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혼자 먹는 밥은 맛이 없다.
어렸을 적부터 은찬은 홀로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을 때가 많았다. 주위로 보이는 건 주인 없는 의자뿐.
그리고 그때마다 항상 느꼈다. 혼자 먹는 밥만큼 맛없는 건 세상에 없다고.
그것만큼 세상에 허전한 건 없다고.
그에게 있어 아무도 없는 식탁만큼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도 없었다.
* * *
“부탁?”
“엉.”
손에 있던 타박상도 어느새 다 아물고, 스케줄이 비던 어느 오후. 나는 백은찬으로부터 조금 뜬금없는 부탁을 하나 받았다.
“무슨 부탁인데?”
“이건, 생각보다 큰 부탁이야.”
“그러니까, 뭔데?”
“후······.”
그러더니 곧 대답은 않고,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쉰다.
도대체 뭐 길래 저러는 건지.
백은찬이 할 만한 부탁을 잠시 생각해봤는데, 역시나 이거다 확신이 드는 건 없었다.
혹시 일에 관련된 건가.
아니면, 노래나 춤?
그리고 이내 백은찬은 무언가 결심을 한 듯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오늘 나랑 좀 나가자.”
“어딜?”
“선물 사러.”
“선물? 무슨 선물?”
“동생 생일 선물.”
아, 동생 생일 선물.
난 또 뭐라고.
정말로 무슨 큰일이 있는 건 줄 알았다.
“이제 곧 서진이 생일이야?”
“엉. 그래서 선물을 살까 하는데 뭐가 좋을지 떠오르는 게 없네.”
“그동안은 줬어?”
“흠흠. 당연하지.”
확실히 백은찬도 동생이랑 사이가 참 좋았다. 근데 생일 선물이라, 나도 크게 생각나는 게 없는 건 마찬가지인데.
“요즘 고등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거면 되지 않나?”
“그걸 모르겠어서.”
“근데 왜 난데?”
“넌 일단 동생의 입장을 대표할 수 있어. 그동안 형님한테 선물 받았을 거 아니야.”
받긴 받았지만······.
사실 그간 선물들을 생각하면 내 취향보다는 형 취향 위주로 받았던 터라.
“왠지 형님은 엄청 멋있는 걸로만 주셨을 것 같은데.”
“전혀.”
“아니야?”
“응.”
그나마 올해가 그럭저럭 괜찮은 거고, 이전을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당장 머니건만 생각해봐도···음. 그래.
“아니면 내가 고를 테니까 넌 괜찮은지 아닌지 제3자의 입장으로만 봐줘.”
“그래, 뭐.”
그거라면 가능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백은찬과 함께 백은찬 동생의 생일 선물을 사고자 외출했다.
“역시 전자기기가 나으려나.”
“아무래도 그게 가장 무난하지.”
여러 후보군들 이야기가 나왔지만, 아무래도 전자기기 쪽이 가장 무난했다. 그렇다 보니 그 위주로 돌아다녔고.
“아니면 무선 이어폰 같은 건?”
“헐.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그거 신형 나왔다면서 얘기한 것도 같다.”
얼마 전에 신형이 나오긴 했지.
디자인도 꽤 잘 빠졌던데.
마침 근처에 그 브랜드 스토어가 있었던 터라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번 들러서 실물을 확인해봤다.
“야, 나도 하나 새로 살까?”
“진정해.”
그 와중에 백은찬의 충동을 종종 막아주기도 해야 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선물은 무선 이어폰으로 하기로 했다. 백은찬 말에 의하면, 평소 음악도 자주 듣는 편이라고 하니 대충 적당한 것 같았다.
“아, 뭔가 정하고 나니까 맘이 후련하네.”
“뭐 얼마나 고민을 했길래?”
“심각하게 고민한 건 아닌데 왜 있잖아, 약간 해야 되는데~ 하면서 찜찜한 거. 그런 정도였거든.”
하긴, 백은찬의 성격상 미룰 때까지 미룬 거일 테니.
“이왕 줄 거면 케이스도 같이 줘.”
“헉! 케이스! 맞다, 땡큐.”
“그래.”
그리고 나서는 백은찬과 저녁을 먹으러 갔다. 백은찬은 오늘은 자기가 쏘겠다며 나서서 이야기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아, 오늘 아주 만족스러워.”
“그래?”
“응. 생각보다 선물도 빨리 정했고. 역시 데리고 나오길 잘했어.”
그렇게 백은찬은 상당히 만족스러워 보이는 얼굴로 웃었다. 그러더니 곧 나를 향해 폰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참고로 케이스는 이걸로 할까해.”
백은찬이 고른 무선 이어폰의 케이스는 중앙에 유명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녹색 케이스였다.
“근데 이거, 서진이 취향은 맞아?”
“왜? 이거 귀엽지 않나?”
“귀엽긴 한데, 그냥 깔끔한 게 무난하지 않나 싶어서.”
“이거 깔끔하지 않아?”
백은찬이 그렇게 들고 있던 화면을 다시 한번 유심히 살펴보았다.
근데 뭐, 동생 취향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테니 더 이상 간섭은 안 하기로 했다.
“왔어?”
그리고 밥을 다 먹고 난 뒤, 그대로 숙소로 직행했다. 그런 나와 백은찬을 차선빈이 반겼다. 도착하니 어느새 9시가 넘어 있는 시각이었다.
“저녁은 먹었지?”
“응. 당연하지. 뭐 먹었어?”
“돈까스.”
이에 차선빈이 맛을 묻길래 맛있었다 해주었다. 그러자 궁금했는지 다음엔 같이 가자며 이야기했다.
그렇게 방에 들어가 기력을 충천하고 있는데, 도중에 백은찬이 방문 너머로 얼굴을 내밀었다.
“우세현.”
“왜?”
“아니, 오늘 고마웠다는 말하려고.”
아아.
이에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그러고 갈 줄 알았던 백은찬은 자연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왔다.
“한동안 이것 때문에 고민이 많았거든. 이왕이면 서진이가 완전 좋아할 만한 걸로 주고 싶어가지고.”
근데 사실 뭘 주던 다 좋아하지 않았을까.
“섬세한 형이네.”
“그러냐?”
“응.”
그러자 백은찬은 그대로 살짝 웃었다.
다시 봐도 백은찬은 동생이랑 참 사이가 좋은 것 같았다.
“아무래도 서진이랑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애기 같고 그래서.”
어, 처음 만났을 때?
아, 애기 때를 말하는 건가.
“그때는 진짜 요만했거든. 그리고 원래 그 나이대 애들이 유독 더 귀엽고 그런······.”
“잠깐만. 애기 때 말하는 거지?”
“? 아니. 한 8살 때쯤······.”
“8살? 처음 만난 거라며.”
그런 내 질문에 백은찬은 곧 아-하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슬슬 말할까 싶었는데. 사실 서진이랑 나, 친형제 아니거든.”
“뭐?”
그 순간, 잠깐 사고가 정지했다.
아니, 일단 당연히 처음 듣는 사실이었고. 무엇보다 그걸 아주 어제 밥 먹었냐는 듯한 안부 인사 마냥 스무스하게 말하고 있었다.
“야, 잠깐.”
그때 뒤에서부터 익숙한,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나 있다고.”
뒤를 돌아보니 안지호가 어느새 미간을 찌푸린 채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 * *
그 순간, 안지호는 엎드려있던 몸을 느리게 일으켰다. 그리고서는 그대로 폰만 챙기더니 이내 그대로 방을 나가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왜 나가?”
백은찬이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일어서는 안지호를 향해 물었다.
“내가 들을 얘기 아닌 것 같아서.”
“엥? 딱히?”
그리고 백은찬은 그대로 팔짱을 꼈다.
“별로 들어도 상관없는 얘기야. 안 그래도 멤버들한테도 다 말하려고 했었고.”
그렇게 말하던 백은찬은 여전히 평소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 말을 하는 목소리도, 여느 때와 달라짐이 없었다.
“아빠가 꽤 오래전에 재혼을 하셨거든. 그러니까 대충 초등학교 때쯤. 서진이랑도 그때 처음 만나게 된 거고.”
그리고 백은찬이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자 안지호는 작게 한숨을 내뱉더니 이내 그대로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럼 원래 외동이었어?”
“응. 외동이었어. 근데 이제 동생이 생긴 거지.”
그랬었군.
전에 백은찬과 동생이 닮지 않았다고 문득 생각했었는데, 이러한 사정이 있었을 줄은 몰랐다.
“처음엔 서진이나 나나 어색한 감도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점차 그런 것도 없어지더라. 그리고 무엇보다 밥을 같이 먹을 수 있는 동생이 생겨서 좋았어.”
마지막 말을 하면서는 마치 그때를 회상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예전엔 아빠가 바쁘시니까 집에서 혼자 밥 먹는 일이 많았거든. 그런데 동생이 생긴 이후로는 항상 같이 먹는 가족이 생긴 거니까.”
하긴, 백은찬 밥 혼자 먹는 거 싫어하니까. 굳이 더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때의 백은찬의 기분이 어땠을지는.
“뭐, 어쨌든 서진이랑 실제로 친형제는 아니긴 하지만 별로 그렇게 의미는 없어. 이미 친형제이고.”
“그렇지.”
“응.”
백은찬은 그냥 자신의 가족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심각해질 필요 같은 건 없었다.
더불어 워낙 어렸을 때 재혼을 하신 터라 이와 같은 사실을 아는 사람은 가족이나 친척 이외엔 없을 거라는 말을 전했다.
“대충 그때가 내가 10살이었고, 서진이가 8살이었으니까. 그땐 서진이가 성이 다르긴 했는데, 곧바로 바꿨으니까.”
다만, 그 시기에 친구였던 애들은 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 또한 전했다.
그 점이 좀 걱정되긴 했다.
가정사라는 게 뭐든 알려져서 좋을 게 없으니까.
“근데 뭐, 워낙 까마득한 일이라 기억하는 애들은 거의 없을걸.”
“그때 친구들 중 아직까지 연락하는 친구는 있어?”
“없지. 끊긴 지 오래야.”
그렇군.
괜히 퍼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아, 근데 나 물어볼 거 있었는데.”
“뭔데?”
백은찬은 그대로 폰을 꺼내더니 이내 내게 무선 이어폰 케이스 하나를 보여주었다.
“이것도 별로냐?”
이번엔 캐릭터가 그려진 빨간색 케이스였다. 물론 아까와는 캐릭터가 다르긴 했지만.
“이것도 그다지.”
“아, 그래? 야, 안지호. 이거 별로?”
이내 백은찬이 가까이에 있던 안지호에게도 같은 화면을 보여주었다.
“구려.”
안지호는 일말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은 채 답했다. 그러자 백은찬은 그러냐고 하면서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거 요즘 중고딩 사이에서 인기 있는 캐릭터라 했는데······.”
안 되겠군.
그리고 그날 다시 적절한 디자인의 케이스를 찾기 위해 잠시 머리를 맞댔다.
“이거, 이거 괜찮다.”
“이거?”
“그나마 봐줄 만 하네.”
“오케이! 이걸로 간다!”
그렇게 백은찬은 블루 컬러의 깔끔한 이어폰 케이스를 그날 바로 구매했다.
* * *
은찬은 최신형 무선 이어폰과 멤버들과 함께 고심 끝에 고른 케이스를 동생의 생일에 맞춰 전달했다.
[동생 서진이]
: 형, 완전 땡큐
그리고 은찬의 바람대로 서진은 그 선물을 상당히 좋아했다. 이에 은찬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동생 서진이]
: 근데 이거 케이스는 형이 고른 거 아니지?
어라, 그 메시지를 보는 순간 은찬은 잠시 눈이 커졌다.
[은찬]
: 무슨 소리야 당연히 내가 골랏지
[동생 서진이]
: 혹시 다른 멤버 형들이 골라줬어?
눈치 빠른 제 동생에 은찬은 한숨을 한번 깊이 내쉬었다. 아주 정곡을 찌르는 바람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아주 귀신이야.’
이내 은찬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멤버들의 도움을 살짝 받았다고.
[동생 서진이]
: 그럴 줄 알았음
형들한테 감사하다고 전해
이에 대충 알겠노라라고 전한 뒤, 그대로 톡 어플을 종료했다.
‘근데 어떻게 안 거지?’
그렇게 은찬은 자신의 뒤통수를 한번 긁적였다. 그리고 잠시 고민을 해봤으나 여전히 알 길이 없었다.
‘뭐, 아무렴 어때.’
그래도 동생이 제 선물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고, 그 사실 하나로 은찬은 지금 기분이 꽤 괜찮았다.