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107화 (107/413)

107화. 편하게 놀러 왔다고 생각해요.

“오늘 라디오, <한주진의 스타 헤르츠>라고 했었나?”

“맞아.”

“와, 오늘 한주진 선배 보겠네.”

한주진은 전직 아이돌 그룹 출신의 방송인이었다.

비록 당시 한주진이 있었던 그룹이 크게 뜨지는 못했으나, 한주진 개인은 예능으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지게 되면서 이로 인해 개인 활동이 잘 풀린 케이스였다.

그렇지만 인지도가 높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20~30대 사이에서는 이름만 들으면 대충 얼굴을 떠올릴 정도는 됐다. 또 이미지도 나쁘지 않은 편이었고.

‘그러고 보니 그때의 한주진 그룹이 루트랑 동시대쯤이었네.’

대충 계산해보니 그랬다.

형이랑 나이대도 비슷했고.

하지만 내 기억으론 두 사람이 개인적인 친분까진 없었던 걸로 안다.

‘물론 방송국에서 오다가다 많이 봤을 것 같긴 한데······.’

한주진의 그룹도 꽤 활동을 오래 했었으니까. 애초에 그룹이 크게 망한 것도 아니었고. 그래도 중박은 쳤을 정도였다.

하지만 형에게 따로 들은 게 없으니 아마 내가 알고 있는 대로 친분 같은 건 없을 거라 짐작됐다.

“그러고 보니 이 라디오, 인기가 꽤 좋다던데.”

“아, 나도 알아. 아이돌 그룹 팬들이 가장 선호하는 라디오 프로라고.”

<한주진의 스타 헤르츠>는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꽤나 선호되는 라디오 중 하나였다.

DJ인 한주진이 아이돌 그룹 출신이기도 했고, 게스트 사전 조사도 철저한 편이라 인기가 좋았다.

그리고 얼마 안 돼 타고 있던 벤이 라디오국에 도착했다. 오늘 라디오는 생방송 보이는 라디오였다.

다행히 예정된 시간에 맞게 도착을 했고, 도착한 이후로는 곧바로 피디와 작가들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다.

“안녕하세요!”

“아, 그래요. 어서 와요.”

이어서 오늘 라디오 DJ를 맡은 한주진에게도 인사를 하러 갔다. 그대로 한주진의 대기실로 가자, 곧바로 우리는 한주진과 만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

한주진은 그런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래요, 윈썸 맞죠?”

“네. 맞습니다.”

“소속사가 IN 엔터테인먼트고.”

“네! 맞아요.”

백은찬이 조금 놀란 목소리로 답했다.

“이 정도면 당연히 알아야지. 오늘 게스트 분들인데. 아직 데뷔한 지 얼마 안 됐죠?”

“네. 이제 8개월쯤 됐어요.”

“크, 이제 8개월이라니. 완전 애기들이네.”

그러더니 한주진은 곧 너무 떨지 말라며 우릴 향해 격려의 말을 보내주었다.

“근데 그럼 다들 아직 학생이에요?”

“네. 저만 성인이고요.”

“오, 그럼 다들 몇 살인데요?”

“이렇게 4명은 19살이고요, 여기 있는 막내는 18살이요.”

“넵. 제가 막내입니다.”

신하람이 옆에서 힘차게 손을 들어 보였다.

“그렇구나. 나도 딱 그 나이 때쯤 데뷔를 했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나이를 먹었네.”

한주진이 홀로 한탄하듯 말했다.

근데 아직 29살인데 그렇게 한탄할 것까진 없지 않나.

“아, 나 멤버 이름도 다 알고 있어요.”

“와, 정말요?”

“네. 그러니까···이쪽이 은찬 씨, 도운 씨, 선빈 씨······.”

그렇게 한주진은 멤버 한 명, 한 명을 가리켜가며 이름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세현 씨. 맞죠?”

“네. 맞습니다.”

한주진이 마지막으로 날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난 이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들려오는 한주진의 생각.

[“또라이 우도현 X끼 동생.”]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을 멈칫했다.

[“이 새X도 또라이려나.”]

* * *

한주진은 지금, 한껏 기세등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한주진을 향해 멤버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쳐주었다.

“와, 선배님!”

“저희 이름 다 외워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아니, 뭘 이 정도로. 당연히 알아야죠. 게스트이고, 또 윈썸 요즘 잘 나가잖아요.”

한주진이 마치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이 사람, 형이랑 아는 사이인가?’

생각하는 걸 들어 보니 어째 딱 그런 것 같았다. 근데 아는 사이도 그냥 아는 사이가 아닌 사이가 상당히 별로인 사이. 앞서 또라이, 또라이 거리는 걸 보면.

‘꽤, 당황스럽네······.’

그간 나를 보며 형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은 또 처음이었다.

‘그만큼 사이가 많이 나빴나.’

하지만 형에게서 한주진에 대해서는 평소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었다. 그래서 당연히 친분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거고.

‘아니면 일방적으로 싫어하는 걸지도.’

그 방면으로도 생각을 해볼 수가 있었다. 형은 원래 그런 거 잘 신경 안 쓰니까.

“주진 씨. 이제 그만 준비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아, 예. 알겠습니다.”

앞선 작가의 말에 한주진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중에 봐요. 긴장할 거 없이 그냥 편하게 놀러 왔다고 생각해요. 내가 많이 도와줄 테니까.”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한주진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인 뒤, 작가와 함께 먼저 대기실을 떠났다.

“한주진 선배님, 엄청 친절하시네요.”

“그러게. 신경도 많이 써주시는 것 같고.”

“원래도 성격 좋다고 말 많았잖아요. 근데 진짜로 그런 것 같아요.”

멤버들은 그렇게 저마다 한주진의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래, 그냥 보기엔 확실히 성격이 좋아 보이긴 하다만······.

‘아무래도 날 별로 달가워하지 않겠지.’

하지만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한주진이 대놓고 싫은 티를 낼 리는 없었다. 그냥 호감도가 마이너스인 정도겠지.

물론 그걸 알게 된 이상, 저절로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별로 알고 싶지 않았지만.

‘근데 형을 아무리 싫어했어도 그렇지, 또라이 X끼라고 할 필요까지 있나.’

곱씹어보니 괜히 기분이 더 나빠지는 것 같았다. 성격이 좀 특이한 걸 가지고. 왜 또라이 X끼래, 왜.

···어쨌든 지금은 다른 것보다 방송이 중요했고,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인 호감도가 어떤지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윈썸 분들도 이제 준비해주세요.”

“아, 네.”

시간을 보니 어느새 시작 시간에 가까워져 있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대본도 미리 봐야 하고.

그리고 조금 뒤,

우리를 데리러 온 작가님과 함께 스튜디오로 이동했고, 그렇게 오늘의 보이는 라디오에 들어가게 되었다.

* * *

“자리는 전에 말씀드린 대로 앉아주시면 되고요. 대본은 여기 앞에 있어요. 중간중간 봐주시면 되세요.”

“네. 알겠습니다.”

보이는 라디오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서자 주변으로 수많은 카메라들이 보였다. 보이는 라디오인 만큼 표정에도 적당히 신경을 써야 했다.

그리고 사전에 안내받은 자리로 가 앉았는데, 테이블 위에 있어야 할 대본이 안 보였다.

“어······.”

“왜요, 무슨 문제 있어요?”

한주진이 나를 향해 물었다.

“대본이 없는 것 같아서요.”

“아, 정말요? 뭔가 수가 안 맞았나 보네. 내가 곧바로 작가님께 말할게요.”

“아뇨, 그런 거라면 제가 직접······.”

“그냥 있어요. 손님인데 편하게 있어야지. 내가 가져다줄게요.”

그리고 어떻게 더 말할 새도 없이 한주진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말 굳이 그럴 필요 없는데.

한주진의 그 과한 친절함이 상당히 거리꼈지만, 일단 한주진이 말한 대로 하기로 했다. 더 거절하기도 그래서.

“네. 그럼 감사합니다.”

“그래요.”

이후 한주진은 그대로 제작진이 있는 스튜디오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난, 그런 한주진을 잠시 기다렸다.

하지만 어찌 된 것인지 대본을 가져오겠단 한주진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혹시 이야기가 길어지는 건가.’

그렇게 기다리다 그냥 내가 제작진이 있는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

그런데 그때 마침,

스튜디오 밖으로 나갔던 한주진이 다시 돌아왔다.

“선배님.”

“아, 네. 세현 씨.”

그리고 돌아온 한주진의 손에는 대본과 함께 아메리카노 한 잔이 들려있었다.

“많이 기다렸죠? 여기요. 대본.”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한주진은 나에게 대본을 건네주었고, 그대로 자리로 돌아갔다.

나 역시도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전달받은 대본을 곧바로 확인해봤다. 사전에 어느 정도 읽어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러한 생각에 대본을 한 장 한 장 확인해보는데, 뭔가가 좀 이상했다.

‘이거 중간마다 다른 대본이 끼어있는 것 같은데······.’

이상한 마음에 첫 장을 확인해보니 확실히 첫 장은 우리가 할 3부의 대본이 맞았다.

곧바로 난, 옆에 있던 차선빈을 불렀다.

“차선빈.”

“응?”

“나 대본 한 번만.”

그리고 차선빈에게 부탁해 내가 가지고 있던 대본과 차선빈의 대본을 한번 비교해봤다.

‘아, 역시······.’

확인해보니 정말로 중간에 다른 대본들이 끼어있는 게 맞았다. 본래 있어야 할 3부 대본이 아닌 2부 대본이 대신 껴 있는 형식이었다.

그리고 잠시 한주진을 바라보았다.

평온한 얼굴로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한주진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왜? 뭐 문제 있어?”

“대본이 좀 섞인 것 같아서.”

“대본이?”

곧바로 난, 자리에서 일어나 스튜디오 반대편으로 갔다. 그리고 작가로부터 새로운 대본을 받아왔다.

대본을 받은 이후, 다시 스튜디오로 들어오는데 그 순간 한주진이 내게 물었다.

“어, 세현 씨. 어디 갔다 와요?”

“잠깐, 작가님께요.”

“아아.”

그리고 더는 말이 없었다.

[“벌써 눈치 챘나 보네.”]

‘아, 역시.’

대충 그런 게 아닐까 짐작하긴 했지만.

역시 그랬던 거냐.

나는 그대로 아무렇지 않게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한주진 역시 별다른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근데 이건 좀 유치하지 않나.’

대본 섞기라니.

내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라도 했던 건가. 의도가 어찌 됐건 내가 곤란해하는 상황을 원했다는 건 분명했다.

‘결국 이렇게 나오나······.’

모든 사람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걸 직접적인 행동으로 연결시키는 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한주진도 그렇지 않을까 싶었던 거고.

더군다나 한주진과 난 오늘이 초면인 사이였다. 그런데도 이러는 걸 보면 형에 대한 감정이 생각 이상으로 별론가 본데.

‘이거, 신경을 좀 써야겠네.’

아무래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피곤한 라디오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 * *

“네, 오늘 <한주진의 스타 헤르츠> 3부는 보이는 라디오로 진행되고 있는데요. 오늘의 게스트, 윈썸 분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라디오 진행은 상당히 순조로웠다.

아직 초반이긴 하지만, 멤버들도 딱히 긴장하지 않는 것 같았고 분위기도 화기애애하고 괜찮았다.

한주진도 특별히 이렇다 할 행동을 보이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당연했다. 방송 중이고, 그냥 라디오도 아닌 보이는 라디오였으니까.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나에 대해 상당히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리액션 부분에서라던가.

“네. 그래서 이번 앨범에서 어떤 곡을 가장 좋아하신다고요? 은찬 씨.”

“네. 전 타이틀곡인 을 가장······.”

“아! ! 은찬 씨 말 대로 이번 타이틀곡이 참 좋더라고요. 듣다 보면 계속 흥얼거리게 되고. 그래서 제 플레이리스트에도 있어요. 그럼 세현 씨는요?”

“전 개인적으로 라는 수록곡을 가장 좋아합니다.”

“아, 정말요?”

다소 미적지근한 반응이었다.

앞선 멤버들과 달리 내 멘트에는 리액션이 좀 미적지근했다.

근데 그게 또 흘러가듯 자연스러웠다.

이게 바로 짬밥이라는 건지.

‘그리고 또 하나······.’

한주진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한주진, 이 사람은 거짓말에 꽤 능한 사람이라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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