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엉켜있는 생각들
[보물은 ‘체험학습장’에 있습니다.]
별 5개의 미션으로 얻은 중요 힌트 하나.
그 힌트는 바로 현재 보물이 숨겨져 있는 구체적인 장소였다.
‘생각보다 엄청 좋은 정보잖아?’
물론 별 5개인 만큼 어느 정도 힌트에 대한 기대를 하긴 했으나 이렇게나 좋은 힌트일 줄은 몰랐다.
넓고 넓은 이 테마파크 안에서 보물이 있는 ‘특정’ 장소를 직접적으로 알려준 셈이니까.
“정보가 생각보다 좋네.”
“네. 그런 것 같아요.”
신도하 역시 획득한 정보를 보며 같은 생각을 한 듯 했다.
“그럼 멀리 갈 필요 없이 곧바로 체험 학습장으로 가면 되겠네.”
“아, 근데 가기 전에 힌트를 몇 개 더 찾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체험 학습장, 거기도 꽤 넓었지.”
테마파크 자체가 넓다 보니 체험 학습장 자체도 면적이 좀 있었다. 해당 건물 이외에도 주변이 풀숲으로 둘러싸인 형태였고.
그러니 무작정 가서 뒤지기보단 힌트를 몇 개 더 얻어 시간을 절약하는 편이 나았다.
“그나저나 진짜로 맞출 줄은 몰랐어.”
“네?”
그때, 갑자기 신도하가 뜬금없는 소릴 했다.
“방금 미션 말이야. 솔직히 말해서 난 확률이 반반이라고 봤거든.”
“아, 네······.”
역시 완전히 믿고 있는 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근데 그건 당연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일말의 의심도 없이 믿기란 쉽지 않으니까. 게다가 내 의견을.
“그냥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운도 좋고, 감도 좋았지.”
실제론 둘 다 아니었다.
단순히 능력이라는 치트키를 사용한 것뿐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세현이 넌, 감이 꽤 좋은 것 같아.”
“감사합니다.”
“그리고 역시 잘한 선택이었다고 봐.”
잘한 선택?
그 말에 난 잠시 신도하를 응시했다.
“파트너로 선택한 거.”
“아······.”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갔다.
하지만 이건 과한 칭찬이 아닌가 싶은데. 게다가 아직 한 거라고는 고작 힌트를 하나 찾은 것뿐이었다.
“그렇다 하기엔 이제 시작이잖아요.”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도 있잖아.”
“그건, 그렇긴 하죠.”
어떻게 보면 정말로 시작이 반이 된 셈이었다. 보물이 있는 장소를 알게 됐으니.
“그럼 다른 미션은 어디로 갈까?”
신도하가 지도를 다시 펼쳐 들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곳은 두 곳이었다.
하나는 별 2개짜리, 다른 하나는 별 4개짜리.
“일단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곳을 공략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요.”
“그렇다면, 별 2개랑 별 4개네. 혹시 먼저 가고 싶은 곳 있어?”
“선배님은요?”
그 말에 신도하가 잠시 고민했다.
“당연히 별 2개짜리가 쉽겠지만···막상 이렇게 좋은 힌트라는 걸 알게 되니 더 높은 곳부터 가고 싶어지는데.”
“그렇다면, 4개부터 가시죠. 어차피 단순히 순서상의 문제니까요.”
“좋아. 그럼 4개로 가자.”
그래서 일단 별 4개짜리 미션부터 가기로 정했다. 해당 미션의 이름은 [오감만족].
대충 보니 오감을 이용한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별 4개짜리. 얻을 수만 있다면, 이건 딜로도 쓸 수 있겠네.’
모든 미션에 성공해 힌트를 얻는 것보다는 다른 팀과 힌트 교환을 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별 5개짜리는 정보 교환을 하는데 그리 좋은 카드가 아니다.
가장 핵심 정보인 이것을 교환용으로 써 먹는다는 건 그만큼 이쪽의 메리트를 깎아 먹는 짓이니까.
반면, 별 4개짜리는 교환용으로 사용하기 괜찮았다.
별 5개 다음으로 좋은 힌트인 만큼 유리한 위치에서 써먹을 수 있다. 물론 이것도 단순히 교환용으로 쓰기엔 너무 좋은 카드이긴 하지만.
‘적정선은 별 3개짜리겠지만, 일단 별 4개짜리를 힌트를 획득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그리고 얼마 안 가,
별 4개짜리 미션 장소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역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제작진이 나와 신도하를 반겼다.
“네. 어서 오세요. 여기는 별 4개 난이도의 미션 장소입니다.”
별 4개의 난이도인 이번 미션의 내용은 바로 미각을 이용한 음식 이름 맞추기였다.
팀원 중 한 명이 눈을 가린 채로 앞에 놓인 브랜드가 다른 음식 3가지를 한 번씩 먹어본 뒤 각각의 음식 브랜드는 맞추는 게임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나올 음식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이번에 나올 음식은 바로 라면입니다.”
뒤이어 의논 끝에 내가 눈을 가리기로 했다. 사실 다른 게 아닌 라면이라서 하겠다고 나선 것도 있었다.
백은찬이 워낙 라면을 좋아하는 덕에 같이 야식으로 먹은 적이 꽤 많아서.
게다가 다행히도, 어떤 라면 브랜드가 문제로 나왔는지 <보기>는 줬다.
그리고 눈을 가리고 있기에 라면을 먹는 데는 같은 팀원의 도움이 필요했다.
“1번 온라면, 2번 언라면, 3번 샛별라면이요.”
“정답!”
“와─”
또다시 스텝들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동안 야식을 열심히 먹은 보람이 있···아니, 이건 아닌가.
뒤이어 안대를 풀자마자 신도하가 꽤나 놀란 목소리로 물어왔다.
“대단한데. 평소에 라면 좋아해?”
“야식으로 잘 먹어요.”
“다음에 한번 사줘야겠네.”
아뇨, 사양하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당연히 말하진 못했다. 눈에 보이는 카메라만 수십 대이니.
그렇게 전달받은 이번 미션의 힌트.
힌트는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보물은 특정 공간 안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보물은 특정 공간 안이라.
그렇다면, 어딘가 안에 숨겨져 있다는 건가. 적어도 사방이 노출되어 있는 장소에 있을 확률은 없어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보가 부족했다.
가지고 있는 힌트가 고작 2개에 불과하니.
그리고 근처에 있던 또 다른 미션 장소, 별 2개 난이도의 장소로 향했다. 그런데 그곳에선 생각지도 못한 게임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 이게······.”
“양궁이네.”
별 2개짜리 미션은 바로 준비된 활로 9점 이상 맞추기였다.
‘9점······2개짜리 치고 어려운 거 아닌가.’
물론 과녁과의 거리는 멀지 않았다.
다만, 이제껏 활을 한 번도 쏴본 적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각 팀원에게는 한 번씩의 기회가 주어졌다. 그 한 번 안에 9점에 쏴 맞추기만 하면 됐다.
“먼저 쏴.”
순서는 내가 먼저 쏘기로 했다.
그 다음, 신도하.
둘 중 한 명만 쏘면 미션 클리어이니 어떻게 보면 기회는 두 번인 셈이다.
휘익─
“아······.”
그리고 예상한 대로 내가 쏜 화살은 9점에서 꽤 빗나간 8점에 머물렀다.
“잘했네.”
어디 가요.
비꼬는 건가.
곧바로 신도하는 활을 잡았다.
뭔가 자세가 굉장히 안정적······.
휘익!
“10점입니다!”
?????????
순간 당황했다.
“예전에 아이돌 체육 대회 때 많이 쏴봤거든.”
“아······.”
그러고 보니 양궁에선 루트가 계속 금메달이었지.
그 당시 형도 양궁 종목에 나갔었는데, 활을 당기는 순간 클로즈업된 얼굴이 잘생겼다고 매년 화제가 되곤 했었다.
“세현아, 힌트.”
“아, 네.”
어찌 됐건 그렇게 세 번째 힌트를 받았다.
그런데 세 번째 힌트를 받자마자, 테마파크 안으로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중간 점검, 중간 점검 시간입니다. 모두 XX 정원으로 모여주세요.]
* * *
잠시 중간 점검 시간.
중간 점검 시간에는 현재까지 획득한 힌트의 개수를 확인해보는 시간이었다.
이는 팀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채로 최다 힌트 보유팀과 최저 힌트 보유팀을 공개하는 것이었다.
“많이 모았어요?”
중간 점검 장소에 들어서자마자 미리 와있던 한주진이 나와 신도하를 향해 물었다.
“한주진 씨는요?”
신도하가 대답 없이 되물었다.
“저희야 당연히 많이 못 모았죠. 이게 미션들이 은근 힘들더라고요.”
한주진이 피곤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보였다. 옆에서 강서찬이 두 사람의 대화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혹시 나중에 교환할 일 생기면 교환합시다. 그게 서로에게 이득이고 좋잖아요.”
의외로 한주진이 먼저 정보 교환을 제안하고 나섰다. 뭐, 얼마나 모았길래.
“기회가 된다면 그렇게 해야죠. 어찌 됐건 정보 싸움이잖아요.”
“그래요, 그래. 그리고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지만요,”
그리고 한주진이 주변을 살피는 듯 급격히 목소리를 낮춘 채로 말했다.
“개인적으로 만약 내가 1등을 못 한다면, 전 도하 씨가 했으면 싶거든요. 도하 씨, 항상 열심히 하시니까.”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그만큼 한주진은 꽤나 자신감에 차 있는 모습이었다. 다시 말해, 힌트를 많이 획득했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네,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진심이에요. 정말. 아무튼 서로 열심히 하도록 해요.”
그리고는 내게 시선을 한번 두는 듯 하더니 곧바로 강서찬과 함께 제자리로 돌아갔다.
[“재수 없는 X끼들.”]
앞서 한주진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도중에 얼마나 모았는지 한번 확인을 해봐야겠군.’
아마 중간 점검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들 한 번씩 자신의 힌트 개수를 떠올리는 시점이 있을 터였다.
그러니 그때 한주진의 생각을 들여다볼 생각이었다.
“여러분, 다들 이곳으로 모여주세요!”
때마침, 스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모든 팀이 모였고, 모든 팀이 모인 것을 확인한 담당 PD가 현재 힌트 보유 상황에 대한 결과를 발표하였다.
“가장 힌트를 많이 보유하신 팀은 총 4개고요. 가장 적게 보유하신 팀은 총 2개입니다.”
4개, 2개라.
아직 중반이라 그런지 그다지 큰 차이가 있진 않았다.
‘가장 적게 보유한 팀은 은지영네 팀이고, 가장 많이 보유한 팀은······.’
[“1등이네?”]
한주진 팀이었다.
[“아, 이번에도 우승의 느낌이 오는데.”]
꽤나 여유만만이군.
개수도 개수지만, 어떠한 난이도의 힌트를 가졌는지 그것도 중요했다. 나중에 한번 슬쩍 떠볼까.
“저, PD님.”
“네. 주진 씨. 말씀하세요.”
“혹시 별 5개짜리가 공략됐는지는 따로 안 알려주시나요?”
한주진이 손을 들어 물었다.
“네. 미션 클리어 여부는 따로 알려드리지 않습니다. 애초에 누군가 클리어 한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니까요.”
“아, 네. 그렇군요.”
그 말을 들은 한주진은 꽤나 아쉽다는 표정을 했다. 대충 보니 누군가 별 5개짜리 힌트를 얻었다면, 그쪽과의 교환을 생각하고 있던 모양이다.
하지만, 별 5개짜리 미션을 클리어한 팀은 없었다. 우리 팀을 제외하고는.
이는 별 5개짜리 미션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마자 들리는 저마다의 생각에 기반한 추측이었다.
다시 말해,
여전히 우리 팀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에 있다는 말이었다.
‘대충 이 시점에서 확인을 해볼까.’
이어서 다른 팀들을 조용히 눈여겨 보였다. 각자 구체적으로 어떤 힌트를 보유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
[“──”]
[“───”]
중간 상황을 전달받은 이후라서 그런가.
다들 이런저런 생각들이 참 많았다.
그러다 보니 생각들은 저마다 꽤 엉켜있는 상태였다.
‘머리 아프네.’
마치 넘쳐 나는 정보 포화, 그 중심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집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 그렇게 눈치 보지마.”
그 순간,
신도하가 나를 향해 말했다.
이에 놀라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네?”
“주변을 과하게 살피는 것 같아서. 굳이 그렇게 안 해도 돼.”
“아······.”
분위기를 살피고 있다고 본 건가.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우승은 우리가 할 테니까.”
“꽤 확신하시네요.”
“그동안 1등 경력이 꽤 되거든. 그러다 보니 그쪽으로는 감이 좀 발달해있는 편이지.”
아, 내가 1등이구나.
이런 느낌이 온다는 건가?
1등 경력이 많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 뒤는 다소 신빙성이 없는 소리였다.
“전혀 못 미덥단 표정이네.”
“아닙니다. 믿습니다.”
“아닌 것 같은데?”
믿는다니까 그러네.
물론 대충하는 소리가 맞지만.
“그럼 다시 게임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신호를 드리면, 바로 다시 진행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중간 점검이 끝이 나고, 이후 다시 게임이 재개되었다. 그리고 지도 펼쳐 다음 미션 장소를 확인하려고 하는데,
“도하 씨!”
그 순간, 한주진이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는 한껏 친절해 보이는 얼굴로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우리 힌트 교환 안 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