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중요한 볼일이 있어.
“뭐야, 우세현 뭐해······.”
“일어났냐?”
한참 떡국을 끓이고 있으려니 방에서부터 백은찬이 비몽사몽한 얼굴로 나왔다.
“생각보다 일찍 일어났네.”
“뭔가 맛있는 냄새가 나서······.”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서 그런지 어느새 냄새가 거기까지 간 모양이었다.
“뭐야, 이거? 설마 떡국?”
“응.”
그러자 백은찬이 갑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뭘 그렇게 놀래.
“너 떡국 할 줄 알아?”
“아니. 처음 해보는데.”
“근데 이건 어떻게 만들었어?”
“레시피 보고. 인터넷에 다 있더라.”
참 편리한 세상이었다.
“기미 한번 해볼래?”
“응. 줘봐.”
그대로 백은찬에게 떡 하나를 먹였다.
그리고 곧 표정이 밝아지더니 이내 엄지를 들었다.
“맛있다.”
“좋아.”
다행히 그럭저럭 먹을 만은 한가 보네.
조금 걱정했는데.
“가서 멤버들 깨워.”
“엉. 근데 한 숟가락만 더.”
“옜다.”
이내 떡 하나를 더 얻은 먹은 백은찬은 그대로 멤버들을 깨우러 갔다.
“와, 이거 뭐예요?”
“떡국 만들었어?”
“여기 말고 다들 상 앞에 가서 앉아.”
그대로 주방으로 몰려드는 멤버들에 곧바로 숟가락과 컵을 하나씩 들려 보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상은 떡국 그릇으로 꽉 찼다.
“세현아, 수고했어.”
“수고했어.”
“네. 맛있게 드세요.”
일단 백은찬은 괜찮다고 했는데.
그래도 다른 멤버들 입에는 또 어떨지 모르니 조금 긴장이 되긴 했다.
“오, 맛있는데?”
“맛있어요, 형!”
“아, 진짜?”
“응. 진짜 맛있어.”
다행이네.
역시 인터넷 레시피는 배신을 하지 않는구나.
“어제 진짜 추웠는데, 이거 먹으니까 완전 살 것 같아요.”
“떡국 만들 생각은 어떻게 했어?”
“새해잖아요. 그리고 어제 그렇게 떨었으니 따뜻한 거 먹으면 좋을 것 같았고.”
“오올. 감동인데?”
앞에 앉아있던 백은찬이 그대로 나를 보며 웃었다.
“근데 고기가 꽤 많다?”
“응. 일부러 많이 넣었어.”
“그래도 괜찮은 거냐?”
“원래 재료는 아끼는 거 아니야.”
그리고 자고로 고기가 많아야 맛있지.
“그게 아니라 난 주머니 괜찮냐는 거였는데.”
“주머니? 아.”
그 얘기였군.
하지만 그거라면 걱정할 거 없었다.
“괜찮아. 회사 카드야.”
“아, 그래?”
그러자 백은찬은 곧 떡국에 있던 고기들을 더욱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근데 이거 먹으면 이제 한 살 더 먹는 거네. 20살이라니. 뭔가 되게 이상해.”
“저도 형들이 20살이라니까 이상해요.”
“야, 너도 이제 1년 뒤면 성인이야. 생각해보니 그게 더 이상하네.”
이제 팀에 남은 미성년자는 신하람 뿐이었다. 동갑이 넷이나 되다 보니 갑자기 성인이 확 늘어났다. 게다가 1년만 지나면 이제 하람이도 성인이고.
“근데 우리 이제 곧 1주년이지?”
“아, 맞아요.”
앞서 도운이 형이 말한 대로 이제 약 30일만 있으면 데뷔 1주년을 맞이했다.
작년 1월 31일에 데뷔를 했는데 그로부터 어느새 1년이 지났다.
“이제 슬슬 팬미팅 준비도 들어가야지.”
“아, 우리 1주년 팬미팅 한다 했었죠.”
보통 그룹 데뷔일에는 뭔가 특별한 이벤트를 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이번엔 그에 맞춰 공식 팬미팅을 열기로 했다.
다른 날도 아니고 1주년이었으니.
다른 것보다도 팬들을 직접 만나는 게 가장 의미가 있었다.
이제 연말 무대도 다 끝났으니 한동안은 팬미팅 준비에 집중을 할 듯 했다.
떡국 그릇이 모두 비어지자 설거지와 더불어 뒷정리는 자연스럽게 차선빈과 백은찬이 맡았다.
그리고 난 회사로 출근할 준비를 했다.
“어, 세현이 형 어디 가요?”
“회사.”
“회사요? 회사는 왜요?”
“시간 있으니 연습 좀 하려고.”
그러자 신하람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얼굴을 했다.
“무슨 연습을 하는데요? 보컬?”
“응. 마침 연습하고 싶은 곡도 있고 해서.”
“아니, 형. 그보다도 잠을 좀 자는 게 좋지 않아요?”
그러더니 곧 심각한 얼굴로 팔짱을 낀다.
“아침에 떡국 만드느라 얼마 자지도 못했을 것 같은데.”
“아냐. 꽤 잤어. 그렇게 일찍 일어난 것도 아니고.”
그러자 이내 의심스러운 눈으로 날 본다. 정말 꽤 잤다니까, 그러네.
“저도 갈까요?”
“뭐?”
“아니, 저도 연습이나 할까 하고요.”
나 때문에 일부러 가겠다고 하는 건가.
피곤할 텐데 굳이 무리하게 둘 필요는 없었다.
“굳이 그럴 필요 없어. 그리고 오래 안 있어. 일찍 오려고.”
“정말이죠?”
“응.”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으니.
그러자 신하람은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약속까지 하게 됐다. 빨리 오겠다고.
“약속 어기면 벌금 100만원이요.”
“······알겠다.”
어찌 됐건 그렇게 혼자 무사히 회사로 향할 수 있게 됐다.
‘편하게 만날 수 있겠네.’
사실 오늘 회사에 가는 이유는 연습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중요한 다른 볼일을 위해서였다.
중요한 볼일,
그건 바로 사자를 만나는 일이었다.
* * *
해가 지나고 일정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됐겠다, 그러니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사자를 만나는 일이었다.
404호실의 보컬룸.
나는 지금,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해당 보컬룸은 오늘도 역시 비어있는 상태였다. 귀신이 나온다는 그 소문 덕분에 출입을 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근데 그 소문은 누가 낸 거지.
정말로 귀신이 나오는 게 맞으니 결국 실제로 귀신을 보거나 했다는 건데.
어찌 됐건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보컬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일단 문부터 잠갔다. 혹시 갑자기 누가 들어올 수도 있으니.
“아, 하기 싫은데.”
사자가 늘 말한 주문, 그거.
주문? 애초에 주문이 맞나.
아무튼 말하기 영 껄끄러웠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만나려면 해야지.
애초에 이따위 주문은 누가 정한 건지.
사자 취향인가.
“다.봉.사.자.야. 고마······.”
아! 하기 싫어!
그렇게 잠시 고개를 숙였다.
‘좋아.’
그리고 심호흡을 한 뒤,
한 번 더 외쳤다.
“고마워.”
휘잉─
그와 동시에 바람이 살짝 불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익숙한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하이. 오랜만이네.”
망할 사자였다.
망할 따봉 사자.
“이거 주문 말인데요.”
“주문?”
“바꿀 생각 없어요?”
조금 더 무난하고 평범한 걸로.
앞으로도 계속 이걸 외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았다.
“왜? 좋은데.”
“전혀요.”
“큭큭. 아까 보니까 너 되게 힘들어하긴 하더라. 그거 보는 맛이 있어서 난 좋은데.”
잠깐, 뭐? 아까?
“그걸 보고 있었다고요?”
“응.”
방금 전까지 안 보이지 않았나.
“기본적으로 난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잖아. 그러니 눈에 보이지 않는 게 보통이지. 이 정돈 인간의 상식이잖아.”
“그렇다면 지금 보이는 건요.”
“이것도 내 멋진 능력 중 하나지. 내 자유의지대로 인간의 눈에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게 가능한.”
아, 그런 거였냐.
생각해보니 사자라는 존재가 보이는 것에 대해 그동안 깊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대충 능력 중 하나라는 거군.
젠장, 그나저나 그걸 봤다고 생각하니 또 짜증이 나네.
“그보다 주문을 바꾸기보다는 익숙해지는 게 어때?”
“그냥 바꾸고 싶은데요.”
“그건 힘들어. 내 취향인지라.”
그럼 본인 취향을 바꾸시는 게.
“사자 일을 하다 보면 웃을 일이 좀처럼 드물거든. 그러니 이해해.”
그러면서 은근슬쩍 웃기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곧 이상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다시 혼자 웃음이 터졌다.
그만 좀 웃지.
“그보다 물어볼 게 있어요.”
“아, 그래. 응. 뭔데?”
입가는 여전히 씰룩이는 채였다.
“능력이 좀 이상한 것 같아서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상한데?”
“직접적으로 대면한 사람의 생각뿐만 아니라 멀리 있는 사람들의 생각까지 들려요. 의도하지 않았는데도요.”
멀리 있는 사람, 시야에 잡히지 않는 사람까지. 멋대로 생각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건 상당히 거슬리는 일이었다.
“제 생각엔 이게 온오프와 관계가 있는 것 같아서요. 이제까지는 이런 일 없었거든요.”
“아, 그래?”
“네.”
그런 내 말에 사자는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그렇군. 혹시 그거 말고는?”
“다른 거라면 오프에 대한 부작용이 이전보다 조금 심해진 것 같다는 거요.”
물론 오프가 길어지면 정신적이나 육체적으로 좋지 않다고는 했지만, 이전보다 장기간 오프에 대한 반동이 심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더불어 그 기간 자체가 짧아진 것 같기도 하고.
“이건 혹시 어떻게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러자 사자는 대답 대신 조용히 팔짱을 꼈다.
“그거에 관해서는 부작용이 오지 않도록 네가 최대한 조정하는 수밖에 없어.”
“결국 방법이 없다는 말이네요.”
“뭐, 온오프를 천천히 반복하면서 적당한 타협점을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건 너무 위험성이 컸다.
그럴 바에는 그냥 되도록 오프를 피하는 게 나을 것 같고. 아무튼 이런 식이면 맘 편히 오프를 해두지도 못하겠군.
“정 불안하면 길게 오프를 하게 될 때면 상황을 적절히 보도록 해. 그 기간의 컨디션 상황을 말이야.”
“컨디션 상황 말이죠.”
확실히 컨디션이 나쁠수록 부작용 반동이 크게 오는 것 같기는 하다만.
하지만 그렇다고 매번 컨디션이 좋을 수는 없었다. 그런 걸 일일이 따지기도 귀찮고.
“그리고 앞선 건에 관해서는 안타깝게도 나도 짚이는 게 없어. 그러니 그건 조금 더 알아보도록 할게.”
“네. 알겠어요.”
사실 가장 궁금한 건 그거였지만.
어쨌든 알아본다고 했으니 조만간 답을 알 순 있을 터였다.
“그래, 궁금증은 이걸로 다 해결?”
“뭐, 일단요.”
“그렇군. 그럼 나도 하나 부탁이 있는데.”
부탁?
어째 조금 불길해지려고 하고 있었다.
“보니까 너 노래를 되게 잘하더라고.”
“그래서요?”
“그러니 다음엔 노래 버전으로 어때?”
“뭘요?”
그러자 사자는 이제까지 중 가장 밝은 표정으로 나를 향해 외쳤다.
“따봉 사자♪”
그러니까 안 한다고.
* * *
이후 나는 그대로 404호실의 보컬룸 문을 박차고 나왔다. 당연하지만 노래 따위는 부르지 않았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아니, 장난이 맞겠지.
그리고 앞서 하람이와 약속한 대로 그대로 일찍 귀갓길에 올랐다.
사실 여기까지 오고 나니 연습 생각이 잠깐 나긴 했는데, 몸도 피곤하고 약속한 것도 있으니 그냥 건너뛰기로 했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시간이 얼마 안 걸렸네. 아마 예상보다 더 빠르게 숙소로 갈 수 있을 듯 했다.
‘근데 답은 언제쯤 받을 수 있으려나.’
저승사자를 만나긴 만났으나 이렇다 할 수확은 건지지 못했다. 게다가 그 답이 언제 올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하지만 되도록 빨리 원인에 대해서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말을 전해 놓긴 했다.
그래, 그렇게 전해 놓긴 했는데.
‘근데 만약 원인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애초에 사자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러니 원인을 알아내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만약 정말 그렇게 된다면······.’
······일단 지금은 그저 기다리자.
지금은 그저 원인을 알아 낼 수 있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괜히 안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해봤자, 돌아오는 건 불안함뿐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또 다른 볼일을 보러 나섰다.
이번 볼일 역시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신도하 선배님]
: 그럼 오후 7시에 거기서 보자
바로 신도하와의 약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