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나만의 노하우가 있어.
첫 번째 게임인 묵찌빠 대결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그리고 그 중심엔 우세현이 있었다.
첫 번째 타자로 나간 우세현이 혼자서 무려 3명의 상대를 제쳤기 때문이었다.
“세현이 형, 완전 대박인데요?”
신하람이 한껏 신이 난 얼굴로 말했다.
마찬가지로 지켜보던 백은찬 역시 계속되는 승리에 흥이 오른 상태였다.
무엇보다 흐름을 제대로 탔다.
그렇기에 남은 2명도 이대로만 가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근데.”
“엉.”
“세현이, 물 너무 맞은 것 같은데.”
와중에 이제껏 조용히 지켜만 보던 차선빈이 처음으로 입을 뗐다. 그러한 차선빈의 말에 백은찬은 재차 앞을 확인해봤다.
“······확실히.”
머리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건 물론이고 지속해서 물을 뒤집어쓴 탓에 습관적으로 얼굴을 계속 문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다 보니 눈이나 코가 어느새 잔뜩 빨개져 있는 모습이었다.
‘교체 같은 거 안 되나.’
룰이 룰이다 보니 그대로 계속 놔두고 있긴 하지만, 웬만하면 여기서 한번 끊어주고 가고 싶었다.
“어떻게, 물어봐?”
“어, 뭘?”
“교체.”
그런 백은찬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건지 안지호 역시 교체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래도 멤버들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것 같았다.
“오케이, 내가 물어볼게.”
그리고 백은찬이 나서서 교체와 관련해 물어보려는 순간, 마침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앞에서 먼저 나왔다.
“중간에 한번 교체 가능합니다.”
그 순간, 백은찬은 이거다 싶었다.
그리고 고민할 것도 없이 손을 들었다.
“교체할게요!”
뒤이어 백은찬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렇게 우세현에게로 향하려는데, 그런 그를 안지호가 다시금 불렀다.
“이것도 가져가라.”
건네받은 건 다름 아닌 수건이었다.
동시에 백은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렇게 그는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을 손에 쥔 채 우세현에게로 곧장 달려갔다.
* * *
갑작스럽게 교체를 외치고 나선 백은찬은 뭔가를 물을 틈도 없이 빠르게 나와 섰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들어가라며 손짓했다.
“왜 교체야?”
“체력 안배. 머리에서 물 떨어지는 거 봐라.”
그리고는 언제 가지고 나온 건지 수건을 하나 건넸다.
“가서 물이나 좀 짜고 있어. 얼굴도 좀 닦고.”
“굳이 교체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해. 그냥 해. 할 타이밍이야.”
그리고는 수건을 들이미는 탓에 일단 받아들였다. 수건을 받아들자 이내 동의한다는 뜻으로 알아들은 건지 백은찬은 그대로 내 어깨를 툭 한번 쳤다.
‘할 수 없지.’
일단 지금은 백은찬에게 순서를 넘기기로 했다. 어차피 뒤에 다시 나올 수 있으니.
“형, 이리 와요.”
멤버들이 있는 곳으로 가자 마찬가지로 수건을 든 신하람과 차선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서 구한 건지 둘 다 대형 타월을 하나씩 들고 서 있었다.
“이거 덮고 있어.”
“머리에도, 머리에도.”
그러다 보니 어느새 머리부터 발끝까지 수건을 덮고 있는 꼴이 되었다. 축축한 게 덜해서 좋긴 한데, 이건 너무 싸맨 거 아니냐.
“형, 얼굴 빨개요. 교체되는 줄 알았으면 진작 교체하는 건데.”
신하람이 이내 불평하듯 중얼거렸다.
나는 그대로 가지고 있던 수건 하나를 이용해 머리를 털었다.
“내가 끝까지 할 수 있었는데.”
“뭘 혼자 끝까지 가요. 대충 한두 명 이겼으면 본분을 다한 거지. 한 판할 때마다 체력적 소모가 얼마나 큰데.”
“귀 안 아파? 물 많이 들어갔을 텐데.”
그러고 보니 좀 먹먹한 것도 같고.
이내 귀를 조금 털어보았다.
잠시 그러고 있는데 그때 차선빈이 조용히 내 머리 위로 수건을 한 장 더 올렸다.
“어차피 2명밖에 안 남았어. 돌아가는 상황 보니 승기는 확실히 이쪽으로 왔고.”
안지호가 말했다.
그러면서도 시선을 여전히 앞을 향해 있었다.
‘분위기가 넘어오긴 했지, 확실히.’
촤악!
그 사이 한번 더 크게 물이 오가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나를 포함한 멤버들의 시선이 모두 앞을 향했다.
“이왕이면 끝까지 가고 싶었는데.”
“그렇게 앞만 보다가 되려 털린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하긴, 5명 째쯤에는 털렸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렇게 멤버들과 함께 백은찬의 활약을 잠시 지켜보았다. 수건을 많이 덮고 있는 덕인가, 머리도 옷도 금방 마르고 있는 것 같았다.
촤악!
그리고 그 사이 백은찬은 이겼다.
* * *
“첫 번째 묵찌빠 대결, 그 승리자는 바로 윈썸입니다!”
첫 번째 게임에서 이겼다.
남은 2명의 멤버 중 한 명은 백은찬이, 나머지 한 명은 차선빈이 승리를 하게 되면서 그대로 교체 없이 게임을 끝내게 되었다.
“그나저나 세현 씨의 활약이 아주 대단했어요. 혼자서 3명이나 이기고!”
“승리의 많은 기여를 했죠, 세현 씨가~”
그런 두 MC의 말에 나는 그저 웃어 보였다. 수건 3장이 효과가 좋았던 건지 머리에서는 더 이상 물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게임을 위해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옷 갈아입었어?”
“응.”
앞선 게임으로 인해 출연진들 모두 옷이 꽤 젖은 터라 다음 게임 전 각자 새로 옷을 건네받았다.
“근데 넌 어떻게 가위바위보도 잘하고, 묵찌빠도 그렇게 잘하냐?”
“대충 나만의 노하우가 있어.”
“뭔데, 그 노하우가?”
그걸 알려주면 노하우가 아니지.
이에 대충 그런 게 있다며 얼버무렸다.
“다음 게임은 금지의 단어라고 했나?”
“응. 맞아.”
다음으로 할 게임은 바로 ‘금지의 단어’.
이 게임은 이름 그대로 금지 단어와 행동을 개인마다 하나씩 정하고 이를 어길 시 물통을 맞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근데 이거 비슷한 게임 예전 예능에 있지 않았나?”
“있었어. 나도 어렸을 때 봤었거든.”
“아.”
역시.
왠지 익숙하다 했더니 예전 예능 게임을 차용한 방식인 듯 했다. 아마 그건 물통이 아니라 의자가 뒤로 넘어가는 룰이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안전상의 문제로 물통으로 바꾼 게 아닐까 싶었다. 그거 잘못하면 허리 나간다고 하더라.
물론 물통이라고 해도 가볍지만은 않았다.
그 물통의 크기가 상당히 컸던 터라.
대충 어림잡아 10L 정도의 대형 물통인 듯 했다.
촬영이 재개되자 MC를 비롯한 출연진들이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이번에도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중앙엔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었으나 테이블 이외에도 의자 몇 개가 더 놓여 있었다.
“네, 그럼 지금부터 할 게임에 관해 설명을 해드릴게요.”
‘금지의 단어’.
이 게임의 룰은 간단히 설명하자면, 기본적으로 1:1 게임으로 제작진에서 정한 금지 단어를 머리에 붙인 채로 게임에 나선다.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해당 단어나 행동을 할 시 그대로 물통 공격. 단, 여기서 물통을 맞는 건 본인이 아닌 다른 멤버였다.
한 판을 진행할 때마다 짝꿍 멤버가 한 명씩 나와 대결을 하는 멤버 대신 짝꿍 멤버가 물을 맞는 것이다.
“게임은 금지 단어 혹은 행동을 카운트해서 더 많이 한 팀이 지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런 게임이다 보니 단어, 행동의 유추가 중요했다. 게임을 위해서도 멤버를 위해서도.
‘단어 유추야, 문제 될 게 없고.’
중요한 건 어떻게 저쪽이 해당 단어를 하도록 이끌어내는 가였다.
“그럼 각자 팀원 멤버 다 짜셨나요?”
“네. 저희는 다 짰습니다.”
내 팀원은 안지호였다.
내가 게임을 할 때는 안지호가 팀원석에, 안지호가 게임을 할 때는 내가 팀원석에 앉기로 했다.
“그럼 게임을 진행할 멤버들 앞으로 나와 앉아 주시죠~”
첫 판은 백은찬과 차선빈이었다.
플레이어는 백은찬이고, 팀원석에는 차선빈이 앉아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지금······.”
쏴아아아악!
“아.”
당황한 백은찬이 물을 맞은 차선빈을 바라보며 그대로 잠시 정지했다. 백은찬의 금지 단어는 바로 ‘아니’였다. 피하기 쉽지 않은 단어지.
한편, 차선빈은 물을 맞을 때마다 말없이 조용히 옆에 있는 수건만 한 번씩 집어 들 뿐이었다.
“네, 그럼 이번 게임의 최종 합산 결과 승리 팀은 바로······체이스입니다!”
아깝네.
그렇게 많이 차이는 안 났던 것 같은데.
이에 체이스 팀으로 나왔던 손태하와 체이스 멤버 한 명은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승리를 자축하고 있었다.
“와, 이게 물이 장난 아니야.”
그대로 백은찬은 수건에 얼굴을 파묻었다.
당연히 그렇겠지. 딱 보기에도 상당해 보이는데.
“무조건 제시어부터 빨리 알아내라. 안 그러면 계속 맞아, 계속.”
“형, 보니까 아까 코로 제대로 들어갔던데요?”
“그거 찍혔어?”
응. 찍혔다.
그리고 그걸 안 백은찬은 잠시 낙담했다.
다음 차례는 나와 안지호였다.
그리고 상대는 명우진과 이화준.
이에 안지호와 난 곧바로 정해진 자리로 가 앉았다. 그리고 그런 내 앞 좌석에는 명우진이 자리했다.
“세현 씨가 먼저네요.”
명우진이 나를 보며 말했다.
이번 게임에서는 내가 플레이어, 안지호가 동행석이었다. 저쪽의 경우 명우진이 플레이어였고.
“듣자하니 세현 씨는 눈치가 상당히 빠르다고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괜히 긴장되네요.”
“아뇨. 저도 평범한 편입니다.”
[“과연.”]
명우진은 그런 내 말을 대충 흘려듣는 모양새였다.
“근데 혹여 너무 많이 맞으면 지호한테 한 소리 듣는 거 아니에요?”
“안지호가 그런 걸로 뭐라고 하진 않아서요.”
“어, 그런가요?”
그러자 이를 들은 명우진은 조금 놀란 듯 반응했다. 뭘 그렇게 놀라.
아무리 그래도 안지호가 이런 걸로 뭐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크게 뭐라고 하진 않을 터였다. 아마도.
이후에는 스텝에게 금지어와 금지 행동이 붙은 모자를 건네받았다. 당연하지만, 상대방 것 이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명우진의 단어는 [별로 / 고개를 끄덕인다] 였다.
“그럼 게임 바로 진행할게요.”
이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대화 주제는 바로 이겁니다.”
[음식]
이와 더불어 기본적으로 플레이어들에게는 매 게임마다 대화 주제가 정해졌는데, 이번 대화의 주제는 바로 음식이었다.
“세현 씨는 평소 뭐 좋아하시나요?”
“저는 웬만해서는 다 잘 먹습니다. 선배님께서는 좋아하시는 거 있나요?”
“저도 웬만해서는 다 잘 먹어서요.”
분위기를 살피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꽤나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세현 씨가 민트초코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 네. 맞습니다.”
그건 어떻게 안 거래.
사실 꽤 퍼져있는 정보긴 했지만, 그래도 이와 같은 사실을 명우진이 알고 있다는 것에 조금 놀랐다.
“아이스크림 중 특히 좋아하시는 건가요?”
“네. 그런 셈이죠. 선배님은 민트초코, 안 좋아하시나요?”
이에 명우진은 조용히 대답을 고르는 모습이었다.
“저는 별로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촤아아악!
그리고 그 순간, 이화준을 향해 쏟아진 물통. 이를 본 명우진은 순간 몸을 멈칫했다.
“저는 그렇게······.”
“그렇게 좋아하는······.”
뒤이어 명우진은 앞서 했던 말을 다시 반복하며 키워드를 찾는 모습이었다.
[“뭐지.”]
하지만 자신이 ‘별로’라는 단어를 말한 것은 인식하지 못했는지 끝내 찾지 못했다.
“민트 초코 별로 안 좋아하시는군요?”
그리고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동시에 명우진이 그런 나를 따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저는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촤아아악!
그리고 이화준을 향해 다시 한번 물이 발사되었다.
[“행동, 인가.”]
그 생각과 동시에 명우진은 지난 행동을 잠시 돌이켜보며 고개를 한번 끄덕여 보였다.
촤아아아악!
[“아. 그렇군.”]
행동 키워드를 눈치챘다.
생각보다 빠른 타이밍이었다.
“민트 초코, 안 좋아합니다.”
“그건 아쉽네요. 민트 초코 맛있는데.”
“그거 말고 달리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은 없으신가요?”
열심히 키워드 쪽으로 몰아가는군.
이내 나는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아무래도 여기서 한번 짚고 넘어가 줘야 할 것 같았다.
“좋아하는 음식은 많죠. 그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건 한우요.”
촤아아악!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안지호를 향해 준비된 물이 쏟아졌다. 이를 본 명우진은 이내 보이지 않게 살짝 미소 지었다.
내게 주어진 금지어는 [특히]였다.
그래서인지 명우진은 계속 앞선 말에 ‘특별히’를 붙여가며 말을 하는 듯 했고.
“한우, 좋아하시는군요.”
“한우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렇죠.”
그리고 명우진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지는 이화준을 향한 물세례.
[“아, 젠장. 순간 모르게.”]
그렇게 명우진의 카운트는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난 그런 명우진을 보며 한번 미소 지었다.
그러자 곧, 안지호를 향해 다시 한번 시원하게 물이 쏟아졌다.
‘좋아.’
금지 단어와 함께 내게 주어진 금지 행동이란 바로 [미소 짓기]. 어차피 한 번씩은 짚고 넘어 가야 했으니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로써 키워드들은 전부 확실히 드러났다. 그러니 이제 남은 건 적당한 연기뿐이었다.
마치 이제야 눈치를 챘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