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의논할 게 있는데요.
클로징 촬영 이후, 정신없는 촬영장에서 한주진은 홀로 조용히 빠져나왔다.
그리고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확인하자 곧바로 가지고 있던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지금 그는 담배 생각이 절실했다.
꽤나 속이 터지는 상황에.
‘X발······.’
이를 대변하듯 자욱한 연기가 그의 입으로부터 흘러나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냐.’
그는 자신의 지난 행적을 곰곰이 돌이켜보았다. 분명 중간 점검 때까지만 해도 남들보다 앞서있었다.
‘힌트, 그 힌트를 교환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중간 점검 이후, 신도하 팀과 교환한 힌트. 아마도 그 힌트 교환을 기점으로 흐름이 바뀌게 된 것 같았다.
‘게다가 별 5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을 해?’
확실한 건 아니지만, 한주진이 느끼기에 신도하 팀은 그때 이미 별 5개짜리의 힌트를 가지고 있던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입을 털고······.”
그와 동시에 떠올랐다.
당시 우세현이 했던 말이.
[별 4개짜리는요?]
[힌트요. 가지고 계실 것 같은데.]
[4개짜리로 교환하시죠. 그게 더 서로에게 이득이잖아요.]
어떻게 된 건지 당시 우세현은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과 별 4개짜리 힌트를 가지고 있다는 걸 마치 알고 있는 양 말을 했다.
‘형제가 아주 쌍으로 X랄을 하는구나, X랄을 해.’
그때도 분명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마치 자신이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걸 당연하게도 알고 있다는 듯한 그 말투. 그걸 확신하는 표정.
짜증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불어서 자신한테 딜을 하는 꼴이라니.
헛웃음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 시점에서 더 열 받는 건,
우승 또한 날아갔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그 우승자는 바로 신도하.
그리고 우세현이었다.
가장 지고 싶지 않았던 팀에게 진 한주진의 지금 심정은, 감히 뭐라 말할 수 없는 심정이었다.
그렇게 있다 보니 어느새 물고 있던 담배가 다 태워져 있었다. 한주진은 그것을 곧바로 바닥에 던진 후, 빠르게 짓밟아주었다.
그리고 한주진은 곧장 대기실로 향했다. 여기 더 오래 있어봤자 기분만 상할 것 같았기에.
그렇게 현장을 지나치는데 순간 눈앞으로 우세현이 보였다. 재수가 없으려니. 한주진은 일단 몸을 돌려 그를 빠르게 지나쳤다.
‘나중에 현장에서 만나면 어떻게, 쪽을 한번 줄까.’
연차 많은 선배와 신인이라는 명목상 딱 갈구기 좋은 위치였다. 뭣하면 대본이라도 한 번 더 섞어버릴까 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기실로 막 들어서려는데, 그 앞에서 한주진은 우연히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던 인물과 마주하게 되었다.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하 씨.”
“네, 수고 많으셨습니다.”
신도하였다.
당연하지만, 신도하 역시 한주진에게 있어 달갑지 않은 인물이었다.
‘일단 이 X끼는 인상부터가 구려.’
세간에선 호감상이라 불리는 모양이지만, 한주진의 입장에서는 그냥 인상이 구렸다. 음습하게 꿍꿍이를 꾸밀 것 같은 인상이라.
그리고 그렇게 신도하를 스쳐 지나가려 하는데, 그 순간 놀랍게도 신도하 쪽에서 먼저 다시 말을 걸어왔다.
“이제 유치한 짓은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예?”
“그래도 어른인데. 어린애 상대로 철없는 짓 하는 건 너무 좀 그렇지 않나.”
그 말에 한주진은 순간 말을 잃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든 생각.
‘이 X끼 지금, 우세현을 커버치고 있는 건가?’
말하는 걸 보니 대충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앞선 말도 말이지만, 신도하가 저에게 직접 이런 말을 한다는 것에도 놀랐다.
‘하루 팀이었다고 그새 친해지기라도 한 거냐.’
그게 아니라면 그래도 같은 멤버의 동생이라고 감싸주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지금 신도하가 자신에게 날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분명 좋지 않았다.
“아이, 도하 씨. 무슨 소리예요. 어린애 이야기는 또 뭐고, 철없는 짓은 또 뭐예요?”
일단 그는 시치미를 떼고 보기로 했다.
마치 그런 일은 전혀 없을 거라는 양.
그리고 그런 한주진의 반응을 신도하는 잠시 조용히 지켜보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쓸데없는 장난질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던 신도하의 목소리는 꽤나 단호했다. 그리고 이를 듣던 한주진은 그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이후 신도하는 먼저 그 자리를 떠났고, 한주진은 신도하가 떠난 뒤에도 여전히 그곳에 서 있을 뿐이었다.
“하하, 하하······.”
그리고는 곧 허탈하게 웃었다.
‘X끼, 표정 한번 살벌하잖아.’
한주진은 꽤나 놀랐다.
그 탓에 한순간이지만 다음과 같은 생각이 스쳤다.
‘뭔가 이거 X된 느낌인데······.’
뒤이어 몰려오는 당혹감에 한주진은 상당히 오래도록 그곳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 * *
“수고하셨습니다.”
클로징 촬영까지 모두 끝나자 현장은 저마다 퇴근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나 역시도 정신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신인인 만큼 인사해야 할 사람도 많았고.
‘그나저나 신도하는 어디 있지.’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에 나는 신도하를 찾기 위해 잠시 현장을 둘러보았다. 오늘 하루 파트너이기도 했고, 또 긴히 의논해야 할 일도 있었으니까.
그때, 때마침 멀리서부터 걸어오는 신도하가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쪽을 향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선배님.”
“아, 세현이.”
뭐지?
순간이지만 뭔가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인데?”
“인사드리려고요.”
“아. 인사.”
그러자 신도하가 먼저 내게 수고했다며 말을 건넸다.
“오늘 아주 활약이 대단했어.”
“······감사합니다.”
열심히 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활약이라 들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신도하도 여러 가지 방면에서 도움을 많이 줬고.
무엇보다 신도하가 내 의견을 많이 수용해줬던 게 컸다. 팀 대결인 만큼 개인의 독단이란 건 있을 수 없으니까.
“근데 이건 어떻게 할까요?”
나는 곧바로 가지고 있던 순금 케이스를 들어 보였다. 앞서 신도하와 의논할 것이라는 건 다름 아닌 우승 상품으로 받은 이 순금에 관한 얘기였다.
제작진이 순금을 하나만 준 탓에. 이왕이면 사람 수에 맞게 줄 것이지.
사실 선배인 신도하에게 넘기는 게 그림 상 맞을 것 같긴 한데, 내심 숙소로 가져가 멤버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너 가져.”
“네?”
“난 어차피 별로 필요 없어서.”
이거 순금인데?
순금은 필요 없어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건데······.
“그래도 선배님께서 가져가셔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그냥 가져가기에는 좀.”
“그냥 가져가. 난 우승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신도하는 어째 평소보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우승할 수 있었던 건 네 덕이 크고.”
“아뇨. 선배님도 지분이 꽤 되시는데요.”
“그래봤자 얼마 안 될걸. 한 이 정도?”
신도하가 손가락을 이용해 상당히 작은 원을 만들어 보였다. 그건 너무 오바 같은데.
“아, 그보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한주진이 별 4개짜리 힌트를 가지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그건 그냥 느낌상 찔러본 거였어요. 근데 운이 좋게 잘 풀린 거였고요.”
“그래?”
그런데 다행히 한주진이 발뺌하지 않아 의도대로 잘 풀린 거고.
“똑똑하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파트너 선택은 정말 잘 한 것 같아.”
어째 아까부터 계속 띄워주는 말만 해주는 것 같았다. 그만큼 기분이 좋다는 건지.
[“감도 좋고, 눈치도 빠르고.”]
음, 그래.
속마음도 대충 비슷한 걸 생각하고 있었다.
“어쨌든 파트너를 잘 둔덕에 그렇게 염원하던 우승도 했으니 나중에 밥이라도 사야겠어.”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그래, 방송할 때쯤 한번 먹으면 좋겠다.”
아니, 내 말은 자동 스루냐.
모르겠다, 대충 그때 봐서 스케줄 핑계로 거절하면 되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밥 먹는 건 좀 오바였다.
“그런 의미에서 난 앞으로도 종종 친하게 지냈으면 하는데.”
전 싫은데요.
하지만 차마 그렇게 말은 하지 못하고 대충 적당히 대답했다.
“아, 네.”
그리고 그런 내 대답에 신도하는 조용히 웃어 보이기만 했다. 너무 싫은 티를 냈나.
“세현아.”
“네.”
그리고 신도하는 잠시 침묵하더니 다시금 입을 열었다.
“개인적으로 도현이에게는 항상 미안해하고 있어.”
* * *
신도하는 뜬금없이 그런 말을 꺼냈다.
갑자기 형에 대한 이야기를.
‘형에게 항상 미안해하고 있다고?’
지금 이 상황에서 왜 굳이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뒤에 숨겨진 다른 의도가 없었기에 더더욱.
그리고 잠시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신도하를 보고 있는데, 그런 날 향해 신도하는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나중에 시간이 맞는다면, 정말로 밥 한번 사줄게. 어떻게 봐도 오늘 우승에 대한 공은 세현이 네 공이 가장 크니까.”
그리고는 다른 말없이 그대로 돌아섰다. 순전히 자기 할 말만 한 채 가버리는 꼴이었다.
‘대충 내가 경계한다는 걸 느끼고 그런 말을 한 것 같은데.’
그렇다 하더라도 굳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있는가였다.
‘무엇보다 이런 건 보통 미안한 상대에게 직접 해야 하는 말 아닌가.’
게다가 그 미안하다는 게 뭔지 애초에 아는 게 없었다, 난.
사실 루트 해체의 전말에 관해서는 나 역시도 자세히 아는 게 없었다. 이와 관련해서 형이 말해준 게 전혀 없었기 때문에.
지금 알고 있는 사실들은 당시 형이 했던 생각들을 기반하여 내 스스로가 대략적으로 유추해낸 것에 불과했다.
멤버 간 불화가 있었던 건 맞지만, 당시 읽은 생각들이 꽤나 단편적이고 짧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정까진 알 길이 없었다.
형이 팀 탈퇴를 결정했을 당시, 그 이유에 대해 직접적으로 물어본 적은 없었다. 정확히는 물어보지 못했다. 왠지 물어선 안 될 것 같기에.
‘게다가 설령 물었어도 알려주지 않았을 것 같고.’
그래서 그냥 끝까지 묻지 않았고, 굳이 캐려고 하지도 않았다.
구체적인 사정이 뭐가 됐든 형은 팀 탈퇴를 선택했고, 그게 형이 내린 결정이라면 더 이상 묻고 따지고 할 것도 없었기에.
그리고 그때도 지금도, 난 당연하게도 형의 그 선택이 옳았을 거라 생각한다. 이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근데 굳이 미안하다는 걸 보면, 뭔가 찔리는 게 있다는 건 확실하네.’
당연하게도 그것에 관해선 짚이는 건 없었다.
‘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어쨌든 대략적으로 형의 탈퇴 사유가 멤버에 의한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이상, 그 멤버와 가까이 지낼 생각은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러니 혹시나 정말 연락이 온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정중히 거절할 생각이었다.
······일단 상품을 양보해준 건 고맙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품에 있던 순금 케이스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상자부터가 상당히 비싸 보였다.
‘음······.’
역시 받지 말 걸 그랬나.
왠지 아까보다 케이스 자체가 더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뒤를 돌아봤지만, 신도하는 이미 내게서 멀어진 지 오래였다.
‘모르겠다. 일단 멤버들한테 보여줘야지.’
그렇게 나는 짐을 챙기기 위한 발걸음을 서둘러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