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약간 식은 땀이 나네.
“아니, 잠깐······.”
순간 내 눈을 잠시 의심했다.
다름 아닌 형이 보내온 사진 한 장으로 인해.
‘웬 생일 광고판?’
보내온 사진의 정체는 바로 내 생일 광고판이었다. 와중에 형은 그 앞에서 브이를 하고 있었고.
‘이건 또 언제 보러 간 거야.’
생일 이후 한 달 넘게 시간이 흘렀으니 광고판도 거의 내려갔을 터였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건지 그걸 또 찾아내 사진까지 찍었다.
[형]
: 잘 나오지 않았냐?
확실히 잘 나왔다.
광고판이.
사진을 괜찮은 걸로 써주셨네.
[우세현]
: 잘 나왔네. 언제 간 거야?
[형]
: 쉬는 동안 갔지. 더 찍고 싶었는데 주변에 사람이 꽤 있어서 몇 장 못 건졌어
뭐 하나 했더니.
그나저나 이건 어디 역이지.
“뭐 해?”
“아, 깜짝이야.”
순간 백은찬이 뒤에서부터 불쑥 나타났다.
“뭘 그렇게 놀래?”
“아니. 별로.”
“음?”
그리고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본다.
이에 나는 곧 폰을 넣었다.
“어, 근데 너.”
“응.”
“혹시 향수 뿌렸냐?”
그러더니 곧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온다.
개 코가 따로 없네.
“어. 맞아.”
“갑자기 웬 향수?”
“선물 받았어.”
“누구한테?”
“형한테.”
그러더니 곧 ‘오-’하는 소릴 내며 감탄한다.
“뭔가 형님같이 멋있는 향이네.”
그리고는 센스도 좋으신 거 같다며 형에 대한 이런저런 칭찬을 늘어놓았다.
향이 멋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좋긴 했다. 가볍고 시원하고.
“나도 서진이 성인 되면 향수나 줄까.”
“괜찮네.”
“응. 괜찮은 것 같다.”
백은찬은 그렇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향이 좋은 것 같다며 나중에 브랜드 이름을 알려 달라 말했다.
“형들, 우리 팬미팅 컨셉 영상 찍은 거 올라왔대요!”
“아, 그거 올라왔어?”
이에 백은찬과 난 서둘러 멤버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곧 팬미팅 컨셉 영상이 올라온다고 하더니 그게 오늘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멤버들과 난 가운데 하람이를 중심으로 둥글게 모였다.
“어떻게 나왔을지 궁금하네.”
“그럼 바로 재생할게요.”
이내 신하람이 영상의 재생 버튼을 살짝 터치했다. 그러자 곧바로 시작되는 영상.
[ Welcome, WINSOME University ]
영상은 윈썸 대학교 로고가 등장하면서 시작되었다. 로고가 잘 빠진 게 상당히 공을 들인 티가 났다.
이어서 영상은 각 멤버를 한 명 한 명 소개했다. 시작은 늘 그렇듯 윤도운이었다.
“도운이 형이다, 도운이 형!”
“쉿. 쉿.”
화면 속 윤도운은 밝은 아이보리색 니트를 입은 채 책을 한 가득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어서 함께 나오는 자막.
[세상에 내가 모르는 책은 없어요.]
[국어국문학과 윤도운]
“······?”
순간 그 자막을 본 멤버들과 난 그대로 잠시 정지했다. 뭔가,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다.
“어, 이거 약간 자막이 오글······.”
“형! 형 나와요!”
그리고 다음으로는 백은찬이 등장했다.
보라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백은찬은 축구공을 든 채 운동장 계단에 앉아있었다.
[기록은 의미 없어요. 내가 다 깨버리니까.]
[체육교육학과 백은찬]
“으아아아아아악!”
이를 본 백은찬은 곧 포효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상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다음으로 나온 것은 신하람.
신하람은 붓과 팔레트를 든 채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었다.
[예술의 세계에 온 걸 환영해요.]
[회화과 신하람]
“저, 저는 그래도 그렇게 심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신하람이 애써 그렇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제 남은 멤버는 3명. 나는 언제 나올지 궁금한 걸 넘어서 이제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냥 빨리 나왔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그 생각이 무색하게 다음 화면으론 차선빈이 등장했다.
조리모와 조리복을 착용한 차선빈은 그대로 한 손에 후라이팬 하나를 들고 있었다.
슬쩍 보니 차선빈도 평소와 달리 꽤나 긴장을 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자막.
[내 요리는 최고일 거라 자부해요.]
[호텔조리학과 차선빈]
이에 차선빈은 잠시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아니, 근데 우리 학생 컨셉 아니었나. 왜 이렇게 자막에서 전문가의 향기가 나지.
“지호 형이에요! 지호 형!”
그 말에 곧바로 화면에 다시 집중했다.
안지호는 대체 어떤······.
흰색 가운을 입은 채로 실험용 유리병에 담긴 푸른빛 액체를 바라보고 있는 안지호.
그런 안지호의 학과는 바로 화학과였다.
[실험은 저에게 있어서 늘 도전이죠.]
[화학과 안지호]
“도전하는 남자, 안지호냐?”
“못 깨는 기록이 없는 것보단 낫지.”
이에 백은찬은 다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이었다.
이제 남은 건 나 하나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긴장을 하기도 전에 곧바로 내 모습이 화면에 등장했다.
“오, 세현이 형. 안경?”
“그러게. 안경 쓴 거 처음 본다.”
당연하지. 원래 안 쓰니까.
나는 화면 속에서 안경을 쓴 채로 거대한 모니터 앞에 앉아 빠르게 키보드를 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보이는 모니터 속 패스워드 입력창.
그랬다.
내가 맡은 건 다름 아닌 정보보안학과였다.
[내 방어막은 완벽합니다.]
[정보보안학과 우세현]
* * *
처음 학과를 정할 당시 여러 가지 후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후보들 중 선택한 게 바로 정보보안학과였다.
선택의 이유는 일단 컨셉이 명확할 것 같았고, 또 요즘 정보보안이 뜬다고 하니까.
그렇지만 이런 자막이 달릴 줄은 전혀 몰랐다. 내 방어막은 완벽합니다, 라니.
급하게 숨고 싶어졌다.
[ To be continued ]
그리고 나를 마지막으로 영상은 끝이 났고, 이후 멤버들은 그렇게 한동안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 하 이런 감사한 컨셉 너무 좋다ㅋㅋㅋ
- ㅋㅋㅋㅋㅋ학과는 애들이 정한 건가?
- 근데 자막은 누가 단 거임?ㅋㅋㅋㅋㅋ
- 선빈이랑 세현이는 의외네ㅋㅋㅋ특히 세현이는 당연히 실음과 할 줄 알았는데
- 세현이 정보보안 컨셉 실화냐 안경 낀 것도 개 좋아
- 자막 좀 오글거리긴 한데ㅋㅋㅋㅋㅋ그래도 애들 다 이쁘고 귀여워서 좋다ㅋㅋㅋㅋ
- 이거 학과 회사에서 정해준 거 아니고 직접 정한 거라던데?
└ 헐 그럼 이거 애들이 직접 선택한 거?
- 안지호 가운 개 잘어울려 예전에 플온스에서 의사 컨셉도 좋았는데 또 가운을 입다니 이런 fox
“흠. 그래. 우리 이제 그만 사진 찍을 준비 할까?”
“아, 맞아. 그래야죠.”
앞선 팬미팅 영상의 반응을 확인하던 멤버들은 재빨리 정신을 차린 이후, 그렇게 하나둘씩 몸을 움직였다.
사실 오늘 우리가 여기 모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리고 그건 바로 공식 응원봉 때문이었다.
팬미팅에 앞서 윈썸의 공식 응원봉이 마침내 출시됐다. 그와 더불어서 공식색도 확정된 상태였다.
일단 정해진 공식색부터 말하자면, 공식색은 2가지 컬러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전에 정해진 색상 하나만을 사용하던 때와 달리 요즘엔 이렇게 2가지 컬러 이상의 공식색상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해서 정해진 색상은 바로 퍼플과 화이트였다. 특히나 화이트의 경우, 팬덤의 이름인 ‘멜로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멜로우에서 연상되는 마시멜로가 하얀색이므로. 꽤 단순한 이유였다. 단순하지만 그럼에도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공식 색상을 활용하듯 우리의 응원봉에도 마찬가지로 퍼플과 화이트가 활용되었다.
“근데 디자인이 예쁘긴 예쁘다.”
“전 여기 있는 이 눈꽃 디테일이 마음에 들어요.”
그건 나도 마음에 들었다.
응원봉은 반짝이는 볼 안에 ‘W’ 조형물이 세워져 있는 형태였다. 이는 ‘WINSOME’의 ‘W’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W’는 눈처럼 하얀 화이트 색상이었으며, 해당 알파벳 위에는 보라색 눈꽃 하나가 포인트로 자리하고 있었다.
이후 볼 아래 손잡이 몸통 부분부터는 또다시 보라색인 형태였다.
결론은 예쁘게 잘 나왔다는 말이었다.
멤버들 역시 응원봉 디자인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한동안 이를 보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응원봉이 나온 것을 팬미팅에 앞서 깜짝 공개하는 날이었다. 공식 계정을 통해.
“포즈는 어떻게 할까?”
“다 같이 한 포즈로 할까? 이렇게-드는 거지.”
“그건 너무 평범하지 않아요? 이왕 할 거면 이렇게는 어때요?”
백은찬은 곧 한 손엔 봉을 들고 다른 한 손은 이를 가리키는 꽤나 공손한 포즈를 취해 보였다.
“그건 너무 물건 파는 것 같잖아······.”
“매우 인위적이었어요.”
반응은 별로 안 좋았다.
그나저나 다른 것보다 봉이 잘 보이도록 하는 게 좋지 않나.
“봉 위주로 생각을 해보자.”
“그럼 그냥 오래 고민할 것 없이 이렇게 해.”
이내 안지호는 턱 밑으로 봉을 들어 보였다. 하지만 이 역시도 반응이 별로였다.
“그러다가 불 들어오면 호러 영화야.”
“어차피 끄고 찍을 텐데 뭔 상관이야.”
“난 키고 찍으려고 했는데? 이런 건 원래 발광력이 중요하다고! 빛이 얼마나 뿜뿜 나는지!”
아, 그건 인정.
되도록 많이 밝았으면 했다.
존재감이 마구 드러날 수 있도록.
“이왕이면 아이돌 응원봉 중 넘사로 밝았으면 좋겠는데.”
“응? 뭐라고요, 세현이 형?”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어쨌든 그렇게 한동안 이런저런 포즈를 고안했다. 그리고 결국 포즈를 정했다.
결정된 포즈는 여섯 명이서 봉을 하나로 모은 채 찍는 걸로 했다. 단, 사진이 아닌 영상으로.
“일단 시작은 이렇게 봉 모으고, 둘셋 하면 다 같이 불을 키는 걸로 하자.”
“한번 탁- 켜야 예쁜 거 알지?”
“신호 잘 맞춰서 한 번에 하자고요. 우리 이거 말고도 의논해야 할 거 또 있잖아요.”
“아, 맞다. 그것도 있었지.”
이 다음에도 중요하게 남아 있는 게 하나 더 있었다. 그러니 하람이의 말처럼 되도록 한 번에 끝내는 게 좋았다.
“그럼 입을 움직이지 말고 빨리빨리 모아.”
촬영은 안지호가 맡기로 했다.
역시 카메라 하면 안지호니까.
“자, 그럼 시작한다.”
삑!
그렇게 6개의 응원봉이 중앙에 모인 채로 이내 촬영은 시작되었다.
* * *
응원봉이 공식 계정을 통해 공개되기 하루 전, 이를 스포하는 정보가 사전에 올라왔다.
[WINSOME Official Light Stick, 202X.01 OPEN]
- 윈썸 응원봉 나와? 드디어?
- 데뷔 한지 1년이 다되어가는데 이제야 응원봉 생기는 거 실화?
- 응원봉 맡겨놨어 빨리 내놔 IN
- 그래도 윈썸 정도면 빨리 나온 거야 선배 그룹은 2년 만에 나왔대.........
└ 아 ㅆㅂ 선배라면 인터?
└ 와;; 거기도 사리 나왔겠다
└ 하여튼 IN은 대형 중에서도 팬마케팅이 젤 구린 것 같아 ㅆㅂ
- 됐고 디자인만 잘 뽑자 그거면 돼
그리고 얼마 안 돼, 마침내 공식 계정을 통해 응원봉이 공개가 되었다. 윈썸이 직접 촬영한 영상을 통해.
- 헐? 사진 아니고 영상?
- 설마 애들이 직접 찍은 건가
- 이건 예상 못했다
영상의 썸네일은 응원봉 6개가 하나로 모인 장면이었다. 그리고 이내 영상이 시작되자 앞선 장면이 바로 이어졌다.
그렇게 눈앞으로 보이는 6개의 응원봉.
그리고 누군가가 둘, 셋-하고 외치자 응원봉의 불이 동시에 밝게 켜졌다.
동시에 영상 안에서는 웃음소리들이 끊이지 않은 채 조금씩 들려왔다.
- ㅋㅋㅋㅋㅋㅋㅋ애들 웃는 거봐
- 귀여워ㅠ 이거 찍으려고 오밀조밀 모여있었을 생각하니ㅠ
- 애들 이거 백퍼 한번에 못 찍었다
- 이건 비하인드나 그런 거 없나ㅠ 존나 귀여울 것 같은데
- 이거 누구 아이디어일지 궁금하다ㅋ
이어서 응원봉은 다음날부터 사전 예약을 시작했으나 이는 순식간에 마감되고 말았다.
판매 시작 불과 2분 만에.
그 사이 해당 응원봉을 판매하는 앱과 사이트는 온갖 오류가 발생하였고, 끝내 폭주하는 사태까지 갔다.
- ㅆㅂ 아예 들어가지지를 않는데 어케 사라는 거야
- 누구 성공한 사람 있어?ㅠ 들어가자마자 품절로 뜨는데ㅠ
- 물량을 왜 이렇게 쥐꼬리만하게 뽑은 거임? 장난하나 진짜 ㅡㅡ
- 벌써부터 SNS에 가격 배로 얹어서 플미로 판매하고 있네 어휴 플미충들
이에 2차 판매를 소원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IN 엔터테인먼트는 이와 관련해 추가 입고와 함께 현장 판매를 늘리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1월 30일.
데뷔일을 하루 앞두고 마침내 팬미팅 첫째날의 아침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