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광고 한번 더럽게 길다.
안지호는 지금, 침대에 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난 이후라 간단하게 과일을 먹으면서.
‘7시 55분.’
그대로 안지호는 폰을 통해 현재 시각을 확인했다. 앞으로 5분 뒤이면, 추석 특집 가 시작할 시간이었다.
‘광고 한번 더럽게 기네.’
의외로 광고가 길었다.
어느새 시작 시간 8시를 5분이나 넘긴 시각이었다.
‘아, 하네.’
그리고 얼마 안 가, 화면이 바뀌면서 곧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추석 특집! !]
방송이 시작되자, 지난 시즌에도 출연했던 선배 출연자들 6명이 곧바로 모습을 드러냈다.
[김한필 : 네! 추석 특집, 컴플리트 박스! 이렇게 저희가 또다시 추석에 돌아오게 되었네요!]
[최구민 : 그렇습니다, 이게 전부 시청자분들의 사랑 덕분이죠. 감사합니다.]
시작은 그렇게, 준비된 멘트들로 시작됐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낯익은 얼굴들도 보였다. 신도하와 한주진이었다.
[김한필 : 그럼 이번 시즌에서 가장 중요한 분들을 소개해야겠죠. 오늘 하루 함께 할 신인 분들 나와 주세요!]
그리고 이내 이번 시즌의 신인들이 한 명씩 등장하였다. 이후 모인 신인들은 그대로 일렬로 서 각자 인사의 시간을 가졌다.
‘우세현이 센터네.’
등장한 신인들 중 우세현은 가장 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다. 센터라서 그런지 화면 각도가 달라져도 어디서든 잘 걸렸다.
[세현 : 안녕하세요, 윈썸의 우세현입니다.]
[최구민 : 와, 윈썸!]
[김한필 : 윈썸 요즘 엄청 잘 나가잖아요!]
‘그렇지, 잘 나가지.’
안지호는 그대로 턱을 괸 채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론 폰을 들었다. 반응을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 아 세현이 진심 존잘 너무 잘생겼어
- 오늘 우세현 유독 헤메코 완벽하다
- 우세현 혹시 윈썸에서 비주얼이야? 너무 잘생겼는데
- 신인들 중에 우세현이 젤 잘생김ㅋㅋ
그렇게 본 온에어 게시판에는 우세현 관련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이를 보던 안지호는 그대로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신인 소개 타임이 끝나자 곧바로 다음 코너로 넘어갔다. 바로 파트너 선택 코너였다.
이어서 자막과 그림을 통해 파트너 선택에 관한 기본적인 룰 설명이 시작됐다.
그리고 안지호는 그대로 조금 집중했다.
애초에 프로그램 룰에 관해서는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룰 자체가 되게 구식이네.’
옛날 예능에서 많이 본 것 같은 형식이었다.
- 이거 왠지 옛날에 커플 정하기 그런 곳에서 많이 본 것 같은 느낌이다ㅋㅋㅋㅋ
- 세현이는 누구랑 될까ㅠㅠㅠㅠ 개인적으로 신도하 아님 한주진이 좋은뎁
- 선배 라인 중 신도하가 인기 젤 많을 듯ㅋㅋㅋ 그 다음은 아마 한주진?
실시간 반응에서는 선배 라인 중 신도하와 더불어 한주진의 이름이 유독 눈에 띄었다.
[자, 그럼 한주진 씨 앞으로 나와 주세요.]
그 말에 한주진이 한껏 여유로운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그 뒤로 한주진의 개인 인터뷰 컷이 등장했다.
[Q. 어때요, 많이 나올 것 같아요?]
[한주진 :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근데 많이 나와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그리고 이와 교차하듯 이번엔 신인들의 인터뷰 컷이 차례로 등장했다.
[Q. 생각해둔 선배 있어요?]
[한솔 : 한주진 선배님이요.]
[지영 : 한주진 선배님.]
[서찬 : 한주진 선배님입니다.]
- 한주진 인기 개많네ㅋㅋㅋㅋ
- 설마 신인들 다 한주진임?
- 한주진이 실제로도 성격 좋나봐 다들 한주진 생각하는 거 보면ㅋㅋㅋㅋㅋ
“몰빵이네.”
신기하게도 신인들의 표는 거의 한주진에게로 몰빵인 듯 보였다.
‘우세현은 안 나가겠지만.’
이와 같은 추축은 신도하랑 파트너가 됐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인 것도 있지만, 애초에 한주진과는 팀이 되려 하지 않았을 터였다.
전에 한 말도 있고.
그리고 얼마 안 가 한주진의 파트너 선택이 시작됐다. 그러자 누구랄 것도 없이 신인들은 모두 우르르 나와 줄을 섰다.
[엄청난 인기의 한주진!]
[시작하자마자 엄청난 지원자들의 행렬]
- ㅁㅊ 신인들 다 나감?
- 오우 시작부터 장난아니네ㅋㅋ
- 올해 무슨 일이냐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이 줄 행렬에 참여하지 않은 이가 있었다.
‘그럴 줄 알았다.’
이에 안지호는 조용히 접시에 있던 사과 하나를 포크로 찍어먹었다.
[그 와중에 혼자 남아 있는 한 사람?]
[바로 윈썸 세현!]
화면 속 우세현은 그렇게 홀로 거리를 둔 채 조용히 서 있었다.
* * *
모든 이들이 한주진에게 지원을 한 가운데 유일하게 지원을 하지 않은 우세현에 온에어는 또 한번 이를 두고 시끄러웠다.
- 헐 뭐야 우세현만 안 나갔네?
- 왜 안 나갔지? 한주진 나갈만 한데
- 혹시 일부러 관심 받으려고 안 나간거 아님?ㅋㅋ
- 저건 뭔 전략이냐
그리고 그 장면 이후 곧바로 이를 설명하듯 우세현의 개인 인터뷰 컷이 붙여졌다.
[Q. 왜 혼자 안 나간 거예요?]
[세현 : 아, 사전에 미리 생각해둔 선배님이 계셨습니다.]
[Q. 혹시 혼자 남아서 뻘쭘하진 않았어요?]
[세현 : 약간 뻘쭘하긴 했는데,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 시점부터 신도하를 생각하고 있었나.’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갔다는 얘길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다만, 모든 이들이 지원하는 상황에서 홀로 지원을 하지 않았으니 자연스럽게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와중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말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 우세현 분량 욕심내나보네 아님 관종이거나ㅋㅋ
‘X소리.’
그러한 말들을 안지호는 그렇게 치부했다.
이후 방송은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그리고 한동안 한주진을 중심으로 방송은 진행되었고, 이에 안지호는 잠시 시선을 돌려 폰에 집중했다.
어차피 한주진의 선택이 진행될 동안은 우세현이 나오지 않을 터였다.
그러니 지루한 장면은 자체 스킵이었다.
[그럼 다음, 신도하 씨 나와 주세요.]
그 말에 안지호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신도하 등장과 함께 다시 신인들의 인터뷰 컷이 연이어 나왔다.
[한솔 : 신도하 선배님! 정말 신도하 선배님도 꼭 같이 팀이 되고 싶은 분 중 한 분이죠.]
[지영 : 사실 루트 신도하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실제로도 그만큼 아우라가 있으시더라고요.]
대충 보니 이번에도 역시 꽤나 경쟁이 붙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 보니까 신도하도 ㅈㄴ인기 많을 듯
- 신도하 지난 시즌에서도 인기 많았잖아 이번에도 거의 다 나올 것 같은디
- 나라도 신도하라면 일단 나가고 봄ㅋㅋ
그리고 그때쯤,
당사자인 신도하에게로 마이크가 갔다.
[김한필 : 혹시 같이 하고 싶은 사람 있어요?]
[신도하 : 네. 있습니다.]
그 말에 화면 속 신인들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한 명씩 클로즈업 됐다. 전반적으로 긴장한 표정들이 역력했다.
- 생각해둔 사람 있다는데?
- 누굴까ㅋㅋ궁금하다
- 양한솔 아님?
이렇듯 앞선 신도하의 말에 그 사람이 누구일지에 대한 여러 추측들이 나왔지만, 그때까지 우세현의 이름은 가물에 콩 나듯 간간히 보이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걸 본 안지호는 잠시 실소했다.
[자, 그럼 앞으로 나와 줄을 서주세요.]
그리고 다시 한번 줄서기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역시 누구랄 것도 없이 모든 이들이 급히 나와 줄을 섰다.
그리고 그 순간,
화면에 우세현이 순간적으로 클로즈업됐다.
[이번에는 줄을 선 세현!]
그런 우세현은 지금 신도하의 뒤에 줄을 선 상태였다.
- 뭐야? 우세현도 신도하임?
- 우세현 신도하 줄에 섰네?
- 헐 혹시 아까 말한 사람이 신도하?
[Q. 혹시 생각해둔 사람이 신도하 씨였나요?]
[세현 : 네. 맞습니다.]
- 뭐야 우세현 신도하 사이 괜찮음? 당연히 별로일 줄 알았는데 당황스럽
- 와중에 왜 신도하? 분량 노리나ㅋㅋ
- 근데 신도하가 우세현 선택 안할 것 같음
- 신도하가 우세현을 굳이 선택할 이유가 뭐가 있음; 다른 애들도 많은 마당에
온에어 게시판의 반응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했다.
여기에 신도하와 우세현이 과연 파트너가 될 것인지에 대해 저마다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한 와중에도 두 사람은 절대 팀이 되지 못할 거란 의견도 상당했다.
이유야 다양했지만, 개중에는 신도하와 팀을 이룸으로써 우세현이 분량을 많이 가져갈 것에 대한 견제가 담겨있기도 했다.
[그럼 한 사람씩 자기 어필 시간 가질게요.]
그 순간, 안지호는 저게 뭐냐는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봤다. 앞선 장면을 제대로 보지 않은 탓이었다.
그리고 그는 한동안 꽤나 지루한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았다.
[네, 다음 세현 씨.]
그렇게 멍하니 있는데, 순간적으로 들리는 익숙한 이름에 그때서야 안지호는 제 시선을 조금 고쳐 잡았다.
‘대충 이유 정도 말하려나.’
아부나 패기 넘치는 포부.
그런 걸 늘어놓진 않을 것 같았다.
특히 아부는 절대 아니었다.
그냥 적당히 논리 정연한 이유 몇 가지를 말하지 않을까 했다.
그리고 안지호는 잠시 옆에 있던 사과 접시를 그대로 제 앞으로 가져왔다. 사과가 얼마 남지 않은 터였다.
그때, 화면 속 우세현 얼굴이 클로즈업 됐다. 그리고 우세현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세현 : 저와 팀을 하신다면, 확실하게 시켜드리겠습니다.]
[신도하 : 뭘요?]
그리고는 곧 패기 넘치게 말했다.
[세현 : 우승이요.]
“아.”
동시에 안지호는 순간적으로 포크를 삐끗했다.
* * *
- 들었음? 우세현이 신도하 우승시켜주겠댘ㅋㅋㅋㅋ
- 우세현 패기 보소 당당하게 우승시켜준다고ㅋㅋㅋㅋ
- 신도하 우세현 우승 함 가자!
- 저래 놓고 우승 못하면 레전드ㅋㅋ
- 어디서 나온 자신감?
- 세현 원래 근자감 넘치는 스타일이야?
앞선 우세현의 포부에 저게 바로 신인의 패기냐면서 반응하는 글들과 이를 비꼬는 듯한 글들이 대립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화면 속 우세현은 이를 전혀 개의치 않다는 듯 여전히 패기가 넘쳐 보이는 모습이었다.
‘의외네.’
안지호 역시 조금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쩐지 평소보다 기합이 들어가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날 아침에도 그랬었지.’
촬영에 나가기 전, 우승을 하고 오겠다던 우세현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단독이라 부담이 됐던 건가.’
아무래도 혼자 나가다 보니 평소보다 더 기합이 들어가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안지호는 그렇게 추측을 했다.
반면, 정작 당사자인 신도하는 그런 우세현의 말에 꽤나 덤덤한 반응이었다.
“반응 한번 떫네.”
안지호는 신도하의 그 반응이 왠지 모르게 고까웠다.
그러자 시청자들은 또 다시 신도하의 파트너 상대에 대해 자신들만의 궁예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 일단 우세현은 절대 아님
그런 글도 당연히 있었다.
앞선 신도하의 다소 덤덤한 반응으로 인해 이러한 의견들이 더욱 활개를 쳤다.
그 반응은 두 사람이 파트너가 되지 않기는 바라는 이들에게 직접 먹잇감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이어지는 파트너 선택의 시간.
앞서 늘어선 신인들과 그들의 뒤에 있는 신도하. 그 순간, 화면 안에서 긴박한 BGM이 흘러나왔다.
‘시간 좀 끌려나.’
어찌 보면 지금이 가장 궁금한 대목 중 하나였다.
그러니 시간을 끌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제작진뿐만 아니라 신도하 역시 그걸 잘 알고 있을 테고.
하지만 그러한 예상을 뒤엎고 신도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선택을 마쳤다.
[신도하 : 전, 세현 씨 선택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신도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동시에 온에어 게시판은 다시 불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