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내 유일한 친구거든.
“차선빈, 선빈이 맞지?”
그 순간, 내 또래 나이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차선빈을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그런 남자는 꽤나 반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준아.”
차선빈 역시 앞선 남자에게로 조금 다가갔다. 동시에 아까보다 표정이 누그러졌다.
“야,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네.”
“그러게.”
왠지 얼굴이 익숙하다 했는데, 사진 속에서 자주 보던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차선빈 절친.
“근데 너 안 바쁘냐? 왜 여기 있어?”
“아, 잠깐 카페 좀 가려고.”
“카페?”
그 순간, 차선빈의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더니 곧 차선빈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대충 소개 타이밍인 것 같았다.
“아, 여기는 같은 멤버 세현이.”
“와, 그 우세현 씨!”
친구는 마치 신기한 사람을 봤다는 듯이 그렇게 반응했다. 근데 그 우세현 씨는 뭔지.
“진짜 저 한번 꼭 만나보고 싶었어요!”
“아, 네. 안녕하세요.”
“근데 진짜 초면에 이런 말 하기 뭐한데, 실물이 더 잘생기셨네요?”
“감사합니다.”
“아, 전 김시준이에요. 선빈이 친구고요. 동갑이니까 편하게 부르셔도 됩니다.”
그 말에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첫인상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분위기는 차선빈과 조금 달랐지만.
“근데 카페 가는 길이라고 했었지?”
“응.”
“그럼 여기서 이러지 말고 오랜만에 카페 가서 수다나 떨까?”
“응?”
그 말에 차선빈이 순간 놀란 듯 반응했다.
“나도 마침 카페 가는 길이었거든. 아, 혹시 시간이 안 되냐?”
“아니, 그건 아닌데······.”
“그래? 그럼 잘 됐네! 세현 씨, 어때요? 같이 카페 가는 거!”
김시준이 나를 향해 물었다.
차선빈이 주저하는 것 같으니 일부러 내게 묻는 것 같은데, 사실 안 될 건 없었다.
이 뒤로 딱히 스케줄도 없었고, 멤버들이 부탁한 음료를 당장 사가야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래서 사실 상관은 없긴 하지만.’
그다지 썩 내키지 않는 건 사실이었다.
더불어서 차선빈도 꽤나 고민하는 모습이었고.
“세현이가 불편하지 않을까.”
“아이, 어차피 동갑인데 뭐가 불편해? 그러지 말고 같이 가요!”
이후에도 계속되는 김시준의 재촉에 차선빈은 조용히 한숨을 쉬더니 이내 나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세현아, 혹시 괜찮아?”
그래, 뭐.
그런 차선빈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응. 괜찮아.”
어차피 잠깐일 것 같고.
차선빈과 둘이면 몰라도 나까지 있는 마당에 이야기가 그렇게 길어질 것 같진 않았다.
“와! 잘 생각했어요! 같이 가요!”
그런 내 말에 김시준은 한껏 신이 난 모습이었다.
“고마워, 세현아.”
“별걸 다.”
그렇게 해서 결국 길에서 우연히 만난 차선빈의 친구와 동행을 하게 되었다.
“아, 그 카페 가시는 길이었구나! 거기 커피가 진짜 맛있잖아요! 그래서 저도 거기서 많이 사 먹어요.”
가는 도중 그 짧은 사이에도 김시준은 쉬지도 않고 열심히 말을 했다.
처음엔 혹시 어색해서 그런가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냥 말을 하는 걸 좋아하는 듯 했다.
카페에 도착하자 곧바로 2층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행히 오늘은 카페에 사람이 많이 없는 편이었다.
“아, 근데 같이 사진 한 장 돼?”
자리에 앉자마자 김시준은 자연스럽게 폰을 꺼내들었다.
“사진?”
“응. 모처럼 만났으니까 셋이 한번 찍자.”
그리고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카메라 어플을 켰다.
순간 김시준의 SNS가 떠오르는 바였지만, 뭐 어떻게 할 새도 없이 김시준은 그대로 촬영 버튼을 눌렀다.
‘일단은 차선빈 친구이니.’
애초에 거절하는 것도 애매했다.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게다가 그냥 지인도 아니고 친한 지인이고.
사진 한두 장 찍는 거야 사실 아무런 상관도 없긴 했다. 다만 김시준의 경우 좀 예외를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러니 대충 메이크업을 핑계로 업로드 관련 이야기를 해볼까 했다.
그런데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차선빈이 먼저 빠르게 말을 꺼냈다.
“방금 찍은 건 올리지 말아줘.”
“어?”
“세현이가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
어, 이렇게 사전 차단을 하고 가는 건가.
그러자 김시준은 다소 떨떠름한 목소리로 그렇게 하겠다 전했다.
“안 그래도 선빈이한테 세현이 너랑 한번 만나게 해달라고 몇 번 얘기도 했었거든.”
“그래?”
“응. 근데 얘가 맨날 바쁘다고 안 된다는 거야. 그래서 언제 만나나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확실히 처음 듣는 소리긴 했다.
차선빈은 이제껏 그런 얘기 한 번도 안 했으니까. 근데 하지 않은 이유를 대충 알 것 같긴 했다.
그렇게 한동안 이런저런 대화들이 오갔다. 대화의 중심은 당연하게도 김시준이었다.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두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들이었는데, 예상했던 대로 두 사람은 중학생 때부터 친구 사이였다.
“예전부터 얘가 힘이 꽤 좋았었거든. 그래서 체육 시간에도 날아다녔어.”
“아, 그랬구나.”
확실히 차선빈이 힘이 좋긴 하지.
아마 멤버들 중 가장 쎌 거다.
제일 약한 건······안지호?
“근데 사실 얘는 힘만 좋지. 잘 활용은 못 해. 그런 의미에서 힘이 좀 아깝지.”
어, 충분히 잘하는 것 같은데.
춤출 때도 밸런스 있게 잘 활용하고.
“잘하는 것 같은데.”
“니가 잘 몰라서 그래. 게다가 너도 알다시피 얘가 좀 맹하잖아. 맨날 멍하니 있지 말라고 해도 어째 고치지를 못한다.”
그 말에 차선빈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마치 익숙하다는 듯이.
‘맹하지 않은데.’
이 또한 별로 공감 가는 말은 아니었다.
“근데 이렇게 보니 세현이 니가 확실히 비주얼이 좋긴 하다. 뭔가 진짜 연예인 같아.”
일단 연예인이긴 하다만.
상당히 미묘한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대충 웃어주었다.
“솔직히 다들 차선빈 잘생겼다고 하는데, 내가 볼 땐 얘가 그렇게 잘생긴 건 또 아니거든. 약간 너무 부리부리하잖냐.”
부리부리?
부리부리고 뭐고, 그냥 잘생긴 거 아닌가.
“차선빈, 잘생겼잖아.”
“처음 봤을 때만 그렇지. 보다 보면 그렇게 잘생긴 건 또 아니더라니까?”
김시준은 그렇게 웃으며 말했다.
“아마 생각보다 이런 얼굴은 인기 없을 걸. 너무 부담스럽잖냐.”
뭔 소리를 하는 거냐.
잘생기지 않았다는 말도 동의할 수 없었지만, 그 뒤로 한 말은 가관이 따로 없었다.
“전혀. 일단 난 얘보다 잘생긴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확실히 아닌 건 아닌 거였다.
“어, 아, 그래?”
“응. 회사 연습생들 사이에서도 워낙 유명했어. 내가 회사 들어가서 제일 처음 들어본 연습생 이름이 차선빈이었고.”
실제로 차선빈의 이름은 연습생들 사이에서 언급이 안 되는 때가 없었다.
“예전에 앙케이트에서도 얼굴로 1등 먹기도 했는데. 혹시 플온스 안 봤어?”
“어? 아니 나야 당연히 봤지······.”
김시준이 이전보다 한층 작아진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 차선빈이 이만큼 잘생겼다고. 짜식아.
“그렇게까지는 아냐······.”
차선빈이 고개를 숙인 채로 중얼거렸다.
얘는 또 뭐라는 거냐.
“아, 뭐, 그래. 잘생겼어. 잘생겼지.”
김시준이 마지못해 말하는 모양새로 말하였다.
그리고 그 잠깐의 사이,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앞서 열심히 떠들던 김시준이 잠시 입을 다문 영향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불대네.”]
그렇게 생각하더니 그대로 음료만 마셔댔다. 속으로는 여전히 앞선 이야기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사이, 나도 차선빈도 딱히 무슨 말을 더 꺼내거나 하지 않았다.
굳이 화제를 돌려야 한다거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에.
결국 침묵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연 사람은 김시준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다시 이야기를 하다가 적당한 시점에 대충 자리에서 일어섰다. 앞서 예상했던 것처럼 그다지 긴 만남은 아니었다.
“아쉬워서 어떡하냐. 야, 선빈아. 다음에 또 보자.”
“응. 그래.”
“세현이 너도 또 보면 좋고.”
김시준이 덧붙여 말했다.
이에 나 역시도 그러자며 답했다.
그리고 김시준은 그대로 뒤돌아 먼저 자리를 떠났고, 나와 차선빈 역시 지체 없이 숙소로 가는 길에 올랐다.
그렇게 길을 걷는 동안 잠시 침묵이 흘렀다. 새삼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가 전에 말했던 베프 인 거지?”
“응. 맞아.”
그래, 그렇겠지.
너무도 당연한 말이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본 거였다.
‘근데 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냐······.’
말하는 것도 말하는 건데 애초에 차선빈을 보는 시선 자체가 조금 삐뚤어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말들이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말들이었고.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하기에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원래 시준이가 좀 그래.”
“어?”
“예전부터 좀 말하는 게 직설적이었어. 아, 혹시 오해할까 봐.”
“아······.”
마치 내 생각이라도 읽은 듯 차선빈은 그렇게 김시준을 감싸주고 있었다.
근데 그런 걸 보통 직설적이라고 표현하나. 좋게 표현해서 직설적인 거지, 내가 볼 때 그건 그냥 무례한 거다.
중간중간 이야기할 때마다 뭐가 부족하다는 둥, 뭐가 좋지 않다는 둥 굳이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영 석연치 않았다.
애초에 왜 차선빈이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 건지. 차선빈은 그저 이걸 그 친구 식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그 직설적인 거 말인데.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
“······가끔?”
가끔이 아니라 매번 기분이 나빠야지!
남이 하는 지적질에 기분이 나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냐, 도대체.
“아무리 가끔이어도, 그 순간 기분이 나쁘다면 바로 말해. 그냥 듣고 있지 말고.”
“그냥, 워낙 그런 게 익숙해서.”
“익숙하다고?”
“중학교 때부터 시준이는 늘 그렇게 말을 하는 편이었고, 잘 들어보면 또 그 안에서도 도움이 될 만한 게······.”
“없다. 전혀 없다. 도움 될 만한 거 없어.”
애초에 김시준 본인도 도움 되라고 말한 게 아닐 테니. 그러니 그렇게 포장할 가치도 없다.
“그래도 시준이는 내 유일한 친구니까.”
“뭐?”
“알다시피 내가 친구가 없잖아.”
차선빈은 조용히 앞만을 응시한 채로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한 와중에 시준이는 유일하게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그러니까 그냥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 애초에 사람이 모든 게 다 맞을 수는 없잖아.”
물론 그렇긴 하다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였다.
“그래도 난 니가 그런 말들을 듣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러자 차선빈이 곧바로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았다.
“옆에서 듣는 사람이 기분이 다 별로라고.”
“그래?”
“응.”
그러자 차선빈이 조금 씁쓸하게 웃었다. 그 밖에 하고 싶은 많았지만······.
‘여기서 괜히 더 나가는 건 아무래도 오지랖에 불과한 거겠지.’
사적인 관계에 대해 내가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거였다. 두 사람은 두 사람 나름대로의 관계가 있을 거였고.
그래도 김시준이 마음에 안 드는 건 여전했다.
모르겠다, 나한테는 이미지 마이너스다.
물론 티는 안 낼 거지만.
차선빈이 곤란해할 테니.
“아무튼 기분이 나쁜 게 있으면 너무 참지는 마. 또, 아닌 말들 괜히 수용하지 말고.”
“응. 알겠어. 고마워.”
그래, 꼭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럼에도 마음이 편치 않은 건 여전했다.
‘유일한 친구.’
그 말을 듣고 나니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어졌다.
* * *
그렇게 차선빈과 난, 앞서 멤버들이 부탁한 음료를 나눠 든 채로 서둘러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숙소에 도착하니, 음료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던 멤버들이 우리를 반겼다.
“왜 이렇게 늦게 와!”
“아, 미안. 많이 기다렸어?”
“기다리는 내내 음료가 아른거려서 죽는 줄 알았다고요······.”
“미안.”
그렇게 나와 차선빈은 가지고 온 음료를 멤버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근데 왜 이렇게 늦은 거냐?”
“우연히 친구를 만나서······.”
“친구?”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뒤, 커뮤니티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 제목 : 세현이랑 선빈이 사진 올라옴
세현이랑 선빈이랑 같이 카페 갔었나봐ㅎㅎ 둘이 있는 사진 올라왔다!
└ 헉 ㄱㅇㅇ 둘이 카페 갔나부넹
└ 근데 이거 어디 올라 온거야?
└└ [글쓴이] : 선빈이 칭구 S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