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오랜만에 집에 가겠네.
잠시 뒤 100m 달리기의 메달 시상식이 열렸다. 이어서 백은찬은 활짝 웃는 얼굴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형, 금메달 땄다!”
그대로 백은찬이 나를 향해 금메달을 들어 보였다. 시상대에서 돌아온 백은찬은 한껏 신이 난 모습이었다.
“축하요! 솔직히 말해서 형이 시작부터 여유롭게 굴길래 내심 불안했는데.”
“하람이 너도 그랬어? 나도 그랬는데.”
“나도 좀 걱정했어.”
다들 말은 안 했지만, 내심 걱정을 하긴 한 모양이었다. 하긴 나도 좀 걱정하긴 했다.
“저러다가 저 형 혼자 메달 없으면 어떡하나 했다니까요.”
그 말에 백은찬은 다시 한번 가지고 있던 메달을 눈앞으로 뽐내었다. 이렇게 보니 정말로 메달이 반짝반짝하다.
그리고 이로써 우리는 최종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라는 성과를 얻었다. 이 정도면 나름 선방했다.
‘이 정도면 그래도 얼굴은 좀 나오겠지.’
원래 아이돌 체육대회가 편집이 많은 프로이긴 하나 그래도 이 성적이면 출전 종목들에서의 편집은 되도록 적을 거라 예상됐다.
‘근데 이렇게 되니 자랑하고 싶다.’
팬들한테.
당연히 지금 여기 계신 분들은 이미 알고 계시지만, 아직 모르고 계신 분들에게도 당장 이 소식을 알려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관련 스포는 금지였다.
마음 같아선 이대로 멤버들과 찍은 사진을 공식 계정에 올리고 싶지만. 아무래도 그건 방송이 나갈 때까지 미뤄둬야 할 것 같았다.
어쨌든 그렇게 100m 달리기까지 끝내고 나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었다.
“오늘 감사해요!”
가기 전에 응원석의 팬들에게도 인사를 전했다. 오늘 하루 종일 고생하셨을 텐데.
그리고 인사를 마친 뒤에는 매니저 형을 따라 곧바로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날은 다른 날에 비해 차 안이 유독 조용했다. 다들 곯아떨어졌기 때문에.
아마 몸도 몸이지만, 정신적으로도 많이 피곤했을 터였다. 아무래도 첫 출전이고, 사람도 많았고.
‘피곤하다.’
나 역시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평소보다 몸도 노곤 노곤한 것 같고.
하루 종일 뛰어다닌 탓인지 체력이 제대로 방전된 느낌이었다.
곧바로 나는 눈을 감았다.
사실 저절로 감긴 거나 마찬가지였다.
눈꺼풀이 무거웠기에.
이후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조용한 차 안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 * *
- 제목 : 아이돌 체육 대회 ㅅㅍ
인터니티 딱지치기 금
체이스 양궁 금
원로드 릴레이 경주 금
└ 헐 이거 ㄹㅇ?
└ 체이스 이번에도 양궁 금이야? ㅊㅊ
└ 딱지치기 ㅅㅂㅋㅋ 인터니티가 금이넹
└ 체이스 여윽시 주몽의 후예들 ㅊㅊ
- 아이돌 체육 대회 강 ㅅㅍ
윈썸
백은찬 100m 달리기 금이라고 함
└ 아니 우리 애가 금이라고? ㅁㅊ
└ 그냥 들어왔는데 우래기가 금ㄷㄷㄷ
└ 백은찬 평소에 달리기 잘했어?
└└ ㅇㅇ 아마 윈썸에서 젤 빠를걸
- 위에 ㅅㅍ 구씹 아님?
체이스 양궁 금 아니라는데?
└ 구씹이라고? 어디서 봤는데?
└ 근데 그럼 누가 금인데? 체이스 말고 금을 딸 그룹이 있음?
└ 구씹 아닐 것 같은데 양궁은 당연 체이스잖아
- 윈썸은 혹시 뭐 ㅅㅍ 없나?
은찬이 금 딴 건 알오
└ 몰러ㅜㅜ 이상하게 스포가 적다
└ 우리 팬 인원이 적었나? 스포가 다른 그룹들보다 적은 것 같음
└ 가신 분들이 입이 무거우신가
- ※ 초 강ㅅㅍ!) 멜로우들 이번에 체육대회 기대해도 됨
애들 분량 좀 있을듯
└ ㅁㅊ 진짜야? 아 제발
└ 악 안보려고 했는데ㅜㅜㅜㅜㅜ
└ 우래기들 활약 많이 했대?
└ 나 니말 믿고 본다 제발 구씹 아니길
아이돌 체육 대회 촬영이 끝난 이후, 그와 관련해서 한동안 스포가 돌았다.
스포의 내용은 다양했다.
여기서는 이 그룹이 금메달이었고 저기서는 이 그룹이 금메달이었다.
아무래도 여러 스포들이 함께 돌다 보니 도중에 잘못된 정보까지 섞여들어 간 듯 했다.
“야, 세현아. 너도 집에 가지?”
옆에 있던 백은찬이 내게 물었다.
“응. 왜?”
“아니, 그냥.”
그러더니 곧 다시 폰에 집중했다.
추석 연휴를 맞이해서 이번에 우리는 회사로부터 이틀 정도의 특별 휴가를 받았다.
앨범 활동도 마무리된 시점이고 하니 잠깐이나마 집에 갈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사실 이번 추석이 대체 연휴이다 뭐다 해서 일주일 정도 되니 그걸 생각하면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그래도 소중한 이틀이었다.
쉴 수 있는 이틀!
“다들 계속 본가에 있는 거지?”
“그렇겠지. 밖에 돌아다니는 것보다 집에 있는 게 최고잖아.”
“저는 짧게 내려갈 것 같기도 해요. 매년 연휴에는 큰 집에서 모이거든요.”
멤버들은 모두 본가에 갈 예정이었고, 그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엄마랑 아버지 얼굴 보겠네. 정말 얼마 만에 뵙는 건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였다.
‘아, 어쩌면 친척 집에 갈지도.’
생각해보니 데뷔하고 처음 맞는 명절이니 친척들께 인사를 드리러 갈지도 몰랐다.
─ 아니, 올해는 못 갈 것 같은데.
“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엄마에게 연락을 하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 올해는 연휴도 길고 해서 네 형 보러 갈까 했거든. 아빠랑 같이.
“아, 정말요?”
부모님께서는 이번 연휴 동안 형을 보러 캐나다에 가실 예정이신 듯 했다.
─ 지난번에 물어봤을 때, 네가 못 쉴 것 같다고 하길래 냅다 그냥 비행기 티켓 끊어버렸거든. 큰아들이나 보자 하고.
“아······.”
사실 컴백 전까지만 해도 쉴 수 있을 거라 생각을 못 했던 터라.
그래서 지난번에 엄마와 통화를 했을 때 당연히 쉬지 못할 거라고 이야기를 했던 바가 있었다.
─ 근데 연휴 시작하자마자 아니고 둘째 날 출발이거든. 그러니 첫날은 얼굴 볼 수 있겠다.
그나마 다행인 건 휴가가 연휴 첫날과 둘째 날 이렇게 이틀이어서 부모님이 떠나시기 전에 하루 정도는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거였다.
‘그보다 나도 가고 싶네.’
부모님이랑 같이 캐나다에.
가서 오랜만에 형도 보고, 가족끼리 여행도 하고 싶고.
‘하지만 당연히 안 되겠지.’
일단 시간부터 부족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부족할 테고.
어쨌든 그러한 연유로 인해 일단 난 첫날 집으로 가 부모님을 뵙기로 했다.
“형들, 그럼 추석 잘 보내요!”
“그래, 너도.”
그리고 연휴 첫날,
멤버들은 아침부터 한두 명씩 숙소를 나섰다. 아마 이틀 후에나 다시 얼굴을 보게 될 듯 싶었다.
그리고 점심이 되기 전, 나 역시도 숙소를 나설 준비를 했다.
“어, 지금 가는 거냐?”
“응.”
그러자 백은찬이 곧바로 소파에서 일어나 현관 쪽으로 다가왔다.
“넌 언제 가는데?”
“난 점심 먹고 가려고.”
어느새 숙소에 남은 건 백은찬과 나뿐이었다. 내가 가면 백은찬 혼자인가. 대충 보니 혼자 남은 걸 꽤나 즐기는 모습이었다.
“빈둥대지 말고 너도 얼른 가라.”
“아, 모처럼 혼자 조용히 있으니까 발이 쉽게 안 떨어지네.”
대충 뭔지 알 것 같긴 하다만.
“그럼 나중에 보자.”
“응.”
그리고 나는 그대로 백은찬을 뒤로 한 채 숙소를 나왔다.
* * *
집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것은 다름 아닌 밥 먹기였다. 오랜만에 왔다고 엄마가 엄청나게 차려주신 덕분에.
“자, 세현아. 아직 먹을 스케줄이 뒤에 더 있어.”
“에?”
그렇게 밥을 먹고 있는데 엄마가 뜬금없이 부엌 너머를 가리키셨다.
그렇게 보니 부엌 너머로 떡이나 전, 식혜 같은 게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게 보였다.
“참고로 떡은 콩, 깨 구분 없이 다 있어.”
“랜덤이에요?”
“응. 그러니까 깨만 골라 먹지 마. 엄마도 콩 별로야.”
애초에 우리 집에서 콩떡 좋아하는 사람은 형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옛날에 형이 내 콩떡까지 다 먹어줬었는데.
“습관이 됐는지 콩이랑 깨랑 같이 섞여 있는 걸 무의적으로 사왔잖니. 예전에 너희 둘이 콩이랑 깨를 반반씩 잘 먹어서.”
고로 결국 콩떡을 먹을 수밖에 없다는 거였다.
그렇게 밥을 먹고 난 후 자연스럽게 떡을 먹고 있는데, 틀어 놓았던 TV에서 아이돌 체육 대회 광고가 나왔다.
“그러고 보니 너희는 저기 안 나가니?”
“저희도 나갔어요. 올해.”
예전에 명절 때만 되면 부모님은 한창 루트가 나왔던 아이돌 체육 대회를 챙겨보시곤 했었다. 그런 부모님을 따라 나도 덩달아 같이 봤었고.
이후 연차가 차고 루트는 더 이상 출연하지 않게 됐을 때도 부모님은 명절 때면 늘 체육대회를 틀어놓곤 하셨다.
“그래? 그럼 올해는 꼭 챙겨봐야겠네.”
엄마는 꽤 기대를 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성과는 좋았고?”
“괜찮았어요. 금메달도 땄거든요.”
“금메달? 어디서?”
“양궁이요.”
이후에는 여전히 먹으면서 TV를 좀 보다가 방에 들어가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여유로운 게 얼마 만인지.
‘근데 부모님은 내일 오전 일찍 떠나신다고 했으니, 나도 먼저 숙소로 돌아갈까.’
어차피 부모님을 뵈러 온 거니 부모님이 안 계신다면 굳이 집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그냥 하루 일찍 숙소로 갈까 고민했다. 어차피 하루 차이일 뿐이고. 숙소에는 아무도 없을 테니 집이랑 별로 다를 것도 없겠다 싶었다.
‘그리고 원래 휴가 내내 안에만 있을 생각이었고.’
딱히 어딜 가고 싶거나 하지도 않았기에.
게다가 지금은 어딜 가든 사람이 많을 터였다.
‘부모님 배웅해드리고, 나도 그냥 조금 일찍 돌아가야겠다.’
게다가 다른 멤버들이 숙소에 돌아왔을 때, 누군가 있는 편이 더 좋을 테니까.
그러한 생각에 습관적으로 폰을 열었다. 그리고 확인한 멤버 단톡방. 오늘따라 조용했다. 다들 잘 쉬고 있는 모양이네.
‘근데 백은찬은 갔겠지. 어영부영 늘어져 있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숙소에 나오기 전, 소파에 늘어져 있던 백은찬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뒤이어 한과를 먹으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밖에서부터 들려왔고, 나는 그렇게 다시 일어나 곧 거실로 향했다.
* * *
다음날, 아침 일찍 공항으로 출발하시는 부모님을 배웅하기 위해 나 역시도 일찍 잠에서 깼다.
“집에는 계속 있을 거고?”
“아뇨. 그냥 숙소에 일찍 가려고요.”
“그래. 그리고 잘 먹고 다녀. 더 먹였어야 했는데 다른 것보다 그게 좀 아쉽네.”
아뇨, 충분히 먹었는데요.
어제 먹은 것만 해도 한과에 식혜에 떡에···아무튼 뭔가 많이 먹었다.
“형한테 제 안부도 좀 전해주세요.”
그리고 부모님은 곧 공항으로 떠나는 길에 오르셨고, 그대로 집은 곧 고요해졌다.
‘그럼 나도 이제 갈 준비를 해볼까.’
곧바로 마스크와 모자를 챙겼다.
순간 대중교통을 타고 갈까 아주 잠깐 고민을 했지만, 그냥 택시를 타기로 했다. 혹시 귀찮은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숙소 앞에 도착했다.
그대로 비밀번호를 누르고 숙소 안으로 들어섰는데, 순간 몸을 멈칫했다.
안에서부터 기척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누가 있나.’
멤버들이라면 전부 본가에 가고 없을 터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관의 신발을 확인해봤다.
하지만 늘 그렇듯 현관은 이미 신발 포화 상태인 탓에 제대로 구분이 안 갔다.
그나저나 멤버들이라면 먼저 왔으면 왔다고 톡방에 올렸을 텐데. 혹시 매니저 형인가.
그 생각에 일단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섰다. 정말로 누가 있다면 누군지 확인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기척이 나는 곳을 향해 걸어가는데, 그 순간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부터 누군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