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제가 또 친분이 있어요.
보이는 라디오를 진행 중, 지금은 한창 팬들의 질문들을 받는 코너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아, 세현 씨가 요리를 잘하시나 보네요?”
“그렇게까지는 아니고, 기본적인 것만요.”
“그렇구나. 근데 저도 평소에 요리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렇게 한주진은 평소 가끔씩 혼자서 요리를 해 먹곤 한다며 이런저런 말을 덧붙였다.
이렇게만 보면 단순히 그렇구나 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정작 한주진의 실제 생각은 전혀 다른 걸 말하고 있다는 거였다.
[“이미지 좋게 포장하기엔 요리만 한 게 없지. 대충 할 수 있는 요리는 스파게티 정도로 하고······.”]
생각하는 걸 보면, 평소에 전혀 요리를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은 단순히 이미지 구축을 위한 말에 불과한 것 같았고.
뒤이어 공동 작사한 것과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 평소 아는 작사가들이 많다며 말을 부풀려 한동안 그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는 도중 허울 좋은 말도 조금씩 했고.
이렇듯 한주진은 말을 하는 도중에도 어떻게 하면 이야기에 살을 붙일지를 고민했고, 그 살은 주로 거짓을 바탕으로 했다.
이처럼 한주진의 이미지 포장을 위한 말은 라디오를 하는 내내 계속됐다.
“네, 다음 1022님이 [세현 오빠, 혹시 이번 앨범 나올 때 형이 응원 메시지 보내줬나요?]라는 질문을 보내오셨는데···혹시 해주셨나요?”
“아, 네. 해줬습니다.”
“오, 뭐라고 해주던가요?”
“특별한 건 없고, 그냥 잘 보고 있다고. 열심히 하라고 정도만 해줬습니다.”
“아아. 그렇구나.”
이번에도 역시 리액션이 그다지 시원치 않았다. 그래서 곧바로 다음 사연으로 넘어가지 않을까 했는데, 의의로 그렇지 않았다.
“세현 씨는 어떻게, 형이랑 친한가요?”
“아, 네. 친한 편이죠.”
“아아. 친하시구나.”
뭐지. 굳이 왜 이런 걸 묻는 거지.
“저도 사실 도현 씨랑 알거든요. 당시 루트랑 활동도 많이 겹치기도 했고, 또 나이도 또래라서요.”
“아, 네.”
그 말에 난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에 한주진은 나의 반응을 잠시 살피는 듯 하더니 이내 생각했다.
[“반응을 보니 친분 관계 같은 건 잘 모르는 모양이네.”]
이후 한주진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캐나다에 있을 때도 가끔씩 연락을 주고 받기도 했었어요. 가기 전에 꽤 친했어서.”
이번엔 이거냐.
조금 전 또라이 X끼라고 욕할 때는 언제고.
하지만 그걸 일일이 따지고 들 수도 없는 상황이니 일단 대충 반응해주기로 했다.
“아, 그랬군요.”
“네. 그랬어요.”
그리고 그 말이 끝나자 실시간 라디오 문자창에는 다음과 같은 글들이 빠르게 도착하기 시작했다.
- 우도현이랑 주디랑 친분 있었어? 꺅
- 그러고보니 예전에 같이 사진 찍은 적도 있지 않나? 어디선가 본 것 같당
- 나중에 투샷 한번 봤으면 좋겠다ㅜㅜ
- 주디! 지금도 연락해용?
한주진은 잠시 그것을 집중해서 살폈다.
왜 그런 말을 꺼냈는지 대충 알 것 같네.
“세현 씨 보니까 갑자기 생각났네요. 예전에 도현이가 한번 놀라 오라고 하기도 했는데. 어떻게 끝나고 연락이라도 해볼까 봐요.”
이에 나는 대답 없이 그냥 웃어 보였다.
형 번호 얼마 전에 바뀌었어요.
앞서 한주진이 형 이야기를 꺼낸 건 단순히 친분 과시 차원에서였다. 그리고 원하는 대로 라디오 문자창에는 그와 관련된 문자들이 쏟아지고 있었고.
‘이렇게 이용을 하나.’
굳이 없는 사람 이야기를 끌어내 조금 이목을 끌어내려는 게 기분이 상당히 별로였다. 아무래도 이 대화를 여기서 그만 끊는 게 좋을 듯 했다.
“그럼 제가 형한테 말씀 꼭 전달해드릴게요.”
“어, 네?”
“친하시니까요. 꼭 안부 전할게요.”
“아, 네, 그래요.”
그 말에 한주진은 아무렇지 않게 반응했지만, 내심 당황한 게 보였다. 그리고 이를 대변하듯 한주진은 다음 멘트를 서둘러 이어 쳤다.
“자, 그럼 여기서 한번 듣고 가야겠죠. 윈썸의 이번 앨범 수록곡, 듣고 오실게요.”
이후 소리가 사라진 스튜디오 안으로 잔잔한 파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의 인트로가 거짓이 난무한 스튜디오 안을 조용히 쓸어내리고 있었다.
* * *
“네, 그럼 아쉽게도 이제 윈썸 분들을 보내드려야 할 때인 것 같은데요. 어떻게, 다들 소감 한마디씩 해주실 수 있을까요?”
“네. 오늘 정말 초대해주셔서 감사했고요. 한주진 선배님 덕분에 정말 재밌고, 그리고 편안하게······.”
어느새 한 시간이란 시간이 지나고, 마칠 시간이 되었다. 끝인사로 멤버마다 소감을 한마디씩 전한 뒤, 타이틀곡을 마지막으로 보이는 라디오가 끝이 났다.
“오늘 정말 수고 많았어요. 다들 정말 긴장도 안 하고 잘하던데요?”
“선배님이 잘해주신 덕분이죠.”
“다음에도 꼭 한 번 나와요. 덕분에 나도 오늘 재밌었어요.”
그렇게 스튜디오 안에서 한주진과 잠시 대화를 나눴다. 아마 이것까지도 보이는 라디오 카메라를 통해 방송이 되고 있을 터였다.
“윈썸 분들. 단체 사진 한번 찍을게요.”
뒤이어 작가 한 명이 카메라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멤버들과 난 곧바로 가까이 모였다.
“난 이쪽에 서면 될까?”
그 와중에 한주진은 센터에 자리를 잡았다. 당연하지만 단체 사진에는 DJ인 한주진도 함께였다.
그리고 백은찬이 당연하다는 듯 자리를 조금 더 옆으로 이동했다.
“네! 그러시면 될 것 같아요.”
“그래요. 어, 근데 이제 보니 여기가 센터네.”
그러면서 한주진은 이제야 눈치를 챘다는 듯 민망하게 웃어 보였다. 연기가 상당히 어색하시네. 연기는 안 하시는 게.
앞서 물어보기 전부터 한주진은 이미 센터에 자리를 잡고 있던 상태였다.
사실 한주진이 가운데 서든 말든 아무 상관 없지만 앞서 본 것들을 생각하면 한주진 이 사람, 주목받는 걸 상당히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신을 포장 하는 걸 일삼는 거고. 누구나 자신을 포장할 수 있다 생각하지만, 이 사람은 그게 좀 과하다는 느낌이었다.
“한주진 선배님 말이야. 오늘 되게 신경 써주신 것 같지 않냐?”
라디오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폰을 하던 백은찬이 뜬금없이 말했다.
“신경을 써줬다고?”
“응. 일단 사전 조사부터가 끝내줬잖아.”
아, 그래. 사전 조사가 철저하긴 했지.
듣던 대로 그룹의 기본적인 정보 이외에도 팬들만 알법한 사소한 에피소드라던가, 별명 그런 걸 꽤나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오늘 라디오도 팬들 사이에서 반응이 꽤 괜찮은 편이었다.
“여러모로 많이 생각해주신 것 같아.”
“아, 맞아요. 계속 불편한 거 없냐고 물어봐주시고.”
“진행도 잘하시더라고. 역시 경험이 많으셔서 그런지.”
아무래도 한주진은 이번 일로 인해 멤버들에게서 상당히 호감을 얻은 모양이었다.
“앞으로 자주 만났으면 좋겠는데.”
“안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엉?”
그러자 곧 백은찬이 나를 쳐다봤다.
“되도록 가까이 지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왜?”
“그냥. 느낌이 안 좋아서.”
“엥? 느낌이 안 좋아?”
“응.”
그 말에 백은찬은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해.
“일단 형이랑 별로 안 친해. 한주진 선배.”
“어? 진짜?”
“응.”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본인이 생각한 것만 봐도.
“그럼 왜 아까 친하다고 한 거야?”
“그건 아마도 그냥 친분 과시 같은데.”
“그럼 아예 없던 일들이에요?”
“어떻게 보면 그렇지. 연락처도 모를걸. 아, 물론 안면 정도는 있을 수도 있겠지만.”
“헐.”
그것 말고도 수많은 거짓이 있었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 이것뿐이니 일단 이것만 말하기로 했다.
“와, 그게 그럴 줄은 몰랐네. 난 너무 자연스럽게 말해서 당연히 형님하고 상당히 친한가 보다했어.”
“그러게. 나도 그랬는데.”
“아니면 혹시 혼자 친하다고 생각하고 계신 게······?”
어떻게 봐도 그건 아닌 듯 했다.
“그랬다면 계속 연락을 했다, 놀러 오라고 했다 이런 얘길 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잖아요.”
“아, 그렇네.”
그러한 신하람의 말에 백은찬이 몇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줄곧 조용히 있던 안지호가 내게 물었다.
“그러니까, 니 말은 대충 뒤가 X 구린 것 같다 이거지?”
“어···굳이 말하자면, 뭐.”
“하여튼 안지호, 표현 한번 봐라.”
“왜, 맞잖아.”
표현이 좀 그렇긴 하지만, 어쨌든 안지호의 말 대로였다. 근데 어차피 당분간은 만날 일이 없을 테니.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형에게도 연락을 해보았다.
“형, 한주진이라고 알아?”
─ 뭐? 누구?
“연예인 한주진. 예전 넥온 멤버.”
─ 아, 넥온.
형은 그제야 기억이 난다는 듯 반응했다.
─ 대충 얼굴만 아는 정도인데.
“따로 친분은 없어?”
─ 없어.
목소리 한번 단호했다.
근데 그럼 정말 사이가 나쁜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싫어하는 거였나.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그 이후로 한주진과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그렇지만 뭐든 예상은 빗나가기 마련이었다.
“네? 파일럿 예능이요?”
“응. 이번에 파일럿 예능 하나 들어가게 될 것 같아.”
활동 도중 갑작스럽게 파일럿 예능의 섭외가 들어왔다. 아니, 물론 활동 도중이니 예능에 나가는 건 당연할 수 있지만 파일럿 예능이라는 게 예상외였다.
“이제 곧 추석이잖아. 그래서인지 파일럿 예능을 편성한다고 하더라고.”
“아, 네. 그래서 어떤 프로인데요?”
“라고 MAC에서 하는 파일럿 예능인데, 미션하고 보물찾기하는 그런 프로그램이야.”
컴플리트 박스?
이거 전에 한 번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아, 참고로 이번이 두 번째라더라.”
“네? 뭐가요?”
“보니까 지난 추석에도 특집 형식으로 잠깐 방송한 모양이더라고. 근데 그렇게 화제성이 크지 않아서 정식 프로그램은 안 됐고, 그나마 반응이 소소하게 있어서 이번 추석 때도 하게 된 거라 하더라고.”
아, 그래서 들어본 적이 있었던 거네.
어쩐지 프로그램명이 익숙하다 했다.
“어, 그런데 왜 저만······.”
지금 이 공간엔 멤버들 없이 매니저 형과 나 이렇게 둘 뿐이었다.
“아, 그쪽 제작진 측에서 세현이 너를 구체적으로 지목해서 섭외 요청을 해왔어.”
“저를요?”
“응.”
“왜요?”
“음, 단순히 피디 마음 아닐까 싶은데.”
이거 어째 좀 불안한데.
무엇보다 단독 예능 스케줄이라니.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아마 그것 때문이 아닐까 싶어.”
“그거요?”
매니저 형이 뭔가 짚이는 게 있다는 듯한 분위기로 말했다. 그게 뭐지?
“듣자 하니 그 프로에 그 사람도 나온다는 말이 있더라고.”
“누구요?”
“신도하.”
“네?”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 이름에, 순간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신도하도 출연자 후보에 있다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