세현의 모습.

그것을 마지막으로 ‘Black sea’의 무대는 이윽고 끝을 맞이했다.

“미쳤어, 미쳤어!”

이를 보고 있던 장수연은 순간 입을 틀어막았다. 곡도 가사도 모두 좋았지만, 그중 가장 좋았던 건 다름 아닌 라이브였다.

생생히 전해져오는 라이브.

이 무대는 정말 쌩 MR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라이브 무대였다.

‘반응, 반응을 보고 싶······.’

그리고 장수연은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빠르게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하지만, 그러기 무섭게 다음 무대인 타이틀곡 무대가 지금 그녀의 눈앞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으악! 바로 타이틀!”

넋을 놓고 있느라 잠시 까먹고 있었는데, 이다음 무대는 바로 타이틀곡 무대였다.

그리고 윈썸의 소개 VCR이 지나가는 동안 장수연은 그 틈을 이용해 빠르게 반응을 잠시 스캔 했다.

- 우세현 라이브 미쳤다 진짜

- 윈썸 쌩라이브 맞지? 왜이렇게 잘함? 원래 이렇게 잘했어?

- 우세현 고음 애드리브 미친 줄 마지막에 얼굴 공격도 쩔었다

역시 다들 듣는 귀는 다 똑같았던 건지 대부분이 비슷한 글들이었다. 여기서 반응을 더 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시작한다!”

이제는 정말 타이틀 무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 * *

본격적으로 시작된 타이틀곡, ‘Strayer’의 무대.

무대 뒤편에는 핑크색 캔디 스토어가 라는 간판을 단 채 웅장하게 서 있었으며, 그 위로는 밝은 조명이 쏟아졌다.

이어서 나오는 신나는 비트의 인트로.

그 사이, 우세현의 얼굴이 잠시 비쳤다.

“헐, X친. 세현이 베레모 썼잖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역시 헤어와 코디였다. 살짝 볶은 듯한 흑발 머리에 보라색 베레모. 거기에 뮤비에서도 봤던 하이틴룩이었다.

- 우세현 베레모 우세현 베레모

- 애들 뮤비에서 봤던 코디다! 이 코디가 젤 맘에 들었었는데 엉엉 ㅠㅠ

그대로 인트로가 점차 고조되자 시작 전 한곳에 모여 있던 멤버들은 비트에 맞춰 저마다 정해진 대형대로 퍼졌다.

그 가운데 가장 센터에 있던 것은 바로 차선빈이었다. 차선빈은 그대로 인트로 비트에 맞춰 가벼운 안무 동작을 선보였다.

- 처음부터 차선빈 얼굴 공격 나가죠ㅋㅋ

- 슬슬 추는 것 같은데 왜이렇게 잘추냐

동시에 1절의 벌스 부분이 시작되자,

센터에 있던 차선빈을 비롯한 모든 멤버가 그대로 주저앉았고, 그 사이로 우세현이 나타났다.

- 두 번째 얼굴 공격ㅠㅠ

- 우세현 존잘

- 역시 시작은 우세현ㅋㅋ

화면에 클로즈업된 우세현은 그대로 앞에 있는 카메라를 향해 밝게 웃어 보였다.

Where am I?

난잡하게 얽혀 있는

목적지를 알 수 없는

수풀과도 같은 이 길

- 세현이 첫 부분 엄청 감미로운데 쫄깃해

- 역시 도입 장인 우세현

- 도입부터 킬링파트네ㅋㅋ

뒤이어 우세현은 그대로 옆에 있던 안지호와 바톤을 터치하듯 서로 스치며 파트를 교환했다.

나를 한번 믿어봐

그 길이 곧 천국일 테니

그렇게 다시 한번

Go on, Go on!

1절 후렴에서 가장 가운데 선 백은찬은 한껏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동선의 중심에서 오차 없는 깔끔하고도 격동적인 안무를 선보였다.

- 안무 은근 빡세다ㅋㅋ

- 다들 힘이 빡 들어가있네 신인티 난다

- 백은찬이 생각보다 춤을 잘추네

이번 타이틀곡의 안무는 전반적으로 각 동작마다의 적절한 강약 조절을 특징으로 하였다.

안무 자체가 칼 군무보다는 조금 더 자유로운 분위기를 띠었고, 거기에 3:3 분할 대형도 꽤 있었다.

그렇기에 안무 자체가 힘들이지 않고 가벼운 것처럼 느껴졌지만, 단체 군무 파트나 댄스 브레이크는 또 달랐다.

단체 군무, 댄브와 같이 합이 중요한 경우, 동작 하나하나마다 강하게 포인트를 주어 그 어느 때보다도 파워풀한 느낌을 주었다.

여기에 깔끔한 동선 이동과 정확한 동작의 표현은 당연했고.

정처 없이 떠도는

이 걸음의 목적지 (Go on!)

그 달콤한 목적지를 향해

중간 댄스 브레이크가 끝나자 대형에서 홀로 떨어진 우세현이 곧바로 고음과 함께 쏟아지는 애드리브를 선보였다.

그 순간, 거대하게 터치는 꽃가루.

꽃가루는 그대로 무대 위로 흩날려졌다.

우세현의 고음은 흔들림 하나 없이 편안했고, 뒤이어 오는 애드리브 역시 음원과 다른 점을 찾기 힘들 정도로 손색없었다.

- 우세현 미X 고음 보소

- 세현이 노래 더 늘었나? 씨디 먹은줄

- 그래도 좀 깐 것 같은데?

이어서 우세현이 준비된 애드리브를 모두 선보였을 때, 무대 역시 끝을 맞이했다.

무대가 끝나자 마치 준비된 듯 화면은 곧 멤버의 엔딩 장면으로 바뀌었다.

이번 엔딩 포즈의 주인공은 우세현과 차선빈. 먼저 화면에 잡힌 차선빈은 미리 준비해 온 사탕을 화면에 한 번 비춘 뒤, 그대로 우세현에게 던졌다.

그리고 그걸 받은 우세현은 다시 한번 사탕을 든 채로 화면을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고, 무대 조명과 꽃가루와 겹쳐 그 장면은 꽤나 화사하게 연출되었다.

- 어떡해 우세현 너무 예뻐ㅠㅠ

- 컴백주부터 엔딩이 역대급이넼ㅋㅋㅋㅋ

- 세현이랑 선빈이 둘이 미리 준비했나봐ㅠㅠ 이 애기들 귀여워서 어떡하냐ㅠㅠ

이와 같은 오늘의 엔딩 장면은 다시 한번 수많은 고화질 짤로 남게 되었다.

* * *

같은 시각, 체이스의 대기실.

마찬가지로 체이스 멤버들 역시 대기실에 있던 모니터를 통해 윈썸의 무대를 보고 있었다.

“세트 한번 화려하네.”

손태하가 화면 너머로 보이는 거대 세트를 보며 중얼거렸다.

“보통 저 정도는 다 하지 않아? 컴백 주간이면.”

“그래도 저렇게까지 크고 화려하게 하는 곳은 얼마 없을걸. 저거 다 돈이잖아.”

“······방송국에서 해주는 경우도 있잖아.”

“여긴 소속사에서 준비해.”

그 말에 이화준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물론 자신들도 세트가 빈약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윈썸에 비하면 아무래도 조금 비어 보이는 감이 있었다.

[Where am I?]

그대로 무대의 도입부가 시작되었고, 화면에는 해당 파트를 맡은 우세현이 클로즈업됐다.

그리고 그때부터 체이스 멤버들은 급격히 말이 줄었고, 윈썸의 무대를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다.

무대를 보던 도중 간간히 막내인 멤버가 홀로 몇 번 추임새를 넣기로 했지만, 그것 말고는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그렇게 약 3분간의 짧은 무대가 어느새 막바지에 이르고, 동시에 화면 속 우세현이 깔끔한 고음 애드리브를 선보였다.

“와, 우세현.”

그걸 본 손태하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뒤이어 다른 멤버들 역시 처음으로 한마디씩 덧붙였다.

“고음 한번 엄청 깔끔하네요.”

“그만큼 많이 깐 거겠지.”

“그러기엔 목소리가 뚫고 나오던데.”

“사녹이잖아. 어차피 보정 빨이야.”

이화준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에 손태하가 못 말리겠단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그런데···형들 생각은 어때요?”

“뭐가?”

“우리 트리플 크라운이요. 좀···힘들어 보이죠?”

막내인 멤버가 다른 멤버들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말을 꺼냈다. 앞선 물음에 체이스의 다른 멤버들은 누구도 먼저 이에 대해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현재의 상황을 이미 잘 알고 있는 터라.

지금까지의 윈썸의 앨범 판매량은 약 42만장, 그리고 음원 순위는 자몽을 기준으로 메인 TOP 차트 49위였다.

“······괜찮아. 아직 몰라.”

이화준이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하지만 당연히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었다. 눈으로 보이는 기록이 있으니.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음 주 월요일.

월요일이 되었을 때, 체이스의 그 불안감은 더더욱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날은 윈썸의 이번 앨범의 최종 초동 판매량이 결정되는 날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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