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이번엔 꼭 하고 싶더라고.
“그러니까 나랑 팀 하자.”
신도하는 뜬금없이 나에게 팀 제안을 하고 나섰다.
“팀이요?”
“응.”
이건 전혀 예상 못 한 상황이었다.
그보다 왜 나한테 팀 파트너 제안을 하는 건지부터 알 수 없었다.
“왜 저한테 제안하시는 건데요?”
“너랑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뭘요?”
“우승.”
신도하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답했다.
나랑 팀을 하면 우승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 뭔 알 수 없는 확신이냐.
‘다른 생각은 없어 보이는데.’
앞선 신도하의 말에 특별히 다른 의미는 없어 보였다. 일단 지금까지는.
‘혹시 이 사람도 밑밥을 까는 건가.’
하지만 또, 밑밥을 까고 다닐 성격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의심이 갔다. 왠지 모르겠지만.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데요?”
“그냥. 잘할 것 같은데. 게임.”
“그럼 잘못 보셨어요. 저 게임 잘 못 해요.”
“어, 그래?”
“네.”
물론 프로그램에서 주어지는 미션 중 내게 유리한 게임들이 몇 개 있던 건 사실이었다.
미션 내용이 달라지지 않는 한 여전히 유리할 테고. 그렇지만 그건 아직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너무 잘하는 걸 요구하는 게 아니야. 그냥 적당히. 방해만 안 될 정도여도 충분해.”
방해.
은근 거슬리는 단어였다.
“방해가 안 될 자신이 있습니다만.”
“그래? 그럼 더 좋네.”
“그렇다고 하겠다고 한 건 아니고요.”
“꽤 신중한 편이네.”
“당연하죠.”
애초에 당연히 신중해야 할 문제고.
“참, 누구랑 다르네.”
“그 누구가 형인가요, 혹시.”
“맞아. 역시 눈치가 빨라.”
신도하는 그렇게 웃으며 말했다.
형, 형 지금 디스 당했어.
근데 형이 원래 모든 면에서 결정이 빠른 편이긴 했다.
“앞서 말씀하신 건 지금 바로 대답 안 해도 되는 거죠?”
“그건 그렇지.”
“그럼 조금 더 고민을 해보겠습니다.”
그러자 신도하 역시 선뜻 그렇게 하라며 이를 받아들여 주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나자 신도하와 난 곧바로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도중 신도하가 다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번엔 웬만하면 꼭 하고 싶어서.”
“네?”
“우승. 작년에는 못 했거든.”
그러고 보니 작년엔 꽤 아슬아슬한 차이로 한주진한테 우승을 뺏겼었지.
한주진이 막판에 얻은 힌트가 하나가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되는 바람에 당시 보물찾기의 우승자는 한주진이 되었었다.
“승부욕이 꽤 있으시네요.”
“당연하지. 뭐든 1등은 많이 할수록 좋은 거잖아.”
그렇긴 하지.
게다가 이 사람은 꽤 긴 세월 동안 그룹으로서 정점에만 있었던 사람이니.
“그런 의미에서 앞서 내가 말한 거 꼭 신중히 고려해줬으면 좋겠어.”
“네. 알겠습니다.”
일단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신도하는 무슨 확신으로 나와 팀을 하면 우승을 할 수 있을 거라 믿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대충 봤을 때 애초에 손해가 될 만한 제안은 하지도 않을 타입 같고.’
그렇다는 얘기는 신도하가 보기에 나와 팀을 하게 된다면, 어떠한 ‘메리트’가 있을 거라 자체적으로 판단을 한 모양이다.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촬영장으로 돌아가니 이제는 정말 촬영이 시작되려는지 스텝들이 정신없이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시간을 딱 맞춘 모양이네.”
한 편에서는 한주진의 주변으로 아직까지 모여 있는 신인 출연자들이 보였다. 아직도 저러고 있는 거냐.
이후 신도하는 나중에 보자며, 다른 선배 출연자들이 있는 곳으로 먼저 이동했다.
‘근데 뭐, 사실 나쁘지 않은 제안이긴 하지.’
왜냐면, 사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나는 파트너 1순위 후보로 신도하를 생각해두었기 때문이다.
* * *
내게 있어 신도하는 파트너 후보 1순위였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지난 방송 모니터링 결과에 따른 판단이었다.
지난 방송을 봤을 당시, 가장 눈에 띄었던 인물은 단연 한주진이었다.
그도 그럴 게 한주진은 자기 분량을 뽑는데 능했다. 물론 이는 팀 분량이라기보다는 ‘본인 분량’에 해당됐다.
한주진은 마치 어떻게 하면 자신의 분량을 잘 뽑아낼 수 있을지 마치 알고 있는 듯이 행동했다.
거기에 최종 우승이라는 결과까지 얻었으니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반대로 신도하의 경우, 분량 자체가 한주진 만큼 많았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주어진 미션을 센스 있게 잘 풀어나갔다.
나머지 다른 출연자들의 경우 분량은 적당하지만 미션을 못하는 경우, 반대로 미션을 잘했지만 존재감이 없던 경우 등 다소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신도하를 가장 우선순위로 뒀었다. 같이 파트너를 할 선배 출연자로.
팀 파트너 조건으로 내가 가장 우선순위로 뒀던 것은 얼마나 미션을 잘 풀어나가는 가였으니까.
‘그런데 저쪽에서 먼저 제안을 하고 나설 줄은 몰랐네.’
무엇보다 신도하는 이미 알고 있을 터였다. 많은 신인 출연자들이 자신에게 줄을 설 거라는 걸. 분위기만 봐도 모를 수가 없었다.
현장에선 신도하 역시 한주진 만큼이나 인기가 좋았다. 대부분이 자신의 파트너 후보로 한주진 다음으로 신도하를 떠올렸으니.
이렇게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먼저 파트너 제안을 한다는 게 괜히 의심스러웠다. 그것도 굳이 나에게.
‘조금 더 두고 볼까.’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물론 그럼에도 지금에 있어서 가장 나은 선택은 여전히 신도하라는 건 변함이 없긴 하지만.
그리고 얼마 안 가, 촬영이 시작됐다.
오프닝 촬영은 당연히 신인 출연자들의 소개부터였다.
“안녕하세요, 윈썸의 우세현입니다.”
“와, 윈썸!”
“요즘 윈썸 엄청 잘 나가잖아요.”
“감사합니다.”
이에 선배 출연자들은 마치 준비한 듯이 한 명 한 명 인사를 할 때마다 큰 리액션을 보여주었다.
당연한 듯 보이는 이 리액션에도 사실 많은 게 담겨 있었다.
기본적으로 팀원 선택에 대한 우선권은 신인에게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들 미리 어느 정도 사전 작업을 해뒀겠지만, 어떻게서든 0표가 나오는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은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변화는 없군.’
그러나 신인들의 생각에는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 참, 투명하게도 모두 한주진, 아니면 신도하를 염두에 두고 있었으니까.
“세현 씨는 신도하 선배님이에요?”
“네?”
오프닝이 끝나고, 파트너 결정 코너를 위해 잠시 촬영이 중단된 자투리 시간. 옆에 있던 양한솔이 내게 또 한 번 물어왔다.
“저 사실, 아까 세현 씨랑 신도하 선배님이랑 있는 거 봤거든요. 그래서 혹시나 해서요.”
“아뇨. 아직 생각 중입니다.”
“아, 그래요?”
그러자 양한솔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다행히 아직 뭐가 있지는 않나본데?”]
아무래도 혹여 나와 신도하와 뭐가 있었을까 걱정을 한 모양이었다.
양한솔 역시 다른 신인들과 같이 1순위는 한주진인 것 같았지만, 그다음으로는 신도하를 생각하는 듯 했으니.
“혹시 그럼 하나 더 물어봐도 돼요?”
“네. 그러세요.”
“신도하 선배님이랑 친해요?”
“네?”
이건 또 무슨 소리냐.
“아무래도 세현 씨는 우도현 선배님 동생이시니까 혹시나 사적으로도 친분이 있는 건가 싶어서요.”
어째 과하게 떠보는 느낌인데.
굳이 사적인 질문까지 하고.
뭐, 어떻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긴 하지만.
“아뇨, 그건 아니에요.”
“아, 정말요?”
“네.”
그것만은 확실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사적인 친분은 무슨, 오히려 친분 같은 게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사실 저희들 사이에서 말이 꽤 많거든요. 혹시 세현 씨는 신도하 선배님이랑 이미 말이 다 되어있는 게 아닌가 하고요.”
마치 비밀 이야기를 하듯 양한솔은 그렇게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그래서 정말로 그런 게 아닐까 싶었는데. 세현 씨가 말하는 것 보니 다행히 그건 아니었나 봐요.”
양한솔이 안도하는 미소를 보였다.
근데 애초에 신도하는 왜 그렇게 인기가 많은 거지. 물론 미션을 잘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루트잖아요.”
“네?”
“신도하 선배님이요. 그 루트이다 보니 다들 한 번씩 팀을 해보고 싶나 봐요.”
“아, 네.”
음, 아무래도 그쪽이었나.
신도하는 그 루트의 멤버였으니.
“다들 신도하 선배님이랑 어떻게든 친해지고는 싶은데, 아무래도 대선배이기도 한데다가 뭐랄까 다가가기 힘든 그런 게 있잖아요.”
글쎄, 그런 건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래서인지 다들 말 걸기를 힘들어하더라고요. 솔직히 신인들은 다 기대 엄청 했을 걸요. 루트 신도하 본다고.”
하긴, 대기실에서도 다른 신인들이 한주진 포함한 다른 선배 출연자들을 보는 것과 신도하를 보는 시선이 유달리 다르긴 했었다.
‘그렇지. 그 루트긴 하지.’
아마 그 그룹의 이름이 주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는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이 다 동일하게 느끼고 있을 터였다.
이후 촬영이 곧 재개되었다.
그렇게 들어가게 된 촬영은 바로 파트너 선택 코너. 앞으로 있을 코너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 말할 수 있었다.
팀 구성 방식은 이전 시즌과 마찬가지로 팀이 되길 원하는 선배 출연자 뒤에 후배 출연자가 서는 방식이었다.
“자, 그럼 한주진 씨부터.”
첫 번째 순서부터 한주진이 나왔다.
이름이 불리 한주진은 그대로 정해진 의자에 앉았다. 그렇게 뒤를 돌고 있으면 한주진과 파트너가 되고 싶은 신인은 그 뒤로 가 줄을 서면 됐다.
“그럼 한주진 씨와 팀이 되고 싶은 후배 출연자 분들은 앞으로 나와 줄을 서주세요.”
앞선 담당 PD의 말이 끝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신인 출연자들은 그대로 한주원의 뒤로 가 줄을 섰다.
양한솔부터 시작해 은지영에, 강서찬까지. 꽤나 민망하게도 나를 제외한 모든 신인 출연자들이 앞으로 나간 상황이었다.
‘이럴 줄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되니 꽤 뻘쭘하네······.’
사실 신인 출연자 측 입장에서는 여러 번 기회가 있으니 기회가 되는 대로 줄을 서도 상관없었다. 그걸 고려해 지금 저렇게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간 거겠지만.
다시 말해, 이번에 되면 무엇보다 좋겠지만 안 되도 그만이라는 거다. 어차피 아직 남은 선배 출연자들이 많으니.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기회가 많다하더라도 한주진의 뒤로 가 줄을 서고 싶진 않았다. 그만큼 메리트 있는 상대도 아니고.
‘분량 독식에 이용당하고 싶지도 않고.’
다른 걸 다 제쳐두고, 지난 시즌 때 한주진과 팀을 맺은 신인 출연자의 분량만 봐도 한주진이 그다지 좋은 팀원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오─”
“와─”
무려 5명의 신인들이 한주진에게 줄을 서자 그 순간 이를 향한 감탄사들이 들려왔다. 제작진 측, 출연자 측 가릴 것 없이.
“와, 이거 놀라운데?”
“처음부터 이렇게 나오네.”
이와 관련해서 이런저런 리액션들이 오갔다. 더불어서 의도치 않았지만, 한주진과 더불어 나에게도 이목이 집중됐다.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는 모양새가 이목을 집중시키기 안성맞춤이긴 했다.
“자, 그럼 한주진 씨는 셋을 센 이후에 그대로 뒤를 돌아 확인해주시면 됩니다. 3, 2, 1······.”
휙─
그리고 한주진은 뒤를 돌았다.
“와!”
그대로 뒤를 돈 한주진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5명의 신인들을 보며 미처 예상 못했다는 듯 반응했다.
당연히 속으로는 이러한 상황에 굉장히 좋아하고 있었다. 별로 듣고 싶지 않았지만.
[“그 와중에 우세현만 안 왔네. 역시 또라이 X끼 동생이죠.”]
그놈의 또라이 X끼.
이제는 지겨울 정도였다.
“아, 이거 정말 행복한 고민이네요.”
그렇게 말했지만, 한주진은 이미 대충 파트너 상대를 생각해둔 터였다. 그러다 보니 선택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네, 한주진 씨는 원로드의 강서찬 씨를 선택했습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앞으로 한 팀이 되셨습니다.”
한주진이 선택한 사람은 다름 아닌 원로드의 강서찬이었다.
그렇게 한주진과 강서찬은 팀이 되었고, 선택받지 못한 나머지 신인들은 한껏 실망하는 얼굴을 한 채 자리로 돌아왔다.
반면, 파트너가 된 한주진과 강서찬은 꽤나 분위기가 좋아보였다.
하지만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었고, 나에게 있어 중요한 건 이다음부터였다.
“자, 그럼 다음은 신도하 씨. 앞으로 나와 주세요.”
또 다른 인기인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