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이거 오해다.
부르는 소리에 그대로 잠시 시선을 돌려보았다. 고개를 조금 돌리는 것뿐인데도 머리가 욱신거렸다.
고개를 돌리니 곧바로 안지호가 보였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무표정한 표정이었다.
“어, 야.”
일단 뭐라도 하고 봐야 할 것 같아 입을 열었다. 무엇보다 괜한 오해를 일으키지 않아야 했다.
어디 안 좋은 게 아니라 잠시 다리에 힘이 풀렸을 뿐이라고. 그렇게 말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어떻게든 말을 이으려는데, 그 순간 안지호가 빠르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곧 팔을 잡는다.
이에 조금 당황하고 있으려니 어떻게 할 새도 없이 일으켜졌다. 동시에 갑작스러운 반동에 순간적으로 몸이 휘청했다.
“가자.”
“아니, 어딜······.”
“병원.”
아······.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역시 제대로 오해한 것 같았다.
“잠깐, 잠깐만. 나 어디 아프고 그런 거 아냐.”
“그럼 왜 바닥에 엎어져 있는데.”
아니, 엎어져 있진 않았다고.
어떻게 봐도 그냥 앉아있는 모양새였다.
“그냥 요즘 잠을 못 자서 그런지 머리가 웅웅 대더라고. 그래서 잠깐 기대고 있던 거야.”
“······.”
그러자 안지호는 그대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나를 쳐다보았다.
“진짜라니까.”
어째 믿지 않는 듯한 표정이라 한번 더 강조했다. 여전히 눈앞이 어질어질했지만 어지러움 정도야 잠시 참으면 그만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분명 다시 괜찮아질 테니까. 그저 잠깐의 현상에 불과했다.
그때까지도 안지호는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서 있을 뿐이었다. 혹시 오해가 풀린 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찰나,
안지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거짓말이네.”
순간 할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는 갑자기 다시 팔을 붙들었다.
아무래도 정말 이대로 병원까지 갈 생각인 것 같았다.
“야, 잠깐만!”
그리고 나는 결국 실토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전부는 아니고 일부만.
“잠깐만, 쉬자. 쉬면 좀 괜찮아져.”
“쉰다고 될 얼굴이 아닌데.”
“내 상태는 내가 잘 알지.”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
어째 한마디를 안 지네.
보아하니 쉽게 생각을 바꿀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더 실랑이를 할 순 없었다.
그러기엔 머리가 너무 울렸다.
“야, 알겠어.”
“그래.”
“그, 알겠으니까 잠깐만 쉬었다가 가자.”
그 말에 나는 안지호의 도움을 받아 일단 가까이 있는 연습실로 자리를 이동했다.
* * *
“물.”
“아, 고맙다.”
연습실에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다행히 사람 한 명 없었다.
‘골 울려······.’
어지러움은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괜찮아지는 듯 했는데, 지끈거림은 아직까지 남아있었다. 마치 편두통 마냥 욱씬 거리는 게 기분이 영 별로였다.
그대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어째 물이 미지근했다.
“전부터 생각한 건데.”
그때 안지호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묻는다.
“너 혹시 병 있냐?”
“뭐?”
병? 갑자기 웬 병?
아니, 그보다 나 병 있게 생겼나?
“병 같은 거 없어. 그보다 왜 그런 생각을 한 건데?”
“너 전에도 이런 적 있었잖아.”
“뭐?”
전에?
어, 물론 이런 적이야 있긴 했지만······.
안지호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예전에 프로그램 할 때도 종종 상태 안 좋아 보일 때 있었어.”
“아, 그러냐.”
실제로 그랬던 건 맞으니 달리 할 말은 없었다. 그보다 안지호가 그걸 알고 있는 줄은 몰랐네.
“그래서 병 없는 거 맞아?”
“없다니까 그러네. 그냥 간혹 컨디션이 이렇게 안 좋을 때가 있어.”
그리고 잠시 눈을 감았다.
머리가 아파서 그런가. 순간적으로 잠이 쏟아졌다.
“안지호.”
“응.”
“이거 혹시 비밀로 해줄 생각······.”
“없어.”
그렇지.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였다.
그럴 줄 알았지만.
그렇게 잠깐 의자에 몸을 기대는데,
그 순간 옆에서부터 한번 더 목소리가 들려왔다.
“건너뛸 생각도 없어.”
“뭘?”
“병원.”
아, 그 소리였군.
사실 그것도 내심 건너뛸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연습실은 조용했다.
아무런 소음 하나 없이.
그렇게 그 덕에 난 잠깐 동안 연습실에서 눈을 붙일 수 있었다.
* * *
일어나보니 어느새 연습실 소파에 누워있었다. 분명 앉아있었던 것 같은데.
심지어 이불도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패딩이었지만.
‘숨이 안 쉬어졌던 게 이것 때문이었네.’
문제는 패딩이 얼굴까지 덮어져 있던 통에 질식할 뻔했다는 거였다. 이거 거위털인가. 왜 이렇게 무거워?
그래도 자고 일어났더니 머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어느새 두통은 사그라져있었다.
아무래도 컨디션이 안 좋았던 걸로 인해 장기간 오프의 부작용이 이렇게 다시 나타난 모양이다.
“어, 일어났냐?”
그리고 어느새 연습실에는 안지호를 포함해 멤버들로 북적였다.
“언제 왔어?”
“아까 왔지. 근데 너 쓰러졌다면서?”
“뭐?”
아니, 쓰러져? 누가?
“무슨 소리야, 누가 그래?”
“안지호가 그러던데. 그래서 부축해서 왔다고.”
그리고 안지호를 쳐다보니 곧바로 시선을 돌린다. 아니, 얼마나 뻥튀기해놓은 거냐.
“병원 가봐. 너 일어나는 대로 매니저 형이 알려달라고 했어.”
“아······.”
그 말에 다시 이마를 짚었다.
이거 빼도 박도 못 하는 상황이 됐네.
“안 그래도 너 요즘 조마조마했다.”
“그냥 수면 부족이라서 그래.”
“그냥 수면 부족이 쓰러지기까지 하냐?”
아니, 안 쓰러졌어······.
“아무튼 병원 갔다 와. 어영부영 넘겼다가는 괜히 더 탈 난다.”
“나도 은찬이 말이 맞다고 봐.”
차선빈까지 백은찬을 거들고 나섰다.
말투 자체가 꽤나 단호해서 뭐라고 반박을 못 하겠다.
“아니, 애초에 그 정도는 아닌······.”
“세현이 일어났어?”
하필 또 그때 매니저 형이 왔다.
그리고 나는 결국 멤버들의 성화에 못 이겨 병원에 가기로 했다. 어쩔 수 없지.
“안지호, 패딩.”
그리고 안지호에게 가지고 있던 패딩을 돌려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후 나는 매니저 형을 따라 서울 중심가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고, 간단한 진료를 받았다.
“피로 누적이 심하네요. 링거 한번 맞고 가세요.”
그렇게 링거를 맞았다.
당연하게도 어딘가 몸에 이상이 있지는 않았다. 역시 그냥 수면 부족일 뿐.
그리고 잠시 누워 있다가 얼마 안 돼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곧 매니저 형이 물어왔다.
“숙소로 갈 거지?”
그 말에 잠깐 고민했다.
연습하러 갈까 하고.
하지만 곧 생각을 접었다.
어차피 이 상태로 가봤자 민폐일 것 같아서.
“네. 숙소로 갈게요.”
“그래. 여기서 잠깐 기다려.”
그렇게 매니저 형은 잠시 차를 빼러 갔다.
아마 오늘 병원에 온 게 밖으로 알려지거나 하진 않을 터였다. 되도록 조심했으니.
그리고 얼마 안 돼, 나는 그대로 홀로 숙소로 가는 길에 올랐다.
‘톡, 보내야지.’
차에 탑승한 이후 가장 먼저 한 건 그거였다. 멤버들이 걱정하고 있을 것 같아서.
[우세현]
: 이상 없대
동시에 메세지창 옆에 있던 숫자가 빠르게 사라졌다.
[백은찬]
: 이상 없대? 다행쓰
[신하람]
: 휴 다행이에요 (이모티콘)
[차선빈]
: 다행이다
[윤도운]
: 얼른 숙소 가서 쉬어!
답장이 빠르네, 다들.
그러한 와중에 아직 사라지지 않은 ‘1’이 남아있었다. 안지호구만.
‘그나저나 조용하네.’
컨디션이 나아진 덕분인지 아니면 능력이 조금이라도 안정이 된 건지 아직까지 지난번처럼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일은 없었다.
‘부작용이 왜 이렇게 심해졌지.’
분명 오프 기간 자체는 그렇게 길지 않았던 것 같은데.
사실 평소에 비하면 많이 길긴 했다.
무려 2주 이상을 오프한 거니까.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충격이 생각보다 강했다.
‘이것도 물어봐야겠군.’
이와 관련한 것은 역시 저승사자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전에 오프가 길어지면 문제가 생긴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계속 이런 식이면 아무래도 곤란했다.
그러니 해결안이 있어야 할 텐데.
어쩔 수 없다며 또 얼버무리려나.
그리고 차량 헤드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았는데, 그 순간 다시 한번 폰이 진동했다.
[안지호]
: ㅇ
순간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ㅇㅇ’도 아니고 ‘ㅇ’이냐.
근데 뭐 안지호는 평소에도 이렇게 보내는 터라 이상할 건 없었다.
그렇게 단톡방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1’이 사라졌고, 그대로 나는 다시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그렇게 하루를 쉰 뒤,
연말 무대를 위한 연습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앞으로 늦은 연습은 자중하자.”
“네?”
그러던 도중, 윤도운이 말했다.
“컨디션이 좋아야 좋은 무대도 나오지. 잠을 자야 그 컨디션도 좋아지는 거고. 특히 세현이, 너.”
“아······.”
콕 찍어 가리키는 그 말에 순간이지만 할 말이 없어졌다.
그래도 그때 이후로는 나름 수면 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확실히 3~4시간으로는 몸이 힘들고.
‘욕심을 너무 부렸었나.’
연말 무대가 중요하다는 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다 보니 나도 모르게 욕심을 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 힘을 풀 필요가 있었다. 좋은 무대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며칠 뒤,
우리는 일본으로 출국했다.
그날도 역시 공항은 만선이었다.
시상식 참여로 인해 여러 가수들이 동시에 출국했으니까.
“컨디션 괜찮지?”
비행기 탑승에 앞서 백은찬이 물어왔다.
“컨디션?”
“지난번 비행 땐 별로였잖아.”
아, 지난번.
분명 그렇긴 했었지.
“괜찮아.”
“그래? 그럼 다행이고.”
지난번 컨디션 난조의 경우 단순히 신경을 곤두세운 탓이었다. 애초에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탑승하자마자 가장 먼저 확인한 게 그거였다. 기내 사생 여부.
하지만 다행히도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특별히 사생으로 보이는 인물은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이거 가져왔는데.”
그러더니 곧 내게 수면 안대를 건넸다.
이왕 가져온 거 잘 사용했다.
이후 도착하자마자 호텔에 들러 잠깐 짐만 풀어 놓은 뒤, 곧바로 무대 리허설을 하러 갔다.
‘리허설이 체이스 다음이군.’
와중에 리허설이 체이스 바로 뒤였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체이스의 무대까지 보게 되었다.
다만, 본 무대 리허설이 아닌 커버 공연의 리허설이었다.
그리고 ‘MAIN’만의 포인트가 되는 독특한 INTRO가 나오기 시작했다.
워낙 유명하고 귀에 익은 인트로였기에 그것만으로도 보는 이의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와, 한다. 한다.”
“벌써 멋있네.”
한 켠에서 체이스의 무대를 보던 스텝들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블랙 셔츠에 버건디 수트를 입은 체이스의 멤버들은 그렇게 고혹하고도 강렬한 비트에 맞춰 정확한 각도의 군무를 선보였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리허설은 금방 끝이 났다.
본무대가 아닐뿐더러 커버 무대의 경우 일반 무대보다 공연 시간 자체가 짧았기에.
다음은 바로 우리였다.
그때 무대에서 내려오던 체이스 멤버들과 잠깐이지만 마주쳤다. 마주친 체이스의 멤버들은 조금이지만 땀을 흘리고 있었다.
“수고하세요.”
“네.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간략하고도 형식적인 대화만 주고받았다.
‘보겠지.’
우리 리허설 무대.
분위기를 보니 저쪽도 꽤나 견제를 하고 있는 듯 했다. 능력을 꺼둔 탓에 구체적인 생각까진 모르겠다만.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체이스 역시 한 쪽에 서서 조용히 우리의 리허설을 지켜봤다.
물론 주변에 체이스만 있는 건 아니었다.
뒤이어 순서를 기다리고 다른 그룹들도 함께였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리허설을 끝내기까지 많은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대로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잠깐이지만 체이스의 명우진과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이는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고, 이내 명우진이 먼저 눈을 돌렸다.
그렇지만 그 잠깐의 순간에서도 확실하게 느껴졌다. ‘견제’라는 것이.
만약 방금 전 무대를 보고 그런 것이라면 오히려 환영해야 할 일이었다. 그만큼 잘했다는 거니까.
그리고 아마 그럴 거라 예상되었다.
이후 본 무대 등 몇 번의 리허설을 더 하고 나서야 비로소 리허설 일정이 끝이 났고, 그로부터 얼마 안 있어 비로소 [202X YNMA] 시상식의 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