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거짓말쟁이 군단
“여기? 여기를 제일 먼저 가고 싶다고?”
“네.”
그러자 신도하는 내가 가리킨 장소를 다시 한번 확인해보더니 이내 살짝 놀란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곳은 앞서 말했다시피 별 5개짜리, 고난도 미션 장소였다.
그리고 이곳을 가장 먼저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사전 먼저 좋은 정보를 얻어 게임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물론 마침 거리는 멀지 않아. 하지만 가장 높은 난이도야. 상관없어?”
신도하가 다소 염려된다는 투로 물었다. 그리고 난 고민 없이 답했다.
“네. 상관없어요.”
내가 이렇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미션의 ‘이름’ 덕분이었다.
지도에 미션의 내용은 적혀있지 않았지만, 친절하게 이름은 나와 있었다.
그리고 별 5개짜리 이 미션에 붙여진 이름. 그것은 바로 [거짓말쟁이 군단].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름만 적혀 있을 뿐, 자세한 내용에 관해서는 설명된 게 없었다.
그러니 붙여진 이름을 보고 해당 미션의 내용을 유추해야만 하는데, 대충 보기에도 그것은 나에게 상당히 유리해 보이는 이름이었다.
“꽤나 자신 있는 모양이네.”
“그렇다기보단, 그냥 도전해보는 거죠.”
“그래?”
사실 미션도 미션이지만, 지금 내가 한 제안을 신도하가 받아들여 줄지도 의문이긴 했다.
어떻게 보면 신인이 멋도 모르고 가장 높은 난이도로 가자고 막무가내로 조르는 셈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신도하는 의외로 크게 고민하는 기색 없이 곧바로 답을 내놓았다.
“그래, 한번 가보자.”
“동의해주시는 건가요?”
“응. 못 갈 거 없잖아.”
그러더니 곧 지도를 바라보며, 먼저 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선뜻 동의해 줄줄은 몰랐는데.
‘정말로 내가 게임을 잘한다고 믿고 있기라도 한 건지······.’
근데 또 어떻게 보면, 1등을 만들어주겠다고 큰소리를 떵떵 쳐놨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안 가?”
“아뇨, 갈게요.”
그리고 나 역시도 그런 신도하를 뒤따랐다. 그렇게 오해하고 있다면 면목 없긴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일단 그렇게 오해하게 놔두기로 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다른 게 아닌 보물에 대한 힌트를 얻는 거니까.
* * *
별 5개짜리의 미션 장소는 다른 이들이 나간 정문이 아닌 후문 가까이에 있었다.
테마파크 자체가 워낙 넓다 보니 거기까지 가는 데만도 꽤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조금 더 걷자 마침내 신도하와 난, 미션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당연하지만, 가는 도중 그 어느 팀과도 만나지 않았다. 다른 팀들과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셈이니.
미션 장소에 도착하자, 대기하고 있던 제작진이 신도하와 나를 맞이했다. 동시에 조금 놀란 것 같기도 했다.
아마도 이렇게 빨리 이곳에 누군가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 했다.
그곳엔 좁고도 긴 테이블 하나가 미리 세팅되어 있었는데, 그 위로 플라스틱 컵 5잔이 놓여있었다.
“네. 어서 오세요. 이곳은 별 5개의 미션 장소입니다.”
그대로 제작진은 이번 미션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이곳 미션의 이름은 [거짓말쟁이 군단]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거짓말쟁이 군단이란, 저희 제작진 측에서 미리 섭외해둔 분들이고요. 여기 바로 옆에 계신 분들입니다.”
제작진이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5명의 보조출연자들 나와 준비된 테이블 앞에 섰다.
사람 5명.
컵 5개.
이거 느낌상 왠지 그거 같기도 한데.
“여기 컵 안에 든 건 식혜입니다. 하지만 단 하나, 소금 식혜가 섞여 있죠. 여러분은 이제 누가 그 소금 식혜를 마셨는지 맞혀주시면 됩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그 게임이었다.
5명 중 혼자 다른 것을 마신 1명을 유추해내는 게임.
“참고로 질문은 한 사람당 한 번만 하실 수 있고요. 기회도 한 번입니다. 그 한 번의 기회 안에 누가 진짜 소금 식혜를 마셨는가를 맞춰주시는 겁니다.”
질문도 기회도 단 한 번.
별 개수가 높은 미션이다 보니 주어진 기회들이 상당히 적었다.
게다가 앞에 있는 사람들은 제작진이 미리 섭외해둔 보조출연자들이다.
그만큼 사전 연기 교육이 제대로 되어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를 뒷받침 하듯 보조출연자들은 등장 이후로 줄곧 무표정을 고수하고 있었다. 정말 한 치의 표정 변화도 없이.
분위기상 그저 눈으로 판별하려는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물론 애초에 눈으로 판별하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지만.
“자, 그럼 이제 미션 시작할게요. 도전 준비가 되셨다면, 바로 말씀하시면 됩니다.”
준비야 언제든 되어 있는 상태였다.
나는 곧바로 신도하를 향해 물었다.
“시작할까요?”
“좋아.”
그렇게 시작된 미션.
별 5개 미션의 첫 도전자였다.
“그럼 미션, 시작합니다!”
미션이 시작되자마자 앞에 있던 보조출연자들은 그대로 식혜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이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어차피 다들 표정의 변화는 없겠지.’
그렇게 디렉을 받았을 테니.
그리고 정말로 보조출연자들은 식혜를 마시고 난 뒤에도 전과 마찬가지로 표정에 미동이 없었다.
“다들 연기가 엄청나신데?”
“그러게요.”
심지어 한 모금을 마신 것도 아니고 반복해서 여러 번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일반 식혜를 든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소금 식혜를 마시고 있는 사람은 정말 엄청난 연기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근데 뭐,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어차피 지금은 다 무용지물이었다.
누가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건지는 너무나도 쉽게 알 수 있으니까.
[현재 상태 : ON]
“자, 그럼 이제 각자 한 분씩 질문하기 시작할게요.”
* * *
연기하는 보조출연자들 중 진짜를 찾기란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오른쪽에서 2번째.’
저 사람이 진짜네.
저마다 표정의 변화는 없었지만, 그 와중에 저 뒤로 평점심을 잃고 괴로워하고 있는 이는 앞선 사람, 한 명뿐이었다.
[“아오, 진짜 짜다, 너무 짜!”]
이렇게 보니 다른 사람들에 비해 표정의 흔들림이 살짝 있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진실을 알고 있기에 그런 거겠지만.
“그럼 각자 한 번씩 생각하신 질문을 해주세요.”
곧바로 질문 타임에 들어갔다.
각자에게 주어진 질문 기회는 단 한 번.
그리고 질문은 의심이 가는 보조출연자 한 명을 직접 지목해 묻는 방식이었다.
해당 질문은 자유 형식.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물어보면 됐다.
“어떻게, 상의할까?”
“네. 그래요.”
질문을 하기 전,
잠시 의논의 시간을 가졌다.
일단 각자 의심이 가는 인물을 말해보기로 했는데, 신도하는 왼쪽에서 첫 번째 인물을 지목했다.
“이유는요?”
“뭔가, 표정이 약간 힘들어 보이는 것 같아서.”
“그렇군요.”
확실히 능력이 없다면, 일반 사람은 구분하기 힘들어 보였다.
“세현이, 넌?”
“전 오른쪽에서 2번째분이요.”
“2번째? 아.”
신도하가 곧바로 해당 인물을 확인했다.
“개인적으로 저분이 진짜라고 생각해요.”
“근거는?”
“일단 표정도 표정이지만, 이제껏 세어봤을 때,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마시는 빈도가 더 낮아요.”
“마시는 빈도?”
“네. 무의식적인 행동 같지만요.”
다시 말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마시는 다른 이들과 달리 쓴 소금 식혜를 마시는 이는 아무래도 천천히 마시게 되다 보니 그 빈도수가 적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걸 다 보고 있었어?”
“그냥 어림잡아서요.”
“눈썰미가 좋네.”
그렇게 칭찬받을 건 아니고.
누가 진짜인지 알기 때문에 더 주의 깊게 볼 수 있었던 거였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식혜 색깔도 좀 달라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색깔?”
사실 이건 그냥 끼워 맞춘 거였다.
대충 그럴듯하게 보일만 한 근거를 더 붙여야 할 것 같아서.
“음, 그래.”
그것까지 듣자 신도하는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더니 얼마 안 가 곧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나도 거기에 한 표 던질게.”
어, 이렇게 쉽게?
“이대로 그냥 가시는 건가요?”
“응.”
평소 고집이 없는 편인가.
까마득한 후배의 말을 이렇게 쉽게 따라준다고 하니 어쩐지 좀 뭔가 싶었다.
“파트너가 하는 말이잖아. 믿어줘야지.”
“아······.”
마치 앞서 내 생각을 읽은 듯 신도하는 그렇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응.”
일단 여기선 감사 인사를 하는 걸로 하고 그대로 내 의견을 밀고 나가기로 했다.
혹시나 신도하가 그렇게 못하겠다고 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일이 쉽게 풀렸다.
“질문은 따로 생각해둔 거 있어?”
“대충요. 선배님은요?”
“음. 나도 있긴 한데. 일단 먼저 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난 질문을 하겠다는 의사를 곧바로 제작진에게 전달했다. 이어서 하게 된 질문.
“저는 오른쪽에서 2번째 있으신 분에게 질문하겠습니다.”
그러자 곧 해당 보조출연자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이어서 나는 해당 인물이 들고 있던 식혜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거, 소금 식혜죠?”
* * *
주변이 잠시 고요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고요했다기보다는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그 정적은 마치 내게 이렇게 묻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알았냐고.
[“어떻게 알았지?”]
지목을 받은 보조출연자는 지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뇨, 이건 그냥 일반 식혜입니다.”
해당 보조출연자가 재빠르게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살짝 당황한 게 보였다.
“네. 알겠습니다.”
“세현 씨 질문은 이게 끝인가요?”
“네. 끝입니다.”
중요한 건 다 확인했으니.
“그럼 도하 씨, 질문해주세요.”
“네. 그럼 질문하도록 하겠습니다.”
분명 생각해둔 질문이 있다고 했지.
무슨 질문을 하려나.
“저도 같은 분께 질문 하겠습니다.”
그러자 해당 보조출연자가 잠시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달아오는 질문에 꽤나 당황한 듯 보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신도하의 질문.
“그거 마셨을 때, 어땠어요?”
“어, 굉장히 달고 맛있었습니다!”
“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대답을 들은 신도하를 나를 향해 말했다.
“그렇다는데?”
“아, 네.”
왜 내게 마치 확인받는 듯이 그러는지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앞선 신도하의 질문으로 인해 어쩌다 보니 또다시 정답에 확신을 주는 대답이 나왔다.
[“먹는 순간 뱉고 싶어 죽는 줄.”]
다음과 같은 솔직한 생각이 나왔으니까.
그리고 잠시 뒤,
최종 선택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저희는 저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신도하와 나는 앞서 말한 대로 오른쪽에서 2번째 인물을 지목하였고, 그대로 잠시 최종 결과를 기다렸다.
당연히 긴장은 안 됐다.
결과를 알고 있었으니까.
아, 신도하는 긴장을 꽤 하고 있을지도.
“왜?”
“아뇨.”
어째 긴장하는 것 같지 않은 얼굴이다.
“그럼 정답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미션의 정답은······.”
“4번 출연자가 맞습니다!”
“와─!”
결과 발표와 동시에 주변에서 놀라는 소리들이 들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격한 반응이었다. 그, 살짝 부담스러울 정도로.
“아니, 어떻게 맞췄지?”
“어떻게 바로 알았어요?”
“이게 이렇게 쉬운 미션이었나?”
그러한 와중에 살짝 당황한 조연출의 모습도 보였다. 죄송합니다. 너무 빨리 맞췄죠.
“네, 그럼 일단 힌트 바로 드릴게요.”
그리고 제작진은 신도하에게 그대로 힌트가 담겨 있는 봉투 한 장을 건네주었다.
“안에 보물에 대한 힌트가 적혀있어요. 그대로 펼쳐서 봐주시면 됩니다.”
이어서 과연 어떤 힌트가 나올지 기대를 하는 와중에, 신도하가 내게 뜬금없이 물어왔다.
“직접 펴볼래?”
아니, 이 사람이 왜 이래.
여기선 당연히 당신이 펴야지.
“아뇨, 선배님이 펴주세요.”
“그래. 알겠어.”
그러더니 곧 봉투를 열어 카드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그곳엔 이번 보물찾기에 관련 중요한 힌트 하나가 적혀 있었다.
[보물은 ‘체험학습장’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