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잠깐 이야기 좀 할까?
노크를 하려는 그 순간,
대기실 안쪽에서부터 먼저 문이 열렸다.
앞서 문을 열고 나온 이는 다름 아닌 신도하였다.
“왜 여기 모여 있어요?”
신도하가 나를 포함한 신인 출연자들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양한솔이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왔다.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아, 인사.”
그러자 신도하는 곧바로 들어오라며, 직접 대기실 문을 열어주었다.
그 순간, 옆에 있던 신인 출연자들은 앞뒤를 다투며 빠르게 안으로 들어섰다.
‘빨리 눈도장을 찍고 싶어서 안달이 났군.’
프로그램의 포맷도 포맷이지만, 이번 프로를 통해 어떻게든 선배 출연자들과 인맥을 쌓고자 하는 의도들이 대부분이었다.
신인 출연자들의 경우 아직 인지도 없는 출연자가 대부분이지만, 반면에 선배 출연자 라인은 인지도가 꽤 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안 들어가?”
신도하가 나를 향해 물었다.
어쩌다 보니 대기실 밖에 혼자 덩그러니 있는 모양새였다.
“아뇨, 들어가야죠.”
“그래. 어서 와.”
이에 나 역시도 서둘러 안으로 들어섰고, 내가 들어온 걸 확인하자 신도하는 그대로 문을 닫았다.
안으로 들어서자 오늘 같이 출연할 선배 출연진들이 보였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사를 했는데 그러던 도중, 한주진과도 마주치게 되었다.
“이게 누구야. 세현 씨 아니야?”
“안녕하세요, 선배님.”
“잘 지냈죠?”
그 뒤로 한주진은 한동안 궁금하지도 않은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 해댔다. 이에 나는 덧붙이는 거 없이 그저 조용히 리액션만 몇 번 해줬다.
보통 한주진과 같은 타입의 경우, 리액션만 적당히 해주면 불만 가질 일이 없으니까.
“아, 그런데 이번에 프로그램에서 팀 파트너 맺는 거 알고 있죠?”
“네. 알고 있습니다.”
“혹시 다른 사람들 불편하면, 내 쪽에 서요. 그럼 세현 씨 선택해줄게요.”
한주진이 마치 비밀을 이야기하듯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며 말했다.
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는 팀 파트너 선정 과정. 이 팀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간단했다.
신인들이 같이 팀을 하고 싶은 선배를 선택하면 되는 거였다. 이는 선배가 자리하고 있는 곳으로 가 그 뒤로 줄을 서면 됐다.
하지만 만약 2명 이상이 줄을 설 경우, 해당 선배가 지원자 2명 중 원하는 신인 1명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니까 앞선 한주진의 말은 같이 팀을 하자는 말이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말’에 불과한 듯했다.
[“일단 혹시 모르니 밑밥 좀 깔아두고.”]
[“다른 애들이 오면 얜 그대로 짤.”]
아무래도 난 그냥 밑밥인가 보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요. 잘 생각했어요.”
한주진이 웃으며 답했다.
뒤이어 양한솔이 그런 한주진에게로 다가왔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어, 그래요. 안녕.”
그리고 곧 한주진은 양한솔과 이야기를 하려는 듯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겼다. 또 다른 밑밥을 깔러 가나.
‘어차피 한주진과 파트너가 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으니······.’
밑밥이건 뭐건 별로 상관없긴 했다.
선배 라인 중 어떤 사람과 팀 파트너를 맺을 것인지는 나오기 전부터 이미 생각을 하고 온 터였다.
그러던 도중, 스텝 중 한 명이 대기실로 찾아왔다. 그리고 출연진들을 향해 외쳤다.
“여러분, 이제 촬영 장소로 이동하실게요!”
* * *
“세현 씨는 혹시 생각해둔 선배 있어요?”
녹화 들어가기 직전, 옆에 있던 양한솔이 나에게 슬그머니 물어왔다.
“아직 확실하게 생각해둔 사람은 없어요.”
“그래요?”
“네.”
그러자 양한솔은 이제 반대편에 있던 강서찬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사전 정보 탐색인가.’
어떻게 보면 모두 경쟁자인 셈이니 당연한 과정이긴 했다. 하지만 제대로 대답을 해줄 사람이 있을까. 그보다 양한솔 본인부터가 생각을 밝힐지가 의문이었다.
“지영 씨는요?”
“저요? 전 아직 비밀이에요!”
“비밀이에요? 에이, 아쉽다.”
당연하지만 앞서 말 한대로 제대로 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중에는 거짓을 섞어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충 봤을 때, 가장 인기인은 한주진인가······.’
나머지 5명의 생각을 종합해봤을 때, 5명 모두 한주진을 파트너 후보 1순위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만장일치가 나오기도 쉽지 않은데.’
저마다 선택의 이유는 조금씩 달랐지만, 어느 정도 공통되는 부분이 있기도 했다.
그건 바로 한주진의 ‘이미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난 방송 보니까 파트너한테 꽤 잘해주시던데. 이번에도 팀이 되면 잘해주시겠지.”]
[“성격 좋아 보이던데 내 말을 그래도 잘 들어주시지 않으려나.”]
[“제일 친절해 보여.”]
평소 방송을 통해 보여 지는 한주진의 모습은 상당히 친절한 이미지에 속했다. 오늘만 봐도 누구에게나 먼저 친근하게 말을 거는 모습이었고.
그리고 그 덕인지 한주진은 오늘 출연한 선배 라인 중 인기가 꽤나 좋았다.
“다들 힘들진 않아요?”
“선배님!”
물론 저런 모습도 어느 정도 인기에 기인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어느새 한주진의 중심으로 신인들이 모여드는 모습이었다.
‘인기 좋네.’
아무래도 한주진의 밑밥 깔기가 어느 정도 먹혀들어 간 것 같아 보였다.
“왜 혼자야?”
그때, 등 뒤로 그다지 달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돌아보니 그곳엔 신도하가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 근데 다들 저기 있는데, 왜 여기 혼자 떨어져 있어?”
“떨어져 있다기보단 그냥 여기가 원래 자리인데요.”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이 자리에서 벗어난 거였다.
“뭐, 그건 그렇지만 보통은 다른 사람들 움직이는 대로 따라 가지 않나?”
“어차피 다시 다 이쪽으로 올걸요.”
앞서 말했듯이 원래 있어야 하는 곳은 여기다. 그러니 촬영이 시작되면, 어찌 됐건 다시 돌아와야 할 터였다.
“그래, 그렇겠다. 근데 내 말은 세현이 넌, 왜 한주진한테 가지 않았냐고 묻는 거였는데.”
“한주진 선배한테요? 왜요?”
“신인들은 대부분 파트너로 한주진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아아. 그 말이었군.
그나저나 신도하 역시 신인들에게 한주진이 인기가 좋다는 걸 알고 있던 모양이다.
“근데 넌 아닌가 보네.”
“적어도 제 파트너 후보엔 없어요.”
“왜?”
“특별한 이유 없어요. 그냥 다른 분을 더 후보에 두고 있어서요.”
굳이 구구절절 이유를 자세히 말할 필요는 없었다. 듣는 귀도 많고, 보는 귀도 많으니. 게다가 상대는 이 사람이고.
“그래, 그렇구나.”
신도하를 그런 내 말에 조용히 수긍했다.
그리고 뒤이어 생각했다.
[“감이 좋네.”]
그리고 그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신도하가 또다시 나를 불렀다.
“세현아, 잠깐 얘기 좀 했음 하는데.”
그리고 이어지는 갑작스런 대화 요구.
그와 동시에 저 멀리서부터 어느 스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촬영이 조금 지연됐으니, 조금만 더 대기 부탁드릴게요!”
마치 상황이 딱 맞아떨어지듯 떨어졌다. 그리고 난 곧바로 신도하를 향해 되물었다.
“무슨 얘기요?”
“이를테면 정보 공유 같은 거지.”
“정보 공유요?”
“조금 사소할 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신도하는 나에게 잠시 따라오라는 말을 전했고, 나는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 * *
오프닝이 시작되기 전,
나는 신도하와 함께 원래 있던 장소와는 조금 거리가 떨어진 장소로 이동했다.
잠깐 둘러보니 앞서 북적였던 오프닝 장소와 다르게 이동한 장소는 정말 사람 하나 없이 조용했다.
‘일단 따라오긴 했는데.’
신도하가 말하는 정보 공유라는 게 뭔지 확실히 짚이는 게 없었다.
그렇지만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따라나선 건 아니었다. 마침 나도 신도하에게 묻고 싶은 게 하나 있던 참이었고.
“사실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야.”
“네?”
“정보 공유. 단순한 참고 사항 정도니까.”
“아, 네.”
애초에 그렇게 큰 거일 거라 기대를 하지도 않은 터였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한주진 말인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마침내 신도하가 입을 열었다. 뭔가 했더니 한주진 관련 이야기였나 보군.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신도하가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경고를 해주고 있는 건가?
“가까이해서 별로 이득 볼 게 없어. 겉으론 멀쩡해 보일지 몰라도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거든.”
“아, 네.”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근데 갑자기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뭐지.
“···라고 앞서 너한테 이야기를 해줄까 했었는데. 혹시 네가 한주진을 파트너로 고려하고 있을까 봐. 근데 아니라고 하니 다행이네.”
신도하는 그렇게 잠시 웃어 보였다.
그게 왜 다행인 거지.
그리고 그렇게 생각할 때쯤, 신도하가 덧붙여 물었다.
“혹시 한주진하고 전에 만난 적 있어?”
“네. 있어요. 라디오에서 한번.”
“아아.”
그러자 신도하가 마치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그래서 멀리한 거였군.”]
아무래도 내가 한주진을 의도적으로 멀리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던 모양이다.
“혹시 그때 그런 건 없었어?”
“그런 거요?”
“티 안 나게 괴롭힌다거나.”
말하는 걸 보니 한주진에 대해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나 보네. 하지만 이에 대한 답은 잠시 미뤄두었다.
“그건 왜 물으시죠?”
“왠지 그랬을 것 같아서.”
신도하가 꽤나 확신하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 분명 그렇긴 했지.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일단 예전부터 한주진이 도현이, 그러니까 루트를 상당히 싫어했거든.”
“아······.”
이것 역시 아는 사실이긴 했지만, 일단 모르는 척 반응을 했다. 루트 자체를 싫어한다는 건 처음 알았지만.
“그랬었군요.”
“응. 그러니 혹시 너한테 악감정을 보였다면, 아마 그것 때문일 거야. 그리고 그건 아마 지금도 여전할 테고.”
그건 맞았다.
여전히 싫어하고 있는 게.
그리고 내가 묻고 싶었던 것 또한 이와 관련된 것이었다. 형을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그 이유에 관해서.
“형은 왜 싫어하는 건데요?”
이에 신도하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하더니 얼마 안 가 곧 입을 열었다.
“예전에 일이 좀 있었어. 그리고 그 일로 인해 한주진의 자존심이 좀 상했고, 여전히 상해있는 상태인 거지. 한주진 자체가 자존심이 워낙 세거든.”
그래, 뭐. 그래 보이긴 하다만.
그것보다는 그 일이라는 게 궁금했다.
“말씀하신 그 일은 정확히 뭔데요?”
“아, 그거.”
그리고 신도하는 곧바로 그때의 일을 회상하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건 형이 한창 루트 활동을 하던 당시, 연말에 타 그룹들과의 합동 무대를 하게 되었는데 그 타 그룹에 당시 한주진의 그룹 역시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리허설 시간이 다 되어 가는 데도 한주진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이내 리허설 시간 막바지에 모습을 드러낸 한주진은 몸이 안 좋아 잠시 쉬고 있었다고 전했다고 한다.
“그런데 도현이가 그때 그런 거지.”
[되지도 않는 거짓말 그만하시죠.]
실제 한주진은 건물 뒤편에서 담배를 피우느라 리허설 시간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거였고, 그걸 눈치챈 형이 곧바로 그런 한주진을 타박했다는 거였다.
“사실 그때 이미 다들 알고 있을 거야. 넌 모르겠지만, 담배 냄새라는 게 생각보다 쉽게 빠지지가 않거든. 나름대로 향수 같은 걸로 대처를 했겠지만.”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렇지만 시간도 촉박하고 또 굳이 다른 그룹이랑 부딪히기도 싫으니 다들 어영부영 넘어가는 분위기였는데, 거기서 그냥 도현이가 질러 버리고 만 거지.”
음, 그렇지.
형 성격이라면 그럴 만하지.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해 한주진은 도현이를 그렇게 꺼리게 된 거고. 그 날 그 일 때문에 쪽이란 쪽은 다 당했거든. 애초에 주변에 있던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고.”
대충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 듯 했다.
은연중에 쉬쉬하는 것과 대놓고 알려지는 게 되는 건 아무래도 차이가 있으니.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형이 잘못한 건 딱히 없네.’
오히려 그 사건 하나로 지금까지도 싫어한다는 게 놀라울 뿐이었다.
“어쨌건 도현이 일 이외에도 한주진은 근본적으로 너한테 이득 될 게 없어. 그러니 되도록 멀리하는 게 좋아.”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
엮여봤자 좋은 꼴 못 볼 게 분명하고.
그렇지만 일단 인사는 해야 할 듯 했다. 게다가 원하는 정보도 얻었으니.
“네. 정보 공유, 감사합니다.”
“그래.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고.”
하지만 이쯤에서 새로운 의문 하나가 더 생겼다.
“근데 저한테 굳이 이런 걸 알려주시는 이유가 뭐죠?”
이렇게 정보를 알려준다고 해서 신도하에게 딱히 이득이 되는 건 없었다. 그렇기에 왜 굳이 이런 정보를 알려주는 건지 그게 이해가 안 됐다.
그리고 그런 내 말에 신도하는 작게 웃어 보이더니 이내 그 답을 내놓았다.
“일종의 어필이지.”
“어필이요?”
“응. 나랑 팀 하자는 어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