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미리 언질 좀 해줘.
“키 크더라.”
형은 그렇게 말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만나본 멤버들은 어땠는지에 대한 앞선 내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게 다야? 키가 큰 게 끝?”
“응. 요즘 평균 신장이 올라갔다더니.”
하긴, 일단 차선빈과 백은찬 둘 다 180cm이 넘으니.
“그래서, 키 말고 다른 인상은 없어? 그렇게 보고 싶어 했잖아, 멤버들.”
“그거 잠깐 본 거로는 모르지.”
하다못해 잘생겼다는 말조차 없었다. 차선빈 보고서는 할 만도 한데.
하지만 특별한 얘기가 없는 걸 보면 또 인상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나 싶었다. 만약 별로였다면 주저 없이 이야기했을 테니.
“전에도 말했지만, 다들 모난 것 없이 괜찮아.”
“아, 그래.”
어째 대충 흘려듣는 모양새였다.
완전히 마음에 든 건 아닌가 보네.
“친해?”
“어?”
“그때 만났던 애들이랑 친하냐고.”
아무래도 친한 편이겠지.
일단 동갑이고 하니.
“그래?”
그러자 형은 말없이 옆에 있던 커피를 한잔 마셨다.
“그래도 생각 같은 건 평소에 잘 주시하도록 해.”
“생각?”
“이 바닥이 원래 워낙 다사다난하잖아.”
전에 했던 말이랑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았다. 멤버들 생각을 잘 살펴보라는 그 말.
“정확히는 생각의 변화지. 지금은 이렇지만, 나중에는 또 어떻게 생각이 변화할지 모르는 거니까.”
생각의 변화라.
꽤나 진지한 그 말에 대충 알겠다고 전해두었다.
“근데 요즘 많이 바쁜 모양이네.”
“그냥 보통 정도. 활동 기간이 아니라서 크게 바쁘진 않아.”
“그러고 보니 팬미팅 준비하고 있다고 했었지?”
“응.”
팬미팅과 관련해 한창 이것저것을 준비하고 있는 시기였다. 물론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었고.
“궁금하네.”
“뭐가?”
“팬미팅.”
그리고는 씩 한 번 웃는다.
“궁금해?”
“응.”
“그럼 온라인 라이브 하니까 그거 사서 봐.”
마침 온라인 중계 서비스도 할 예정에 있었다. 물론 이틀 다 하는 건 아니고, 첫날만.
“실제로 궁금해서 그러지.”
“어차피 곧 캐나다로 갈 거면서, 뭘.”
“미룰까?”
그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마시고 있던 유자차를 그대로 뿜을 뻔 했다.
“뭔 소리야?”
“반응 한번 크네. 그냥 해본 말이었어.”
“아.”
뭐야, 그런 거였어?
순간 진짜인 줄 알았다.
“어차피 미뤄봤자 직접 가지도 못하잖아.”
그런 형의 말투 속에는 약간의 체념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확실히 형 말 대로였다.
콘서트라면 몰라도 팬미팅엔 가족이 오는 경우는 꽤나 드무니까.
팬미팅은 그야말로 팬들을 위한 자리였다.
그걸 형 역시도 잘 알고 있을 테니 아마 처음부터 올 생각은 없을 터였다.
무엇보다 형이 오면 배 이상으로 이목이 집중될 테니.
그래도 조금 놀라긴 놀랐다.
“그래서 무대는 뭘 하는데?”
“아마 노래를 하겠지.”
“스포 방지야?”
“응.”
그러자 형은 곧 어이가 없다는 얼굴을 했다. 궁금하면 라이브를 보라니까.
“형은 그럼 모레 출국이야?”
“응.”
시간 빠르네.
어느새 벌써 일주일이 지나갔다.
역시 일주일이란 시간은 확실히 짧았다.
“다음에 올 때는 좀 길게 있어봐. 매일 짧게 짧게 있지만 말고.”
“그래야 더 아쉬움이 남는 거 아니겠냐.”
“아쉬움 많이 남아서 뭐가 좋다고.”
“원래 가족도 멀리 떨어져 있으면 더 애틋해진다잖아.”
굳이?
그냥 얼굴 보고 사는 게 더 나았다.
“다음엔 또 언제 들어올 건데?”
“글쎄. 그건 생각을 좀 해봐야겠는데.”
“애초에 무계획 아니었어?”
“무슨 소리야. 이번에도 확실히 계획성 있게 들어온 건데.”
계획이 있다고?
“무슨 계획이 있는데? 아, 혹시 새해맞이?”
“뭐, 그것도 그건데 더 중요한 게 있지.”
“중요한 건 뭔데?”
“너 이제 성인이잖아.”
그 말에 순간 버퍼링이 걸렸다.
그게 무슨 상관인데.
“20살 축하 겸 온 거라고. 동생이 이제 성인이라는데 형님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아니, 가만히 있어 줘도 되는데.
“혹시 그래서 밥 비싼 거 산 거야?”
“그건 그냥 순간 빡이 쳐서···음, 아니. 어쨌든 그건 그냥 정말 한식이 먹고 싶어서 그런 거였고.”
그리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방 한구석에서부터 쇼핑백 한 개를 가지고 왔다.
“자.”
“뭔데, 이거?”
“선물.”
선물?
너무 뜬금이 없어 쇼핑백을 받아들면서도 잠깐 어리둥절했다.
“갑자기 웬 선물?”
“성인 겸 생일 선물.”
그 말에 나는 다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생일 선물이라고? 생일 선물을 기어코 샀어?
“잠깐, 뭘 샀는데? 또 이상한 거 산 거 아니지?”
“이상한 거라니. 내가 언제 너한테 이상한 걸 줬다고.”
“그래서 뭐 산 건데?”
“직접 한번 풀어봐.”
그리고는 곧 쇼핑백을 향해 고갯짓을 한다. 이에 나는 곧바로 쇼핑백을 풀어 안에 있는 물건을 확인해봤다.
아, 잠깐만.
“어때.”
“······형.”
“응.”
“장난해, 지금?”
그 안에 있던 건 다름 아닌 머니건이었다.
그것도 크기가 꽤 큰.
“또 쓸데없는 걸 사왔잖아!”
“왜? 맘에 안 들어?”
“아니, 맘에 들고 자시고 간에 이걸 뭐 하러 사온 거야!”
순간 열이 받아 가지고 있던 머니건을 그대로 마구 발사시켰다. 돈다발은 또 왜 이렇게 많이 들어 있어!
“아니, 보는데 귀엽더라고. 그래서 재밌을 것 같아서 사온 건데. 맘에 안 드냐?”
돈다발이나 더 맞아라.
그리고 난 대답 대신 돈다발을 더 쐈다.
“아, 잠깐만. 잠깐만! 알겠어!”
알기는 개뿔.
그리고 계속되는 내 돈다발 세례에 형은 결국 두 손을 들었다.
“알겠어, 장난 그만 칠게.”
“장난이었다고?”
“아니, 일단 진짜 선물은 맞긴 한데···악!”
“입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그렇게 난 총구를 겨누었다.
“알았어. 진정해. 진짜 선물 줄게.”
그러더니 곧 이내 쇼핑백 몇 개를 다시 가지고 왔다. 진짜 선물이 있긴 했나 보네.
“풀어봐.”
“머니건 2 들어 있는 거 아니야?”
“내가 설마 똑같은 장난을 두 번이나 치겠냐.”
역시 앞에 건 장난이 맞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쇼핑백을 열어보았다. 그곳엔 생각지도 못한 물건이 있었다.
“아······.”
“어때.”
“······괜찮네.”
그건 바로 지갑이었다.
검정색 중지갑.
가죽에 새겨져 있는 로고도 꽤나 익숙한 로고였다.
“브랜드를 어디로 할까 고민했는데, 그냥 이게 가장 무난한 것 같아서. 게다가 요즘 제일 잘 나간다더라.”
“그렇네. 깔끔해서 좋아.”
“그렇지?”
형이 꽤나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생각 이상으로 고른 선물이 괜찮았다.
솔직히 또 이상한 게 튀어나올 줄 알았다.
“다행이네.”
“뭐가?”
“선물이 멀쩡해서.”
“그동안 내 안목을 너무 처참하게 평가하고 있던 거 아니냐?”
맞는 말이라 차마 뭐라 할 수 없었다.
“진짠가 보네?”
“어, 이건 뭐야?”
그렇게 나는 재빨리 다른 쇼핑백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형은 상당히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그리고 남은 쇼핑백 하나를 풀어보았다.
그랬더니 이번에도 역시 전혀 예상 못 한 물건이 나왔다.
“향수?”
“응.”
다름 아닌 향수였다.
그곳엔 작은 크기의 향수 하나가 포장되어 있었다.
“그건 성인 기념 선물. 아, 향은 내 맘대로 정했다. 넌 그냥 참고 써.”
“이왕이면 받는 사람 취향도 좀 고려해줬으면 좋겠는데.”
“그건 내 마음이다.”
그래도 일단 받았으니 한번 시향을 해봤다. 그런데 생각보다 향이 괜찮았다. 깔끔하면서도 시원한 향이었다.
“나쁘지 않네.”
그런 내 말에 형은 곧 만족스럽게 웃어 보였다. 이제껏 향수는 사용해본 적이 없지만, 이참에 한 번씩 써 봐도 괜찮을 듯 했다.
“근데 이거 혹시 형도 있는 거야? 뭔가 병이 익숙한데.”
“응. 저기.”
곧바로 형이 테이블 너머를 가리켰다.
아, 역시 그랬었군.
어쩐지 좀 생긴 게 익숙하다 했다.
“어쨌든 둘 다 잘 쓸게.”
“그래. 근데 그게 다야?”
“뭐가?”
그러더니 형은 상당히 못마땅하단 표정으로 턱을 괴었다.
“어렸을 땐 리액션도 좋았는데. 선물 주면 형 선물이 최고라고 좋아하고.”
“언제적 얘기를 하는 거야.”
“10년도 안된 얘기일 거다.”
오래됐네, 뭐.
“그래서 무슨 반응을 원한 건데?”
“형 선물이 최고라는, 뭐 그런?”
“와, 형 선물이 최고야.”
“······.”
왜, 원한다길래 해줬건만.
이에 형은 리액션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며 툴툴거렸다.
이후에는 본가에서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마침 내일 오후까지는 연습이 비는 터라 오랜만에 자고 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는 가지고 있던 지갑을 꺼내 안에 있던 내용물을 새 지갑으로 옮겼다.
‘기회가 될 때 한번 언급해야겠네.’
반응이 없다며 저렇게 서운해 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제대로 언급해서 짚고 넘어가 줘야 할 것 같았다. 그럼 뭐, 풀리겠지.
* * *
그리고 며칠 뒤.
형은 아침 일찍부터 공항으로 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어째 형은 준비를 하는 내내 표정이 별로였다.
“역시 좀 찜찜하네.”
그리고는 조용히 팔짱을 낀다.
여전히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뭐가?”
“그냥 가기엔 걸리는 게 한 둘이 아니라.”
“걸릴 게 뭐가 있어.”
“많아.”
신도하 관련 이야기인가.
하지만 걸릴 것도 없었다.
그보다 왜 많은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어. 형이 걱정할 일 같은 거 없으니까.”
그런 내 말에 형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곧 무언가 떠오른 듯 반응했다.
“아, 그거 샀다.”
“뭘?”
“너희 팬미팅.”
그 말에 순간 귀를 의심했다.
“진짜로 샀다고?”
“응. 역시 꽤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궁금한 것도 많네.
사라고 하긴 했지만, 설마 진짜로 살 줄은 몰랐다. 그냥 그러다가 말 줄 알았지.
“그러니 노래 열심히 해라. 엄청 기대하고 있을 거니까.”
“안 그래도 그럴 거야.”
그러자 형은 곧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마찬가지로 옆에 이를 듣고 있던 엄마도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며 덧붙였다.
그나저나 가족들이 본다고 생각하니 뭔가 낯 뜨겁기도 한데. 괜히 의식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그렇게 형을 배웅했다.
이번엔 연습이 있어 공항까지 따라가진 못했고 집에서 간단하게 인사를 했다.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알겠어.”
“꼭.”
알겠다니까 그러네.
도대체 몇 번을 강조하는 건지.
“그보다도 형.”
“응.”
“다음에는 제발 미리 언질 좀 줘.”
그래야 시간을 미리 더 내던가 하지.
아무튼 되도록 사전에 일정을 좀 알려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말에 형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이내 씨익 웃어 보였다.
“싫은데.”
그럴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