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조금 멀리 갑니다.
일본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시상식 스케줄은 계속되었다. 자몽 어워즈부터 시작해서 공중파 3사까지.
그래도 남은 시상식들은 모두 한국에서 열렸던지라 비행기에 오르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마찬가지로 자몽 어워즈에서도 신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 이후엔 SBC, KMS와 같은 공중파 연말 가요제에 참석했다.
그렇게 한동안 정신없이 연말 공연을 하다 보니 어느새 12월 31일, 올해의 마지막날이 되었다.
그리고 이날은 조금 특별한 날이었다.
그러니까 공연에 있어서 조금 특별한.
“임진각이라니, 진짜 오랜만에 듣는다.”
“저도요. 완전 어렸을 때 TV에서 본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아요.”
우리는 지금 파주로 향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파주에 있는 임진각으로.
이번에 있을 MAC 연말 무대는 임진각에서 공연을 할 예정에 있었다.
‘임진각 연말 무대, 확실히 오랜만이긴 하네.’
MAC에서 12월 31일이면 하는 임진각 무대. 이는 이원 중계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지만, 동시에 그해 신인들의 공연장소이기도 했다.
주로 연차가 낮은 신인들이 임진각으로 가 공연을 했으니까. 흔히 말하는 유배지, 임진각 유배.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은 이러한 임진각 무대를 볼 수 없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임진각 무대가 없어졌다.
‘근데 때맞춰서 올해 다시 부활.’
무슨 변덕인지 모르겠다만 MAC는 뜬금없이 임진각 무대를 부활시켰다. 그렇다 보니 신인인 우리는 당연하게 그곳으로 가게 됐고.
‘예전에 형도 임진각에서 무대 했었는데.’
루트가 신인이었던 시절.
그때도 임진각에서 무대를 했었다.
그리고 순간 떠오르는 생각에 그대로 톡창을 열었다.
[우세현]
: 형, 나 이번에 유배감
[형]
: X친
형도 그때 생각 나나보네.
하긴, 그럴 만하지.
[형]
: 그걸 또 한다고? 미친 거 아니냐?
이렇듯 형이 격한 반응을 보이는 건, 임진각에서의 그 춥고 추웠던 기억 때문일 터였다. 그냥 추운 것도 아니고 더럽게 추운 그 날씨.
임진각은 매년 이때만 되면 더럽게도 추웠다. 오늘만 해도 영하 15도였으니까.
[형]
: 옷 최대한 많이 껴입고 해 더 이상 껴입을 수 없을 만큼 많이.
오늘 우리 의상이 어떻게 됐었지.
어쨌든 최대한 바람이 덜 불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임진각에 도착했다.
그때 멤버들과 난 진정으로 칼바람이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 * *
“으아! 너무 추워!”
“손 시렵다······.”
“와, 이건 진짜 서 있을 수가 없는데?”
바람이 아주 대차게 불었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추운 날씨에 바람까지 붕붕 불어대니 그야말로 설상가상이 따로 없었다.
그나마 이번 무대 의상은 코트였다.
물론 코트 안에는 얇디얇은 니트와 셔츠였지만.
“매니저 형, 핫팩 혹시 더 없어요?”
“여기. 주머니에도 하나씩 더 넣어놔.”
사전에 준비한 핫팩도 추운 날씨에 금방 식어버리기 일쑤였다. 그야말로 뼈가 시린 추위였다.
“얘들아, 올라가기 전에 다들 몸도 미리 많이 풀어놔. 혹시나 굳어 있으면 부상 위험 있으니까.”
“너무 추워서 몸풀기도 힘든데요······.”
“그래도 최대한 풀어봐.”
그렇게 말하는 매니저 형도 이가 덜덜 떨리는 모습이었다.
몸도 몸이지만, 입 근육도 어느 정도 풀어놔야 했다. 혹시나 굳는다면 노래가 제대로 안 나올 수도 있으니.
그리고 주변엔 우리와 같은 신인들이 많이 보였다. 와중에 체이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신인은 아니지만 똑같이 연차가 낮은 마당에 운 좋게 임진각이 아닌 일산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무대를 하게 된 덕이었다.
은근 빡치는 일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분명 임진각 무대 같은 건 안 했으니까.
와중에 무대 리허설 도중, 순간적으로 분 강풍에 그대로 미끄러질 뻔했다.
“세현이 형, 괜찮아요?”
“괜찮아?”
“괜찮아.”
잠시 휘청인 것뿐 크게 위험했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넘어지지도 않았고.
그냥 나중에 무대 할 때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보다 다른 멤버들도 넘어질까 무서운데.
그리고 어느새 해가 지고, 방송이 시작되었다. 우리의 경우 9시 넘어서 무대가 있었기에 아직까지 여유가 있었다.
“네! 여기는 파주 임진각 공원이고요. 이곳은 지금 영하 15에 달하는 날씨로 아주 강한 강풍이 불고 있습니다!”
중계를 전하는 MC 역시 꽤나 힘겨워하는 모습이었다.
이와 더불어 임진각 무대를 다시 한다는 이야기에 시청자들의 반응은 당연하게도 좋지 못했다.
- 이거 도대체 왜 부활을 시킨 거냐 이 추운 날씨에 야외무대가 웬말이야 ㅡㅡ
- 작년에도 야외 무대를 하긴 했는데 임진각은 아니었음 임진각 저기 이맘때쯤이면 겁나 추워지는데 진짜
- 신인들만 고생이지 게다가 몸 굳을 텐데 무대하면서도 위험한 거 아니냐
- 아오 ㅆㅂ 우리 애들 왜 저기 가있냐고
“야, 우세현. 왜 담요 안 덮고 있어?”
“몸 굳을 것 같아서.”
이제 곧 무대에 올라갈 시간이었다.
움츠리고 있으니 더욱 몸이 굳는 것 같아 되도록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어휴.”
그리고 얼마 안 돼 백은찬은 담요 하나를 더 가지고 왔다. 그러더니 곧 그걸 내 머리 위로 덮어버렸다. 아, 내 헤어.
“머리 망가져.”
“그럼 어깨에 잘 덮고 있어.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큰 걸로 가져온 거니까. 그나마 움직이기 쉬울 거야.”
“그럼 너 덮어.”
백은찬 역시 추운 날씨로 인해 어느새 귀가 빨개져 있었다.
“너나 신경 쓰라고, 너나.”
그 말에 일단 받은 담요를 몸이 둘렀다. 확실히 따뜻하긴 했다. 그대로 잠시 제자리 뛰기를 했다. 아까보다 훨씬 움직이기 수월했다.
“올라가서 발에 힘 꽉! 주는 거 잊지 말고.”
“발에 힘은 왜?”
“발에 힘주면 그나마 좀 더 버틸 만하거든.”
아. 그런 의미였군.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이었다.
이에 그러겠다 말해주었다.
그리고 곧 무대에 올라갈 시간이 되었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목과 마이크를 한번씩 더 점검해 보았다.
“윈썸, 바로 올라가실게요!”
그렇게 멤버들과 난 두르고 있던 담요를 잠시 벗어놓은 채 무대 위로 향했다.
* * *
- 윈썸 오늘 무대 완전 좋았다ㅠ 임진각이라 애들 다 추워보여서 안쓰럽긴 했는데 확실히 야외무대가 예쁘긴 하다
- 우세현 오늘 고음신 내렸냐 저 추운데서도 고음이 아무렇지 않게 올라가네
- 다들 추운데도 계속 웃는 게 너무 좋더라 역시 신인이라 그런지 풋풋하다
- 됐고 내년부터는 그냥 다 일산에서 하자
- 일단 무사히 무대 끝나서 다행임 얘들아 너무너무 수고했다ㅠ ㅆㅂ MACㅗㅗㅗㅗㅗ
- 그 와중에 사진은 예뻐서 더 화나네ㅠ 멤버들도 팬들도 무슨 고생이야
- 세현이 눈 반짝이는 거 보소 눈에 별 박았냐 우세현ㅠㅠㅠㅠ
- 오랜만에 신인들 기강 꽉 잡았겠네ㅋㅋㅋㅋㅋㅋㅋ예전엔 이게 일반적인거였는데
└ ㅈㄴ언제적 얘기를 하는거임
└ 나이를 너무 드셨네 ㅉㅉ
다행히 무대는 아무 탈 없이 잘 끝이 났다. 입김이 많이 난 탓에 라이브가 조금 까다로웠지만, 그래도 크게 실수 한 건 없었다.
“얘들아, 이거 하나씩 가져가.”
무대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매니저 형이 미리 준비해둔 따뜻한 차를 멤버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조금이나마 몸이 녹는 것 같았다.
“와, 춤추는 데 바람이 무슨······.”
“그보다 입김이 장난 아니었어요. 계속 나와, 계속.”
“몸이 굳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더라.”
그나마 몸이 조금씩 녹자 멤버들도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새삼 사람 느끼는 거 다 똑같구나 싶었다.
그리고 남은 공연들이 모두 끝나자 본격적으로 새해맞이 타종식 준비에 들어갔다.
시간도 어느새 12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MAC 스튜디오 쪽에서도 이를 위한 준비에 들어가고 있었다.
“자, 이제 조금만 있으면 새해가 밝습니다! 어떠신가요, 시영 씨?”
“네. 새로운 해를 맞이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기분이 새롭네요!”
새해가 될 때까지 얼마 안 남은 시점,
무대 위에는 전 출연자가 올라와 있었다.
매년 연말마다 TV를 통해 본 풍경이었다.
우리는 임진각에 있는 터라 그 풍경에 합류하지는 못했다만.
“얘들아, 우리도 모이자.”
그리고 도운이 형을 필두로 우리 역시 한자리에 모였다.
“악! 잠시만요! 저 낑겼어요!”
“아, 미안.”
“우세현. 좀 더 붙어!”
“응.”
그렇게 멤버들과 함께 둥글게 모였다.
그러던 중, 안지호가 조용히 물었다.
“근데 왜 이렇게 모이는 건데?”
“몰라, 다들 모이시잖아.”
“TV에서 보면 다 모이시던데요?”
“얘들아, 좀 작게 말해. 작게.”
그래도 새해를 이렇게 맞이하게 되니 나름 새로웠다. 직접 종소리도 듣고. 작년엔 데뷔 전이라 TV를 통해 봤던 것 같은데.
신기한 경험이긴 하다만은 그래도 내년엔 스튜디오에서 맞이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럼 이제 함께 외쳐볼까요?”
이어지는 새해 카운트다운.
그리고 얼마 안 돼, 제야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새해였다.
그리고 그대로 둥글게 둥글게를 시작했다. 동시에 백은찬과 신하람이 그 중심에서 크게 외쳤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정말로 새로운 해가 밝았다.
그리고 그걸 기념하는 제야의 종소리가 허공을 통해 여기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에취!”
그 순간, 신하람이 재채기를 했다.
종소리를 들으며 감상에 빠져있기엔 너무나 추운 날씨였다.
* * *
삐비비빅-
삐비비비빅-
그리고 다음 날, 오후.
나는 맞춰 놓은 알람을 끄며 그대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직도 추운 것 같네.’
물론 기분 탓이겠지만.
어제 하루 종일 밖에서 덜덜 떨었던 터라 아직까지도 괜히 몸이 으슬으슬한 느낌이었다.
어제 제야 행사 이후, 12시 넘어서 출발해 숙소에 도착하고 나니 어느새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
워낙 춥고 힘들었던 터라 멤버들은 모두 숙소에 오자마자 다들 쓰러져 잠이 들었다. 물론 그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푹신한 침대에 눕자 그 순간 기절해버리듯 잠들어 버렸으니까.
‘졸려.’
그리고 여전히 눈꺼풀이 무겁기는 마찬가지였다. 잠이 좀 깨고자 나름 눈가를 열심히 문질러봤지만 별로 소용이 없는 듯 했다.
멤버들은 아직까지 모두 꿈나라에 가 있는 상태였다. 이내 깨우지 않고자 최대한 조심히 이동했다.
‘12시.’
딱 점심시간이었다.
물론 점심을 먹을 멤버들은 없지만.
그래도 난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미리 준비해둔 이런저런 재료들을 꺼냈다. 이어서 꺼내놓은 재료들은 하나씩 잠시 살펴보았다.
‘떡은 미리 불려놓았고.’
고기도 있고.
좋아, 손질만 하면 되겠군.
그렇게 나는 떡국을 만들 준비에 들어갔다. 새해인데 그래도 떡국은 먹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