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졸업 축하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카메라의 수는 많아지면 많아졌지 결코 줄어들지는 않았다.
물론 지금 이곳에 있는 카메라들이 모두 나나 차선빈을 찍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이외에도 오늘 졸업하는 아이돌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상당수 많은 카메라들이 나와 차선빈을 향해 있었다. 아마 이것 말고도 시야에 잡히지 않은 카메라들도 많을 터였다.
여기에 기자들은 플러스 알파고.
‘제 시간에 시작은 할 수 있으려나.’
이렇게 소란스러운 와중에 제 시간에 시작이 될 수 있을지 그게 더 걱정이었다.
그렇게 식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한 좌석 건너로 백은찬과 안지호가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마찬가지로 저쪽도 우리를 발견한 건지 백은찬이 살짝 손을 들어 인사했다. 그러자 곧 셔터 연사음이 한번 더 크게 들려왔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졸업식은 딜레이 없이 정시에 시작됐다. 하지만 식이 시작되어도 번잡스러운 분위기는 여전했다.
‘엄마는 오셨나.’
그리고 잠깐 폰을 확인해봤다.
확인해보니 어느새 부모님으로부터 메시지가 와있었다.
[엄마]
: 도착해서 아빠랑 2층에 앉아있어.
이미 앉아계신가보네.
이에 잠시 2층을 살펴보았다.
[엄마]
: 엄청 큰 꽃 들고 있어. 핑크색
그런 내 모습을 보신 건지 엄마는 곧바로 답을 보내셨다. 핑크색 꽃다발. 하지만 여기선 아무래도 구별하기 힘들었다.
“어머니, 오셨대?”
옆에 있던 차선빈이 물었다.
“응. 오셨대.”
“어디 계신대?”
“2층에. 핑크색 꽃다발을 들고 있다는데 어딘지는 잘 모르겠네.”
그러자 차선빈도 고개를 돌려 잠시 2층을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곧 손을 뻗어 가리켰다.
“혹시 저기 계신 분 아니야? 커다란 분홍색 꽃다발 들고 계신 분.”
“어디?”
“저기.”
어, 맞는 것 같은데.
아니, 잠깐만.
근데 무슨 꽃다발이 저렇게······.
순간 보이는 꽃다발에 나는 눈을 조금 더 가늘게 떠 보였다.
“세현아, 선빈아. 너희 이제 준비하래.”
그때 같은 반 학생 중 한 명이 다가와 우리에게 일렀다. 그리고 그 말을 따라 우리는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후 단상 아래로 향했다.
바로 이 다음에 있을 공로상 수상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해마다 졸업식 때면 학교 측에서 공로상을 시상하곤 했는데, 수상자는 대부분이 아이돌 그룹에 소속되어 있는 학생들이었다.
그리고 올해는 우리가 그 상을 받게 되었고. 단상 아래로 가니 먼저 와 있던 백은찬과 안지호와도 만날 수 있었다.
“하이. 왜 이렇게 늦었어?”
“전달받자마자 바로 온 건데.”
공로상 시상 직전에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우리는 단상 아래에서 잠시 대기였다.
“살면서 공로상이라는 것도 받네. 학교에서 받는 건 개근상이 다 일 줄 알았는데.”
“개근상을 받아?”
“초등학교 때, 초등학교 때 얘기야.”
그러자 안지호가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개근상도 대단한데. 난 개근상도 없어.”
“어, 차선빈 개근상 없어?”
“응.”
개근상도 은근 받기 힘든 상 아닌가.
그만큼 성실해야 한다는 거니.
그리고 그렇게 멤버들의 이야기를 잠시 듣고 있었다. 다만, 그러한 와중에도 종종 다른 이들의 목소리가 섞여 들어오곤 했다.
[“와, 연예인은 연예인이네. 개 잘생겼어.”]
[“한 것도 없으면서 연예인이라고 공로상도 받고···아이돌이 좋긴 좋다.”]
[“사진 살짝 찍고 싶네.”]
개중에는 간간히 불만이 섞인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니 굳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일단 주는 상이니 감사하게 받는다는 생각.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공로상을 받는 이는 멤버들과 나를 포함해 모두 7명이었다. 우리 이외의 나머지 3명의 수상자 역시 모 아이돌 그룹의 멤버였다.
[지금부터 공로상 시상이 있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멤버들과 함께 단상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그런 우리의 뒤로는 다시금 카메라의 플래시들이 무수히 빠른 속도로 터지고 있었다.
* * *
[“아이돌 잔치.”]
근처에 있던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난 그 생각을 그대로 지나쳤다.
비꼬려는 의도가 가득한 말이었지만, 거리가 멀어지자 그런 소리 따위는 자연스럽게 들리지 않게 되었다.
“세현아, 여기서 찍을까?”
“네. 좋아요.”
나는 그렇게 교정에서 잠시 부모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런 우리를 향해 카메라를 든 건 다름 아닌 매니저 형이었다.
부모님은 정말 큰 꽃다발을 가지고 오셨다. 크기도 그렇지만 색도 화려해서 왜 빨리 발견을 못 했나 싶을 정도였다.
“단독도 찍자. 단독도.”
“저 혼자 찍어요?”
“도현이가 꼭 보내 달라고 했어.”
그 말에 일단 자세를 취했다.
그러고 보니 형은 이제껏 내 졸업식이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못 온 거지.
초등학교 졸업식 때는 스케줄로 인해 못 왔고, 중학교 졸업식 때는 군대에 있었다.
그렇다 보니 늘 이렇게 사진을 보냈는데, 이는 고등학교 졸업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렇다고 서운하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형이 그걸 얼마나 아쉬워하고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
이번에도 단순히 일정이 맞지 않아 오지 못한 거고.
그 대신, 다음에 거하게 한 턱 내라고 할 생각이었다. 최대한 비싼 걸로 먹어야지. 최대한 비싸고 맛있는 걸로.
“꽃다발이 아주 잘 어울리네.”
“세현이가 약간 묻히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 아들이 묻히긴 뭘 묻혀요. 튀면 더 튀었지.”
근데 진짜 묻히는 게 맞았다.
진짜로, 정말, 엄청 꽃다발이 컸다.
“밥은 뭐 먹니?”
“이따 컨텐츠 촬영하면서 먹을 것 같아요.”
졸업식이 끝난 이후에는 졸업 관련 컨텐츠를 촬영할 예정에 있었다. 무려 멤버 4명이 같은 날 졸업을 하는 거니까.
듣자 하니 뭘 먹으러 간다고 하는 것 같던데, 자세한 건 아직 듣지 못한 터였다.
“촬영 열심히 하고.”
“나중에 집에 한번 갈게요.”
그렇게 부모님과는 금방 헤어지게 됐다.
애써 여기까지 오셨는데, 죄송한 마음이었다. 조만간 집에 한번 들러야겠다.
“우세현!”
이후로 멤버들과 바로 합류했다.
차선빈과 안지호, 백은찬은 이미 모여 있는 상태였고 거기에 도운이 형과 하람이도 어느새 합류해 있었다.
“세현이 형, 졸업 축하요!”
“고마워.”
“이건 꽃다발이요.”
그리고 나는 신하람으로부터 노란색 꽃다발을 하나 받았다. 이어서 멤버들은 내 품에 있던 꽃다발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꽃다발이 엄청 크네. 이거 부모님한테 받은 거야?”
“네.”
“이 정도면 주문 제작이라도 하신 모양인데?”
“맞아요. 보통 시중에 파는 건 이렇게까지 안 크잖아요.”
멤버들은 그렇게 한동안 꽃다발을 이런 저런 각도에서 구경했다.
근데 뭐, 난 마음에 들었다.
일단 꽃 종류도 다양하고, 또 화려하고.
나중에 사진 찍어서 형한테도 보내줄까.
이후에는 컨텐츠 촬영을 위해 차량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근데 우리 뭐 찍는지 알아요?”
“듣자 하니 뭐 먹으러 간다던데?”
“오호.”
그 말에 하람이는 배가 고팠던 건지 한껏 신이 나 보였다.
그리고 차량 앞에 서 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스텝 한 명이 카메라를 든 채로 대기하고 있던 상태였다. 여기서부터 컨텐츠 시작인가 보네.
그리고 우리는 그 스텝에게서부터 어떠한 물건 하나를 건네받았다.
“이게 뭔가요?”
“룰렛이에요.”
“룰렛이요?”
건네받은 물건은 손가락보다 조금 큰 크기의 룰렛 하나. 그리고 그곳엔 다양한 음식점 이름이 적혀 있었다.
“레스토랑, 뷔페, 중국집······.”
“헐, 설마 이거 우리가 돌려서 가는 거예요?”
“네. 맞습니다.”
단순히 식사를 하러 가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간단한 룰렛 돌리기를 통해 앞으로 우리가 갈 곳을 정해야만 했다.
“아, 이러시기 있어요! 그래도 졸업식인데 그냥 주시지!”
“옳소! 옳소!”
“우세현, 후보 뭐 있어?”
“레스토랑, 중국집, 뷔페, 김밥전문점, 고깃집.”
“우세현! 안지호! 벌써 수긍이야?”
이내 뒷자리에서 항의하던 백은찬이 당황한 듯 소리쳤다. 그럼 어떡하냐. 돌리라는데.
“그래, 일단 돌려보자. 그, 보니까 후보들은 다 괜찮네.”
“난 중국집이 좋을 것 같아.”
“뭐? 차선빈 중국집?”
“아니죠. 무조건 레스토랑이죠!”
그리고 잠시 어떤 곳이 가장 좋을까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생각보다 의견이 다양하게 나왔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다들 원치 않던 곳은 하나 있었다.
“김밥 전문점은 제발 피하자.”
“회사에서 사주는 건데, 졸업식인데, 김밥은 좀 그렇죠.”
“근데 요즘 김밥집에서도 메뉴 다양하던데.”
“선빈이 형, 쉿. 쉿. 말이 씨가 될라.”
김밥 전문점은 되도록 피하자는 의견이었다. 물론 차선빈 말 대로 메뉴가 다양하긴 한데, 그래도 레스토랑을 제쳐두고 김밥 전문점은 아니지.
“자, 그럼 정리를 해보자. 일단 레스토랑 손.”
이에 백은찬과 신하람, 윤도운이 손을 들었다.
“잠깐, 우리 셋 뿐이야?”
“세현이 형, 원래 레스토랑 쪽 아니었어요?”
“아니, 나 파무침 먹고 싶어서.”
“파무침? 파무침?”
고기도 고긴데 파무침도 먹고 싶었다.
근데 레스토랑엔 파무침 없잖아.
“갑분 파무침이 나올 줄은 몰랐네.”
“그럼 다른 형들은요?”
“난 뷔페.”
안지호는 뷔페를 주장하고 나섰다.
그리고 차선빈은 여전히 중국집.
“레스토랑으로 통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정말 놀랍기만 하다.”
“원래 사람 입맛은 다양한 거잖아.”
“그래, 파무침. 그래······.”
백은찬은 잠시 그렇게 허탈하게 웃었다.
“그런 것보다 얼른 돌리기나 해. 이야기 길게 해봤자 김밥 나오면 끝인데.”
“그건 그렇죠. 그럼 누가 돌려요?”
“오늘 졸업한 애들 중 한 명이 돌리자. 이거 졸업 기념 컨텐츠잖아.”
그러고 보니 그랬지.
먹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보니 잠시 잊고 있었다.
“가위바위보 할까?”
“아니면 생일 제일 빠른 사람이 돌리기 어때요?”
“그럼 나잖아.”
안지호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반응했다.
“생일 제일 빠른 사람 말고, 느린 사람으로 하자. 그러니까, 막내.”
“아, 그래. 그거 좋네.”
보기 드물게 백은찬과 안지호가 의견이 맞는 순간이었다. 아니, 근데 잠깐만. 제일 느린 사람이면 나잖아.
“나보고 돌리라고?”
“그래. 우리 귀염둥이 막내, 세현이가 돌리자.”
그리고선 나에게 룰렛을 준다.
아니, 이렇게 그냥 간다고?
“그래요, 세현이 형이 가죠!”
“세현이 룰렛 잘 돌릴 것 같아.”
그리고 의견은 한순간에 하나로 통일됐다. 조금 전 메뉴를 정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어쩔 수 없지.
“알겠어, 내가 돌릴게.”
이후 나는 곧바로 룰렛을 돌릴 준비를 했다. 이렇게 된 거 굳이 시간 끌 필요 없이 그냥 후딱 해치울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본 멤버들은 티 나게 환호했다. 그래, 어차피 김밥만 피하면 되는 건데.
그렇게 잠시 차 안으로 침묵이 흘렀다.
내심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돌린다.”
그리고 이내 나는 가차 없이 룰렛을 돌렸다. 꽤나 힘주어 돌린 탓인지 룰렛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돌아갔다.
더불어 멤버들을 포함해 차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을 오직 룰렛에만 집중되어 있는 상태였다.
“멈춘다, 멈춘다!”
“으아아아악!”
그리고 이내 느려지기 시작한 룰렛.
스르르르륵─
이윽고 룰렛은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